로딩중
가능/불능 > 불가/불허 不能 A A할 수 없다
대표 : 可 A
동의 : AB ; A ; A 得以 B ; A ; 可得 A ; A ; A ; A 可以 B ; A 足用 B ; A 足以 B ; A 不可 B ; A 不足以 B ; A ; 莫能 A ; A ; 不可 A ; 不能 A ; 不得 A ; 不足 A ; A 不可以 B ; 未可 ; 不可 A ; A 可也 ; A 可矣 ; A ; A 可以 B ; 可得而 A ; 得而 A ; 難得而 A ; 不得而 A ; A ; 須是 A ;
100 개의 글에 글자가 검색되었습니다.
1 策之以其道하며 食之盡其材하며 鳴之通其意하고 執策而臨之曰 天下 無良馬라하니 嗚呼 其眞無馬耶 其眞不識馬耶 <文學독해첩경, 論辨類>  
2 大學之書 古之大學 所以敎人之法也 蓋自天降生民으로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언마는 이나 其氣質之稟 是以 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 <大學章句, 大學章句序>  
《대학》이라는 책은 옛날의 태학(太學)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방법에 관한 것[책]이었다. 대개 하늘이 사람을 내릴 때부터 곧 이미 그들에게 인의예지의 성품을 부여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나 그 부여받은 기질이 간혹 고를 수 없다. 이 때문에 모두가 제 본성이 〈본래부터〉 가진 바(인의예지)를 알아서 그 본성을 온전하게 할 방법이 있을 수 없었다.
3 子曰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하며 不善 是吾憂也니라 <論語, 述而第七>  
공자가 말하였다. 덕이 닦아지지 않음과 학문이 강습되지 않음과 의를 듣고 옮겨갈 수 없는 것과 선하지 않음을 고칠 수 없는 것이 이것이 나의 걱정이다.
4 孔子於鄕黨 恂恂如也하사言者러시다 <論語, 鄕黨第十>  
공자가 향당에서 신실한 듯하여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인 듯하였다.
5 子曰 誦詩三百호되 授之以政 不達하며 使於四方 專對하면 雖多 亦奚以爲리오 <論語, 子路第十三>  
공자가 말하였다. “시 삼 백(편)을 외우면서 (그에게) 정사를 맡겨도 능숙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 갔을 때 단독으로 응대할 수 없다면, 비록 (외운 시가) 많더라도 또한 어디에 쓰겠는가?”
6 子曰 苟正其身矣 於從政乎 何有 正其身이면 如正人何 <論語, 子路第十三>  
공자가 말하였다. “진실로 그 자신을 바르게 하면, 정사를 따르는 일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그 자신을 바로잡을 수 없으면, 남을 바로잡는 일을 어찌하겠는가?
7 子貢曰 管仲 非仁者與인저 桓公 殺公子糾어늘 又相之온여 <論語, 憲問第十四>  
자공이 말하였다. “관중은 인자가 아닐 것이다. 환공이 공자 규를 죽였는데, 죽지 못하고 또 (그를) 도왔다.”
8 子曰 不患人之不己知 患其니라 <論語, 憲問第十四>  
공자가 말하였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잘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9 子曰 知及之라도守之 雖得之 必失之니라 <論語, 衛靈公第十五>  
공자가 말하였다. “지혜가 (그것에) 미치더라도 인이 (그것을) 잘 지키지 못하면 비록 (그것을) 얻더라도 반드시 (그것을) 잃는다.
10 今由與求也 相夫子호되 遠人 不服而來也하며 邦分崩離析而守也하고 <論語, 季氏第十六>  
지금 유와 구는 선생을 돕되 멀리 있는 사람이 복종해오지 않는데 잘 오게 하지 못하고 나라가 나뉘고 무너지고 갈라지고 쪼개지는데도 잘 지키지 못하고,
11 齊景公 待孔子曰 若季氏則吾이어니와 以季孟之間으로 待之호리라하고 曰 吾老矣 用也라한대 孔子行하시다 <論語, 微子第十八>  
제경공이 공자를 대우하여 말하였다. 만일 계씨라면, 곧 내가 할 수 없겠지만, 계씨와 맹씨의 중간으로 (그를) 대우하겠다.” (다시) 말하였다. “내가 늙었다. 등용할 수 없다.” 공자가 떠났다.
12 子夏之門人 問交於子張한대 子張曰 子夏云何 對曰 子夏曰 可者 與之하고 其不可者 拒之라하더이다 子張曰 異乎吾所聞이로다 君子 尊賢而容衆하며 嘉善而矜이니 我之大賢與인댄 於人 何所不容이며 我之不賢與인댄 人將拒我 如之何其拒人也리오 <論語, 子張第十九>  
자하의 문인이 자장에게 사귐을 묻자, 자장이 말하였다. “자하가 무엇이라고 말하던가?” (문인이) 대답하여 말하였다. “자하가, ‘괜찮은 자는 (그와) 함께 하고 그 괜찮지 않은 자는 (그를) 거절하라.’라고 말하였다.” 자장이 말하였다. 내가 들었던 것과는 다르구나. 군자는 현인을 존경하고 대중을 포용하며, 잘하는 이를 아름답게 여기고 능숙하지 못하는 이를 불쌍히 여긴다. 내가 크게 어질다면 (생략) 남에 대해 누구인들 (생략) 용납하지 못할 것이며, 내가 어질지 못하다면 (생략) 남이 장차 나를 거절할 것이니 (그것을) 어찌하여 그렇게 남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13 曰 有復於王者曰 吾力足以擧百鈞이로되 而不足以擧一羽하며 明足以察秋毫之末이로되 而不見輿薪이라하면 則王 許之乎잇가 曰 否 恩足以及禽獸로되 而功不至於百姓者 獨何與잇고 然則一羽之不擧 爲不用力焉이며 輿薪之不見用明焉이며 百姓之不見保 爲不用恩焉이니 王之不王 不爲也언정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말하였다. “왕에게 보고하는 자가 있어 말하길, ‘제 힘으로는 백 균을 들기 충분하지만, 힘으로 깃털 하나를 들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시력으로는 가을 털의 끝을 살피는 데에 충분하지만, 수레에 〈실린〉 땔감을 보지 못합니다’ 한다면, 왕은 이 말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지금 은혜로써 금수에 미치기에 충분하지만,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며, 수레의 땔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백성이 보호받지 않는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잘 다스리지 못함은 하지 않아서일지언정, 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14 曰 不爲者 與不能者之形 何以異잇고 曰 挾太山하여 以超北海 語人曰我不能이라하면 誠不能也어니와 爲長者折枝 語人曰我不能이라하면 不爲也언정 王之不王 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 王之不王 是折枝之類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왕이〉 말하였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모습이 어떤 것이 다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태산을 끼고서, 북해를 뛰어넘는 것을 사람에게 말하길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할 수 없는 것이고, 어른을 위하여 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길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태산을 끼고서 북해를 뛰어넘는 유형이 아닙니다. 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가지를 꺾는 유형입니다.”
15 王曰 吾惛하여 進於是矣로니 願夫子 輔吾志하여 明以敎我하소서 我雖不敏이나 請嘗試之호리이다 曰 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이어니와 若民則無恒産이면 因無恒心이니 苟無恒心이면 放辟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罔民也 焉有仁人在位하여 罔民 而可爲也리오 <孟子, 梁惠王上>  
왕이 말하였다. “내가 어두워서 이에 나아갈 수 없으니, 바라건데 부자는 나의 뜻을 도와 분명하게 나를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한번 그것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항산(恒産)이 없는데에도 항심(恒産)이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거니와, 만약 일반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해 항심이 없으니, 만약 항심이 없다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부정하고 사치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죄에 빠트리는 데에 이른 뒤에 그들을 좇아서 벌하면, 이것은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16 曰 士師治士어든 則如之何잇고 王曰 已之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말하였다. “사사(士師:옥관)가 사(士)를 다스릴 수 없다면 그를 어찌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사사를 그만두게 하겠습니다.”
17 不悅曰 弟子齊宿而後 敢言이어늘 夫子臥而不聽하시니 請勿復敢見矣로이다 曰 坐하라 我明語子호리라 昔者 魯繆公 無人乎子思之側이면安子思하고 泄柳 申詳 無人乎繆公之側이면安其身이러니라 <孟子, 公孫丑下>  
객이 불쾌해하며 말하였다. “제가 재계하고 하루를 묵은 뒤에 감히 말하였는데 선생은 누워서 듣지 않으니, 다시는 외람되지만 뵙지 않으려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앉으시오. 내가 분명히 그대에게 말하겠소. 옛날에 노(魯)나라 목공(繆公)은 자사(子思)의 곁에 〈자신의 뜻을 전달할〉 사람이 없으면 자사를 편안히 여길 수 없었고, 설류(泄柳)와 신상(申詳)은 목공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제 몸을 편안히 여길 수 없었다네.
18 謂然友曰 吾他日 未嘗學問이요 好馳馬試劍하더니 今也 父兄百官 不我足也하니 恐其盡於大事하노니 子爲我問孟子하라 然友復之鄒하여 問孟子한대 孟子曰 然하다 不可以他求者也 孔子曰 君薨커시든 聽於冢宰하나니 歠粥하고 面深墨하여 卽位而哭이어든 百官有司 莫敢不哀 先之也 上有好者 下必有甚焉者矣 君子之德 風也 小人之德 草也 草尙之風이면 必偃이라하시니 是在世子하니라 <孟子, 滕文公上>  
〈세자가〉 연우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전에 일찍이 배우지 않고, 말을 달리고 검술 익히기를 좋아하였는데, 지금은 종친과 백관이 나에게 만족하지 않으니, 그 대사를 완수할 수 없을까 염려되니, 선생께서 저를 위해 맹자에게 물어보십시오.” 연우가 다시 추(鄒) 땅에 가서 맹자에게 물었는데,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다른 것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임금이 죽으면 총재를 따른다.’고 하셨으니, 〈세자가〉 죽을 먹고 얼굴이 심하게 어두워져 자리에 나아가서 곡하면, 백관과 유사가 감히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은 〈세자가〉 이 일을 솔선해서입니다. 윗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랫사람이 반드시 그보다 더하는 것이 있습니다. 〈또 공자께서〉 ‘군자의 덕(德)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니,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쓰러진다.’ 하였으니, 이번 일은 세자에게 달려있습니다.”
19 居天下之廣居하며 立天下之正位하며 行天下之大道하여 得志하여는 與民由之하고 不得志하여는 獨行其道하여 富貴하며 貧賤하며 威武 此之謂大丈夫니라 <孟子, 滕文公下>  
천하의 넓은 집[仁]에 살며 천하의 바른 자리[禮]에 서며 천하의 큰 도[義]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도를 따르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여,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할 수 없으며 빈천(貧賤)이 〈절개를〉 옮길 수 없으며 위세와 무력이 〈뜻을〉 굽힐 수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대장부(大丈夫)라고 합니다.”
20 曰 徒善 不足以爲政이요 徒法 以自行이라하니라 <孟子, 離婁上>  
그러므로 말하기를, 단지 선(善)만으로 정치할 만하지 않고, 단지 법률만으로 저절로 행해지게 할 수 없다.
21 曰 責難於君 謂之恭이요 陳善閉邪 謂之敬이요 吾君 謂之賊이라하니라 <孟子, 離婁上>  
그러므로 말하길 ‘어려운 일을 임금에게 요구하는 것 그것을 공(恭)이라 이르고, 선을 개진하여 사심을 막는 것 그것을 경(敬)이라 이르고, 우리 임금은 할 수 없다고 하는 것 그것을 적(賊)이라 이른다.’ 하였다.”
22 暴其民하면 則身弑國亡하고 不甚하면 則身危國削하나니 名之曰幽厲 雖孝子慈孫이라도 百世 改也니라 <孟子, 離婁上>  
제 백성에게 포학한 것이 심하면 자신은 시해되며 나라가 망하고, 심하지 않으면 자신은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줄어드니, 이름하기를 ‘유’, ‘려’라 하면 비록 효자와 자애로운 자손이라도 백세토록 바꿀 수 없을 것이다.
23 齊景公曰 旣하고 又不受命이면 絶物也라하고 涕出而女於吳하니라 <孟子, 離婁上>  
제나라 경공(景公)이 말하길, ‘이미 명령할 수 없으면서 또 명령을 받을 수 없으면, 이는 남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다.’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오(吳)나라에 딸을 시집 보냈다.
24 孟子曰 自暴者 不可與有言也 自棄者 不可與有爲也 言非禮義 謂之自暴也 吾身居仁由義 謂之自棄也니라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스스로 해치는 사람은 함께 말을 할 수 없고, 스스로 버리는 사람은 함께 일을 할 수 없으니, 말을 함에 예의를 비방하는 것 그것을 자포(自暴)라 이르고, 나 자신은 인에 머무르거나 의를 따를 수 없다는 것 그것을 자기(自棄)라 이른다.
25 孟子曰 存乎人者 莫良於眸子하니 眸子掩其惡하나니 胸中이면 則眸子瞭焉하고 胸中 不正이면 則眸子眊焉이니라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에게 있는 것은 눈동자보다 좋은 것은 없으니, 눈동자가 자기의 악을 가릴 수 없다. 마음에 품은 것이 바르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에 품은 것이 바르지 않으면 눈동자가 흐리다.
26 孟子曰 中也養不中하며 才也養不才 人樂有賢父兄也 如中也棄不中하며 才也棄不才 則賢不肖之相去 其間 以寸이니라 <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중(中)을 〈실천하는 자〉가 중도에 맞지 않는 자를 길러주며, 재주가 있는 자가 재주가 없는 자를 길러준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진 부형이 있는 것을 즐거워한다. 만일 중도에 맞는 자가 중도에 맞지 않는 자를 버리며, 재주가 있는 자가 재주가 없는 자를 버린다면,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의 거리가 그 간격이 한 치도 되지 않을 것이다.”
27 曰 敢問薦之於天而天受之하시고 暴之於民而民受之 如何잇고 曰 使之主祭而百神 享之하니 天受之 使之主事而事治하여 百姓 安之하니 民受之也 天與之하며 人與之 曰天子以天下與人이라하노라 舜相堯二十有八載하시니 非人之所能爲也 天也 堯崩커시늘 三年之喪하고 避堯之子於南河之南이어시늘 天下諸侯朝覲者 不之堯之子而之舜하며 訟獄者 不之堯之子而之舜하며 謳歌者 不謳歌堯之子而謳歌舜하니 曰天也 夫然後 之中國하사 踐天子位焉하시니 而居堯之宮하여 逼堯之子 簒也 非天與也니라 <孟子, 萬章上>  
〈만장이〉 말하였다. “감히 묻건대, 〈요임금이〉 순을 하늘에 천거하자 하늘이 그를 받아주고, 순을 백성들에게 드러내자 백성들이 그를 받아들인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하늘이〉 순에게 제사를 주관하게 하자 온갖 신들이 제사를 흠향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그를 받아 준 것이고, 순에게 일을 주관하게 하자 일이 다스려져서 백성들이 그를 편안하게 여겼으니 이는 백성들이 순을 받아들인 것이네. 하늘이 그에게 주었고 사람이 그에게 주었으니, 그러므로 ‘천자는 천하를 사람에게 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네. 순이 요임금을 도운 것이 스물하고 또 여덟해이니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준 것〉이네. 요임금이 죽자 삼 년의 상을 마치고 순임금이 남하의 남쪽으로 요임금의 아들을 피하였는데 천하의 제후로서 조회하는 자들이 요임금의 아들에게 가지 않고 순임금에게 갔으며, 송사하는 자들이 요임금의 아들에게 가지 않고 순임금에게 갔으며, 칭송하여 노래하는 자들이 요임금의 아들을 칭송하지 않고 순임금을 칭송하였네. 그러므로 ‘하늘의 뜻이다.’ 말한 것이네. 무릇 그런 뒤에야 중원으로 가서 그곳에서 천자의 자리에 오르셨으니, 만약 〈순이〉 요임금의 궁궐에 거처하면서 요임금의 아들을 핍박했다면 이는 찬탈한 것이지 하늘이 준 것이 아니라네.
28 天子之制 地方千里 公侯 皆方百里 七十里 子男 五十里 凡四等이라 五十里 不達於天子하여 附於諸侯하니 曰附庸이니라 <孟子, 萬章下>  
천자의 제도엔 땅이 사방 천 리이고, 공(公)과 후(侯)는 모두 사방 백 리이고, 백(伯)은 〈사방〉 칠십 리이고, 자(子)와 남(男)은 〈사방〉 오십 리이니, 모두 네 등급입니다. 오십 리가 되지 않는 〈땅은〉 천자에 이르지 않아서 제후(諸侯)에게 부속되니, 〈이것을〉 부용국(附庸國)이라고 합니다.
29 曰 君 餽之則受之라하시니 不識케이다 可常繼乎잇가 曰 繆公之於子思也 亟問하시며 亟餽鼎肉이어늘 子思不悅하사 於卒也 摽使者하여 出諸大門之外하시고 北面稽首再拜而不受하시고 曰 今而後 知君之犬馬畜伋이라하시니 蓋自是 臺無餽也하니 悅賢養也 可謂悅賢乎 <孟子, 萬章下>  
〈만장이〉 말하였다. “임금이 구휼할 것을 보내주면 그것을 받는다고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계속 〈받아도〉 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목공이 자사를 대할 적에는 자주 문안하고 자주 삶은 고기를 보냈는데, 자사는 기뻐하지 않고서 결국에는 심부름 보낸 자를 물리쳐서 대문의 밖으로 내보내고, 북쪽을 마주하고 머리를 조아려 재배하고서 받지 않으며 말하길, ‘오늘 이후에 임금께서 개와 말처럼 나를 길렀다는 것을 알았다.’ 하였으니, 대체로 이때부터 〈명을 받은〉 하인을 〈통해〉 〈물건을〉 보낸 일이 없었으니, 현명한 자를 좋아하면서 등용할 수 없고 또 봉양할 수 없다면, 현명한 자를 좋아한다고 이를 수 있겠는가?”
30 公都子하여 以告孟子한대 孟子曰 敬叔父乎 敬弟乎아하면 彼將曰敬叔父라하리라 曰弟爲尸則誰敬고하면 彼將曰敬弟라하리라 子曰 惡在其敬叔父也오하면 彼將曰在位故也라하리니 子亦曰 在位故也라하라 庸敬 在兄하고 斯須之敬 在鄕人하니라 <孟子, 告子上>  
공도자(公都子)가 대답할 수 없어서 맹자에게 고하자, 맹자가 말하였다. “〈그대가〉 ‘숙부를 공경하는가? 동생을 공경하는가?’ 〈말하면〉, 맹계자는 장차 ‘숙부를 공경한다.’ 말할 것이네. 〈그대가〉 ‘동생이 시동(尸童)이 되면 누구를 공경하겠는가?’ 말하면, 맹계자는 장차 ‘동생을 공경한다.’ 말할 것이네. 그대가 ‘어디에 그 숙부를 공경함이 있는가?’ 말하면, 맹계자는 장차 ‘시동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말할 것이네. 그대 역시 ‘빈객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말하게. 평소의 공경은 형에게 있고 잠깐의 공경은 마을 사람에게 있다네.”
31 惻隱之心 人皆有之하며 羞惡之心 人皆有之하며 恭敬之心 人皆有之하며 是非之心 人皆有之하니 惻隱之心 仁也 羞惡之心 義也 恭敬之心 禮也 是非之心 智也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언마는 弗思耳矣 曰 求則得之하고 舍則失之라하니 或相倍蓰而無算者 盡其才者也니라 <孟子, 告子上>  
측은해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며, 공경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니, 측은지심은 인(仁)이고 수오지심은 의(義)이고 공경지심은 예(禮)이고 시비지심은 지(智)이니, 인·의·예·지가 밖으로부터 나를 녹여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 인의예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생각하지 않을 뿐이네. 그러므로 말하길, ‘구하면 인의예지를 얻고, 버리면 인·의·예·지를 잃는다.’ 하는 것이니, 혹 〈선악의 차이가〉 서로 두 배, 다섯 배가 되어서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자기의 〈타고난〉 재질을 다할 수 없었기 때문이네.
32 曰 鈞是人也로되 或從其大體하며 或從其小體 何也잇고 曰 耳目之官 不思而蔽於物하나니 物交物則引之而已矣 心之官則思 思則得之하고 不思則不得也 此天之所與我者 先立乎其大者 則其小者 奪也 此爲大人而已矣니라 <孟子, 告子上>  
〈공도자가〉 말하였다. “똑같이 사람인데, 어떤 이는 그 대체를 따르며 어떤 이는 그 소체를 따르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귀와 눈이란 기관은 생각하지 못하여 물건에 가려지니 외물(外物)이 〈이목(耳目)이라는〉 물과 접촉하면 〈이목은〉 외물에 끌려갈 뿐이네.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대체를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네. 이것은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준 것이니, 먼저 그 큰 것(마음)을 세운다면 그 작은 것(이목)이 빼앗을 수 없으니, 이것이 대인이 된 까닭일 뿐이라네.”
33 屋廬子하여 明日 之鄒하여 以告孟子한대 孟子曰 於答是也 何有리오 <孟子, 告子下>  
옥려자가 잘 대답하지 못하고, 다음 날 추(鄒) 땅에 가서 맹자에게 〈그 일을〉 고하였는데, 맹자가 말하였다. “그 일을 답하는 것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34 曰 奚有於是리오 亦爲之而已矣니라 有人於此하니勝一匹雛 則爲無力人矣 今曰擧百鈞이면 則爲有力人矣 然則擧烏獲之任이면 是亦爲烏獲而已矣니라 夫人 豈以不勝爲患哉리오 弗爲耳니라 <孟子, 告子下>  
〈맹자가〉 말하였다. “〈요순처럼 되는 것이〉 어찌 신장에 달려 있겠습니까? 또한 〈요순과 같은〉 노력을 하〈면 될〉 뿐입니다. 여기에 사람이 있으니, 힘이 한 마리 오리 새끼를 이길 수 없으면 힘없는 사람이 되고, 만약 ‘백 균을 든다.’고 한다면 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니, 그렇다면 오확(烏獲)의 짐을 든다면 그 또한 오확이 될 뿐입니다. 대체 사람들은 왜 이겨내지 못할 것으로 근심을 삼을까요? 〈근심할 것은 요순의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35 徐行後長者 謂之弟 疾行先長者 謂之不弟 夫徐行者 豈人所리오 所不爲也 堯舜之道 孝弟而已矣니라 <孟子, 告子下>  
천천히 걸어 나이 많은 사람보다 뒤에 가는 것을 ‘공경한다.’ 이르고, 빨리 걸어 나이 많은 사람 보다 앞서는 것을 ‘공경하지 않는다.’ 이르니, 무릇 천천히 걷는 것이 어찌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겠습니까? 하지 않는 것이니,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는 효도와 공경일 뿐입니다.
36 其下 朝不食하고 夕不食하여 飢餓出門戶어든 君聞之하고 曰 吾大者 行其道하고從其言也하여 使飢餓於我土地 吾恥之라하고 周之인댄 亦可受也어니와 免死而已矣니라 <孟子, 告子下>  
그 다음으로는, 아침에 먹지 못하고 저녁에 먹지 못하여 굶주려서 문을 나갈 수 없는데, 군주가 사실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크게는 그의 도를 행할 수 없고 또 그 말을 수 따를 없어서 〈그로〉 하여금 나의 토지에서 굶주리게 한 것을 내가 부끄러워한다.’ 하고 그를 구휼한다면, 또한 받을 수는 있겠지만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일 뿐이라네.”
37 天將降大任於是人也신댄 必先苦其心志하며 勞其筋骨하며 餓其體膚하며 空乏其身하여 行拂亂其所爲하나니 所以動心忍性하여 曾益其所이니라 <孟子, 告子下>  
그러므로, 하늘이 장차 한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히며 그의 신체를 수고롭게 하며 그 체구를 굶주리게 하며 그 몸을 궁핍하게 하여 〈일을〉 행함에 그가 하는 바를 거스르고 어지럽히니,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가 할 수 없는 것에 〈힘을〉 더하려는 까닭이다.
38 三年之喪而緦小功之察하며 放飯流歠而問無齒決 是之謂不知務니라 <孟子, 盡心上>  
〈자신의〉 삼년의 상기를 해내지 못하면서 〈남의〉 시마(緦麻)며 소공(小功)을 살피며, 밥을 〈자신은〉 헤집어 놓고 국물을 흘리면서도 〈남에게〉 이로 끊는 것을 하지 말라 요구하는 것, 이것을 힘써야 할 것을 알지 못한다고 이른다.”
39 公孫丑曰 何謂也잇고 梁惠王 以土地之故 糜爛其民而戰之하여 大敗하고 將復之호되이라 驅其所愛子弟하여 以殉之하니 是之謂以其所不愛 及其所愛也니라 <孟子, 盡心下>  
공손추가 말하였다. “무엇을 이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양나라 혜왕이 토지 때문에 자기 백성을 갈아넣어서 전투에서 싸우게 하여 크게 패하였네. 장차 전투를 다시 하려는데 이길 수 없음을 두려워하였다네. 그러므로 자신의 사랑하던 바 자제(태자)를 내몰아서 전투에서 죽게 하니 이것을 일러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미친다고 한다네.”
40 孟子曰 梓匠輪輿 能與人規矩언정 使人巧니라 <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목수와 수레공은 남에게 그림쇠와 곱자를 줄 수 있지만 남을 뛰어나게 할 수 없다.”
41 孟子曰 身不行道 不行於妻子 使人不以道 行於妻子니라 <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자신이 도(道)를 행하지 않으면 처자식에게 〈도가〉 행해지지 않고, 사람을 부릴 적에 도로써 하지 않으면 처자식에게 〈명령이〉 행해질 수 없다.”
42 孟子曰 周于利者 凶年 하고 周于德者 邪世이니라 <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이익에 치밀한 자는 흉년도 〈그를〉 죽일 수 없고, 덕(德)에 치밀한 자는 나쁜 세상도 〈그를〉 어지럽힐 수 없다.”
43 子曰 人皆曰予知로되 驅而納諸罟擭陷阱之中而莫之知辟也하며 人皆曰予知로되 擇乎中庸期月守也니라 <中庸, 中庸>  
공자가 말했다. 사람들이 모두 ‘나는 지혜롭다’고 말하나, 그들을 그물, 덫, 함정의 안에 몰아서 넣어도 (그것을) 피할 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모두 ‘나는 지혜롭다’고 말하나, 중용을 가려서 한 달도 지킬 수 없다.
44 夫婦之愚로도 可以與知焉이로되 及其至也하여는 雖聖人이라도 亦有所不知焉하며 夫婦之不肖로도 可以能行焉이로되 及其至也하여는 雖聖人이라도 亦有所하며 天地之大也에도 人猶有所憾이라 君子語大인댄 天下莫能載焉하며 語小인댄 天下莫能破焉이니라 <中庸, 中庸>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그것을) 참여하여 알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그것을)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부부의 불초함으로도 (그것을) 해낼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비록 성인이라도 또한 (그것에) 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 천지의 큼에도 사람이 오히려 서운해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군자의 큰 것을 말하면 천하가 그것을 실을 수 없으며 작은 것을 말하면 천하가 (그것을) 쪼갤 수 없다.
45 父沒而讀父之書 手澤 存焉爾 母沒而杯圈 飮焉 口澤之氣存焉爾니라 <小學, 明倫第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버지의 책을 (차마) 읽을 수 없는 것은 손때가 거기에 남아 있기 때문이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잔과 그릇을 (사용하여) 마실 수 없는 것은 입으로 드셨던 자취가 거기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46 孟子曰 責難於君 謂之恭이요 陳善閉邪 謂之敬이요 吾君 謂之賊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맹자가 말하였다. 임금에게 어려운 일을 요구하는 것, 그것을 공손함이라 하고, 선을 개진하여 악을 막는 것, 그것을 공경함이라 하고, 우리 임금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그것을 해침이라고 한다.
47 孔子曰君子無不敬也 敬身 爲大하니라 身也者 親之枝也 敢不敬與 敬其身이면 傷其親이요 傷其親이면 傷其本이니 傷其本이면 枝從而亡이라하시니 仰聖模하며 景賢範하여 述此篇하여 以訓蒙士하노라 <小學, 敬身第三>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공경하지 않음이 없으나 몸을 공경함이 큼이 된다. 몸이란 것은 부모의 가지이니, 감히 공경하지 않겠는가? 그 몸을 공경할 수 없다면 이는 그 부모를 상함이요. 그 부모를 상하면 이는 그 뿌리를 상함이니, 그 뿌리를 상하면 가지는 따라서 망한다.” 성인의 법을 우러르며 현인의 법을 우러르며 이 편을 지어 어린 선비를 가르치노라.
48 論語曰 孔子於鄕黨 恂恂如也하사言者러시다 <小學, 敬身第三>  
논어에 말하였다. 공자가 향당에서 신실한 듯하여 마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49 毋嚃羹하며 毋絮羹하며 毋刺齒하며 毋歠醢 絮羹이어든 主人하고 歠醢어든 主人 辭以窶하며 <小學, 敬身第三>  
국을 들여 마시지 말며, 국에 간을 하지 말며, 이를 쑤시지 말며, 젓국을 마시지 말며, 손님이 국에 간을 하면 주인이 잘 요리하지 못함을 사죄하고, 손님이 젓국을 마시면 주인이 가난함을 사죄한다.
50 伯兪有過어늘 其母笞之한대이어늘 其母曰 他日笞 子未嘗泣이라가 今泣 何也 對曰 兪得罪 笞常痛이러니 今母之力 使痛이라 是以泣하노이다 <小學, 稽古第四>  
백유가 잘못이 있어 그 어머니가 (그를) 매질하자 울었다. 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다른 날에 매질할 때 네가 일찍이 울지 않더니 오늘 우는 것은 어째서인가?” (백유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제가 죄를 얻어 매를 맞음에 항상 아프더니 오늘 어머니의 힘이 아프게 할 수 없으니 이 때문에 웁니다.”
51 爲子弟則安灑掃應對하고 接朋友則不能下朋友하고 有官長則下官長하고 爲宰相則下天下之賢이니라 <小學, 嘉言第五>  
자식과 아우가 되어서는 물 뿌리고 쓸고 응하고 대접하는 것을 편안하게 여기지 못하고, 친구를 접하면 친구에게 (자신을) 낮추지 못하고, 관청의 우두머리가 있으면 관청의 우두머리에게 (자신을) 낮추지 못하고, 재상이 되면 천하의 어진 사람에게 (자신을) 낮추지 못한다.
52 夫學 須靜也 須學也 非學이면 無以廣才 非靜이면 無以成學이니 慆慢則硏精이요 險躁則理性이니라 年與時馳하며 意與歲去하여 遂成枯落이어든 悲歎窮廬인들 將復何及也리오 <小學, 嘉言第五>  
무릇 배움은 반드시 안정하여야 하고, 재주는 반드시 배워야 한다. 배움이 아니면 그것으로 재주를 넓힐 수 없고, 안정이 아니면 그것으로 배움을 이룰 수 없으니, 방자하고 게으르면 정밀한 것을 연구할 수 없고, 거칠고 조급하면 성품을 다스릴 수 없다. 나이가 때와 달리며 뜻이 해와 가서 마침내 마르고 시듦을 이루면 궁색한 오두막에서 슬퍼하고 탄식한들 장차 다시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53 凡居父母之喪者 大祥之前 皆未可飮酒食肉이니 若有疾이어든 暫須食飮하되 疾止어든 亦當復初니라 必若素食 下咽하여 久而羸憊하여 恐成疾者 可以肉汁及脯醢或肉少許 助其滋味언정 不可恣食珍羞盛饌及與人燕樂이니 是則雖被衰麻 其實 不行喪也니라 唯五十以上 血氣旣衰하여 必資酒肉扶養者 則不必然耳니라 <小學, 嘉言第五>  
무릇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에 거하는 사람은 대상의 전에 모두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니, 만약 병이 있으면 잠시 모름지기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되, 병이 그치면 또한 마땅히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만일 고기 없는 음식이 목으로 잘 내려가지 않아서 오래되어 파리하고 여위어 병을 이룰까 염려되는 사람은 고기즙과 포와 젓갈이나 혹 고기 조금과 약간으로 그 입맛을 돋울 수 있을지언정 진귀한 음식, 성대한 음식을 마음대로 먹거나 및 남과 연회 하며 즐겨서는 안 되니, 이는 곧 비록 상복을 입었더라도 그 실제는 상례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50세 위로 혈기가 이미 쇠하여 반드시 술과 고기에 도움받아 받들어 봉양하는 사람은 곧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뿐이다.
54 橫渠先生曰 斯干詩 言兄及弟矣 式相好矣 無相猶矣라하니 言兄弟宜相好 不要相學이니 似也 人情 大抵患在施之不見報則輟이라하나니 不要相學이요 己施之而已니라 <小學, 嘉言第五>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시경의) 사간시에 말하였다. ‘형과 아우는 (어조사) 서로 사랑하고, 서로 같아선 안 된다.’ 형과 아우가 마땅히 서로 사랑해야 하고, 마땅히 서로 (나쁜 점을) 배워선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유‘는 같음이다. 사람의 정은 대저 병통이 은혜를 갚음을 당하지 않으면 그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은혜를 잘 마치지 못하니, 마땅히 서로 배우려 하지 말고 자기가 (그것을) 베풀고 그친다.
55 歷玆以往으로 百行 皆然하니이나 去泰去甚하면 學之所知 施無不達하리라 世人 讀書하되 但能言之하고 行之하나니 武人俗吏 所共嗤詆 良由是耳니라 <小學, 嘉言第五>  
이를 지난 이후로 모든 행실이 다 그러하니, 비록 순전할 수 없더라도 지나친 것을 없애고 심한 것을 없애면 (그것을) 배워 아는 바를 시행함에 통달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글을 읽되 다만 (그것을) 잘 말하기만 하고 (그것을) 잘 행하지 못하니, 무예를 하는 사람과 세속의 아전에게 함께 비웃고 비방하는 바가 됨은 진실로 이 때문일 뿐이다.
56 安定先生胡瑗 翼之 患隋唐以來 仕進 尙文辭而遺經業하여 苟趨祿利하더니 及爲蘇湖二州敎授하여는 嚴條約하여 以身先之하여 雖大署라도 必公服終日하여 以見諸生하여 嚴師弟子之禮하며 解經 至有要義하여는 懇懇爲諸生하여 言其所以治己而後治乎人者하니라 學徒千數러니 日月刮劘하여 爲文章하되 皆傅經義하여 必以理勝하며 信其師說하여 敦尙行實하더니 後爲太學하여는 四方歸之하니 庠舍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안정선생 호원은 자가 익지이다. 수나라와 당나라 이래로 벼슬에 나아가는 자들이 문장을 숭상하고 경학을 버려서 구차히 녹봉과 이익에 달려갈 것을 걱정하였다. 소주와 호주 두 주의 교수가 됨에 이르러서는 조약을 엄격히 하여 자신으로 (그것을) 솔선하여, 비록 크게 덥더라도 반드시 종일토록 공복을 입고서 제생들을 만나서 스승과 제자의 예를 엄격히 하였으며, 경전을 풀이할 때 중요한 뜻이 있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간곡하게 제생을 위하여 그 자신을 다스린 이후에 남을 다스리게 되는 까닭을 말해주었다. 배우는 무리가 천 명이었는데 날마다 달마다 갈고 연마하여 문장을 짓되 모두 경서의 뜻에 따라서 반드시 이치로써 우세하게 하였으며 그 스승의 학설을 믿어 행실을 도타이 숭상하였다. 후에 태학(의 관원)이 되어서는 사방이 (그곳에) 모여들어 상사에 수용할 수 없었다
57 薛包好學篤行하더니 父娶後妻而憎包하여 分出之어늘 包日夜號泣러니 至被毆杖하여는 不得已盧于舍外하여 旦入而灑掃어늘 父怒하여 又逐之한대 乃廬於里門하여 晨昏不廢하더니 積歲餘 父母慚而還之하다 服喪過哀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설포는 학문을 좋아하고 행실을 돈독히 하였다. 아버지가 후처를 맞이하고서는 포를 미워하여 분가하여 (그를) 내보내자 설표는 아침 저녁으로 울부짖으며 떠나지 못했다. 몽둥이로 매질을 당함에 이르러서는 부득이하게 집 밖에 여막을 짓고 새벽에 들어와서 물뿌리고 청소하였는데 아버지는 노하여 또다시 (그를) 쫒아내었다. 이에 마을 문에 여막을 짓고 혼정신성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 기간이) 일 년 남짓 쌓이자 부모가 부끄러워하면서 (그를) 돌아오게 하였다. 후에 상복을 입게 되어서는 지나치게 슬퍼하였다.
58 旣而弟子求分財異居어늘하여 乃中分其財할새 奴婢 引其老者曰 與我共事久 使也라하며 田廬 取其荒頓者曰 吾少時所理 意所戀也라하며 器物 取其朽敗者曰 我素所服食이라 身口所安也라하더니 弟子數破其産이어늘 輒復賑給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이윽고 아우의 아들들이 재산을 나누어 따로 살기를 원하였다. 설포는 만류할 수 없어서 이에 그 재산을 절반으로 나누었는데 노비는 그 늙은 자를 끌어오며 말하기를 “나와 더불어 일을 함께 한 지 오래 되었다. 너희들이 부릴 수 없을 것이다.” 밭과 집은 그 황폐하고 기울어진 것을 취하며 말하기를 “내가 어린 시절에 다스리던 것이라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기물은 그 썩고 부서진 것을 취하며 말하기를 “내가 평소에 입고 먹던 것이라서 (나의) 몸과 입에 편안한 것이다." 하였다. 아우의 아들들이 자주 그 재산을 파산하였는데, 그때마다 다시 도와주었다.
59 壽昌 再爲郡守러니 至是하여 以母故 通判河中府하여 迎其同母弟妹以歸러니 居數歲 母卒이어늘 涕泣幾喪明이러라 拊其弟妹益篤하여 爲買田宅居之하고 其於宗族 尤盡恩意하여 嫁兄弟之孤女二人하며 葬其葬者十餘喪하니 蓋其天性 如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수창이 두 차례 군수가 되었는데 이에 이르러 어머니를 이유로 하여 하중부에 통판이 되었는데, 그 동복형제를 맞이하여서 돌아왔다. (함께) 지낸 지 몇 년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눈물 흘리며 울다가 거의 실명하게 되었다. 그 아우와 누이를 사랑하기를 더욱 돈독하게 하여 (그들을) 위하여 밭과 집을 사서 (그곳에) 살게 하였으며 그 종족에 대해서도 더욱 은혜로운 마음을 다하였다. 형제의 고아가 된 딸 두 사람을 시집보냈으며 그 장례 치르지 못한 사람 십여 초상을 장례 지냈으니, 대개 그 천성이 이와 같았다.
60 崔玄暐 母盧氏嘗誡玄暐曰 吾見姨兄屯田郞中辛玄馭하니 曰 兒子從宦者 有人 來云貧乏이라하면 是好消息이어니와 若聞貲貨充足하며 衣馬輕肥라하면 惡消息이라하니 吾嘗以爲確論이라하노라 <小學, 善行第六>  
최현위의 어머니 노씨가 일찍이 현위를 훈계하며 말하였다. 내가 이종 오빠인 둔전낭중 신현어를 보니, (이종 오빠가) 말하기를 “아들로서 벼슬에 종사하는 사람을 어떤 사람이 와서 ‘가난하고 궁핍하여 생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좋은 소식이다, 만약 듣기에 재화가 충족하며 옷과 말이 가볍고 살쪘다고 하면 이는 나쁜 소식이다.’ 라고 하니 나는 일찍이 이로써 확론이라고 여긴다." 하였다.
61 居喪三年이어늘 其父母哀其少無子而早寡也하여 將取嫁之러니 孝婦曰 夫去時 屬妾以供養老母어늘 旣許諾之하니 夫養人老母而不能卒하고 許人以諾而이면 將何以立於世리오하고 欲自殺한대 其父母懼而不敢嫁也하여 遂使養其姑하니 二十八年 姑八十餘 以天年으로이어늘 盡賣其田宅財物하여 以葬之하고 終奉祭祀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상을 지낸지 3년이 되자, 그 부모가 그녀가 젊어 자식이없는데 일찍 과부가 된 것을 슬퍼하였다. 장차 (그녀를) 데려와 시집보내려 하려 하였다. 효부가 말하였다. “남편이 떠날 때 첩에게 노모를 봉양하는 것을 부탁하였는데, 첩이 이미 (그것) 허락하였다. 무릇 남의 노모를 봉양하다가 끝까지 하지 못하며 남에게‘알겠습니다‘라고 허락하였으나 신용을 지키지 못한다면, 장차 무엇 으로써 세상에 서겠는가?" 하고, 자살하려고 하였다. 그 부모가 두려워하여감히 시집보내지 못하고, 마침내 그 시어머니를 봉양하게 하였다. 28년 만에 시어머니가 80여세로천수로써 돌아가셨다. 모두 그 밭과 집과 재물을 팔아서 (그를) 장례 치르고, 끝까지 제사를받들었다.
62 繆肜 少孤하여 兄弟四人 皆同財業하더니 及各取妻하여 諸婦遂求分異하고 又數有鬪爭之言이어늘 深懷忿嘆하여 乃掩戶自撾曰 繆肜 汝修身謹行하여 學聖人之法 將以齊整風俗이니 奈何 正其家乎아한대 弟及諸婦聞之하고 悉叩頭謝罪하여 遂更爲敦睦之行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목융이 어려서 고아가 되어 형제 네 명이 모두 재산과 가업을 함께하였다. 각자 아내를 맞이함에 이르러서는 여러 아내가 마침내 (재산을) 나누어 따로 살기를 요구하였으며, 또 자주 다투는 말이 있었다. 목융이 깊이 분노와 탄식을 품고, 이에 문을 닫고 스스로 종아리를 치며 말하였다. “목융아! 네가 몸을 닦고 행실을 삼가하여 성인의 법을 배우는 것은 장차 이로써 풍속을 정돈하려는 것이니, 어찌하여 그 집안을 바로잡지 못하느냐?" 하였다. 아우 및 여러 아내가 (그것을) 듣고 모두 머리를 조아려 사죄하고, 마침내 고쳐서 돈독하고 화목한 행실을 하였다.
63 晉右僕射鄧攸 永嘉末 沒于石勒하여 過泗水할새 攸以牛馬 負妻子而逃하다가 又遇賊하여 掠其牛馬하고 步走하여 擔其兒及其弟子綏러니兩全하고 乃謂其妻曰 吾弟早亡하고 唯有一息하니 理不可絶이라 止應自棄我兒耳로다 幸而得存하면 後當有子인저 妻泣而從之어늘 乃棄其子而去之러니 卒以無嗣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진나라 우복야 등유가 영가 말년에 석륵에게 패몰되어 사수를 지났는데, 등유는 소와 말에 아내와 아이를 업히고 도망가다가 또 만나 도적을 그 소와 말을 빼앗겨 걸어서 달아나면서 그의 아이와 및 그의 동생의 자식인 유를 업고 갔다. 둘 다 온전하게 할 수 없음을 헤아리고서 이에 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우리 동생은 일찍 죽어서 오직 한 명의 자식이 있을 뿐이니, 도리상 (동생의 후사를) 끊을 수 없다. 다만 마땅히 스스로 우리 아이를 버려야 할 뿐이다. 다행하여 (우리가) 살아있다면 우리는 나중에 마땅히 자식이 있을 것이다. 아내가 울면서 (그 말을) 따랐다. 이에 그 아이를 버리고 (그를) 떠났는데 마침내 이로써 후사가 없었다.
64 父老咸曰 異哉 此子 守人所하며 行人所하니 歲寒然後에야 知松柏之後凋 始知疫癘之相染也로라 <小學, 善行第六>  
부로들이 모두 말하였다. “기이하구나 이 사람이여! 남이 지킬 수 없는 것을 지켰고, 남이 할 수 없는 것을 행하였다.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듦을 아는 것이니 비로소 전염병이 서로 감염시킬 수 없음을 알겠다.”
65 近世故家 惟晁氏因以道 申戒子弟하여 皆有法度하니 群居相呼 外姓尊長 必曰某姓第幾叔若兄이라하며 諸姑尊姑之夫 必曰某姓姑夫 某姓尊姑夫라하고 未嘗敢呼字也하며 其言父黨交遊 必曰某姓幾丈이라하고 亦未嘗敢呼字也하니 當時故家舊族若是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근세의 고가 중에 오직 조씨 가문만이 이도가 거듭 자제에게 훈계한 것을 인하여 모두 법도가 있었다. 모여 살면서 서로 부를 적에 외성의 존장에게는 반드시 “무슨 성 몇 째 아저씨 혹 형” 이라 하고 여러 고모와 대고모의 남편에게는 반드시 말하기를 “아무개 성 고모부, 아무개 성 대고모부"라 하여 일찍이 감히 자를 부르지 않았다. 그 부당의 교유를 말할 때는 반드시 “아무개 성 몇 째 어른” 이라 하고 또한 일찍이 감히 자를 부르지 않았다. 당시의 고가와 구족이 모두 이와 같이 하지 못하였다.
66 韓文公 作董生行曰 淮水出桐柏山하여 東馳遙遙하여 千里어든 淝水出其側하여 千里하여 百里入淮流로다 壽州屬縣有安豐하니 唐貞元年時 縣人董生召南 隱居行義於其中이로다 刺史하니 天子不聞名聲이라 爵祿不及門이요 門外 惟有吏日來徵租更索錢이로다 <小學, 善行第六>  
한문공이 동생행을 지어 말하였다. “회수는 동백산에서 나와 동쪽으로 멀리 달려 천 리를 쉬지 못하는데, 비수는 그 옆에서 나와 천 리를 못하여 백 리를 가서 회수로 들어가 흐르도다. 수주의 속현에 안풍이 있으니, 당나라 정원 연간에 현 사람 동생 소남이 그 가운데에서 은거하며 의를 행하도다. 자사가 천거하지 못하니, 천자가 (그의) 명성을 듣지 못하여 작록이 문에 미치지 못하고, 문 밖에는 오직 관리들이 날마다 와서 조세를 징수하고 다시 돈을 요구하는 일 만 있구나.
67 問第五倫曰 公 有私乎 對曰 昔 人有與吾千里馬者어늘 吾雖不受하나 每三公 有所選擧하되 而亦終不用也하며 吾兄子嘗病이어늘 一夜十往하되 退而安寢하고 吾子有疾이어늘 雖不省視하나 而竟夕不眠하니 若是者 豈可謂無私乎리오 <小學, 善行第六>  
어떤 사람이 제오륜에게 물어 말하였다 “공에게도 사사로움이 있는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 사람 중에 나에게 천리마를 준 사람이 있었다. 내가 비록 받지는 않았으나 삼공이 천거한 바가 있을 때마다 마음에 잊을 수 없었으나, 또한 끝내 등용하지 않았다. 내 형의 아들이 일찍이 병이 들었는데 하룻밤에도 열 번을 갔으나 물러나서 편안하게 잠들었고 내 아들이 병에 걸려서는 비록 살펴보지는 않았으나 밤을 마치도록 잠들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것이 어찌 사사로움이 없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68 又明年 王賈皆遘禍하니 王以珍玩奇貨 爲物之妖하니 信知言矣어니와 徒知物之妖而不知恩權隆赫之妖甚於物耶 馮以卑位 貪寶貨하여正其家하고 盡忠所事而保其身하니 斯亦不足言矣로다 賈之臧獲 害門客于牆廡之間而不知하니 欲終始富貴인들 其可得乎 <小學, 善行第六>  
또 명년에 왕씨와 가씨 모두 재앙을 만났다. 아! 왕씨는 진귀한 물건과 기이한 재화를 물건의 요망함이라 하였으니, 진실로 말을 안 것이지만, 물건의 요망함만 알고 은혜와 권세가 높고 빛남의 요망함이 물건보다 심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는가? 풍구는 낮은 지위로 보화를 탐하여 이미 그 집안을 바로잡지 못하였고 섬기는 바에 충성을 다하였으나 그 몸을 보전하지 못했으니, 이 또한 말하기에 부족하다. 가씨의 노복이 장무의 사이에서 문객을 해쳤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부귀를 누리고자 하였으나,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69 其事上遇人 一以自信하여 不擇利害爲趨捨하고 其有所爲 必盡其方하여 曰 爲之自我者 當如是 其成與否 有不在我者 雖聖賢이라도 이시니 吾豈苟哉리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그 윗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대함에 한결같이 스스로 믿음으로서 하여, 이익과 해로움을 가려서 나아가거나 버리지 (생략) 않았으며, 그 하는 바가 있을 때 반드시 그 방법을 다하면서 말하였다. “나로부터 (생략) 하는 것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니, 그 성공함과 (성공하지) 못함은 나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이 있다. 비록 성현이라도 기필할 수 없으니, 내 어찌 구차히 하겠는가?”
70 張文節公 爲相하여 自奉 如河陽掌書記時러니 所親 或規之曰 今公 受俸不少어늘 而自奉 若此하니 雖自信淸約이라도 外人 頗有公孫布被之譏하니 公宜少從衆하라 嘆曰吾今日之俸 雖擧家錦衣玉食인들 何患이리오 顧人之常情 由儉入奢하고 由奢入儉하니 吾今日之俸 豈能常有 身豈能常存이리오 一旦 異於今日이면 家人 習奢已久 頓儉하여 必至失所하리니 豈若吾居位去位身存身亡 如一日乎리오 <小學, 善行第六>  
장문절공이 재상이 되어 스스로 받듦이 하양의 장서기 일 때와 같았다. 친한 사람이 혹 (그를) 타일러 말하기를 지금 공은 받는 녹봉이 적지 않거늘 스스로 받듦이 이와 같으니, 비록 스스로 청렴하고 검약함을 믿더라도 바깥사람들은 자못 공손이 삼베 이불을 덮었던 비난을 하고 있다. 공은 마땅히 조금은 대중을 따르라.” 공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 지금의 봉급으로 비록 온 가족에게 비단옷과 진수성찬을 먹이더라도 어찌 할 수 없을까 걱정하겠는가? 다만 사람의 상정은, 검소함에서 사치함으로 들어가기는 쉽고 사치함에서 검소함으로 들어가기는 어렵다. 내 지금의 녹봉이 어찌 항상 있을 수 있으며, 몸이 어찌 항상 보존될 수 있겠는가? 하루아침에 지금과 달라지면 집안 사람들은 익힌 지 사치를 이미 오래되어서 갑자기 검소할 수 없어 반드시 (살고) 있는 곳을 잃는 상황에 이를 것이니, 어찌 내가 있거나 벼슬에 떠나거나, 벼슬을 몸이 생존하거나 몸이 죽는 것을 하루처럼 하는 것만 같겠는가?”
71 嗟乎 風俗頹弊如是하니 居位者 雖이나 忍助之乎 <小學, 善行第六>  
아! 풍속이 퇴폐한 것이 이와 같으니, 지위에 있는 사람이 비록 금지하지는 못할지라도 차마 (그것을) 조장하겠는가?”
72 如此 禽獸無異니라 <新編四字小學, 父母2>  
이와 같을 수 없다면, 금수와 다를 것이 없느니라.
73 東西幾萬里 南北이라 <新編推句, 天高>  
동서로 몇 만 리인가? 남북으로 잴 수가 없네.
74 革舊習章 第二: 人雖有志於學이나勇往直前하여 以有所成就者 舊習 有以沮敗之也 舊習之目 條列如左하노니 若非勵志痛絶이면 則終無爲學之地矣리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둘째. 구습을 고치는 것에 대한 글: 사람이 비록 배움에 뜻이 있는데도 용감하게 나아가고 곧게 전진하여 성취하는 바가 있을 수 없는 것은 구습이 성취를 좌절시킨 까닭[所以]이 있다. 구습의 항목을 왼쪽과 같이 조목별로 열거하니 만약 마음을 다하여 〈구습을〉 철저하게 끊어내지 않는다면 끝내 학문을 하는 바탕이 없을 것이다.
75 其一 惰其心志하고 放其儀形하여 只思暇逸하여 深厭拘束이요 其二 常思動作하여 守靜하고 紛紜出入하여 打話度日이요 其三 喜同惡異하여 汨於流俗하여 稍欲修飭이나 恐乖於衆이요 其四 好以文辭 取譽於時하여 剽竊經傳하여 以飾浮藻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그 첫째는 자신의 심지를 게을리하고 자신의 몸가짐을 멋대로 하여 다만 한가하고 편안하기만을 생각하여 구속을 매우 싫어하는 것이요. 그 둘째는 항상 움직일 것을 생각하여 고요함을 지킬 수 없고 어지럽게 출입하며 말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요. 그 셋째는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하고 달리하는 것을 싫어하여 유속에 빠져서 점차 〈몸을〉 닦고 삼가고자 하나 사람들과 어긋날까 두려워하는 것이요. 그 넷째는 문사로 당시 사람에게 칭찬받기를 좋아하여 경전을 표절하여 쓸데없이 화려한 글을 꾸미는 것이요.
76 爲學者一味向道하여 不可爲外物所勝이니 外物之不正者 當一切不留於心하여 鄕人會處 若設博奕樗蒲等戲어든 則當不寓目하여 逡巡引退하고 若遇倡妓作歌舞어든 則必須避去 如値鄕中大會하여 或尊長强留하여 避退어든 則雖在座 而整容淸心하여 不可使奸聲亂色으로 有干於我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학문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도를 향하여 외부의 사물이 이기는 바가 되어선 안 되니, 외부의 사물이 바르지 못한 것을 응당 일체 마음에 머물게 하지 말아서 마을 사람들이 모인 곳에 만일 장기, 바둑, 주사위 놀이 등의 놀이를 벌여 놓았으면 응당 눈을 붙이지 말아서 뒷걸음질 쳐서 (몸을) 이끌어 물러나고, 만일 광대와 기생이 노래와 춤을 하는 것을 만나면 반드시 모름지기 피하여 떠나야 하고, 만일 마을 안의 큰 모임을 만나 혹시 존귀하고 나이 많은 이가 억지로 만류하여 피하고 물러갈 수 없으면 비록 자리에 있더라도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간사한 소리와 음란한 색이 나를 침범함이 있게 안 된다.
77 今人 多是被養於父母하고 以己力養其父母하니 若此奄過日月이면 則終無忠養之時也리라 必須躬幹家事하여 自備甘旨然後 子職乃修 若父母堅不聽從이면 則雖幹家 亦當周旋補助하여 而盡力得甘旨之具하여 以適親口 可也니라 若心心念念 在於養親이면 則珍味 亦必可得矣리라 每念王延 隆冬盛寒 體無全衣호되 而親極滋味하여 令人感歎流涕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양육을 받기만 하고 자기 힘으로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니, 만약 이처럼 문득 세월을 보내면 끝내 정성으로 봉양할 때가 없을 것이다. 반드시 모름지기 몸소 집안일을 맡아 스스로 맛있는 음식을 마련한 뒤에야 자식의 직분이 곧 닦여진다. 만약 부모가 굳이 들어 따라주지 않으면 비록 집안일을 맡을 수는 없더라도 또한 마땅히 주선하고 보조하여 힘을 다해 맛있는 음식의 갖춤을 얻어 그것으로 어버이의 입에 맞도록 함이 옳다. 만약 마음마다 생각마다 어버이 봉양함에 있다면 진미를 또한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양 생각해보면 왕연이 추위가 지독한 겨울날 매서운 추위에 몸에는 온전한 옷이 없었는데 어버이는 맛있는 음식을 다하여 사람들에게 감탄하여 눈물을 흘리게 한게 한다.
78 人之居喪 誠孝不至하여 從禮者 固不足道矣어니와 間有質美而未學者하여 徒知執禮之爲孝하고 而不知傷生之失正하여 過於哀毁하여 羸疾已作호되 而不忍從權하여 以至滅性者 或有之하니 深可惜也 是故 毁瘠傷生 君子謂之不孝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사람이 거상함에 성효가 지극하지 못하여 예를 따를 수 없는 자는 진실로 말할만 한 것도없으나, 간혹 자질이 아름다우나 아직 배우지 못한 자가 있어 단지 예를 행하는 것이 효가 되는 줄만 알고 생명을 손상하는 것이 바름을 잃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슬퍼하고 훼손하기를 지나쳐 파리한 병이 이미 일어났는데 차마 권도를 따르지 못하여 그것으로 생명을 잃는 데 이르는 자가 혹 (그런 자가) 있으니, 매우 애석할 만하다. 이런 까닭으로 훼손하고 수척하여 생명을 상하게 함을 군자는 (그를) 일러 불효라고 한다.
79 師友之義重者 及親戚之無服而情厚者 與凡相知之分密者 皆於聞喪之日 若道遠하여 往臨其喪이면 則設位而哭이니라 師則隨其情義深淺하여 或心喪三年 或期年 或九月 或五月 或三月이요 友則雖最重이나 不過三月이니라 若師喪 欲行三年期年者 奔喪이어든 則當朝夕設位而哭하여 四日而止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스승과 벗의 의리가 중한 자와 친척 중에 복입는 예가 없으면서 정이 두터운 자와 무릇 서로 알던 교분이 친밀한 자는 모두 상을 들은 날에 만약 길이 멀어 그 상에 가서 지킬 수 없으면 신위를 설치하고 곡한다. 스승이라면 그 정의의 깊고 얕음을 따라 혹 심상 삼 년, 혹 기년, 혹 9개월, 혹 5개월, 혹 3개월이요, 친구라면 비록 가장 중하더라도 3개월을 넘지 않는다. 만약 스승의 상에 삼 년이나 기년을 행하고자 하는 자가 초상에 달려갈 수 없으면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신위를 설치하고 곡하여, 나흘에 그친다.
80 君子憂道 不當憂貧이니 但家貧하여 無以資生이면 則雖當思救窮之策이나 亦只可免飢寒而已 不可存居積豊足之念이며 且不可以世間鄙事 留滯于心胸之間이니라 古之隱者 有織屨而食者 樵漁而活者 植杖而耘者하니 此等人 富貴動其心이라 能安於此하니 若有較利害計豊約之念이면 則豈不爲心術之害哉 學者 要須以輕富貴守貧賤爲心이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군자는 도를 근심하고, 마땅히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살 수 없으면, 비록 마땅히 가난함을 구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지만, 또한 단지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만 할 뿐이고, 쌓아두고 풍족하게 지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세상의 비루한 일을 마음 (생략) 속에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 중에는 신발을 삼아서 먹고 사는 사람과, 땔나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사람과, 지팡이를 꽂아 놓고서 김을 매는 사람이 있으니, 이 무리의 사람들은 부유함과 귀함으로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편안할 수 있었다. 만약 이로움과 해로움을 비교하고 풍족함과 가난함을 계산하는 생각이 있다면, (생략) 어찌 마음의 해로움이 되지 않겠는가? 배우는 사람들은 요컨대 모름지기 부유함과 귀함을 가볍게 여기고 가난함과 천함을 지키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81 居家 貧窶 則必爲貧窶所困하여 失其所守者多矣 學者 正當於此處用功이니 古人曰 窮視其所不爲하며 貧視其所不取라하고 孔子曰 小人 窮斯濫矣라하시니 若動於貧窶하여行義 則焉用學問爲哉리오 凡辭受取與之際 必精思義與非義하여 義則取之하고 不義則不取하여 不可毫髮放過니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집에서 생활할 때 가난하면 (생략) 반드시 가난에 곤궁한 바 되어서 그 지키는 (생략) 것을 잃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바로 마땅히 이곳에서 노력해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였다. “곤궁할 때 그가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가난할 때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본다.” 공자가 “소인은 가난하면 넘친다” 라고 하였다. 만약 가난함에 움직여서 의를 행할 수 없다면, (생략) 학문을 어디에 쓰겠는가? 무릇 사양하고 받고 가지고 주는 사이에 반드시 의인지와 의가 아닌지를 정밀하게 생각하여 의라면 (그것을) 가지고, 의가 아니라면 가지지 않아서 터럭만큼도 그대로 지나가서는 안 된다.
82 人言科業爲累하여 學問이라하니 此亦推託之言이요 非出於誠心也 古人養親 有躬耕者하며 有行傭者하며 有負米者하니 夫躬耕 行傭 負米之時 勤苦甚矣 何暇讀書乎 惟其爲親任勞하여 旣修子職하고 而餘力學文이로되 亦可進德이라 <擊蒙要訣, 擊蒙要訣>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 공부에 매이게 되어 학문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이것은 또한 미루고 핑계대는 말이고 성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옛날 사람은 어버이를 봉양할 때 몸소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으며, 품팔이 하러 다니는 사람이 있었으며 쌀을 지고 나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무릇 몸소 밭을 갈고 품팔이 하러 다니고 쌀을 지고 나르는 때에 부지런히 애쓴 것이 심하였으니, 어느 겨를에 책을 읽었겠는가? 오직 그 어버이를 위하여 수고로움을 자임하여 이미 자식의 직분을 닦고서 여력이 있을 때 글을 배웠어도 또한 덕에 나아갈 수 있었다.
83 今人 名爲做擧業而實不著功하고 名爲做理學而實不下手하여 若責以科業이면 則曰我志於理學屑屑於此라하고 若責以理學이면 則曰 我爲科業所累하여 用功於實地라하여 如是兩占便宜하여 悠悠度日이라가 卒至於科業理學 兩無所成하니 老大之後 雖悔인들 何追리오 嗚呼 可不戒哉 <擊蒙要訣, 擊蒙要訣>  
요즘 사람은 명분으로는 과거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공부하지 않고, 명분으로는 이학 공부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손을 대지 않는다. 만약 과거 공부로 책망하면 곧 말하기를, “내가 이학 공부에 뜻을 두고 있어서 거기(과거)에 전념할 수 없다.” 하고, 만약 이학 공부로 책망하면, 곧 말하기를 “나는 과거 공부에 얽매이는 바 되어서, 실지에 힘을 쓸 수 없다.”라고 한다. 이처럼 양쪽으로 편리한 점만 살펴서 한가롭게 날만 보내다가 마침내 과거 공부와 이학 공부 양 쪽 〈모두〉 이룬 바가 없는 데에 이르게 되니, 늙은 뒤에 비록 후회하더라도 어찌 따라잡겠는가? 오호라! 경계하지 않아서 되겠는가?
84 人於未仕時 惟仕是急하고 旣仕後 又恐失之하나니 如是汨沒하여 喪其本心者 多矣懼哉 位高者 主於行道하니 道不可行이면 則可以退矣 若家貧하여 未免祿仕 則須辭內就外하고 辭尊居卑하여 以免飢寒而已 雖曰祿仕 亦當廉勤奉公하여 盡其職務 不可曠官而餔啜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사람이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벼슬하는 것을 급히 여기고 이미 벼슬한 뒤에는 다시 벼슬을 잃을까 염려한다. 이처럼 골몰하다가 그 본심을 잃은 사람이 많으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지위가 높은 사람은 도를 행하는 일을 중심으로 해야 하니, 도가 행해질 수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 옳다. 만약 집안이 가난하여 녹을 받는 벼슬아치에서 벋어날 수 없다면, 반드시 내직을 사양하고 외직에 나아가며, 높은 지위는 사양하고 낮은 벼슬에 머물러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다. 비록 녹봉을 위한 벼슬이라고 하지만, 또한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히 공무에 힘써서 자기 직무를 다해야 하고, 관직을 버려두고서 먹고 마시기만 해서는 안된다.
85 口尙乳臭: 漢王 使酈食其 緩頰往說魏王豹하고 且召之하나 豹不聽이라 於是 漢王以韓信灌嬰曹參으로 俱擊魏한대 漢王問食其하되 魏大將誰也오하니 對曰 柏直이라하다 王曰 是口尙乳臭 安能當韓信이리오 騎將誰也오하니 曰 馮敬이라하다 曰 是秦將馮無擇子也 雖賢이나 當灌嬰이라 步卒將誰也오하니 曰 項它라하다 曰 不能當曹參이니 吾無患矣라하다 <原文故事成語, 形勢>  
86 多多益善: 上常從容與信言諸將能不한대 各有差 上問曰 如我能將幾何오하니 信曰 陛下將十萬이니이다하다 上曰 於君何如오하니 曰 臣多多而益善耳니이다하다 上笑曰 多多益善이면 何爲爲我禽고하니 信曰 陛下將兵이나 而善將將이니이다 此乃信之所以爲陛下禽也 且陛下所謂天授 非人力也니이다하다 <原文故事成語, 形勢>  
87 自上古 不屬爲人이니이다 漢數千里爭利 則人馬罷리니 虜以全制其敝니이다 且彊弩之極矢 穿魯縞하고 衝風之末力 漂鴻毛니이다 非初不勁이나 末力衰也니이다 擊之不便이니 不如和親이니이다하다 群臣議者 多附安國이라 於是上許和親이라 <原文故事成語, 形勢>  
88 其妻獻疑曰 以君之力으론損魁父之丘한대 如太形王屋何 且焉置土石고하니 雜曰 投諸渤海之尾 隱土之北하라하다 遂率子孫荷擔者三夫하고 叩石墾壤하여 箕畚運於渤海之尾 隣人京城氏之孀妻 有遺男始齓한대 跳往助之 寒暑易節이라야 始一反焉이라 <原文故事成語, 努力>  
89 河曲智叟笑而止之曰 甚矣로다 汝之不惠 以殘年餘力으론毁山之一毛한대 其如土石何오하니 北山愚公長息曰 汝心之固하여 固不可徹하니 曾不若孀妻弱子 雖我之死라도 有子存焉이라 子又生孫하고 孫又生子 子又有子하고 子又有孫이라 子子孫孫無窮匱也 而山不加增하니 何苦而不平이리오하다 河曲智叟亡以應이라 <原文故事成語, 努力>  
남은 목숨과 남은 힘으로는 일찌기 산의 한 터럭도허물 수가 없는데, 그 흙과 돌을 어찌 하려는가?
90 矛盾: 楚人 有鬻盾與矛者 譽之曰 吾盾之堅하여 莫能陷也라하고 又譽其矛曰 吾矛之利하여 於物無不陷也라하니 或曰 以子之矛 陷子之盾이면 何如오하니 其人應也 夫不可陷之盾與無不陷之矛 不可同世而立이라 <原文故事成語, 愚鈍>  
내 창의 날카로움으로는 물건 중에 뚫지 못함이 없다.
91 曉之者曰 日月星宿 亦積氣中之有光耀者 只使墜라도有中傷이라하다 其人曰 奈地壞何오하니 曉者曰 地積塊耳 充塞四虛하여 亡處亡塊 若躇步跐蹈하며 終日在地上行止한대 奈何憂其壞오하다 其人舍然大喜하고 曉之者亦舍然大喜 <原文故事成語, 愚鈍>  
92 旣來 帝就太妃間相見이라 禮畢하고 酒酣하니 帝曰 卿故復憶竹馬之好不아하니 靚曰 臣呑炭漆身하여 今日復睹聖顔이라하고 因涕泗百行이라 帝於是慚悔而出이라 <原文故事成語, 愚鈍>  
93 袴下之辱: 淮陰侯韓信者 淮陰人也 始爲布衣時 貧無行하여 不得推擇爲吏治生商賈하여 常從人寄食飮하니 人多厭之者 常數從其下鄕南昌亭長寄食한대 數月 亭長妻患之하여 乃晨炊蓐食하고 食時信往 不爲具食이라 信亦知其意하고 怒竟絶去 <原文故事成語, 慾心>  
94 信釣於城下한대 諸母漂러니 有一母見信飢하고 飯信하니 竟漂數十日이라 信喜하여 謂漂母曰 吾必有以重報母하리라하니 母怒曰 大丈夫自食하여 吾哀王孫而進食이니 豈望報乎리오하다 <原文故事成語, 慾心>  
95 淮陰屠中少年 有侮信者하여 曰 若雖長大하고 好帶刀劍이라도 中情怯耳라하고 衆辱之曰 信 能死 刺我하고 出我袴下하라하다 於是信孰視之라가 俛出袴下蒲伏하니 一市人皆笑信하며 以爲怯이라 <原文故事成語, 慾心>  
96 難兄難弟: 陳元方子長文有英才 與季方子孝先으로 各論其父功德이라 爭之라가 하여 咨於太丘하니 太丘曰 元方難爲兄이요 季方難爲弟라하다 <原文故事成語, 才致>  
97 判承樞朴淳 慷慨請行이라 至咸興하여 遙望行宮하고 故以子馬繫于樹하고 騎母馬而行한대 馬回顧躑躅이라 及上謁 淳上王布衣交也하여 懽然道故款待 仍問曰 繫子馬于樹 何也오하니 對曰 妨於行路 故繫之한대 則母子不忍相離니이다 雖微物이라도 亦至情也니이다하고 固涕淚嗚咽하니 上王亦汪然感涕 <原文故事成語, 才致>  
98 曾參殺人: 昔者 曾子處費 費人有與曾子同名族者而殺人할새 人告曾子母曰 曾參殺人이라하니 曾子之母曰 吾子不殺人이라하고 織自若이라 有頃焉 人又曰 曾參殺人이라하니 其母尙織自若也 頃之 一人又告之曰 曾參殺人이라하니 其母懼하여 投杼踰牆而走 夫以曾參之賢與母之信也로도 而三人疑之하면 則慈母信也 <原文故事成語, 信義>  
99 事親如此 可謂孝矣니라 如此 禽獸無異니라 <四字小學, 四字小學>  
부모 섬김이 이와 같으면 효도라 이를 수 있으리라. 이와 같을 수 없다면 금수와 다를 것이 없느니라.
100 東西幾萬里 南北이라 天傾西北邊이요 地卑東南界 <推句>  
동서로 몇 만 리인가? 남북으로 잴 수가 없네. 하늘은 서북쪽 가장자리로 기울고, 땅은 동남쪽 경계로 낮아지네.
Copyright @ (사)전통문화연구회, 동양고전정보화연구소 고전교육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