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은 홀로 거처할 때에 불선(不善)을 행하되, 이르지 않는 바가 없다가 군자를 본 뒤에 겸연쩍게 제 불선을 가리고 제 선을 드러내니, 남이 자기를 보는 것이 마치 제 [폐간을 본 것처럼 할 것이니, 〈이것이〉 곧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이것을 마음 속에 성실히 하면 바깥에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니, 때문에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가한다.
한 사람이라도 총명하고 지혜로워 제 본성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그들 사이에서 나온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억조 백성의 군주로 삼아서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 본성을 회복시키게 하였으니, 이것은 복희·신농·황제·요·순이 천명을 계승하여 〈교육의〉 표준을 세운 까닭이요, 사도의 관직과 전악의 관직을 설치한 이유였다.
〈하(夏)·은(殷)·주(周)〉 삼대가 융성했을 때 그 〈교육의〉 법이 점차 갖추어지자, 그런 뒤로는 천자의 궁과 왕의 도읍으로부터 여항에 이르기까지 학교를 두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람이 태어나 8세가 되면 〈신분이 높은〉 왕공으로부터 이하로 〈여항의〉 서인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小學)에 입학시켜서 그들에게 물뿌리고 쓸며, 호응하고 대답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과 예법·음악·활쏘기·말몰기·육서법(六書法)·셈하기의 문(文)을 가르쳤다.
공자가 말하였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로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제후로부터 나오면 대개 십 세에 (정권을) 잃지 않음이 드물고, 대부로부터 나오면 오 세에 (정권을) 잃지 않음이 드물고, 가신이 나라의 명을 잡으면 삼 세에 잃지 않음이 드물다.
자장이 인에 대해 공자에게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행할 수 있다면 인(仁)이 된다.” 〈자장이〉 그것을 청하여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민첩함, 은혜로움이니, 공손하면 업신여기지 않고, 너그러우면 뭇사람들을 얻게 되고, 미더우면 남들이 그에게 일을 맡기고, 민첩하면 공이 있고, 은혜로우면 그로써 사람을 부릴 수 있다.”
양나라 혜왕이 말하였다. “과인이 나라에는 거기에 마음을 다할 뿐이니, 하내가 흉년들면, 그곳의 백성을 하동으로 옮기고 그곳의 곡식을 하내로 옮겼으며, 하동이 흉년들어도 그렇게 했습니다. 이웃 나라의 정사를 살펴보건데, 과인의 마음 씀씀이와 같은 자가 없는데도, 이웃 나라의 백성이 더 줄지 않고, 과인의 백성이 더 많아지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왕이 전투를 좋아하시니 청하건대 전쟁으로 비유하겠습니다. 둥둥! 북을 두드려서 병기와 칼날이 이미 맞붙은 뒤에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끌면서 달아나되, 어떤 이는 백 보 이후에 멈추고 어떤 이는 오십 보 이후에 멈춰서, 오십 보로서 백 보를 비웃는다면 어떠합니까?” 〈왕이〉 말하였다. “옳지 않습니다. 다만 백 보가 아닐 뿐, 이것 또한 달아난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왕이 만약 이것을 안다면, 백성이 이웃 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개, 돼지가 사람이 먹는 것을 먹어도 단속할 줄 모르며, 길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개방할 줄 모르며, 사람이 죽으면 말하길, ‘내 〈탓이〉 아니다. 올해의 농사 〈탓〉이다’ 하니, 이것이 사람을 찔러서 그를 죽이고서 ‘내 〈탓이〉 아니다. 무기 〈탓〉이다’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왕이 해의 농사를 탓하지 않는다면 곧 천하의 백성들이 여기에 이를 것입니다.”
대답하여 말하길, ‘천하에 돌아가지 않는 이가 없다. 왕은 (무릇) 이삭을 아는가? 칠팔월의 사이에 가물면, 이삭이 마르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만들어, 쏴아! 비를 내리면, 이삭이 쑥쑥 일어나게 될것이니, 그것이 이와 같다면,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지금 무릇 천하의 임금이 아직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있지 않았으니, 만약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있다면, 천하의 백성이 모두 목을 늘이고 (그를) 바라볼 것이니, 참으로 이와 같다면, 백성이 (그에게) 돌아감은 물이 아래로 흘러감과 같으니, 성대한 (그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선왕이〉 말하였다. “과인과 같은 자도 백성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선왕이〉 말하였다. “무슨 연유로 내가 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신이 호흘에게 그것을 들었습니다. 〈호흘이〉 말하길 왕이 당 위에 앉아 계시는데, 소를 끌고서 당 아래를 지나가는 자가 있자, 왕이 그것을 보며 말하길, ‘소는 어디로 가는가?’ 하니, 〈호흘이〉 대답하여 말하길, ‘이 소로써 흔종하려합니다.’ 왕께서 말하시길, ‘그것을 놓아줘라. 나는 그 소가 울부짖는 것이 마치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로 끌려가는 것 같아서 참지 못하겠다.’ 하시자, 〈호흘이〉 대답하여 말하길, ‘그렇다면, 흔종을 폐지할까요?’ 〈왕께서〉 말하시길, ‘어찌 폐지할 수 있겠는가? 양으로 그것을 바꿔라.’ 하셨다 하니, 알지 못하겠으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왕에게 보고하는 자가 있어 말하길, ‘내 힘은 그로써 백 균을 들기 충분하지만, 그로써 하나의 털을 들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시력은 그로써 가을 털의 끝을 살피는 데에 충분하지만, 수레의 땔감을 보지 못합니다’ 한다면, 왕은 그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못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지금 은혜가 그로써 금수에 미치기에 충분하지만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하나의 털을 들지 못함은 힘을 거기에 쓰지 않았기 때문이며, 수레의 땔감을 보지 못함은 눈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백성이 보호받지 않음은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잘 다스리지 못함은 하지 않아서일지언정, 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왕의 크게 바라는 바를 얻어들을 수 있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지 않았다. 〈맹자가〉 말하였다. “살지고 단 것이 입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가볍고 따뜻한 〈옷〉이 몸에 충분하지 않아서입니까? 아니면 채색이 눈에 충분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까? 좋은 소리가 귀에 충분하게 들리지 않아서입니까? 총애하는 자들을 앞에서 부리기에 충분하지 못해서입니까? 왕의 여러 신하가 모두 충분하게 그것을 제공하는데 왕이 어찌 그것 때문이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나는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왕이 크게 바라는 바를 알 수 있겠습니다. 토지를 개척하고 진나라와 초나라에게 조회를 받아 중국에 자리하여 사방 오랑캐를 어루만지고자 함입니다. 이 같이 하는 바로, 이 같이 바라는 바를 구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함과 같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이와 같이 그것이 심한가?” (맹자가) 말하였다. “아마도 이보다 심한 것이 있으니,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비록 물고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뒤의 재앙이 없다. 이 같은 하는 바로써 이 같은 바라는 바를 구한다면, 마음과 힘을 다해서 (그것을) 하더라도 뒤에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이다.” (왕이) 말하였다. “얻어들을 수 있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추나라 사람과 초나라 사람이 싸우면, 왕은 누가 이길 거라 여기는가?” (왕이) 말하였다. “초나라 사람이 이긴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작은 것은 진실로 큰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적은 것은 진실로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약한 것은 진실로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다. 해 내의 땅에, 사방 천 리인 것 아홉에, 제나라가 전체에서 그 하나를 가졌다. 하나로 여덟을 복종시키는 것이 추가 초를 대적하는 것과 무엇으로서 다르겠는가? 대개 또한 그 근본을 돌이켜라.”
55
王欲行之어시든則盍反其本矣니잇고<孟子, 梁惠王上>
왕이 그것을 시행하고자 한다면, 어찌 그 근본을 돌아보지 않으십니까?
56
曰 王之好樂이 甚이면則齊其庶幾乎인저 今之樂이 由古之樂也니이다<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말하였다. “왕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깊다면 제나라는 아마 〈다스려짐에〉 가까울 것입니다. 지금의 음악은 옛날의 음악과 같습니다.”
맹자가 제선왕을 보고 말하였다. “큰 궁궐을 만들려면 반드시 도목수로 하여금 큰 나무를 구하게 하니, 도목수가 큰 나무를 얻으면 왕은 기뻐하여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장인이 깎아서 (그것을) 작게 하면 왕이 노하여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여길 것이다. 대저 사람이 어려서 (그것을) 배움은 커서 (그것을) 행하려고 해서이니 왕이 ‘우선 네가 배운 것을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말한다면 어떠한가?”
지금 여기에 박옥이 있다면, 비록 10,000 일(鎰)이라도 반드시 옥인으로 하여금 그것을 다듬고 조각하게 할 것이니, 국가를 다스림에 이르러서는 ‘우선 네가 배운 것을 버려두고 나를 따르라’ 말하면, 옥인으로 하여금 옥을 다듬고 조각하게 하는 것과 어떤 것이 다르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이것을)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면 (이것을) 취하소서. 옛날의 사람 중에 (이것을) 행한 사람이 있었으니 무왕이 그 사람이다. (그것을)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으면 취하지 마소서. 옛날의 사람 중에 (이것을) 행한 사람이 있었으니 문왕이 그 사람이다.
노평공이 나가려 할 적에 폐인 장창이란 사람이 청하여 말하였다. “다른 날 군께서 나가실 때면 반드시 유사에게 갈 곳을 하명하시더니, 지금 승여에 이미 멍에를 메었는데, 유사가 아직 갈 곳을 알지 못하니 감히 청합니다.” 평공이 말하였다. “맹자를 만나려 한다.” (장창이) 말하였다. “어째서입니까? 군께서 몸을 가벼이하여 필부에게 먼저 하는 것은 그를 어질다고 여겨서입니까? 예의는 현자로부터 나오는데, 맹자의 뒤 초상이 앞 초상보다 더하였으니, 임금은 그를 만나지 마소서.” 평공이 말하였다. “알았다.”
어떤 사람이 증서에게 물어 말하길, ‘그대가 자로와 더불어 누가 나은가?’ 하니, 증서가 불안해하며 말하길, ‘나의 선친이 경외하던 바이다’ 하였다. 〈혹자가〉 말하길, ‘그렇다면 그대는 관중과 더불어 누가 나은가?’ 하니, 증서가 발끈하여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길, ‘너는 어찌 곧 나를 관중에게 비교하는가? 관중은 임금의 (신임을) 얻음이 저같이 그 오로지하였으며, 국정을 시행함이 저같이 그 오래하였는데, 공렬이 저같이 그 낮으니, 너는 어찌 곧 나를 여기에 비교하는가?’ 하였습니다.
(공손추가) 말하였다. “이와 같다면 제자의 의혹이 더욱 심해진다. 또 문왕의 덕으로 백 년이 지난 뒤에 붕하였는데 여전히 천하에 무젖지 못하여, 무왕과 주공이 (그것을) 계속한 뒤에야 크게 행해졌다. 지금 왕 노릇 하는 것이 마치 쉬운 듯 말한다면 문왕은 본받을 만하지 못한가?”
〈맹자가〉 말하였다. “문왕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탕왕으로부터 무정에 이르기까지 어질고 성스러운 임금이 여섯, 일곱이 일어나 천하가 은(殷)으로 돌아간 지 오래되었으니, 오래되면 변하기 어렵네. 무정(武丁)이 제후에게 조회 받고 천하를 소유하되 천하를 손바닥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이하였네. 주왕(紂王)이 무정과의 거리가 오래지 않아 그 고가의 남은 풍속과 유풍과 선정이 아직도 남은 것이 있었으며, 또 미자(微子)와 미중(微仲)과 왕자 비간(比干)과 기자(箕子)와 교격(膠鬲)이 모두 어진 사람이었다네. 서로 더불어 주왕을 보좌하였던 까닭에 오래된 뒤에 천하를 잃었다네. 한 자의 땅도 주왕의 소유가 아님이 없었으며 한 사람의 백성도 주왕의 신하가 아님이 없었다네. 그런데도 문왕이 단지 사방 백 리로 일어났으니 이 때문에 어려웠다네.
공손추가 물어 말하였다. “선생님이 제나라의 경상에 올라서 거기에서 도를 행할 수 있다면 비록 이로 말미암아 패업을 이루고 왕자가 되라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이니, 이와 같이 되면 마음을 움직일까요? 아닐까요?”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네. 나는 사십 세에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노라.”
71
曰 若是則夫子過孟賁이 遠矣로소이다 曰 是不難하니 告子도 先我不動心하니라<孟子, 公孫丑上>
〈공손추가〉 말하였다. “이와 같다면 선생님은 맹분보다 뛰어남이 큽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이는 어렵지 않으니, 고자도 나보다 앞서 마음이 동요되지 않았네.”
72
其爲氣也 至大至剛하니 以直養而無害면則塞于天地之間이니라<孟子, 公孫丑上>
그 기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정직으로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천지의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공손추가) 말하였다. “백이와 이윤은 어떠한가?” (맹자가) 말하였다. “도가 같지 않으니, 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으며, 그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아서,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물러남은 백이였고, ‘누구를 섬긴들 임금이 아니며, 누구를 부린들 백성이 아니겠는가’ 하여, 다스려져도 나아가고 어지러워도 나아가는 것은 이윤이었고, 그것으로 벼슬할 만하면 벼슬하고, 그것으로 그만둘 만하면 그만두며, 그것으로 오래할 만하면 오래하고, 그것으로 빨리 떠날 만하면 빨리 떠남은 공자였으니, 모두 옛날의 성인이었다. 나는 아직 거기에서 행함이 있을 수 없으나, 바로 원하는 것은 공자를 배우는 것이다.”
74
廛에 無夫里之布면則天下之民이 皆悅而願爲之氓矣리라<孟子, 公孫丑上>
가게에 부와 리의 베를 없애면 천하의 백성이 모두 기뻐하여 그의 백성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진진이 물어 말하였다. “전날에 제나라에서 왕이 겸금 일백을 주었는데도 받지 않았고, 송나라에서 칠십일을 주었는데 받았고, 설나라에서 오십 일을 주었는데 받았으니, 전날에 받지 않은 것이 옳다면 오늘날에 받은 것이 잘못일 것이고, 오늘날에 받은 것이 옳다면 전날에 받지 않은 것이 잘못일 것이니, 부자는 반드시 이 중에서 하나에 해당할 것이다.”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정벌하자, 어떤 사람이 물어 말하였다. “제나라에 권하여 연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심동이 ‘연나라를 정벌할 수 있습니까?’ 묻기에, 내가 그에게 대답하여 ‘할 수 있다’ 말하자, 그가 그래서 그 나라를 정벌하였다. 그가 만약 ‘어떤 사람이라야 그 나라를 정벌할 수 있습니까?’ 말하였다면 장차 그에게 대답하길, ‘천리가 되면 그것으로 그 나라를 정벌할 수 있다’ 말할 것이다. 지금 사람을 죽인 자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어 말하기를,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하면 장차 그에게 대답하길, ‘그렇다’ 말할 것이니, 그가 만약 ‘누가 그를 죽일 수 있는가?’ 라고 말하면 장차 그에게 대답하되, ‘사사가 되면 그것으로 그를 죽일 수 있다’ 말할 것이다. 지금 연나라로서 연나라를 정벌하였으니, 어찌하여 그 일을 권했겠는가?”
〈진가가 말하길,〉 또한, 옛날의 군자는 허물이 있으면 그것을 고쳤는데, 지금의 군자는 허물이 있으면 그것을 따라 행한다. 옛날의 군자들은 그 허물이 일식과 월식 같아 백성이 모두 그것을 보았고 그 고쳐짐에 미쳐서는 백성이 모두 그것을 우러러보았는데, 지금의 군자는 어찌 단순하게 그것을 따르기만 하겠는가? 또 뒤따라서 그일을 때문에 변명한다.”
객이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제자(내)가 제계하고 하루 묵은 뒤에 감히 말하였는데 부자는 누워서 듣지 않으니, 청컨대 다시는 감히 뵙지 않겠다.” (맹자가) 말하였다. “앉아라. 내가 분명히 그대에게 말하겠다. 옛날에 노나라 목공이 자사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자사를 편안히 여길 수 없었고, 설류와 신상은 목공의 곁에 사람이 없으면 그 몸을 편안히 여길 수 없었다.
맹자가 제나라를 떠날 적에 윤사가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였다. “왕이 탕왕과 무왕이 될 수 없음을 알지 못하였으면 이는 현명하지 못함이요, 그 될 수 없음을 알았으나 또한 왔다면 이는 은택을 요구함이다. 천리를 와서 왕을 만났으나 (뜻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떠나되 사흘을 유숙한 뒤에 주땅을 나갔으니, 이 어찌 지체하여 머물렀는가? 나는 이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유독 밭을 갈면서 함께 하는 것이 가능한가? 대인의 일이 있고 소인의 일이 있으며, 또 한 사람의 몸에 백공이 하는 것이 구비되니, 만일 반드시 스스로 만든 이후에 (그것을) 써야 한다면, 이는 천하를 거느리고서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길, ‘혹 마음을 수고롭게 하며 혹 힘을 수고롭게 하니,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고, 힘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에게 다스려진다.’ 하니, 남에게 다스려지는 사람은 남을 먹여주고, 남을 다스리는 사람은 남에게서 먹는 것이 천하의 보편적 의리이다.
다른 날에 또 맹자를 만나기를 요구하였다. 맹자가 말하였다. “내가 지금은 (그를) 만날 수 있다. 직설하지 않으면 (바른) 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나는 장차 그에게 직설하겠다. 나는 이자가 묵자라 들었는데, 묵자가 상을 치루는 것은 박한 것을 바른 도라고 여긴다. 이자는 이로써 천하를 바꿀 것이라 생각하니, 어찌 옳지않다 여겨서 귀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자는 그 부모를 장례 지냄이 후하였으니 곧 이는 천하게 여기는 것으로 부모를 섬긴 것이다.”
맹자가 대불승에게 일러 말하였다. “그대는 그대의 임금이 선하기를 바라는가? 내가 그대에게 분명하게 말하겠다. 초나라 대부가 여기에 있는데, 그의 아들이 제나라 말을 하기를 바란다면, 제나라 사람에게 가르치게 하겠는가? 초나라 사람에게 가르치게 하겠는가?” (대불승이) 말하였다. “제나라 사람에게 (그를) 가르치게 하겠다.” (맹자가) 말하였다. “한 명의 제나라 사람이 그를 가르치고, 여러 초나라 사람이 그에게 떠든다면 비록 날마다 종아리를 쳐서 그 제나라 말을 요구하더라도, 얻을 수 없을 것이며, 그를 끌어다가 장악의 사이에 몇 해를 둔다면, 비록 날마다 종아리를 쳐서 그 초나라 말을 요구하더라도 또한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증자가 말하길, ‘어깨를 움츠리고 아첨하며 웃는 것이 여름날 밭두둑 일보다 수고롭다’하고, 자로가 말하길, ‘〈뜻이〉 같지 않은데 말할 때, 그 낯빛을 보면, 얼굴이 붉어지니, 내가 알 바가 아니다’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그것을 보자면 군자가 기른 바를 알 수 있다.”
성왕이 나오지 않아서 제후들이 방자하고 처사들이 제멋대로 의논하여 양주와 묵적의 말이 천하에 가득하여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으로 돌아간다. 양씨는 ‘위아설’을 주장하니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다. 묵씨가 ‘겸애설’을 주장하니 이는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는 것, 이것이 금수이다. 공명의가 말하길, ‘푸줏간에 살진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 살진 말이 있는데도 백성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 굶주린 시체가 있다. 이것은 짐승을 몰고서 사람을 먹는 것이다’ 하니, 양주와 묵적의 도가 그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바르지 않은 학설이 백성을 속여 인과 의를 막는 것이다. 인과 의가 막히면 곧 짐승을 거느리고 사람을 먹게 하다가 사람이 장차 서로 먹게 될 것이다.
맹자가 제선왕에게 아뢰어 말하였다. “임금이 신하 보기를 손발과 같이하면 신하가 임금 보기를 배와 심장과 같이 여기고, 임금이 신하 보기를 개와 말과 같이하면 신하가 임금 보기를 나라의 일반 사람과 같이 여기고, 임금이 신하 보기를 하찮은 풀과 같이하면 신하가 임금 보기를 도적과 원수와 같이 여긴다.”
(맹자가) 말하였다. “간언하면 행하고 말하면 들어주어서 윤택한 혜택이 백성에게 내려지고, 연고가 있어서 떠나면 임금이 사람을 시켜 그를 인도하여 국경을 벗어나게 하고, 또 그가 갈 곳에 먼저 기별하며, 떠난 지 삼 년에 돌아오지 아니 한 뒤에야 그의 밭과 집을 환수하니, 이를 세 번의 예가 있다고 이르는 것이다. 이와 같으면 그를 위하여 복을 입을 것이다.”
지금엔 신하가 되어 간언하더라도 행하지 않으며, 말하더라도 들어주지 않아서 윤택한 혜택이 백성에게 내려지지 않으며, 연고가 있어서 떠나면 임금이 그를 붙잡고 또 그가 가는 곳에서 그를 곤궁하게 하며, 떠나는 날에 마침내 그의 밭과 집을 환수하니, 이를 도적과 원수라 이르니, 도적과 원수에게 어찌 복을 입어줌이 있겠는가?”
91
孟子曰 無罪而殺士則大夫可以去요 無罪而戮民則士可以徙니라<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죄가 없음에도 선비를 죽이면 대부는 그 때문에 떠나갈 수 있고, 죄가 없음에도 백성을 죽이면 선비는 그 때문에 옮겨갈 수 있다.”
맹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도로써 (그에) 깊이 나아가는 것은 그가 스스로 (그것을) 얻고자 함이니, (그것을) 스스로 얻는다면 머무는 것이 편안하고, 머무는 것이 편안하면 이용하는 것이 깊고, 이용하는 것이 깊으면 (그것을) 주변에서 취함에 그 근원을 만나게 되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스스로 그것을 얻고자 한다.”
93
孟子曰 西子蒙不潔이면則人皆掩鼻而過之니라<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서시도 깨끗하지 않은 것을 뒤집어쓰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그곳을) 지나간다.
제나라 사람 중에 한 아내와 한 첩을 두고서 집에 사는 자가 있었는데, 그 남편이 외출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난 뒤에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함께 마시고 먹은 사람을 물어보면 모두 부귀한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가 그 첩에게 알려 말하였다. ‘남편이 외출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난 뒤에 돌아오기에 그 함께 마시고 먹은 사람을 물어보니 모두 부귀한 사람인데, 한번도 명성이 있는 사람이 찾아온 일이 있지 않으니, 내가 장차 남편의 가는 곳을 엿보겠다’ 하고, 일찍 일어나서 남편이 가는 곳을 미행하니, 성 안을 두루 다니되, 함께 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내 동쪽 성곽의 무덤 근처의 제사 지내는 사람에게 가서 그 남은 음식을 구걸하고 충분하지 않으면 또 돌아보고서 다른 곳을 가니, 이것이 그가 배부르기 위한 방법이더라. 그의 아내가 돌아와서 그의 첩에게 일러 말하였다. ‘남편은 우러러 바라보면서 생을 마칠 바인데 지금 이와 같구나’ 하고, 그의 첩과 함께 제 남편을 헐뜯으면서 서로 마당 가운데에서 울었는데, 남편은 아직 그 일을 알지 못하고 의기양양하게 밖으로 부터 돌아와 그의 아내와 첩에게 교만하였다.
100
由君子觀之컨대則人之所以求富貴利達者 其妻妾이 不羞也而不相泣者 幾希矣리라<孟子, 離婁下>
군자로 말미암아 이것을 본다면, 사람들 이 부귀와 이익과 영예를 추구하는 방법은 그의 아내와 첩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거나 서로 울지 않을 일이 거의 드물 것이다.”
만장이 말하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은〉 기뻐하고 잊지 말아야 하고, 부모가 자식을 미워하면 〈자식은〉 노력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하니, 그렇다면 순은 〈부모를〉 원망하였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장식이 〈스승인〉 공명고에게 물어 말하길 ‘순이 밭에 간 것은 제가 이미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지만, 하늘과 부모에 부르짖으며 운 것은 제가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자, 공명고가 말하길, ‘그것은 네(장식)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으니, 저 공명고(公明高)는 효자의 마음을 다음처럼 무관심하진 않다고 여겼다네. ‘나는 힘을 다해 밭을 갈아 공손히 자식의 직분을 할 뿐이니, 부모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어떠하겠는가?’라고….
사람이 어려서는 부모를 사모하다가, 여색을 좋아할 줄 알게 되면 젊고 예쁜 여인을 좋아하고, 아내와 자식을 갖게 되면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며, 벼슬하면 임금을 사모하고, 임금에게 〈신임을〉 얻지 못하면 속을 태우는데, 큰 효자는 생을 마치도록 부모를 사모하니, 오 십에 〈부모를〉 사모하는 것, 나는 위대한 순(舜)에게서 그것을 보았다네.”
만장(萬章)이 물어 말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길, ‘아내를 맞이하는 것을 어찌해야 하는가? 반드시 부모에게 고해야 한다.’ 하니, 진실로 이 말대로라면 순(舜)처럼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순이 고하지 않고서 장가든 것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고했다면 장가들 수 없었다네. 남녀가 한 집에 사는 것은 사람의 큰 윤리이니, 만약 고했다면 사람의 큰 인륜을 폐지하여 부모를 원망하였을 것이네. 이 때문에 고하지 않은 것이네.”
〈만장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순은 거짓으로 기뻐한 자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옛날에 살아있는 물고기를 정나라 자산(鄭子産)에게 보낸 〈사람이〉 있었는데, 자산이 교인에게 물고기를 연못에서 기르게 하였는데, 교인이 물고기를 삶아 먹고는 돌아와서 보고하여 말하길 ‘처음에 물고기를 놓아주었더니 비실비실하더니 잠시 뒤엔 팔팔해져서 여유로워져서 가버렸습니다.’라고 하자, 자산이 말하길 ‘제자리를 얻었구나. 제자리를 얻었구나.’ 하였다네. 〈그러자〉 교인이 나와서 말하길 ‘누가 자산을 지혜롭다고 말하였는가? 내가 이미 물고기를 삶아서 먹었는데, 「제자리를 얻었구나. 제자리를 얻었구나!」 라고 하는구나!’ 〈한 일이 있었다네〉. 그러므로 군자는 올바른 방법으로 속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올바른 방법아닌 것으로 속이기는 어렵다네. 저 상이 형을 사랑하는 도리로써 왔다네. 그러므로 〈순은〉 진실로 상의 행위를 믿고서 기뻐하였으니, 〈순이 기뻐한 일이〉 어찌 거짓이겠는가?”
106
然則舜有天下也는 孰與之잇고 曰 天與之시니라<孟子, 萬章上>
〈만장이 물었다.〉 “그렇다면, 순임금이 소유한 천하는 누가 그것을 준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하늘이 천하를 준 것이네.”
107
然則舜有天下也는 孰與之잇고<孟子, 萬章上>
〈만장이 물었다.〉 “그렇다면, 순임금이 천하를 소유하였으니, 누가 천하를 그에게 준 것입니까?”
만장이 물어 말하였다. “사람들이 말하길, ‘우임금때에 이르러 덕이 쇠퇴하여 현명한 사람에게 〈왕의 지위를〉 전하지 않고 아들에게 전수하였다’라고 하니, 그런 일이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네. 그렇지 않다네. 하늘이 현명한 사람에게 주게 하면 현명한 사람에게 주고, 하늘이 아들에게 주게 하면 아들에게 주는 것이네. 옛날에 순임금이 우임금을 하늘에 천거한 지 열하고 또 일곱 해 만에 순임금이 죽자, 삼 년의 상을 마치고 우임금은 순임금의 아들을 양성으로 피해 갔는데, 천하의 백성들이 우임금을 따르기를 요임금이 죽은 뒤에 요임금의 아들을 따르지 않고 순임금을 따른 것과 같았다네. 우임금이 익을 하늘에 천거한 지 일곱 해 만에 우임금이 죽자, 삼 년의 상을 마치고 익은 우임금의 아들을 기산의 북쪽으로 피했는데, 조회하고 송사하는 자들이 익에게 가지 않고 계에게 가며 말하길, ‘우리 임금의 아들이다.’라고 하였으며, 칭송하는 자들은 익을 칭송하지 않고 계를 칭송하며 말하길, ‘우리 임금의 아들이다.’라고 하였다네.
맹자가 말하였다. “백이는 눈으로 나쁜 색을 보지 않았고, 귀로 나쁜 소리를 듣지 않았으며, 올바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았고, 올바른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아서, 다스려지면 나아가고, 어지러우면 물러나서, 나쁜 정치가 나오는 곳과 나쁜 백성이 머무르는 곳에는 차마 거주하지 않았으며, 속인과 함께 지냄을 생각하되, 마치 조정의 옷과 조정의 관으로써 더러운 곳에 앉아 있는 듯 하더니, 주의 시대를 당하여 북쪽 바다의 물가에 살면서, 천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렸으니, 그러므로 백이의 풍도를 들은 자는 욕심 많은 사내는 청렴해지고, 나약한 사내는 뜻을 세움이 있었다.
맹헌자는 백승의 집안이네. 벗 다섯 사람이 그에게 있었는데 악정구와 목중이고, 그들 〈외에〉 세 사람은 내가 이름을 잊었네. 맹헌자가 이 다섯 사람과 벗할 적에 맹헌자가 〈백승의〉 집안이라는 것을 〈의식함이〉 없었으니, 이들 다섯 사람이 또한 헌자의 집안을 〈의식함이〉 있었다면 그들과 벗하지 않았을 것이네.
오직 작은 나라의 군주만이 그리 한 것은 아니네. 비록 큰 나라의 군주라도 또한 그런 일이 있으니,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해당(亥唐)을 대할 때에 〈해당이〉 들어오라고 말하면 들어가고, 앉으라고 말하면 앉고, 먹으라고 말하면 먹어서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일찍이 배불리 먹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대개 감히 배불리 먹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네. 그러나 거기에 끝날 뿐이었네. 그와 함께 하늘이 내린 지위를 공유하지 않았으며, 그와 함께 하늘이 내린 직책을 다스리지 않았으며, 그와 함께 하늘이 내린 녹을 받지 않았으니, 〈이것은〉 선비가 현자를 높이는 것이지, 왕공이 현자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네.
〈만장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공자가 벼슬한 것은 도 행하기를 일삼은 것이 아닙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도 행하기를 일삼은 것이라네.” 〈만장이 말하였다.〉 “〈공자가〉 도 행하기를 일삼았다면 어찌 엽각을 한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공자는 미리 문서로 제사의 기물을 정해서 사방의 음식으로써 〈구하기 어려울까〉 문서로 정해둔 음식을 공급하지 못하게 한 것이네.” 〈만장이〉 말하였다. “어찌 떠나지 않은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도를 행할 조짐을 〈보여주신〉 것이네. 조짐으로 〈도를〉 행하기에 충분한데도 〈도가〉 행해지지 않은 뒤에 떠났다네. 이 때문에 일찍이 삼 년을 다하도록 지체한 곳이 있지 않았던 것이네.
(만장이) 말하였다. (그들을) “구휼해 주면 받고, (그들에게) 주면 받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맹자가) 말하였다.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장이) 말하였다. “감히 묻겠다. 그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맹자가) 말하였다. “관문을 안고 목탁을 치는 자는 모두 일정한 직책이 있어서, 그것으로써 윗사람에게 녹을 받으니 일정한 직책이 없으면서 윗사람에게 하사받는 것을, 그것으로써 공손하지 않다고 한다.”
(만장이) 말하였다. “임금이 (그것을) 주면 (그것을) 받는다고 하니, 알지 못하겠다. 항상 이어갈 수 있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목공이 자사에 대해서는 자주 문안하였고 자주 솥에 삶은 고기를 보내주었는데 자사는 기뻐하지 않아서, 마지막에는 손저어 심부름 온 자를 대문의 밖에 내보내고 북쪽을 마주하고 머리를 조아려 거듭 절하고서 받지 않으며 말하길, ‘오늘이 지나고 난 뒤에야 임금이 개와 말처럼 나를 길렀다는 것을 알았다.’ 라고 하였다. (생략) 이때로부터 하인이 (물건을) 보냄이 없었으니, 현명한 자를 좋아하나 등용할 수 없고, 또 봉양할 수 없다면 (생략) 현명한 자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 임금이 (그를) 만나고자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만장이) 말하였다. “그가 들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며, 그가 현명하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가 들은 것이 많기 때문이라면 천자도 스승을 부르지 않는데, 하물며 제후에 있어서랴. 그가 현명하기 때문이라면 나는 현명한 자를 만나보고자 하여 (그를) 불렀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목공이 자사를 자주 만나 말하길, ‘옛날에 천승의 나라의 임금으로서 선비와 벗하였으니, 어떠한가?’ 자사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옛날의 사람이 말을 두어 이르길, 「그를 섬겼다고 말할지언정 (생략) 어찌 (그를) 벗하였다고 (생략) 말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라고 하였으니, 자사가 기뻐하지 않은 것은 어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 아니겠는가? ‘지위로서는 곧 그대는 임금이고, 나는 신하이니, 어찌 감히 임금과 벗하겠는가? 덕으로서는 곧 그대는 나를 섬기는 자이니, 어찌 그것으로써 나와 벗할 수 있겠는가?’ 천승의 임금도 () 와 벗하기를 구하여도 할 수 없다. 그런데, 하물며 부를 수 있겠는가?
제선왕이 경에 대해 묻자, 맹자가 말하였다. “왕은 어떤 경을 묻는가?” 왕이 말하였다. “경이 같지 않은가?” (맹자가) 말하였다. “같지 않으니, 귀하고 가까운 경이 있고, 성이 다른 경이 있다.” 왕이 말하였다. “귀하고 가까운 경을 청하여 묻는다.” (맹자가) 말하였다. “임금에게 큰 잘못이 있으면 간언하고, (그것을) 반복하는데도 듣지 않으면 자리를 바꾼다.”
121
王이 色定然後에 請問異姓之卿한대 曰 君有過則諫하고 反覆之而不聽則去니이다<孟子, 萬章下>
왕이 얼굴색이 안정된 (생략) 뒤에 성이 다른 경에 대해 청하여 묻자, (맹자가) 말하였다. “임금에게 잘못이 있으면 간언하고, (그것을) 반복하는데도 듣지 않으면 떠난다.”
(고자가) 말하였다. “내 동생이면 (그를) 사랑하고 진나라 사람의 동생이면 사랑하지 않으니, 이는 나를 기쁨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내면적인 것이라 하고, 초나라 사람의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고 또한 나의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니, 이는 나이 많음을 기쁨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외면적인 것이라 한다.”
(맹계자가 말했다) "시골 사람이 맏형보다 한 살 많으면 누구를 공경하는가?” (공도자가) 말하였다. “형을 공경한다.” (맹계자가 말했다) "술을 따르면 누구에게 먼저 하는가?” (공도자가) 말하였다. “시골 사람에게 먼저 따른다.” (맹계자가 말했다) "공경하는 바는 여기에 있고 어른으로 여기는 바는 저기에 있으니, 과연 외면에 있는 것이지, 내면으로부터 함이 아니다.”
공도자가 잘 대답하지 못하여 그것으로 맹자에게 고하자, 맹자가 말하였다. “(네가 말하기를) ’숙부를 공경하는가? 동생을 공경하는가?’ (라고 하면), 저 사람이 장차 말할 것이다. ‘숙부를 공경한다.’ (네가) 말하기를 ‘동생이 시동이 되면 누구를 공경하겠는가?’ (라고 하면) 저 사람이 장차 말할 것이다. ‘동생을 공경한다.’ 그대가 말하기를 ‘어디에 그 숙부를 공경함이 있는가?’ (라고 하면) 저 사람이 장차 말할 것이다. ‘(동생이 시동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대 역시 말하라. ‘(시골 사람이 빈객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평소의 공경은 형에게 있고 잠깐의 공경은 시골 사람에게 있다.”
계자가 (그것을) 듣고 말하였다. “숙부를 공경할 경우는 (숙부를) 공경하고, 동생을 공경할 경우는 (동생을) 공경하니, 과연 외면에 있는 것이지, 안으로부터 함이 아니다.” 공도자가 말하였다. “겨울날엔 끓는 물을 마시고 여름날엔 찬 물을 마시니, 그렇다면 마시고 먹는 것 역시 외면에 있다.”
불쌍해하고 가엾어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불선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불선을) 미워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가지고 있으며 공손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가지고 있으며 (선함을) 옳게 여기고 (악함을) 그르게 여기는 마음을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가지고 있으니, 불쌍해하고 가엾어하는 마음은 인이고 (자기 불선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불선을) 미워하는 마음은 의이고 공손하고 공경하는 마음은 예이고 (선함을) 옳게 여기고 (악함을) 그르게 여기는 마음은 지이니, 인, 의, 예, 지가 밖으로부터 나에게 녹아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실로 (그것을) 가지고 있지만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말하였다. ‘구하면 (그것을) 얻고 버리면 (그것을) 잃는다’라 하니, 혹 (선과 악의 차이가) 서로 두 배, 다섯 배가 되어 계산할 수 없는 것은 그 재질을 할 수 다 없었던 것 때문이다.
비록 사람에게 있는 것인들 어찌 인의의 마음이 없겠는가? 그 제 양심을 잃은 까닭은 또한 도끼와 자귀가 나무에 있어 아침마다 그 나무를 베는 것과 같으니, 그로써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그 밤낮의 자라는 바와 새벽의 기운에, 그 좋아하거나 미워함에 남과 서로 가까운 것이 거의 없는데, 곧 그 낮에 하는 바가 그것을 구속하여 없앰이 있으니, 구속하기를 반복하면 그 밤 기운이 그로써 보존될 수 없고, 밤 기운이 그로써 보존될 수 없으면 그 금수와 거리가 멀지 않으니, 사람이 그 금수를 보고, 그리고 그것으로 ‘일찍이 여기에 재목이 있지 않았다’ 여길 것이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정이겠는가?
132
孔子曰 操則存하고 舍則亡하여 出入無時하며 莫知其鄕은 惟心之謂與인저하시니라<孟子, 告子上>
공자가 말하길, ‘잡으면 보존하고 놓으면 잃어서 나가고 들어옴이 때가 없으며, 그 방향을 알지 못하는 것은 오직 마음을 말함이리라’ 하였다.”
지금 (생략) 바둑의 기예 됨이 작은 기예지만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다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혁추는 온 나라에 바둑을 잘하는 사람이다. 혁추로 하여금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치게 하면 그 한 사람은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다하여 오직 혁추를 따르고, (다른) 한 사람은 비록 (그의 말을) 듣더라도 한 켠의 마음에 그것으로 여기기를 기러기와 큰 새가 있어 장차 이르면 활과 주살을 당겨서 (그것을) 쏘아 맞힐 것을 생각하면, 비록 그와 함께 배우더라도 (그 사람과) 같지 못할 것이니, 이는 그가 지혜가 같지 않기 때문인가?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이 몸에 있어서 사랑하는 바를 겸하였으니, 사랑하는 바를 겸하면 기르는 바를 겸한다. 한 자와 한 치의 피부를 그것을 사랑하지 않음이 없으면 한 자와 한 치의 피부를 기르지 않음이 없으니, 그 잘함과 잘하지 못함을 그것으로 상고하는 바의 것이 어찌 다른 것이 있겠는가? 자기에게서 (그것을) 취할 뿐이다.
139
今有場師 舍其梧檟하고 養其樲棘하면則爲賤場師焉이니라<孟子, 告子上>
지금 원예 전문가가 있어 그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를 버리고 그 멧대추나무와 가시나무를 기르면 천한 원예 전문가가 된다.
140
養其一指하고 而失其肩背而不知也면則爲狼疾人也니라<孟子, 告子上>
그 한 손가락만을 기르고 그 어깨와 등을 잃고서도 알지 못하(생략) 면 이리가 병든 것과 같은 사람이 된다.
141
飮食之人이 無有失也면則口腹이 豈適爲尺寸之膚哉리오<孟子, 告子上>
먹고 마시는 사람은 잃음이 있지 않다(생략) 면 입과 배가 어찌 다만 한 자와 한 치의 피부가 되겠는가?”
(공도자가) 말했다. “똑같이 이 사람인데, 혹은 그 큰 본체를 따르며 혹은 그 작은 본체를 따름은 어째서인가?” (맹자가) 말하였다. “귀와 눈의 기능은 생각하지 못하여 물건에 가려지니 물건이 물건과 사귀면 거기에 끌려갈 뿐이다. 마음의 기능은 생각할 수 있으니 생각하면 (그것을) 얻고 생각하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 이는 하늘이 나에게 준 바의 것이니, 먼저 그 큰 것을 세우면 그 작은 것이 빼앗을 수 없으니, 이것이 큰 사람이 될 뿐이다.”
(옥려자가) 말했다. “예가 중요하다.” (임나라 사람이) 말했다. “예로써 먹으면 굶어서 죽고 예로써 아니하여 먹으 면 먹을 수 있더라도 반드시 예로써 하는가?” 직접 (아내를) 맞이하면 아내를 얻지 못하고 직접 (아내를) 맞이하지 않으면 아내를 얻어도 반드시 직접 (아내를) 맞이해야 하는가?”
가서 그에게 응하여 말하라. ‘형의 팔을 비틀어 (그에게) 음식을 뺏으면 음식을 얻고 비틀지 않으면 음식을 얻지 못하더라도 곧 장차 (그를) 비틀겠는가? 동쪽 집의 담장을 넘어 그 처자를 끌고 오면 아내를 얻고 끌고 오지 않으면 아내를 얻지 못하더라도 곧 장차 (그를) 끌고 오겠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어찌 여기에 달려 있겠는가? 또한, (그것을) 할 따름이다. 여기에 사람이 있으니, 힘이 한 마리오리 새끼를 이길 수 없으면 힘없는 사람이 되고 지금 말하건대 백 균을 든다고 하면 힘 있는 사람이 되니 그렇다면 오확의 짐을 들면 이는 또한 오확이 될 따름이다. (생략) 사람이 어찌 이겨내지 못함을 근심으로 삼겠는가? 하지 않을 뿐이다.
(순우곤이) 말하였다. “옛날에 왕표가 기수에 처함에 황하 서쪽 지방이 노래를 잘하였고 면구가 고당에 처함에 제나라 서쪽 지방이 노래를 잘하였고 화주와 기량의 아내가 그 남편에 대한 곡을 잘함에 나라의 풍속이 변했다. 안에 있으면 반드시 밖에 드러나니 그 일을 하고서 그 공이 없는 사람을 내가 일찍이 (그를) 보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어진 사람이 없으니, 있으면 내가 반드시 (그를) 알았을 것이다.”
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을 이라 말하고 순행이라 말하고 제후가 천자에게 조회하는 것을 이라 말하니 술직이라 말하니 봄에는 경작을 살펴서 넉넉하지 못한 이를 보조하고 가을에는 거두는 것을 살펴서 넉넉하지 못한 이를 보조해 준다. 그 경내에 들어가니 토지가 개간되어 있으며 밭과 들이 다스려져 있으며 노인을 봉양하고 어진 이를 높이며 뛰어나고 출중한 이가 지위에 있으면 상이 있으니 땅으로 상을 주고, 그 경내에 들어가니 토지가 황폐하고 거칠며 노인을 버리고 어진 이를 잃으며 세금을 많이 거두는 이가 지위에 있으면 꾸짖음이 있다. 한 번 조회하지 않으면 그 관작을 깎고 두 번 조회하지 않으면 그 땅을 떼어내고 세 번 조회하지 않으면 육군으로 (그를) 바꾸니 이 때문에 천자는 성토하기만 하고 정벌하지 않으며 제후는 정벌하기만 하고 성토하지 않는다. 다섯 우두머리 된 사람들이 제후들을 끌어서 그것으로 제후인 사람들을 정벌하였으니, 그러므로 말하는 것이다. ‘다섯 우두머리가 된 사람들은 세 왕의 죄지은 사람들이다.’
150
今魯는 方百里者五니 子以爲有王者作인댄則魯在所損乎아 在所益乎아<孟子, 告子下>
지금 노나라가 사방 백 리인 것이 다섯이니, 그대가 그것으로 왕 노릇하는 사람이 일어남이 있으면 노나라가 덜어내야 할 바에 있는가? 더해야 할 바에 있다고 여기는가?
151
萬室之國에 一人이 陶則可乎아 曰 不可하니 器不足用也니이다<孟子, 告子下>
만 가구의 나라에 한 사람만 질그릇을 만들면 되겠는가?” (백규가) 말하였다. “그래선 안 된다. 그릇을 충분히 쓸 수 없다.”
(무릇) 만일 선을 좋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길, ‘잘난체할 것을 (그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하리니, 잘난체하는 음성과 얼굴빛이 사람을 천 리의 밖에서 막으니, 선비가 천 리의 밖에서 멈춘다면 참소하고 아첨하고 면전에서 아부하는 사람이 이를 것이니, 참소하고 아첨하고 면전에서 아부하는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면 나라가 다스려지기를 바란들 얻을 수 있겠는가?”
153
陳子曰 古之君子 何如則仕니잇고 孟子曰 所就三이요 所去三이니라<孟子, 告子下>
진자가 말하였다. “옛날의 군자는 어찌하면 벼슬했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나아간 바가 세 가지이고 물러난 바가 세 가지이다.
154
迎之致敬以有禮하며 言將行其言也則就之하고 禮貌未衰나 言弗行也則去之니라<孟子, 告子下>
(그를) 맞이함에 공경을 지극히 하여 그것으로 예를 두며 말하기를 ‘장차 그 말을 행할 것이다.’ 라고 하면 (그에게) 나아가고 예우하는 모습이 쇠하지 않으나 말이 행해지지 않으(생략) 면 (그를) 떠난다.
155
其次는 雖未行其言也나 迎之致敬以有禮則就之하고 禮貌衰則去之니라<孟子, 告子下>
그다음은 비록 그 말을 행하지 않으나, (그를) 맞이함에 공경을 지극히 하여 그것으로 예를 두면 (그에게) 나아가고, 예우하는 모습이 쇠하면 (그를) 떠난다.
156
入則無法家拂士하고 出則無敵國外患者는 國恒亡이니라<孟子, 告子下>
들어가면 법도를 지키는 집안과 보필하는 선비가 없고 나가면 대등한 국가와 바깥의 환난이 없는 자는 나라가 항상 망한다.
157
孟子曰 盡其心者는 知其性也니 知其性則知天矣니라<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그 마음을 다하는 사람은 그 성을 아니, 그 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
158
孟子曰 求則得之하고 舍則失之하나니 是求는 有益於得也니 求在我者也일새니라<孟子, 盡心上>
맹자가 말하였다. “구하면 (그것을) 얻고 버리면 (그것을) 잃으니, 이 구함은 얻음에 이로움이 있으니, 자신에게 있는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백이가 주왕을 피하여 북쪽의 바다의 가에서 거처하였는데, 문왕이 일어남을 듣고 흥기하여 말하였다.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나는 서백이 늙은 사람을 잘 봉양한다고 들었다’ 하며, 태공이 주왕을 피하여 동쪽의 바다의 가에 거처하였는데, 문왕이 일어남을 듣고 흥기하여 말하였다.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내가 서백이 늙은 사람을 잘 봉양한다고 들었다’ 하니, 천하에 노인을 잘 봉양하는 이가 있으면 인한 사람들이 그로 자신이 돌아갈 바로 삼는다.
5묘의 집에 담 아래에 뽕나무를 심어 한 여자가 (그것을) 누에 치면 늙은 사람이 충분히 그것으로 비단옷을 입을 수 있고, 다섯 어미 닭과 두 어미 돼지를 그 (새끼 칠) 때를 잃지 않으면 늙은 사람이 충분히 그것으로 고기를 잃지 않을 수 있고, 100묘의 밭에 한 남자가 (그것을) 경작하면 여덟 식구의 집안이 그것으로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
164
人能無以饑渴之害로 爲心害면則不及人을 不爲憂矣리라<孟子, 盡心上>
사람이 굶주림과 목마름의 해로 마음의 해를 삼지 않을 수 있으면 남에게 미치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공손추가 말했다. “시에서 말하였다. ‘공 없이 밥 먹지 않는다.’ 라 하니, 군자가 밭 갈지 않고 밥 먹는 것은 어째서인가?” 맹자가 말하였다. “군자가 이 나라에 거함에 그 군주가 (그를) 쓰면 편안하고 부유해지고 높아지고 영화로우며 그 아들과 아우들이 (그를) 따르면 효도하고 공경하고 충성하고 믿으니 공 없이 밥 먹지 않는 것이 무엇이 이보다 크겠는가?”
168
桃應이 問曰 舜爲天子요 皐陶爲士어든 瞽瞍殺人이면則如之何잇고<孟子, 盡心上>
도응이 물어 말하였다. “순이 천자가 되고 고요가 사가 되었는데, 고수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어찌하겠는가?”
공손추가 물어 말하였다. “회와 불고기와 대추 중에 무엇이 맛있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회와 불고기이다.” 공손추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증자는 어찌하여 회와 불고기는 먹고 대추는 먹지 않았는가?” (맹자가) 말하였다. “회와 불고기는 같이 하는 바이고 대추는 홀로 한바이니, 이름은 숨기고 성은 숨기지 않음은 성은 같이 하는 바이고 이름은 홀로 하는 바이여서이다.”
180
君子는 反經而已矣니 經正則庶民興하고 庶民興이면 斯無邪慝矣리라<孟子, 盡心下>
군자가 떳떳함을 회복하고 말 뿐이니, 떳떳함이 바루어지면 뭇 백성이 흥기하고 뭇 백성이 흥기하면 이에 사악하고 간특함이 없어진다.”
181
子曰 文武之政이 布在方策하니 其人存則其政擧하고 其人亡則其政息이니이다<中庸, 中庸>
공자가 말했다. “문왕과 무왕의 정치가 방책[竹簡]에 펼쳐져 있으니, 그런 사람이 있으면 그런 정치가 거행되고, 그런 사람이 없으면 그런 정치는 사라집니다.”
몸을 닦으면 도가 확립되고 어진 사람을 존경하면 의혹되지 않고 친족을 친애하면 백숙부와 형과 아우들이 원망하지 않고 대신을 공경하면 혼란하지 않고 뭇 신하를 체찰하면 선비의 보답하는 예가 중하고 서민을 사랑하면 백성들이 권면하고 온갖 백성을 오게하면 재용이 풍족하고 멀리 있는 사람을 회유하면 사방이 (그에게) 귀의하고 제후들을 품어주면 천하가 (그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람은 이 〈사사로운〉 형기를 가지지 않은 이가 없는 까닭에 비록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고, 또한, 이 〈바른〉 성명을 가지지 않은 이가 없는 까닭에 비록 가장 어리석은 자라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 〈인심과 도심의〉 두 가지가 짧은 순간의 사이에 섞여있는데도 그것을 다스릴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위태한 것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은미한 것은 더욱 은미해져서 공정한 천리가 끝내 저 사사로운 인욕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188
目不視邪色하며 耳不聽淫聲하며 夜則令瞽誦詩하며 道正事하더니라<小學, 立敎第一>
눈으로는 바르지 않은 색을 보지 않으며,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 밤이면 맹인에게 시를 외우며 바른 일을 말하게 하였다.
189
如此면則生子에 形容端正하며 才過人矣리라<小學, 立敎第一>
이와 같이 하면 아이를 낳음에 용모가 단정하며, 재주가 남들을 뛰어넘을 것이다.
190
四十에 始仕하여 方物出謀發慮하여 道合則服從하고 不可則去니라<小學, 立敎第一>
마흔 살에 비로소 벼슬하여, 사물에 대하여 계책을 내고 생각을 내어서 도에 부합하면 복종하고, 가능하지 않으면 떠난다.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에게 도가 있으니,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서 편안히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짐승에 가깝게 된다. 성인이 (그것에) 근심함을 두어 계로 하여금 사도로 삼아 인륜으로써 가르치게 하셨으니, 아버지와 아들 간에는 친함이 있고, 임금과 신하 간에는 의가 있고, 남편과 아내 간에는 분별이 있고, 어른과 어린아이 간에는 차례가 있고, 친구 간에는 신의가 있는 것이다.
193
見善從之하고 聞義則服하며 溫柔孝弟하여 毋驕恃力이니라<小學, 立敎第一>
선을 보면 (그것을) 따르고, 의를 들으면 실행하며, 온화하고 유순하며 효도하고 공손하여, 교만하여 힘을 믿지 말아야 한다.
(생략) 아버지와 어머니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서 계신 곳에 나아가되, 계신 곳에 이르러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온화하게 하여 옷이 따뜻한지 추운지를 여쭈며, 병들어 아프거나 옴으로 가려우면 공손히 (그곳을) 만져드리고 긁어드리며, 나가시거나 들어오시면 혹은 앞서기도 하고 혹은 뒤서기도 하여 공손히 (그를) 부축해드리고 붙들어 드린다.
며느리는 친정 형제가 (그에게) 음식과 옷과 베와 비단과 차는 수건과 향초를 주면 받고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드려야 하니,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그것을) 받으시면, 기뻐 마치 내가 새롭게 물건을 받는 것처럼 여기고, 만약 도로 (그것을) 주시면 사양하되, 허락을 받지 못하면 다시 물건을 받는 것처럼 여겨 보관하여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물건이) 소진되기를 기다린다.
197
婦若有私親兄弟하여 將與之어든則必復請其故하여 賜而後에 與之니라<小學, 明倫第二>
만약 며느리에게 사친의 형제가 있어 (그들에게) (물건을) 주려고 한다면 반드시 다시 그 예전에 받았던 물건을 청하여 (시부모님께서) 주시고 난 뒤에 (그것을) 주어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선왕의 효도는 (부모의) 안색을 눈에서 잊지 않으며, 음성을 귀에서 끊지 않으며, 심지와 즐기고 원하셨던 것을 마음에서 잊지 않으셨으니, 사랑을 극진히 하면 존재하고, 정성을 극진히 하면 나타난다. 나타나고 존재함을 마음에서 잊지 않으니, 대저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효자가 부모를 섬길 적에, 거처할 때에는 그 공경함을 극진히 하고, 봉양할 때에는 그 즐거움을 극진히 하고, 병드셨을 적에는 그 근심을 극진히 하고 상을 치를 적에는 그 슬픔을 극진히 하고, 제사 지낼 적 에는 그 엄숙함을 극진히 하니, 다섯 가지가 갖추어지고, 그러한 뒤에 부모를 섬길 수 있다.
부모를 섬기는 자는 위에 거하여서는 교만하지 않으며, 아래가 되어서는 어지럽히지 않으며, 동료간에 있어서는 다투지 않아야 한다. 위에 거하여 교만하면 망하고, 아래가 되어서 어지럽히면 형벌을 받으며, 동료간에 있어서 다투면 병기로 해치게 되니, 이 세 가지를 제거하지 않으면 비록 날마다 세 가지 희생물의 봉양을 쓰더라도오히려 불효가 된다.
209
君言이 至어든則主人이 出拜君言之辱하고 使者歸어든則必拜送于門外니라<小學, 明倫第二>
임금의 말씀이 이르면 주인은 나가서 임금의 말씀이 욕됨에 절하고, 심부름 온 자가 돌아가면 반드시 문 밖에서 절하여 보낸다.
210
若使人於君所어든 則必朝服而命之하고 使者反이어든則必下堂而受命이니라<小學, 明倫第二>
만약 임금이 계신 곳에 사람을 심부름 보내게 되면 반드시 조복을 입고서 (그에게) 명하며, 심부름 보낸 자가 돌아오면 반드시 대청으로 내려가서 명을 받는다.
211
大臣은 以道事君하다가 不可則止니라<小學, 明倫第二>
대신은 도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할 수 없으면 그만 둔다.
212
有官守者는 不得其職則去하고 有言責者는 不得其言則去니라<小學, 明倫第二>
지킬 관직이 있는 자는 그 직분을 할 수 없으면 떠나고, 말할 책임이 있는 자는 그 말을 할 수 없으면 떠나간다.
213
取妻하되 不取同姓이니 故로 買妾에 不知其姓則卜之니라<小學, 明倫第二>
아내를 맞이하되 동성을 맞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첩을 구할 때 그 성을 알지 못하면 (그것을) 점친다.
천자에게 간쟁하는 신하 일곱 사람이 있으면 비록 도가 없더라도 그 천하를 잃지 않고, 제후에게 간쟁하는 신하 다섯 사람이 있으면 비록 도가 없더라도 그 나라를 잃지 않고, 대부에게 간쟁하는 신하 세 사람이 있으면 비록 도가 없더라도 그 집안을 잃지 않고, 선비에게 충고하는 친구가 있으면 몸이 아름다운 이름에서 떠나지 않고, 아버지에게 조언 드리는 자식이 있으면 몸이 의롭지 않음에 빠지지 않는다.
232
故로 當不義면則子不可以弗爭於父며 臣不可以弗爭於君이니라<小學, 明倫第二>
그러므로 의롭지 않음을 당하면 자식은 그로써 아버지에게 조언드리지 않을 수 없고, 신하는 그로써 임금에게 간쟁하지 않을 수 없다.
난공자가 말하였다. 사람은 세 사람에게서 살게 되었으니, 섬기기를 한결같이 해야 한다. 부모는 나를 낳으시고, 스승은 나를 가르치시고, 임금은 나를 먹이셨으니, 부모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하고, (임금이) 먹여줌이 아니면 자라지 못하고, (스승이) 가르쳐줌이 아니면 알지 못하니, (두 가지는 부모가) 낳아 주신 것의 부류이다. 그러므로 한결같이 (그들을) 섬겨서 오직 그들이 있는 곳이면 죽음을 다해야 한다.
234
將上堂할새 聲必揚하며 戶外에 有二屨어든 言聞則入하고 言不聞則不入하며<小學, 敬身第三>
당에 오르려 할 때 소리를 반드시 드높이며, 문밖에 두 켤레 신발이 있으면 말소리가 들리면 들어가고, 말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는다.
달려감에는 채자로써 하고, 걸어감에는 사하로써 하며, 두루 돌 때는 규에 맞게 하고, 꺾어 돌 때는 곱자에 맞게 하며, 나아감에는 읍하고 물러남에는 몸을 드니, 그런 뒤에 옥소리가 울린다. 그러므로 군자는 수레에 있으면 난화의 소리를 듣고, 걸어감에는 패옥이 울린다. 이 때문에 그릇되고 편벽된 마음이 부터 들어옴이 없다.
사람이 어릴 때는 부모를 사모하고, 여색을 좋아할 줄 알면 젊고 아름다운 소녀를 사모하고, 처자가 있으면 처자를 사모하고, 벼슬하면 임금을 사모하고, 임금에게 (뜻을) 얻지 못하면 마음이 탄다. 큰 효도는 몸을 마치도록 부모를 사모하니, 오십에도 사모하는 자를 나는 대순에게서 (그것을) 보았다.
그 편치 않을 때가 있으면 내시가 이것을 문왕에게 고하면 문왕은 얼굴빛에 근심하시어, 걸음을 바로 걸을 수 없었는데, 왕계가 음식을 회복한 뒤에야 또한 처음대로 회복하였다. 음식을 올릴 적에 반드시 차고 따뜻한 정도를 살펴보며, 상을 물리면 먹은 바를 묻고, 요리사에게 명하여 말하였다. “거듭함이 있지 말라.” 응답하여 말하기를, “예“ 라고 한 뒤에 물러갔다.
기자는 주왕의 친척이다. 주왕이 처음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저 사람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었으니, 반드시 옥 술잔을 만들 것이다. 옥 술잔을 만들면, 반드시 먼 곳의 진귀하고 괴이한 물건을 생각하여 (그것을) 사용할 것이니, 수레와 말과 궁실을 차츰 (사치함을) 이로부터 시작되어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왕자 비간은 또한 주왕의 친척이었다. 기자가 간언하였으나 듣지 않고 노예로 삼음을 보고는 말하였다. “임금이 잘못이 있는데도 죽음으로써 간쟁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무슨 죄인가?” 이에 직언으로 주왕에게 간언하였다. 주왕이 노하여 말하였다. “내 들으니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진실로 그것이 있는가?” 이에 마침내 왕자 비간을 죽여, 그 심장을 갈라 보았다.
미자가 말하였다. “부자에게는 골육(의 친함이) 있고, 신하와 군주는 의로 연결되었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 잘못이 있으면 자식이 세 번 간했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따르며 울부짖고, 남의 신하가 세 번 간했는데 들어주지 않으면 그 의는 이로써 떠날 수 있다.” 이에 마침내 떠났다.
왕손가가 제나라 민왕을 섬기다가 왕이 (나라를) 떠나 도망가자, 고가 왕이 있는 곳을 잃게 되었다. 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네가 아침에 나가서 늦게 오면 내가 문에 기대어 바라보고, 네가 저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마을 문에 기대어 바라보았다. 네가 지금 임금을 섬기다가 임금이 (나라를) 떠나 도망갔는데, 너는 그 있는 곳을 알지 못하니 너는 오히려 어찌 돌아왔느냐?”
앉아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백성은 수고로우면 생각하게 되니, 생각하면 선한 마음이 일어나며, 편안하면 음탕해지니, 음탕하면 선을 잊으며, 선을 잊으면 나쁜 마음이 생겨난다. 비옥한 토지의 백성이 재능이 없음은 음탕해서이고, 척박한 토지의 백성이 의를 향하지 않음이 없음은 수고로워서이다.
이 때문에 왕후는 친히 검은 귀막이 끈을 짜고, 공후의 부인은 끈과 면류관 덮개를 더 만들고, 경의 내자는 큰 띠를 만들고, 명부는 제복을 완성하고, 열사의 아내는 조복을 더 하고 서사로부터 이로써 아래로 모두 그 남편을 입힌다. 사제를 지내고서 일을 맡겨주며, 증제를 지내고서 일을 바쳐, 남자와 여자가 공적을 힘써서 잘못이 있으면 형벌이 있는 것은 옛날의 제도이다.
묻고 물건 파는 놀이가 제사 놀이 같음만 못한 것을 알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사랑이 세 번 이사함에 이른 것을 생각하여,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지킴을) 고치지 않아 처음부터 끝까지 한뜻이면 나의 흔들리지 않는 마음 또한 그것으로 맹자와 같아질 수 있다.
만약 무릇 뜻을 세움이 높지 못하면 그 배움은 모두 보통 사람의 일이다. 말이 안자와 맹자에게 미치면 감히 감당하지 못하여, 그 마음에 반드시 〈다음과 같이〉 여길 것이다. ‘나는 어린아이이니, 어찌 감히 안자와 맹자를 배우겠는가?’ 이 사람은 그것으로 위의 것을 말해줄 수 없다. 선생과 어른이 그 비천하고 낮음을 보고 어찌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즐기겠는가? 선생과 어른이 (그와) 더불어 말하기를 즐기지 않으면 그가 더불어 말하는 바는 모두 낮은 등급의 사람이다. 말이 진실하고 미덥지 못함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고, 행실이 독실하고 공경하지 않음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고, 잘못하고서 뉘우칠 줄 알지 못함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고, 뉘우치면서 고칠 줄 알지 못함이 낮은 등급의 사람이니, 낮은 등급의 말을 듣고 낮은 등급의 일을 행하면, 비유하건대 마치 방의 가운데에 앉아서 네 쪽이 모두 담벽인 것과 같으니, 비록 열어 밝게 하고자 하지만 얻을 수 없다.”
무릇 배움은 반드시 안정하여야 하고, 재주는 반드시 배워야 한다. 배움이 아니면 그것으로 재주를 넓힐 수 없고, 안정이 아니면 그것으로 배움을 이룰 수 없으니, 방자하고 게으르면 정밀한 것을 연구할 수 없고, 거칠고 조급하면 성품을 다스릴 수 없다. 나이가 때와 달리며 뜻이 해와 가서 마침내 마르고 시듦을 이루면 궁색한 오두막에서 슬퍼하고 탄식한들 장차 다시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사물은 성하면 반드시 쇠하고, 융성함이 있으면 도리어 쇠함이 있으니, 빨리 이루면 견고하고 튼튼하지 못하고 빨리 달리면 넘어지고 쓰러짐이 많다. 활짝 핀 정원 안의 꽃은 일찍 피지만 도리어 먼저 시들고 더디고 더디게 자란 시냇가의 소나무는 울창하고 울창하게 늦도록 푸르름을 머금는다. 부여받은 명에 빠르고 늦음이 있으니, 청운은 힘써 이루기 어렵다. 말을 붙여 여러 젊은이에게 말하니, 조급히 나아감은 헛되이 하는 것일 뿐이다.”
길한 사람은 눈으로 예가 아닌 색을 보지 않으며, 귀로 예가 아닌 소리를 듣지 않으며, 입으로 예가 아닌 말을 말하지 않으며, 발로 예가 아닌 곳을 밟지 않아서, 사람이 선한 이가 아니면 사귀지 않으며, 물건이 의로운 것이 아니면 취하지 않으며,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기를 마치 지초와 난초에 나아가듯이 하며 악한 사람을 피하기를 마치 뱀과 전갈을 두려워하듯 하니, 혹자가 말함에 (그를) 일러 길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면 나는 믿지 않겠다.
흉한 사람은 말이 어긋나고 속이며, 움직이고 멈춤이 음침하고 험하며, 이익을 좋아하고 잘못을 꾸미며, 음란함을 탐하고 화를 좋아하여, 어질고 선한 사람을 미워하기를 마치 원수와 원한같이 여기고, 형벌과 법을 범하기를 마치 마시고 먹듯이 하여, 작으면 몸을 잃고 성을 멸하며, 크면 종사를 전복시키고 후사를 끊어지게 한다. 혹자가 말함에 (그를) 일러 흉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으면 나는 믿지 않겠다.
고령 진 선생이 선거의 현령이 되어 그 백성들에게 가르쳐 말하였다. “나의 백성 된 사람들은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사랑하며, 형은 우애하고 동생은 공손하며, 자식은 효도하며, 남편과 아내는 은혜가 있으며, 남자와 여자는 분별이 있으며, 자식과 아우는 배움이 있으며, 마을에는 예의가 있으며, 가난하고 곤궁하며 근심하고 어려울 적에 친척이 서로 도우며, 혼인과 장례와 초상에 이웃 조합이 서로 도우며, 농사일을 폐하지 말며, 도둑질하고 해치는 이가 되지 말며, 노름하고 내기함을 배우지 말며, 다투거나 송사함을 좋아하지 말며, 악으로 선을 능멸하지 말며, 부유함으로 가난한 이를 겸병하지 말며,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며, 밭 가는 사람은 밭두둑을 양보하며, 흰 머리가 섞인 사람은 도로에 (짐을) 지고 (머리에) 이지 않으면, 예절과 의리의 풍속이 될 것이다.”
258
凡子受父母之命에 必籍記而佩之하여 時省而速行之하고 事畢則返命焉이니라<小學, 嘉言第五>
무릇 자식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령을 받음에 반드시 장부에 기록하여 (그것을) 차고서 때로 살펴서 빨리 (그것을) 행하고 일을 마치면 그에게 명령을 보고해야 한다.
혹 명령한 바가 행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을 갖추어 (그것을) 말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려 그러한 뒤에 (그것을) 고치고, 만약 허락하지 않더라도 만약 일에 있어 큰 해가 없는 것이면, 또한 마땅히 굽혀 따라야 한다.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령을 그르다 여겨 곧바로 자기의 뜻을 행하면, 비록 집행하는 바가 모두 옳더라도 오히려 순하지 못한 자식이 되니, 하물며 반드시 옳지 않음에 있어서랴.
그렇다면 오대의 시대에 상에 거함에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으로 이상한 일로 여겼으니, 이 흘러가는 속세의 폐단이 그 유래가 매우 가깝다. 지금의 사대부는 상에 거하면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심이 평소의 날과 다름이 없고, 또 서로 따라 잔치하고 모여 뻔뻔하게 부끄러움이 없거든 사람들 또한 편안하게 여겨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예의 있는 풍속이 무너짐에 익숙하여 그것으로 보통으로 여기니, 슬프구나!
이에 비루하고 비속한 사람에 이르러서 혹 초상에 염을 하지 않았을 적에 친구와 빈객이 곧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서 (그를) 위로하면 주인 된 사람이 또한 스스로 술과 안주를 갖추어 서로 더불어 마시고 마셔서 취하고 배불리 먹기를 날을 이어서 하며 장례에 이르러서도 또한 이와 같이 하며, 심한 경우는 초상에 음악을 연주하여 시신을 즐겁게 하고, 빈소 차리고 장례 함에 이르러선 곧 음악으로 상여를 인도하게 하고서 부르짖고 울면서 (그것을) 따르며 또한 상을 틈타 곧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들이 있다. 슬프다! 익숙한 세속을 변화시키기 어려움과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치기 어려움이 마침내 여기에 이르렀구나!
안정호 선생이 말하였다. “딸을 시집보내기를 반드시 모름지기 내 집보다 나은 사람에게 해야 하니, 내 집보다 나으면 딸이 사람을 섬김이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경계한다. 며느리 맞이하기를 반드시 모름지기 내 집만 못한 사람에게 해야 하니, 내 집만 못하면,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섬김이 반드시 며느리의 도를 지킨다.”
손윗동서와 손아랫동서를 형과 동생에 견주면 소원하고 박하니, 이제 소원하고 박한 사람으로 친하고 후한 은혜를 절제하고 헤아리게 하면, 모난 밑에 동그란 덮개와 같아서 반드시 맞지 않을 것이니, 오직 우애와 공경이 깊고 지극하여 옆 사람이 옮긴 바 되지 않은 사람이라야 면할 수 있다!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시경의) 사간시에 말하였다. ‘형과 아우는 (어조사) 서로 사랑하고, 서로 같아선 안 된다.’ 형과 아우가 마땅히 서로 사랑해야 하고, 마땅히 서로 (나쁜 점을) 배워선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유‘는 같음이다. 사람의 정은 대저 병통이 은혜를 갚음을 당하지 않으면 그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은혜를 잘 마치지 못하니, 마땅히 서로 배우려 하지 말고 자기가 (그것을) 베풀고 그친다.
내가 있는 오지방 가운데 종족이 매우 많으니, 나에게 있어서는 진실로 가깝고 멂이 있지만, 그러나 우리 조상이 (그를) 보면 똑같은 이 자식과 손자이니, 본래 가깝고 멂이 없다. 진실로 조상의 뜻에 가깝고 멂이 없다면, 굶주리고 추워하는 사람을 내 어찌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상으로부터 이래로 덕을 쌓은 지 백여 년만에 비로소 나에게서 발하여 큰 벼슬에 이를 수 있었으니, 만약 홀로 부유함과 귀함을 누리고 종족을 구제하지 않으면 다른 날에 어떻게 그것으로 지하에서 조상을 볼 수 있겠으며, 이제 무슨 낯으로 집안의 사당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에 은혜로운 대우와 녹봉과 하사받은 것을 항상 집안사람들에게 고루 주고 아울러 의로운 밭과 집을 설치하였다.
267
過則聖이요 及則賢이요 不及則亦不失於令名하리라<小學, 嘉言第五>
더하면 성인이고, 미치면 현인이고, 미치지 못해도 곧 또한 아름다운 이름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 움직임에 대한 경계에서 말하였다. ‘밝은 사람은 기미를 알아서 (그것을) 생각에 성실하게 하고 뜻을 둔 선비는 행실을 힘써 (그것을) 행위에 지킨다. 이치를 따르면 넉넉하고 욕심을 따르면 오직 위태로우니, 잠깐 사이에도 잘 생각하여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스스로 지켜라. 습관이 본성과 이루어지면 성인과 현인이 똑같이 돌아간다.’
호자가 말하였다. “지금의 유학하는 사람은 문장과 재주를 배워 벼슬에 나아감을 구하는 마음을 옮겨서 그것으로 그 잃어버린 마음을 거두어서 그 몸을 아름답게 하면 어찌 옛사람에게 미칠 수 없겠는가? 아버지와 형이 문장과 재주로써 그 자식과 아우에게 명령하고, 벗과 친구가 벼슬에 나아가는 것으로 서로 불러,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마음이 비로소 거칠어져서 다스려지지 않아서 모든 일의 이룸이 모두 옛날 선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대학은 공씨가 남긴 책인데 처음 배우는 사람이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 지금에 옛사람이 학문하는 차례와 순서를 볼 수 있는 것은 유독 이편이 보존됨에 의뢰할 뿐이고, 그 나머지는 논어와 맹자만 한 것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이 반드시 이를 말미암아서 여기서 배우면 그 어긋나지 않음에 가까울 것이다.”
273
六經을 須循環理會니 儘無窮하니 待自家長得一格이면則又見得이 別하리라<小學, 嘉言第五>
여섯 경전은 반드시 차례로 돌아가며 이해하고 알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진실로 (의리가) 끝이 없다. 자기 자신이 한 품격이 자라기를 (어조사) 기다리면 또 소견이 (어조사) 각별할 것이다.
(불교에서) 스스로 (그것을) 이르기를 ‘신묘함을 궁구하고 변화를 안다’고 하되 충분히 그것으로 인물을 개발하고 일을 이루지 못하며, ‘말과 행위가 두루 두루 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되 실제는 윤리와 이치에서 벗어나며, ‘깊음을 다하고 은미함을 극진히 한다.’ 고 하되 그것으로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에 들어갈 수 없으니, 천하의 학문이 천하고 누추하며 고루하고 막힌 것이 아니면 반드시 이에 들어간다.
이천 선생이 학제를 살펴 상세히 하였으니 대강은 다음과 같다. “학교는 예의를 서로 앞세우는 곳이다. 그렇기에 달마다 (그들로) 하여금 경쟁하게 하는 것은 절대로 가르치고 기르는 도가 아니다. 청컨대 시험을 바꾸어서 과로 하여 이르지 못한 것이 있으면 학관이 불러서 (그를) 가르치고 다시는 높고 낮음을 상고하여 정하지 않는다
양춘이 매번 가까이 외출하여 혹 해가 기울어도 (집에) 이르지 않으면 양진이 먼저 밥을 먹지 않다가 양춘이 돌아온 연후에 함께 먹었다. (같이) 먹게 되면 양진이 직접 수저를 (놓아) 주었고, 맛을 모두 먼저 맛보고 양춘이 먹으라고 명한 연후에 먹었다. 양진이 사주를 다스릴 때 양춘은 서울 집에 있었다. 매번 사철의 아름다운 음식이 있으면 그때마다 심부름꾼 편을 통하여 (그것을) 보냈고, 만약 혹 보내지 못했다면 먼저 입에 넣지 않았다. 한 가문의 안에 남녀가 백 식구였는데 시마복까지 함께 밥을 지어 먹었는데 뜰에 이간하는 말이 없었다.
어질면서 재산이 많으면 그 뜻을 손상하고, 어리석으면서 재산이 많으면 그 과실을 더하게 된다. 또 무릇 부유한 사람은 여러 사람의 원망을 받는다. 내가 이미 이로써 자손을 교화시키지 못했으니, 그 과실을 보태어서 원망을 낳고자 하지 않는다. 또 이 금은 성주께서 이로써 노신을 은혜롭게 길러주려는 바이다. 그러므로 즐겁게 마을 종족과 함께 그 은사를 누리면서 이로써 나의 남은 날을 다하려는 것이 또한 옳지 않은가?”
최효분 형제는 효성스럽고 의로우며 인자하며 후덕하였다. 아우 효위 등이 효분을 받들되 공순한 예를 다하여 앉으며 먹으며 나아가며 물러갈 때 효분이 명령하지 않으면 감히 하지 않았다. 닭이 울면 일어나서 우선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며, 한 푼, 한 자의 비단도 방에 사사롭게 들이지 않고 길흉사에 비용이 있을 때는 모여 대하여 나누어주었다. 여러 아내도 또한 서로 친애하여 있고 없음을 (그것을) 함께 하였다.
효분의 숙부 진이 이미 죽고 난 뒤에 효분 등은 숙모 이씨를 받들되 낳아준 바를 섬기듯이 하여 아침저녁으로 따뜻하고 시원하게 해드리며 나가고 들어올 때 아뢰고 뵈었으며 집안일의 크고 작은 것을 한결같이 물어서 결정하였다. 매번 형제가 출행하다가 한 척, 한 자 이상의 것을 얻은 것이 있으면 모두 이씨의 창고에 넣고 사시에 나누어 주는 일을 이씨가 스스로 (그것을) 재량하게 하였는데, 이와 같이 20여 년이었다.
중문 동쪽에 작은 방이 있는데 스스로 조회에 알현하는 날이 아니면 매 이른 새벽에 곧 나가 작은 방에 이르거든, 여러 아들과 중영은 모두 띠를 묶고 중문의 북쪽에서 새벽 문안을 올렸다. 공작은 사사로운 일을 결단하며 빈객을 접대하고 아우인 공권및 여러 종제와 함께 두 번 모여 식사하였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은 방을 떠나지 않았다. 촛불이 이르면, 한 사람의 자제에게 명하여 경서와 사서를 잡게 하여 몸소 읽어 한 번 지나가고는 마침내 관직에 거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법을 강론하고 의논하며, 혹은 문장을 논하기도 하고, 혹은 거문고를 듣기도 하다가 인정의 종소리가 이른 연후에 침실로 돌아가면 여러 아들이 다시 중문의 북쪽에서 저녁 문안을 드렸다. 무릇 20여 년 동안 (이러한 행동을) 일찍이 하루라도 바꾼적이 없었다.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버이를 섬기면 그 효도를 다할 것이요, 부귀를 보전하는 마음으로 임금을 받들면 가는 곳마다 충성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기를 꾸짖으면 허물이 적을 것이요,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면 우의를 보전할 것이다.
내가 해산의 남쪽[해주]에 거처를 정하자 어떤 한둘의 학도들이 함께 어울려 배우기를 청하였다. 나는 스승 될 자질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또 처음 배우는 이가 방향을 알지 못하고 또 견고하고 굳은 뜻이 없어 대강대강 배움을 청하면 저와 내가 도움이 없고 도리어 남의 비웃음을 받을까 두려웠다. 그러므로 한 책자를 간략하게 써서, 마음을 세우고 몸을 삼가고 부모를 봉양하고 사물을 접하는 방법을 대략 서술하고, ‘격몽요결’이라 이름하였다. 학도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고 마음을 씻고 토대를 세우고 당일에 공부를 시작하게 하고자 하고, 나 역시 〈나쁜 습관을〉 인습한 것을 오랫동안 근심했는데, 이로써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고자 한다. 정축년(1577) 늦겨울에 덕수 이이는 쓴다.
이 때문에 맹자(孟子)가 말하길, “아버지와 자식은 친함이 있고[父子有親], 임금과 신하는 의로움이 있고[君臣有義], 남편과 아내는 구별이 있고[夫婦有別], 어른과 어린이는 차례가 있고[長幼有序], 친구는 믿음이 있다[朋友有信].” 하시니, 사람이면서 오상(五常)이 있음을 알지 못하면 그 금수(禽獸)와의 거리가 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바꾸어 예쁘게 할 수 없으며, 힘은 약한 것을 바꾸어 강하게 할 수 없으며, 신체는 짧은 것을 바꾸어 길게 할 수 없다. 이것들은 이미 결정된 분수인지라 변화시킬 수 없다. 오직 심지는 그로써 어리석음을 바꾸어 슬기롭게 만들고 불초한 것을 바꾸어 어질게 만들 수 있으니, 이것은 마음의 허령이 타고난 기질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슬기로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으며, 어짊보다 귀한 것이 없거늘 무엇이 괴로워서 어짊과 지혜로움을 실천하지 않고서 하늘이 부여한 바의 본성을 훼손하는가? 사람들이 이 뜻을 보존하여 견고하게 물러서지 않는다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무릇 사람들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말하되, 곧바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명분으로는 뜻을 세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배움을 향한 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의 뜻으로 하여금 진실로 배움에 있게 한다면 인을 행하는 일은 자기에게 말미암는다. 인(仁)을 하고자 하면 〈인에〉 이를 것이니 어찌 남에게서 구하며 어찌 뒷날을 기다리겠는가? 입지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입지로써〉 바로 공부에 착수하여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해서 항상 생각하고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혹시라도 뜻이 성실하거나 독실하지 못하여 답습하는 것으로 세월만 보낸다면 수명을 다하여 세상을 마친들 어찌 성취하는 바가 있겠는가?
하루 낮과 밤의 안에 열두 시(時)가 있으니, 열두 시가 모여서 하루가 되고, 삼십 일이 모여서 한 달이 되고, 열 또 두 달이 모여서 일 년을 이룬다. 달에는 혹 작은 달이 있으니, 작은 달은 이십구일이 한 달이 되고, 한 해에 혹 윤달이 있으니, 윤달이 있으면 십삼 개월이 한 해를 이룬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네 가지는 몸을 닦는 요체이다. 예와 예가 아닌 것을 처음 배우는 자들이 분별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모름지기 이치를 궁구하고 예와 비례를 밝혀서 다만 이미 아는 방면에 그것을 힘써 행한다면 생각하여 〈깨닫는 것이〉 반을 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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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海之氣上하여 與天氣相交면則興雲霧하고 降雨雪하며 爲霜露하고 生風雷니라<啓蒙篇, 地篇>
산과 바다의 기운이 올라가 하늘의 기운과 서로 만나면 구름과 안개를 일어나고 비와 눈을 내리며, 서리와 이슬이 되고 바람과 우레를 만든다.
만일 〈남편이〉 엄숙함으로 〈집안의 사람을〉 대하여 하늘의 굳건한 도를 체득(體得)할 수 있고, 〈아내가〉 부드러움으로 〈집안의 사람을〉 바로잡아서, 땅의 순(順)한 의를 받들 〈수 있다〉면 집을 이끄는 도리[家道]가 바를 것이지만, 이와 반대로, 남편이 오로지 제어를 하지 못하여 〈집안〉 다스림에 올바른 도리를 쓰지 못하고, 아내가 그 남편의 〈잘못을〉 틈타서 〈남편〉 섬김에 올바른 의리를 쓰지 못하여 세 가지 〈아내가〉 따라야 할 도[三從之道]에 어둡고, 일곱가지 〈아내를〉 내치는 악행이 있다면, 집안의 도리가 다하게 될 것이다.
더운 기운에 증기가 가득 차면 유연하게 구름을 일으켜 패연하게 비를 내리고, 찬 기운에 음기가 엉기면 이슬이 맺혀서 서리가 되고, 비가 엉겨서 눈을 이룬다. 그러므로 봄과 여름에는 비와 이슬이 많고, 가을과 겨울에는 서리와 눈이 많은데, 변화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은 바람과 우레이다.
천천히 가면서 어른을 뒤따르는 것, 그것을 공손함[悌]이라 이르고, 빨리 가면서 어른을 앞서는 것, 그것을 공손하지 못함[不悌]이라 이른다. 이 때문에 나이가 배로서 많으면 부모로서 그 〈연장자를〉 섬기고, 십 년으로서 많으면 형으로서 그 〈연장자를〉 섬기고, 오 년으로서 많으면 어깨를 맞대고 그 〈연장자를〉 따라야 하니, 어른이 어린아이를 사랑하며 어린아이가 어른을 공경한 뒤에야, 젊은이를 업신여기며 어른을 능멸하는 폐단이 없어서, 사람의 도리가 바르게 될 것이다.
일이 있으면 이치로 일에 응하고 책을 읽으면 정성으로 이치를 궁구하여, 두 가지를 제한 이외에는 고요히 앉아 이 마음을 거두고 다잡아서 고요하고 고요하여 어지럽게 일어나는 생각이 없고 밝고 밝아 어둡고 깜깜한 실수가 없게 함이 옳으니, 이른바 공경으로 안을 곧게 한다는 것이 이와 같다.
부모님이 〈자신을〉 사랑해주시면 기뻐하고 잊지 않으며, 〈부모님이〉 자식을 미워하시면 〈자식은〉 두려워하되 〈부모를〉 원망하지 않으며, 〈부모님이〉 허물이 있으면 〈자식은〉 간하되 〈부모를〉 거역하지 않으며, 세 번 간했으나 듣지 않으시면 부르짖고 울면서 〈부모를〉 따르며, 〈부모님이〉 노하여 〈자식을〉 매질하여 피가 흐르더라도 감히 〈부모를〉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며, 거처할 때는 자신의 공경을 다하고, 봉양할 때는 자신의 즐거움을 다하고, 병이 생겼을 때는 자신의 근심을 다하고, 초상을 당했을 때는 자신의 슬픔을 다하고, 제사 지낼 때는 자신의 엄숙함을 다한다.
아! 그 사람의 행실이 선한지 선하지 않은지 살펴보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이 효도하는지 효도하지 않는지 볼 것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으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 부모에게 효도한다면 그 효도를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친구에 미루어 봄에, 어디에 대입한들 옳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효도는 사람에게 중대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고원하여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들에서 밭 가는 사람은 임금의 토지에서 먹고, 조정에 선 사람은 임금의 녹을 먹으니, 사람은 진실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하고, 또한 임금이 아니면 먹지 못한다. 그러므로 신하가 임금 섬기기를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과 같이해서, 오직 의리가 있는 곳에는 곧 목숨을 바치고 충성을 바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은기운을 같이 받아서 사람이 된 것이 형제이다. 또 사람이 바야흐로 어렸을 때에는 먹을 때는 상을 잇고, 잠을 잘 때엔 이불을 같이 하면서 부모의 은혜를 함께 입은 사람은 또한 나의 형제같은 이가 없다. 그러므로 제 부모를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반드시 제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경》에) 말하였다. 슬프고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으시느라 수고로우셨다. 부모의 은혜는 어떠함이 되는가? 어찌 감히 스스로 그 몸을 소유하여 그것으로 부모에게 효를 다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할 수 있다면 저절로 부모를 향한 정성이 있을 것이다.
무릇 부모를 섬기는 자는 한 가지 일과 한 가지 행동도 감히 스스로 마음대로 하지 말고 반드시 명을 여쭈고 난 뒤에 행해야 한다. 만약 일가운데 할 만한 것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면 반드시 자세하게 말하여 머리를 끄덕이고 허락한 뒤에 행하고, 만약 끝내 허락하지 않으면 또한 곧바로 그 뜻을 이루어서는 안 된다.
매양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 입고 띠를 매고, 부모의 침소로 나아가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온화하게 하여 따뜻한지 차가운지 편안한지 아닌지를 묻고, 어두우면 침소로 나아가 그 이부자리를 깔고 그 따뜻한지 서늘한지를 살핀다. 낮 동안 모시고 받듦에 항상 얼굴빛을 즐겁게 하고 용모를 공손히 하여 응대하기를 공손하고 공경히 하고, 좌우로 나아가 봉양함에 그 정성을 극진히 하며, 나가고 들어옴에 반드시 절하고 아뢰며 절하고 뵈어야 한다.
사람이 학문이 아니면, 진실로 그 어떤 것이 효도가 되며, 어떤 것이 충성이 되며, 어떤 것이 공손함이 되며, 어떤 것이 신의가 되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모름지기 책을 읽고 이치를 궁구해서 옛사람에게서 구하여 관찰하고, 몸소 내 마음에서 증험하여, 그 한 가지 선을 얻어 힘써 그것을 행하면, 효도, 공손, 충성, 신의의 절도가 저절로 하늘의 질서의 법칙에 부합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시신이 침상에 있어 아직 빈소 차리지 않았을 때 남자와 여자가 시신 곁에 자리하면 그 위치는 남쪽을 상석으로 하니, 시신의 머리가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는 것이다. 이미 빈소를 차린 뒤에 딸은 전례대로 당의 위에 자리하되 남쪽을 상석으로 하고, 남자는 섬돌 아래에 자리하되 그 위치는 마땅히 북쪽을 상석으로 삼아야 하니, 빈소가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는 것이다. 발인할 때는 남자와 여자의 위치가 다시 남쪽을 상석으로 하니, 영구가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는 것이다. 때에 따라 자리를 바꾸되 각각 예의 뜻이 있다.
〈주자의〉 《가례(家禮)》에 ‘부모의 상에는 상복을 갖추어 입는[成服] 날에야 비로소 죽을 먹고, 졸곡하는 날에야 비로소 거친 밥과 물을 마시고, 채소나 과일을 먹지 않으며, 소상의 뒤에야 비로소 채소와 과일을 먹는다.’〈고 하였다.〉 예문(禮文)이 이와 같으니, 질병(疾病)이 없으면(있지 않으면) 마땅히 예문을 따라야한다. 사람들 (중에) 혹 예를 지나쳐서 삼 년을 죽을 먹는 사람이 있으니, 이처럼 성효가 남보다 뛰어나서, 조금도 힘써서 억지로 하는 뜻이 없다면 비록 예에 지나치더라도 오히려 혹 괜찮으나, 만일 성효가 지극하지 못하면서 힘써 억지로 예를 넘는다면 이는 자신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는 것이니, 절대로 마땅히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에 예를 아는 집안들이 대부분 장례 지낸 뒤에 반혼하니, 이는 진실로 바른 예인데, 단지 당시 사람들이 흉내만 내어 마침내 여묘의 풍속을 없애고 반혼한 뒤에 각자 그 집으로 돌아와 처자와 함께 거처하여 예에 금기가 크게 무너지니, 매우 한심스럽다. 무릇 어버이를 잃은 자는 스스로 하나하나 예를 따를 것을 헤아려 조금도 이지러지고 모자람이 없다면 마땅히 예를 따라 반혼할 것이고, 만일 혹 그렇지 못하면 마땅히 옛 풍속을 따라 여묘함이 옳다.
어버이의 상에 성복하기 전에는 곡하고 우는 것을 입에서 끊이지 않게 하고, 장사지내기 전에 곡함에 정해진 때가 없어 슬픔이 지극하면 곡하며, 졸곡한 뒤에는 아침저녁으로 두 때에만 곡할 뿐이다. 예문이 대개 이와 같으나, 만약 효자의 마음이 지극하면 곡하고 우는 것이 어찌 정해진 수가 있겠는가? 무릇 초상은 그 슬픔이 부족하고 예가 충분하기보다는 예는 부족하더라도 슬픔이 충분함 만 못하니, 상사는 그 슬픔과 공경을 다 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스승과 벗의 의리가 중한 자와 친척 중에 복입는 예가 없으면서 정이 두터운 자와 무릇 서로 알던 교분이 친밀한 자는 모두 상을 들은 날에 만약 길이 멀어 그 상에 가서 지킬 수 없으면 신위를 설치하고 곡한다. 스승이라면 그 정의의 깊고 얕음을 따라 혹 심상 삼 년, 혹 기년, 혹 9개월, 혹 5개월, 혹 3개월이요, 친구라면 비록 가장 중하더라도 3개월을 넘지 않는다. 만약 스승의 상에 삼 년이나 기년을 행하고자 하는 자가 초상에 달려갈 수 없으면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신위를 설치하고 곡하여, 나흘에 그친다.
하인은 나의 수고를 대신해주니, 마땅히 은혜를 먼저하고 위엄을 뒤로 하면 해야만 이에 그의 마음을 얻게 될 것이다. 임금이 백성에 대해서와 주인이 하인에 대해서는 그 이치가 하나이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백성이 흩어지니,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며, 주인이 하인을 돌보지 않으면 하인이 흩어진다. 하인이 흩어지면 집안이 패망하는 것은 형세상 반드시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 하인에 대하여 반드시 (생략) (그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 것을 깊이 염려하여 옷과 음식을 공급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알맞은 곳을 얻게 하고, 허물과 악행이 있으면 (생략) 먼저 반드시 부지런히 부지런히 가르쳐서 (그) 을 고치게 하고 (그를) 가르쳐도 고치지 않은 뒤에 이에 회초리질을 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마음에 그 주인의 회초리질이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고, 미워하기 때문이 아님을 알게 한다. 그러한 뒤에야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고치고 얼굴을 고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열째 〈처세장〉: 옛날의 배우는 사람들은 일찍이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나 배움이 이루어지면 윗 사람이 천거하여 그 사람을 등용하였으니, 대체로 벼슬[仕]이란 남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에는 그렇지 않다. 과거로 사람을 뽑아 비록 천리를 통달한 학문과 남들을 뛰어넘는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면 〈자신이 배운〉 도를 행하는 지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그 자식에게 〈과거공부를〉 하게 하고 형은 그 아우에게 〈과거공부를〉 권면하여 과거의 〈공부〉 이외에는 다시 다른 방법이 없으니 선비들의 습속이 경박한 것은 오로지 이러한 까닭이다. 다만 지금 선비된 자가 대부분 부모의 바람과 가문의 계책을 때문에 과거 공부하는 것을 벋어날 수 없으나, 또한 마땅히 그 실력을 연마하여 그 때를 기다려 얻음과 잃음을 하늘의 운수에 맡겨야 하며, 출세에 급급하고 열중해서 그 뜻을 잃어서는 안된다.
《경행록》에 말하였다.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부모를 섬기면 그 효도를 다할 것이고, 부귀를 보전하려는 마음으로써 임금을 받들면 가는 곳마다 충성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며, 남을 책망하는 마음으로써 자기를 책망하면 허물이 적을 것이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써 남을 용서하면 사귐을 온전히 할 것이다.”
《경행록》에 말하였다. “나무를 관리하는 것이 있으면 뿌리가 튼튼하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기둥과 대들보의 재목을 이루고, 물을 관리하는 것이 있으면 샘의 근원이 힘차고 물줄기가 길어서 관개의 이익이 넓으며, 사람을 잘 길러주는 것이 있으면 뜻과 기운이 크고 식견이 밝아져서 충의의 선비가 나오니, 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