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종황제(徽宗皇帝)가 말하였다. “배우는 자는 곡식과 같고 벼와 같으며, 배우지 않은 자는 쑥과 같고 풀과 같다. 곡식과 같고 벼와 같은 것은 나라의 좋은 양식이고, 세상의 큰 보물이다. 쑥과 같고 풀과 같은 것은 농사짓는 자가 미워하고, 김매는 자가 괴로워한다. 훗날에 담장을 마주한 때는 후회한들 이미 늙었도다.”
12
來說是非者는 便是是非人이니라<明心寶鑑, 省心篇上>
찾아와 시비를 말하는 자가 바로 시비하는 사람이다.
13
凡此十四者는 皆我未深省이라 書此當座隅하여 朝夕視爲警하노라<明心寶鑑, 立敎篇>
무릇 이 열 네 가지는 모두 내가 아직 깊이 살피지 못한 것이다. 이것을 써서 자리의 귀퉁이에 당면하게 하고, 아침저녁으로 보고서 경계하노라.”
위에는 하늘이 있고 아래에는 땅이 있으니, 하늘과 땅의 사이에 사람이 있고, 거기에 만물이 있으니, 해와 달과 별은 하늘이 매달고 있는 것이고, 강과 바다와 산은 땅이 싣고 있는 것이고, 부자 〈간의 친함,〉 군신 〈간의 의로움,〉 부부 〈간의 분별,〉 어른 아이 〈간의 차례,〉 벗 〈간의 신의〉는 사람의 큰 윤리이다.
벗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유익한 것이 세 가지의 벗이고, 해로운 것이 세 가지의 벗이니, 곧은 이를 벗하고 미더운 이를 벗하고 보고 들은 것이 많은 이를 벗한다면 유익할 것이고, 편벽된 이를 벗하고 착하고 부드러운 이를 벗하고 말 잘하는 이를 벗한다면 해로울 것이다.
마땅히 항상 스스로 분발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여 예로부터 지금까지 지혜롭고 어리석음의 차이가 없거늘, 성인은 무슨 연고로 홀로 성인이 되었으며, 나는 무슨 연고로 홀로 중인(衆人)이 되었는가? 진실로 뜻이 확립되지 못하고 앎이 분명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실하지 못한 데서 말미암았을 뿐이다. 뜻을 확립하고 앎을 분명히 하고 행실을 독실하게 하는 것이 모두 나에게 있을 뿐이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할 수 있겠는가?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또한 이와 같다’ 하였으니 나 또한 마땅히 안연(顔淵)이 순임금처럼 〈되고자〉 바란 것으로 본보기를 삼겠다.”
무릇 책을 읽는 사람은 반드시 단정히 손을 모으고 바르게 앉아서, 공경히 책을 대하여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다하여, 생각을 정밀히 하고 깊이 잠겨서 뜻과 취지를 깊이 이해하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하는 방법을 구해야 하니, 만약 입으로 읽기만 하고 마음으로 체득하지 않고, 몸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책은 따로 책이고 나는 따로 나일 것이니,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사람이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벼슬하는 것을 급히 여기고 벼슬한 뒤에는 다시 벼슬을 잃을까 염려한다. 이처럼 골몰하다가 그 본심을 잃은 사람이 많으니, 어찌 두려워할 만하지 않겠는가? 지위가 높은 사람은 도를 행하는 것을 주장하니, 도를 행할 수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 옳다. 만약 집안이 가난하여 녹을 받는 벼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반드시 내직을 사양하고 외직에 나아가며, 높은 지위는 사양하고 낮은 벼슬에 머물러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다. 비록 녹을 받는 벼슬이라 말하지만, 또한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히 공무에 힘써서 자기 직무를 다해야 하고, 관직을 버려두고서 먹고 마셔서는 안 된다.
남긴 복숭아의 죄: 옛날에 미자하(彌子瑕)는 위(衛)나라 군주[영공(靈公)]에게 총애가 있었다. 위나라의 법에 주군의 수레를 몰래 탄 자는 월형의 벌을 내린다.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들자 민가에서 밤에 찾아와 미자에게 알리니, 미자는 영공의 수레를 사칭하여 타고서 외출하였다. 영공이 듣고서 미자를 어질게 여겨 말하길, “효성스럽구나! 어머니 때문에 자기 발꿈치가 베일 형벌을 잊었구나.” 하였다. 다른 날 영공과 함께 과수원을 유람하다가 복숭아를 먹어보니 맛이 달자, 다 먹지 않고 그 반을 위군에게 먹였다. 영공이 말하길, “나를 사랑하는구나! 자기 입에 맞는 것은 잊어버리고서 과인에게 먹이는 구나.” 하였다.
곁에 사람이 없는 듯 : 형가(荊軻)는 위나라 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바로 제나라 사람이었는데, 위나라로 옮겨가니 위나라 사람들이 그를 일러 ‘경경’이라고 하였고, 연나라에 가니 연나라 사람들이 그를 일러 ‘형경’이라고 하였다. …… 형가가 연나라에 이른 뒤에 연나라의 개 도축자와 축을 잘 타는 자인 고점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며, 이름은 원이다. 오자서의 아버지는 ‘오사’이고, 오자서의 형은 ‘오상’이다. 그의 선조는 ‘오거’인데, 직간으로 초나라 장왕을 섬겨서 알려짐이 있었다. 그래서 그 후손이 대대로 초나라에 이름이 있었다. …… 일찍이 오자서가 신포서와 교류를 하였는데, 오자서가 달아날 때에, 신포서에게 일러 말하길,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뒤집을 것이다.” 하니, 신포서가 말하길, “나는 반드시 이 나라를 보존시킬 것이다.” 하였다.
지금 그 온전한 책을 비록 볼 수 없으나, 기록에서 섞여 나온 것이 또한 많은데도, 읽는 자가 종종 단지 ‘예와 지금의 마땅한 일이 다르다.’고 여기고서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니, 그 예나 지금의 다름이 없는 것이 본디 처음부터 행할 수 없는 것이 아님을 전혀 알지 못해서이다.
30
惟聖은 性者라 浩浩其天이시니 不加毫末이라도 萬善足焉이니라<小學, 小學題辭>
(생략) 성인(聖人)은 성품대로 하는 자인지라 넓고 넓어 그 하늘과 〈같으니〉, 털끝만큼 보태지 않더라도 모든 선이 거기에서 충분하다.
남녀가 아직 관례와 계례를 치르지 않은 자가 닭이 처음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질하며, 빗질을 하고 건을 쓰며, 머리에 먼지를 털고, 뿔모양으로 머리를 묶고, 향주머니 끈을 매어 모두 향주머니를 차며, 어슴푸레한 새벽에 〈부모를〉 뵙고서, 무엇을 드셨는지를 여쭈어서, 만약 이미 드셨으면 물러나오고, 만약 아직 드시지 않았으면 장자를 도와서 〈음식〉 준비를 보살핀다.
부모와 시부모가 앉으려 하면, 자리를 들어 어디로 향할지 여쭈며, 잠 자리를 고치려 하면, 장자는 자리를 들어 어디로 발을 뻗을지 여쭙고, 젊은 사람은 자리를 잡고 함께 앉으며, 모시는 사람은 안석을 들고 자리와 대자리를 거두며, 이불을 매달고 베개를 상자에 넣고 대자리를 거두어 그것을 싸매 둔다.
《예기(禮記)》에 말하였다. “효자 중에 깊은 사랑이 있는 자는 반드시 온화한 기운이 있고, 온화한 기운이 있는 자는 반드시 기뻐하는 얼굴빛이 있고, 기뻐하는 얼굴빛이 있는 자는 반드시 온화한 용모가 있으니, 효자는 옥을 잡은 듯이 하고 가득찬 것을 받드는 듯이 하여, 성실하고 오롯하게 감당하지 못할 듯이 하고 장차 그것을 잃을 듯이 여기니, 엄숙하고 위엄이 있으며 엄연하고 씩씩한 것은 부모를 섬기는 방법이 아니다.”
38
曲禮曰 凡爲人子者는 居不主奧하며 坐不中席하며 行不中道하며 立不中門하며<小學, 明倫第二>
《예기》 〈곡례(曲禮)〉에 말하였다. “무릇 자식 된 자는 거처할 적에 아랫목을 차지하지 않으며, 앉을 때 자리 가운데에 〈앉지〉 않으며, 걸을 때 길 가운데로 〈걷지〉 않으며, 설 때 문 가운데에 〈서지〉 않는다.”
39
內則曰 子婦孝者敬者는 父母舅姑之命을 勿逆勿怠니라<小學, 明倫第二>
《예기》 〈내칙〉에 말하였다. “아들과 며느리로서 효도하는 자와 공경하는 자는 부모와 시부모의 명을 거스르지 말고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곡례에 말하였다.〉 “부모에게 질병이 있으면, 관을 쓴 자는 빗질하지 않으며, 걸어다닐 때 활보하지 않으며, 말할 때 간섭하지 않으며,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지 않으며, 고기를 먹되 입에 물리는 데에 이르지 않으며, 술을 마시되 얼굴빛이 변하는 데에 이르지 않으며, 웃되 잇몸이 드러나는 데에 이르지 않으며, 성내되 꾸짖는 데에 이르지 않아야 하니, 병이 나으시면 예전으로 돌아간다.”
공자가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그를) 낳아주셨으니, 계승함이 이것보다 큰 것이 없고, 임금과 부모께서 (그에게) 임하시니, 후함이 이것보다 무거운 것이 없다. 이러한 까닭에 그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그것을) 어긋난 덕이라 하고, 그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것을, (그것을) 어긋난 예라고 한다.
부모를 섬기는 자는 위에 거하여서는 교만하지 않으며, 아래가 되어서는 어지럽히지 않으며, 동료간에 있어서는 다투지 않아야 한다. 위에 거하여 교만하면 망하고, 아래가 되어서 어지럽히면 형벌을 받으며, 동료간에 있어서 다투면 병기로 해치게 되니, 이 세 가지를 제거하지 않으면 비록 날마다 세 가지 희생물의 봉양을 쓰더라도오히려 불효가 된다.
45
曲禮曰 凡爲君使者已受命하여는 君言을 不宿於家니라<小學, 明倫第二>
〈곡례〉에 말하였다. 무릇 임금의 심부름꾼이 된 자는 이미 명령의 받고서는 임금의 말씀을 집에 묵혀두지 않는다.
46
君言이 至어든 則主人이 出拜君言之辱하고 使者歸어든 則必拜送于門外니라<小學, 明倫第二>
임금의 말씀이 이르면 주인은 나가서 임금의 말씀이 욕됨에 절하고, 심부름 온 자가 돌아가면 반드시 문 밖에서 절하여 보낸다.
47
若使人於君所어든 則必朝服而命之하고 使者反이어든 則必下堂而受命이니라<小學, 明倫第二>
만약 임금이 계신 곳에 사람을 심부름 보내게 되면 반드시 조복을 입고서 (그에게) 명하며, 심부름 보낸 자가 돌아오면 반드시 대청으로 내려가서 명을 받는다.
48
曲禮曰 賜果於君前이어든 其有核者는 懷其核이니라<小學, 明倫第二>
〈곡례〉에 말하였다. 임금의 앞에서 과일을 하사하시면 그 씨가 있는 것은 그 씨를 품에 간직한다.
49
有官守者는 不得其職則去하고 有言責者는 不得其言則去니라<小學, 明倫第二>
지킬 관직이 있는 자는 그 직분을 할 수 없으면 떠나고, 말할 책임이 있는 자는 그 말을 할 수 없으면 떠나간다.
50
謀於長者할새 必操几杖以從之니 長者問이어든 不辭讓而對非禮也니라<小學, 明倫第二>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의논할 적에 반드시 안석과 지팡이를 잡고서 (그를) 따라야 하니, 나이 많은 사람이 물으면 사양하지 않고 (바로) 대답하는 것은 예가 아니다.
51
從長者而上丘陵이면 則必鄕長者所視니라<小學, 明倫第二>
나이 많은 사람을 따라서 언덕에 올라가면 반드시 나이 많은 사람이 보는 곳으로 (시선이) 향해야 한다.
52
長者與之提携어든 則兩手로 奉長者之手하고 負劍辟咡詔之어든 則掩口而對니라<小學, 明倫第二>
나이 많은 사람이 나에게 (손을) 잡아 이끌어주면 두 손으로 나이 많은 사람의 손을 받들고, 검을 차듯이 옆에 끼고서 입가까지 (몸을) 기울여 나에게 가르쳐주면 입을 가리고서 대답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감에, 백세의 가운데에 질병이 여기에 있으며, 노년기와 유년기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돌아올 수 없는 것을 생각하여 먼저 베푸는 것이다. (생략) 친척이 이미 죽으면 비록 효도하고자 하더라도 누구를 위해 효도할 것이며, 나이가 이미 늙으면 비록 공경하고자 하더라도 누구를 위해서 공경하겠는가? 그러므로 ‘효도는 미치지 못함이 있으며, 공경은 때가 아님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이것을 말함일 것이다.
관의에 말하였다. 무릇 사람이 사람이 되는 까닭은 예의 (때문) 이니, 예의의 시작은 용체를 바르게 하고, 안색을 가지런히 하며, 말과 명령을 순하게 하는 데에 있다. 용체가 바르며, 안색이 가지런하며, 말과 명령이 순한 뒤에 예의가 갖추어지니, 이것으로써 군신을 바르게 하며, 부자를 친하게 하며, 장유를 화하게 한다. 군신이 바르게 되며, 부자가 친하며, 장유가 화한 뒤에 예의가 확립된다.
시경에서 말하였다. “하늘이 여러 백성을 내시니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 백성이 가진 떳떳함이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 공자가 말하였다. “이 시를 쓴 사람은 아마 도를 알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으니 백성이 떳떳함을 가졌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 전하는 기록을 살피며 보고 들은 것을 접하여, 아름다운 말을 기술하며 선한 행실을 기록하여, 소학의 외편을 만들었다.
그 셋째는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고, 자기에게 아첨하는 사람을 기뻐하여, 오직 희롱하는 말을 좋아하고 옛 도(道)를 생각하지 않아서 남의 선(善)을 듣고는 그것을 질투하며, 남의 악을 듣고는 그것을 드러내어 치우치고 편벽됨에 젖어들어 덕과 의를 녹여 없애면 의관이 단지 있더라도 하인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절효 서 선생이 배우는 사람에게 훈계하여 말했다. “뭇 그대들이 군자가 되고자 하되 가령 자기의 힘을 수고롭게 하며 자기의 재물을 허비해야 한다면 이와 같아서 군자가 되지 않음은 그래도 괜찮지만, 자기의 힘을 수고롭게 하지 않으며 자기의 재물을 허비하지 않는데 뭇 그대들이 어찌 군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가?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천시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것을) 미워하면, 이와 같아서 군자가 되지 않음은 그래도 괜찮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것을) 바라고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영광으로 여기는데 뭇 그대들은 어찌 군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가?”
고령 진 선생이 선거의 현령이 되어 그 백성들에게 가르쳐 말하였다. “나의 백성 된 사람들은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사랑하며, 형은 우애하고 동생은 공손하며, 자식은 효도하며, 남편과 아내는 은혜가 있으며, 남자와 여자는 분별이 있으며, 자식과 아우는 배움이 있으며, 마을에는 예의가 있으며, 가난하고 곤궁하며 근심하고 어려울 적에 친척이 서로 도우며, 혼인과 장례와 초상에 이웃 조합이 서로 도우며, 농사일을 폐하지 말며, 도둑질하고 해치는 이가 되지 말며, 노름하고 내기함을 배우지 말며, 다투거나 송사함을 좋아하지 말며, 악으로 선을 능멸하지 말며, 부유함으로 가난한 이를 겸병하지 말며,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며, 밭 가는 사람은 밭두둑을 양보하며, 흰 머리가 섞인 사람은 도로에 (짐을) 지고 (머리에) 이지 않으면, 예절과 의리의 풍속이 될 것이다.”
혹 명령한 바가 행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을 갖추어 (그것을) 말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려 그러한 뒤에 (그것을) 고치고, 만약 허락하지 않더라도 만약 일에 있어 큰 해가 없는 것이면, 또한 마땅히 굽혀 따라야 한다.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령을 그르다 여겨 곧바로 자기의 뜻을 행하면, 비록 집행하는 바가 모두 옳더라도 오히려 순하지 못한 자식이 되니, 하물며 반드시 옳지 않음에 있어서랴.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순임금이 어버이를 섬김에 기뻐하지 않음이 있었던 것은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어리석어 사람의 정에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니, 만약 중등 사람의 성품이어서 그 사랑하고 미워함이 만약 이치에 해로움이 없다면, 반드시 우선 (그들에게) 순종해야 한다.
78
羅仲素論瞽瞍底豫而天下之爲父子者定하여 云只爲天下에 無不是底父母라하여늘<小學, 嘉言第五>
나중소가 ‘고수가 기뻐함에 이르자, 천하의 아버지와 자식된 사람들이 안정되었다’는 것을 논하여 말했다. “다만 천하에 옳지 않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개가 일찍이 여섯 예도의 대략을 닦았는데, 집안에는 반드시 사당이 있고, 사당에는 반드시 신주가 있어, 달마다 초하루에는 반드시 새로운 것을 바치며, 사철의 제사에는 가운데 달을 쓰며, 동지에는 시조를 제사하며, 입춘에는 선조를 제사하며, 늦은 가을에는 아버지의 사당에서 제사하며, 기일에는 신주를 옮겨 대청에서 제사하도록 하니, 무릇 죽은 사람 섬기는 예를 마땅히 산 사람 봉양보다 후하게 해야 한다.
82
人家能存得此等事數件하면 雖幼者라도 可使漸知禮義니라<小學, 嘉言第五>
사람의 집에서 이러한 부류의 일 몇 가지를 잘 보존하여 터득하면, 비록 어린 사람이라도 점차 예절과 의리를 알게 할 수 있다.
사마온공이 말하였다. “관을 씀은 완성한 사람의 도이니, 완성한 사람은 장차 사람의 아들이 되며, 사람의 아우가 되며, 사람의 신하가 되며, 사람의 젊은이가 되는 행실을 요구하려는 것이니, 장차 네 가지의 행실을 사람에게 요구하려 하니, 그 예를 중시하지 않을 수 있는가?
관 쓰는 예가 폐해진 지 오래이니, 가까운 세대 이후로 사람의 정이 더욱 가볍고 박하게 되어서 아들을 낳으면, 아직 젖을 먹는데도 이미 두건과 모자를 씌우고, 관작이 있는 사람은 혹 (그를) 위해 벼슬아치의 옷을 만들어 (그를) 희롱한다. 열 살이 지나도록 오히려 땋은 머리를 뿔처럼 한 사람이 대개 적으니, 저들을 네 가지의 행실로써 책망한들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때때로 어렸을 때부터 장성함에 이르도록 우매하고 어리석음이 한결같으니, 완성한 사람의 도를 알지 못하는 연유의 까닭이다.
85
古者에 父母之喪엔 旣殯하고 食粥하며 齊衰엔 疏食水飮하고 不食菜果하며<小學, 嘉言第五>
옛날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에는 이미 빈소를 차리고서 죽을 먹었으며, 자최의 상에는 거친 밥과 물을 마시고 채소와 과일은 먹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대의 시대에 상에 거함에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으로 이상한 일로 여겼으니, 이 흘러가는 속세의 폐단이 그 유래가 매우 가깝다. 지금의 사대부는 상에 거하면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심이 평소의 날과 다름이 없고, 또 서로 따라 잔치하고 모여 뻔뻔하게 부끄러움이 없거든 사람들 또한 편안하게 여겨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예의 있는 풍속이 무너짐에 익숙하여 그것으로 보통으로 여기니, 슬프구나!
이에 비루하고 비속한 사람에 이르러서 혹 초상에 염을 하지 않았을 적에 친구와 빈객이 곧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서 (그를) 위로하면 주인 된 사람이 또한 스스로 술과 안주를 갖추어 서로 더불어 마시고 마셔서 취하고 배불리 먹기를 날을 이어서 하며 장례에 이르러서도 또한 이와 같이 하며, 심한 경우는 초상에 음악을 연주하여 시신을 즐겁게 하고, 빈소 차리고 장례 함에 이르러선 곧 음악으로 상여를 인도하게 하고서 부르짖고 울면서 (그것을) 따르며 또한 상을 틈타 곧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들이 있다. 슬프다! 익숙한 세속을 변화시키기 어려움과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치기 어려움이 마침내 여기에 이르렀구나!
무릇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에 거하는 사람은 대상의 전에 모두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니, 만약 병이 있으면 잠시 모름지기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되, 병이 그치면 또한 마땅히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만일 고기 없는 음식이 목으로 잘 내려가지 않아서 오래되어 파리하고 여위어 병을 이룰까 염려되는 사람은 고기즙과 포와 젓갈이나 혹 고기 조금과 약간으로 그 입맛을 돋울 수 있을지언정 진귀한 음식, 성대한 음식을 마음대로 먹거나 및 남과 연회 하며 즐겨서는 안 되니, 이는 곧 비록 상복을 입었더라도 그 실제는 상례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50세 위로 혈기가 이미 쇠하여 반드시 술과 고기에 도움받아 받들어 봉양하는 사람은 곧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뿐이다.
90
其居喪에 聽樂及嫁娶者는 國有正法하니 此不復論하노라<小學, 嘉言第五>
그 상에 거함에 음악을 듣거나 및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은 나라에 바른 법이 있으니, 이에 다시 논하지 않는다.
세상의 풍속이 부처의 속임과 유혹을 믿어, 무릇 상의 일이 있음에 부처를 공양하고 승려를 먹이지 않는 이가 없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죽은 사람을 위하여 죄를 없애고 복을 도와 천당에 살며 모든 기쁨과 즐거움을 받게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들어가 베어지고 태워지고 찧어지고 갈려서 모든 괴로움과 고초를 받는다.” 죽은 사람은 형체가 이미 다하여 없어지고 정신도 또한 날아가고 흩어졌으니, 비록 베고 태우고 찧고 가는 일이 있더라도 또 베풀 곳이 없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하물며 부처의 법이 아직 중국에 들어오지 않은 이전에도 사람 중에 진실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있었는데, 무슨 까닭으로 한 사람도 지옥에 잘못 들어가 이른바 시왕을 본 사람이 전혀 없는가? 이는 그 있지 않아서 충분히 믿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며느리는 집안의 성하고 쇠함이 말미암는 바이니, 다만 한때의 부유함과 귀함을 흠모하여 (그에게) 장가들면, 저가 그 부유함과 귀함을 믿고서 그 남편을 가볍게 여기고 그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업신여겨, 교만과 질투의 습성을 기르고 이루지 않을 이가 드물게 있으니, 다른 날에 근심됨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97
借使因婦財以致富하며 依婦勢以取貴라도 苟有丈夫之志氣者면 能無愧乎아<小學, 嘉言第五>
가령 아내의 재물을 이용하여 부유함을 이루고, 아내의 세력에 의지하여 귀함을 취하더라도, 진실로 장부의 뜻과 기개가 있는 사람이면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안정호 선생이 말하였다. “딸을 시집보내기를 반드시 모름지기 내 집보다 나은 사람에게 해야 하니, 내 집보다 나으면 딸이 사람을 섬김이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경계한다. 며느리 맞이하기를 반드시 모름지기 내 집만 못한 사람에게 해야 하니, 내 집만 못하면,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섬김이 반드시 며느리의 도를 지킨다.”
무릇 사람의 백성이 있고서 뒤에 남편과 아내가 있고, 남편과 아내가 있고서 뒤에 아버지와 자식이 있고, 아버지와 자식이 있고서 뒤에 형과 동생이 있으니, 한 집안의 친족은 이 세 가지이고 그친다. 이로부터 하여 나아가 아홉 친족에 이르기까지 모두 세 친족에게 근본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윤리에 있어 중요한 것이 되니, 돈독하게 하지 않아선 안 된다.
형과 동생은 형체를 나누고 기를 이은 사람이니, 한창 그가 어릴 적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왼쪽에서 잡아주고 오른쪽에서 이끌어주며, 앞에서 옷깃을 당기고 뒤에서 옷섶을 잡아주어, 먹을 적엔 밥상을 함께하고 입을 적엔 옷을 물려주고 배울 적엔 학업을 이어주고 놀 적엔 장소를 같이 하니, 비록 어긋나고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손윗동서와 손아랫동서를 형과 동생에 견주면 소원하고 박하니, 이제 소원하고 박한 사람으로 친하고 후한 은혜를 절제하고 헤아리게 하면, 모난 밑에 동그란 덮개와 같아서 반드시 맞지 않을 것이니, 오직 우애와 공경이 깊고 지극하여 옆 사람이 옮긴 바 되지 않은 사람이라야 면할 수 있다!
유개 중도가 말하였다. “선친이 집안을 다스리되 효성스럽고 또 엄격하였다. 초하루와 보름에 자제와 며느리 무리가 대청 아래에서 절하고서 마치고는 곧 손을 들고 얼굴을 숙이고서 우리 선친의 가르침과 훈계를 들었는데 말하였다. ‘사람의 집에 형과 동생이 의롭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모두 아내를 맞이하여 집안에 들임으로 말미암아 다른 성이 서로 모여 장점을 다투고 단점을 다투어 점차 (참소가) 젖어 들고 날로 (참소가) 들리며, 편벽되이 사랑하고 사사로이 저축하여 그것으로 등지고 어긋남에 이르러 집안을 나누고 집안을 쪼개어 근심하기를 도적과 원수처럼 여기니, 모두 너희 부인 된 사람이 만든 것이다. 남자로서 심장이 강한 사람 몇 사람이 부인 된 사람의 말에 미혹되는 바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본 것이 많으니, 너희들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자제와 며느리가) 물러나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효성스럽지 않은 일 함을 한 마디도 내지 못하니, 유개 무리가 지금에 이르도록 (그것에) 힘입어 그 집안을 온전히 할 수 있었다.”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형과 동생의 우애를 많이 알지 못한다. 우선 예컨대 마을의 소인이 한 음식을 얻으면 반드시 먼저 그것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먹이니, 무릇 무슨 까닭인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이 자기의 입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옷을 얻으면 반드시 먼저 그것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입히니, 무릇 무슨 까닭인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이 자기의 몸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와 말에 이르러서도 또한 그러하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개와 말을 대하기를 반드시 자기의 개와 말과 다르게 한다. 다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도리어 자기의 자식보다 가볍게 여겨, 심한 사람은 원수와 적처럼 여김에 이르러 온 세상이 모두 이와 같으니, 미혹됨이 심하다.”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가까운 시대에 (인정이) 얕아지고 박해져서 서로 기뻐하고 친압함을 서로 친함으로 여기며 모나고 뿔이 없는 것을 서로 기뻐하고 사랑함으로 여기니, 이 같은 것이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만약 오래 가기를 바란다면 모름지기 이 공손하고 공경해야 하니, 군주와 신하와 벗과 친구가 모두 마땅히 공경으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지금의 벗과 친구는 그 유순하기를 잘하는 것을 가려 그것으로 서로 친하여 어깨를 치고 소매를 잡으면서 그것으로 기가 합하였다고 여긴다. 한마디 말이 합하지 않으면 노여운 기운이 서로 더하니, 벗과 친구의 사이에는 그 서로 낮추기를 게을리하지 않고자 해야 한다. 그러므로 벗과 친구의 사이에 그 공경을 주장하는 사람이어야 날로 서로 친하고 우호하여 효과를 얻음이 가장 빠르다.”
동몽훈에 말하였다. “함께 하는 동료의 합함과 교대하여 잇는 즈음은 형과 동생의 의리가 있으니, 그 자식과 손자에 이르러서도 또한 대대로 (그것을) 강해야 한다. 전의 무리는 오로지 이것으로 일삼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 대개 적다. 또 옛날에 추천해준 장수 및 일찍이 옛날에 안찰관을 맡아 된 이와 같은 경우는 뒤에 자기의 관직이 비록 (그들보다) 위에 있더라도 전의 무리에 대해 모두 사양하고 회피하여 아래 자리에 앉았으니, 풍속이 이와 같으면 어찌 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있는 오지방 가운데 종족이 매우 많으니, 나에게 있어서는 진실로 가깝고 멂이 있지만, 그러나 우리 조상이 (그를) 보면 똑같은 이 자식과 손자이니, 본래 가깝고 멂이 없다. 진실로 조상의 뜻에 가깝고 멂이 없다면, 굶주리고 추워하는 사람을 내 어찌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상으로부터 이래로 덕을 쌓은 지 백여 년만에 비로소 나에게서 발하여 큰 벼슬에 이를 수 있었으니, 만약 홀로 부유함과 귀함을 누리고 종족을 구제하지 않으면 다른 날에 어떻게 그것으로 지하에서 조상을 볼 수 있겠으며, 이제 무슨 낯으로 집안의 사당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에 은혜로운 대우와 녹봉과 하사받은 것을 항상 집안사람들에게 고루 주고 아울러 의로운 밭과 집을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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董仲舒曰 仁人者는 正其誼하고 不謀其利하며 明其道하고 不計其功이니라<小學, 嘉言第五>
동중서가 말하였다. “인한 사람은 그 의를 바르게 하고 그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을 따지지 않는다.”
사람이 바깥 사물로 몸을 봉양하는 것에 있어서는 일과 일마다 좋게 하고자 하되, 다만 자기 자신의 한 개의 몸과 마음에 있어서는 도리어 좋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만일 바깥 사물이 좋은 것을 얻었을 때는 도리어 (어조사)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이 이미 스스로 먼저 좋지 않게 됨을 (어조사) 알지 못한다.
네 가지는 몸의 작용이다. 마음에 말미암아 밖에 응하니, 밖을 제어함은 그것으로 그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안연이 이 말에 종사했으니, 그것으로 성인에 나아간 것이다. 뒤의 성인을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가슴에 두어서 잃지 말아야 한다. 인하여 잠을 지어 그것으로 스스로 경계한다.”
여형공이 일찍이 말하였다. “뒤에 태어난 처음 배우는 이들은 우선 반드시 기의 형상을 이해하고 알아야 하니, 기의 형상이 좋을 때는 모든 일이 이에 마땅하다. 기의 형상은 말과 글과 용모와 거동의 가벼움과 무거움과 빠름과 느림에서 충분히 그것으로 (그것을) 볼 수 있다. 오직 군자와 소인이 여기에서 (어조사) 나누어질 뿐만 아니라 또한 귀함과 천함과 장수와 요절이 말미암아 정해지는 것이다.
호문정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모름지기 이 일체 세상의 맛에 담박하고 박하여야 바야흐로 좋으니, 부유하고 귀한 모습이 있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맹자가 말하였다. ‘집의 높이가 몇 길인 것과 음식이 앞에 사방 한 길이 있는 것과 모시는 첩이 몇백 명인 것을 나는 뜻을 얻더라도 하지 않겠다.’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이 무리를 없애고 버려서 항상 스스로 격려하고 분발해야 곧 떨어지고 타락함에 이르지 (어조사) 않을 것이다.
호자가 말하였다. “지금의 유학하는 사람은 문장과 재주를 배워 벼슬에 나아감을 구하는 마음을 옮겨서 그것으로 그 잃어버린 마음을 거두어서 그 몸을 아름답게 하면 어찌 옛사람에게 미칠 수 없겠는가? 아버지와 형이 문장과 재주로써 그 자식과 아우에게 명령하고, 벗과 친구가 벼슬에 나아가는 것으로 서로 불러,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마음이 비로소 거칠어져서 다스려지지 않아서 모든 일의 이룸이 모두 옛날 선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어버이를 봉양할 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옛사람이 뜻에 앞서 안색을 받들며, 목소리를 화하게 하고 기운을 낮추며, 수고롭고 힘든 것을 꺼리지 않아서 그것으로 달고 연한 것을 바침을 보고, 깜짝 놀라(어조사)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여 흥기하여 (그것을) 행하고자 해야 한다.
본래 교만하고 사치하는 사람은 그 옛사람이 공손하고 검소하여 씀을 절약하며, 낮추어 그것으로 스스로 기르며, 예로써 가르침의 근본을 삼으며, 공경하는 것으로 몸의 터전을 삼은 것을 보고, 놀라 (어조사) 스스로 (마음을) 상하여 용모를 거두고 뜻을 억제하고자 해야 한다.
본래 비루하고 인색한 사람은 그 옛사람이 의를 귀하게 여기고 재물을 가볍게 여기며,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줄이며, 가득 찬 것을 꺼리고 충만한 것을 싫어하며, 곤궁한 사람을 도와주고 없는 사람을 구휼함을 보고, (얼굴을) 붉혀 (어조사) 뉘우치고 부끄러워하여 (재물을) 쌓되 잘 흩어주고자 해야 한다.
본래 사납고 강한 사람은 그 옛사람이 마음을 작게하고 자신을 억제하며, 이는 빠져도 혀는 남아 있으며, (남의) 오점을 감싸고 (남의) 과실을 감추며, 어진 사람을 높이고 대중을 포용함을 보고, 맥없이 (어조사) 꺾이고 잃어서 마치 옷을 이기지 못할 듯이 하고자 해야 한다.
또 몇십 권의 책을 읽음이 있어 곧 스스로 높고 큰 체하여 나이 많은 사람을 능멸하고 소홀히 여기며, 같은 항렬의 사람을 경멸하고 업신여겨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기를 마치 원수와 적같이 여기며, (그를) 싫어하기를 마치 올빼미같이 여기니, 이와 같다면, 배움으로 유익함을 구하려는 것인데 지금 도리어 스스로 해치니, 배우지 않는 것만 못하다.”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대학은 공씨가 남긴 책인데 처음 배우는 사람이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 지금에 옛사람이 학문하는 차례와 순서를 볼 수 있는 것은 유독 이편이 보존됨에 의뢰할 뿐이고, 그 나머지는 논어와 맹자만 한 것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이 반드시 이를 말미암아서 여기서 배우면 그 어긋나지 않음에 가까울 것이다.”
논어를 읽는 사람은 다만 제자가 물은 곳을 가져와 곧 자기의 질문으로 삼으며, 성인이 답한 곳을 가져와 곧 오늘날에 귀로 들은 것으로 삼으면, 저절로 그러하게 얻음이 있을 것이니, 만약 논어와 맹자 가운데서 제대로 깊게 구하고 완상하고 음미하여 가져와서 무 젖고 기르면, 매우 생생한 기의 바탕을 이룰 것이다.
선배가 일찍이 말하였다. “뒤에 태어난 이 중에 재주와 바탕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두려워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오직 글을 읽음에 찾아 생각하고 미루어 궁구하는 사람이 두려워할 만한 이가 될 뿐이다.” 또 이르길, “글을 읽음에는 다만 찾아 생각함이 두렵다.” 대개 의와 이치는 정밀하고 깊으니, 오직 찾아 생각하고 뜻을 써야 그것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음이 되니, 어리석고 거칠어서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리가 있지 않다.
당시 공은 막 십 여세였는데, 안으로는 곧 정헌공과 신국부인의 가르침이 이와같이 엄하였고 밖으로는 곧 초 선생의 교화와 지도가 이와같이 독실하였다. 그러므로 공의 덕기가 성취되어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달랐다. 공은 일찍이 말하였다. “인생이 안으로 어진 부형이 없고 밖으로 엄한 스승과 벗이 없고, 그러면서도 성공함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당나라 양성이 국자사업이 되어서 제생을 불러 (그들에게) 일러 말하였다. “무릇 배운다는 것은 충과 효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제생중에 오랫동안 부모를 살피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였다. 다음날 양성을 뵙고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려는 사람이 20명이었다. 3년 동안 돌아가 (부모를) 모시지 않는 사람이 있자 (그를) 내쫓았다.
그가 호주의 학교에 있을 때 경의재와 치사재를 설치하였는데, 경의재라는 곳은 소통하고 또 기국이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그곳에) 거처하게 하고 치사재라는 곳은 사람마다 각각 한 가지 일을 전공하고 또 한 가지 일을 겸하게 하였으니, 치민, 치병, 수리, 산수와 같은 종류였다. 그가 태학에 있을 때도 또한 그렇게 하였다.
그 제자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는데, 그 사람의 뛰어남과 어리석음에 따라서 모두 순순하게 단아하고 삼갔다. 그 언어와 행동거지는 (그를) 만나보면 묻지 않더라도 선생의 제자가 임을 알 수 있었고, 그 배우는 사람들이 서로 말함에 선생이라고 칭하면 묻지 않아도 호공임을 알 수 있었다.
마땅히 우선 가까이 모시는 어진 선비와 백집사를 예로 명하여 마음을 다해 찾아 물어서, 덕업이 넉넉히 갖추어져 충분히 사표가 될만한 사람이 있으며 그다음으로 뜻을 돈독히 하여 학문을 좋아하며 재질이 훌륭하고 행실이 닦여진 사람이 있거든, 초빙하여 (예를) 후하게 하여 (사람을) 보내어서(그들을) 서울에 모이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아침저녁으로 서로 더불어 올바른 학문을 강론하여 밝히도록 한다.
그 학문과 행실이 모두 여기에 맞는 사람은 덕을 이룬 군자이니 재주와 학식이 밝고 통달하여 선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날마다 그 가르침을 받게 하고 (그중에서) 그 학문이 밝고 덕이 높은 사람을 뽑아 태학의 스승으로 삼고 그다음으로써 천하의 학교에 나누어 가르치게 한다.
존현당을 지어서 천하 도덕이 있는 선비를 맞이하며, 정원수를 낮추어서 이익의 유혹을 없애며, 번문을 생략하여서 오로지 (교관에게 임무를) 위임하며, 행검을 장려하여서 풍속과 가르침을 후하게 하는 것 및 대빈재, 이사재를 설치하며, 관광법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또한 수십 조항이다.
강혁이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다만 (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천하의 난리를 만나 도적이 함께 일어나자 강혁은 어머니를 업고 난리를 피하였다. 험난함을 모두 겪으면서 항상 캐고 주워서 봉양하였다. 자주 도적을 만났는데 혹 협박하며 장차 (강혁을) 데려가려고 하면, 강혁이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가엽게 여겨주기를 바라면서 늙으신 어머니가 있다고 말하였는데, 말소리가 정성스럽고 간곡하여서 충분히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도적은 이 때문에 차마 (그를) 범하지 못하였으며, 혹은 바로 병난을 피할 방법을 가리켜 보였다. 마침내 난리에서 모두 온전할 수 있었다.
이윽고 아우의 아들들이 재산을 나누어 따로 살기를 원하였다. 설포는 만류할 수 없어서 이에 그 재산을 절반으로 나누었는데 노비는 그 늙은 자를 끌어오며 말하기를 “나와 더불어 일을 함께 한 지 오래 되었다. 너희들이 부릴 수 없을 것이다.” 밭과 집은 그 황폐하고 기울어진 것을 취하며 말하기를 “내가 어린 시절에 다스리던 것이라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기물은 그 썩고 부서진 것을 취하며 말하기를 “내가 평소에 입고 먹던 것이라서 (나의) 몸과 입에 편안한 것이다." 하였다. 아우의 아들들이 자주 그 재산을 파산하였는데, 그때마다 다시 도와주었다.
왕부는 아버지가 비명에 죽은 것을 애통하게 여겼다. 이에 은거하며 (학생들을) 가르쳐서 세 번 (조정에서) 부르고 일곱 번 (군국에서) 불렀는데도 모두 나아가지 않고, 무덤 옆에 여막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항상 묘소에 이르러 절하고서 무릎을 꿇고 잣나무를 부여잡고 슬프게 울어서 눈물이 나무를 적시니 나무가 (그것) 때문에 말라 죽었다. 시경을 읽다가 “슬프고 슬프도다, 부모님이여! 낳으시느라 나를 수고하고 수고하셨네"라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세 번 반복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다. 문인 중 수업을 받는 사람들은 함께 육아의 편을 가렸다.
주수창이 태어난 지 7년에 아버지가 옹주 수령이 되었는데 그 어머니 유씨를 내쫓아 민간에 시집보내니 어머니와 자식이 서로 알지 못한 것이 50년이었다. 주수창은 사방을 다니며 어머니 찾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시고 먹을 때 술과 고기를 먹는 것이 드물었고 남과 말할 때도 곧 눈물을 흘렸다.
수창이 두 차례 군수가 되었는데 이에 이르러 어머니를 이유로 하여 하중부에 통판이 되었는데, 그 동복형제를 맞이하여서 돌아왔다. (함께) 지낸 지 몇 년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눈물 흘리며 울다가 거의 실명하게 되었다. 그 아우와 누이를 사랑하기를 더욱 돈독하게 하여 (그들을) 위하여 밭과 집을 사서 (그곳에) 살게 하였으며 그 종족에 대해서도 더욱 은혜로운 마음을 다하였다. 형제의 고아가 된 딸 두 사람을 시집보냈으며 그 장례 치르지 못한 사람 십여 초상을 장례 지냈으니, 대개 그 천성이 이와 같았다.
상이 막 문학 하는 유자를 불렀다. 상이 말하였다. “나는 이와같이 하고 싶다.” 급암이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안으로 욕심이 많으면서도 밖으로 인의를 베푼다. 어떻게 요순시대의 다스림을 본받고자 하는가?” 상께서 노하여 얼굴빛을 바꾸고서 조회를 그만두다 공경이 모두 급암을 위해 걱정하였다. 상이 물러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심하구나, 급암의 어리석음이여!
급암이 병이 많아 병이 장차 3개월에 이르렀다. 상이 일찍이 고(휴가)를 준 것이 여러 번이었는데, 끝내 낫지 않았다. 최후에는 엄조가 (그를) 위하여 고(휴가)를 청하였다. 상이 말하였다 “급암은 어떠한 사람인가?” (엄조가) 말하였다. “가령 급암이 직무를 맡아 관직에 있다면 이로써 다른 사람보다 낫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린 군주를 도와 왕업을 지키는 일에 이르러서는 비록 스스로 맹분, 하육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절개를) 빼앗거나 무너트릴 수 없을 것이다.” 상이 말하였다. “그렇다. 옛날에 사직의 신하가 있다고 하더니, 급암과 같은 사람에 이르러서는 (그것에) 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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允이 退謂人曰 我不奉東宮指導者는 恐負翟黑子故也니라<小學, 善行第六>
고윤이 물러 나와 다른 사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동궁의 지도를 받들지 않은것은 책흑자를 저버릴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최현위의 어머니 노씨가 일찍이 현위를 훈계하며 말하였다. 내가 이종 오빠인 둔전낭중 신현어를 보니, (이종 오빠가) 말하기를 “아들로서 벼슬에 종사하는 사람을 어떤 사람이 와서 ‘가난하고 궁핍하여 생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좋은 소식이다, 만약 듣기에 재화가 충족하며 옷과 말이 가볍고 살쪘다고 하면 이는 나쁜 소식이다.’ 라고 하니 나는 일찍이 이로써 확론이라고 여긴다." 하였다.
근래에 보건대, 친족과 외척 가운데 벼슬하는 사람이 돈과 선물을 가져다가 제 부모에게 올리면 부모는 단지 기뻐하고 즐거워할 줄만 알고 끝내 이 물건이 무엇으로부터 하여 왔는지 묻지 않는다. 반드시 이것이 녹봉의 나머지 재물이라면 진실로 또한 좋은 일이겠지만 만일 그 도리가 아닌 것으로 얻은 바라면 이것은 도적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비록 큰 잘못이 없더라도 홀로 안으로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는가?" 하였다. 현위가 가르침을 따르고 받들어서 청렴하고 근신함으로 칭찬을 받았다.
여형공이 어려서부터 벼슬을 맡은 곳에서 일찍이 남에게 천거를 구하지 않았다. 그 아들 순종이 회계 지역에 벼슬을 맡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혹 그가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는 것을 기롱하자, 순종이 대하여 말하기를 직책과 일에 부지런하고 그 나머지는 감히 삼가지 않은 적이 없으니 이것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방법이다.
도둑이 떠난 뒤에 집안 사람이 묻기를 “어찌 홀로 두려워하지 않았는가?” 노씨가 말하였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까닭은 그 인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웃과 마을에 위급함이 있더라도 오히려 서로 달려가 구제하는데 하물며 시어머니를 버릴 수 있음에 있어서야! 만약 만에 하나 위태롭거나 화를 당했다면 어찌 마땅히 홀로 살겠는가?”
당나라 봉천에 두씨의 두 딸이 초야에서 나고 자랐으나 어렸지만, 지조가 있었다. 영태 연간에 도적 떼 수천 명이 그 마을을 노략질하였는데 두 딸이 모두 용색이 있어 큰딸은 나이가 열아홉이고 작은딸은 나이가 열여섯이었다. 바위 굴 사이에 숨었는데 (그들을) 끌어내어서 몰아 핍박하여 앞세우고 갔다. 골짜기의 깊이가 수백 자인 곳에 가서 그 언니가 먼저 말하기를 “내 차라리 죽음으로 나아갈지언정 의리상 욕됨을 받지 않겠다." 하고 곧 벼랑 아래로 몸을 던져서 죽으니, 도적이 바야흐로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그 동생도 (그를) 따라 스스로 몸을 던져 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이 깨져서 피가 흘렀다. 도적 떼가 이에 (그를) 버리고 떠났다.
소경이 남청하태수에 제수되었는데, 백성 중에 을보명 형제가 있었는데, 토지를 다투어 여러 해 동안 판결하지 못하여 각각 서로 증인을 끌어서 마침내 (증인이) 백 명에 이르렀다. 소경이 보명 형제를 불러 (그들을) 말하였다. 타이르며 천하에서 얻기 어려운 것은 형제이고 구하기 쉬운 것은 토지이다. 가령 토지를 얻었더라도 형제의 마음을 잃으면 어찌하겠는가?” 인하여서 눈물을 떨구자 여러 증인도 눈물 흘리며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보명 형제가 머리를 조아리고 밖으로 나가 다시 생각해볼 것을 청하였다. 나누어 따로 산 지 10년 만에 마침내 돌아와 같이 살았다.
효숙공 포승(包拯)이 경기를 다스렸을 때 백성 가운데 스스로 “백금 백 냥을 나에게 맡긴 사람이 죽었다. 아들에게 주었으나 받기를 바라지 않으니 원컨대 그의 아들을 불러서 그것을 주십시오"라는 내용으로 말하는 이가 있었다. 윤이 그의 아들을 불렀는데 〈아들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일찍이 백금을 남에게 맡긴 적이 없다.” 두 사람이 서로 그것을 오래도록 사양하였다.
여형공이 (그것을) 듣고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없다’는 세 글자를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해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옛사람이 ‘사람은 모두 요임금과 순임금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였으니, 대개 여기에서 관찰하여 (그것을) 알 수 있다.”
큰아들 건은 낭중령이 되고 작은아들 경은 내사가 되었는데, 건은 늙어서 머리가 희었으나 만석군은 여전히 병이 없었다. 5일마다 목욕하는 휴가를 받아 돌아와서 찾아뵙고 직접 딸린 방으로 들어와 가만히 모시는 사람에게 물어 어버이의 내의와 속적삼을 가져다가 몸소 스스로 빨아 다시 모시는 사람에게 주었다. 감히 만석군으로 하여금 (그것을) 알게 하지 않아 이로써 일정함으로 삼았다.
어질면서 재산이 많으면 그 뜻을 손상하고, 어리석으면서 재산이 많으면 그 과실을 더하게 된다. 또 무릇 부유한 사람은 여러 사람의 원망을 받는다. 내가 이미 이로써 자손을 교화시키지 못했으니, 그 과실을 보태어서 원망을 낳고자 하지 않는다. 또 이 금은 성주께서 이로써 노신을 은혜롭게 길러주려는 바이다. 그러므로 즐겁게 마을 종족과 함께 그 은사를 누리면서 이로써 나의 남은 날을 다하려는 것이 또한 옳지 않은가?”
고모와 자매와 조카딸 중에 고아나 과부된 사람이 있으면 비록 소원한 관계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위하여 사윗감을 가려서 (그를) 시집보냈는데, 모두 나무를 조각한 화장대와 매듭 무늬의 비단을 사용하여 혼수품으로 삼았다. (유공작은) 항상 말하기를, “반드시 혼수품이 풍요롭게 갖추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찌 시집가는 것이 때를 잃지 않는 것과 같겠는가?" 하였다.
온공이 말하였다. 국조의 공경 중에 옛 법을 제대로 지켜서 오래되어도 쇠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돌아가신 이상의 집안뿐이다. 자손이 몇 대 동안 200여 식구에 이르렀는데, 여전히 함께 살면서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전원과 객점에서 거두어들이는 것과 및 관직이 있는 사람의 녹봉을 모두 한 창고에 (그것을) 모아서 식구를 헤아려 날마다 양식을 공급하였으며, 혼인과 초상과 장례에 쓰이는바 모두 일정한 액수가 있어서 자제에게 나누어 명하여 그 일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 규모는 대체로 한림학사 종악이 만든 것에서 나왔다.
어떤 사람이 제오륜에게 물어 말하였다 “공에게도 사사로움이 있는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 사람 중에 나에게 천리마를 준 사람이 있었다. 내가 비록 받지는 않았으나 삼공이 천거한 바가 있을 때마다 마음에 잊을 수 없었으나, 또한 끝내 등용하지 않았다. 내 형의 아들이 일찍이 병이 들었는데 하룻밤에도 열 번을 갔으나 물러나서 편안하게 잠들었고 내 아들이 병에 걸려서는 비록 살펴보지는 않았으나 밤을 마치도록 잠들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것이 어찌 사사로움이 없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무진이 천거한 바 형주의 무재 왕밀이 창읍령이 되었다. (양진을) 알현할 적에, 금 10근을 품고서 양진에게 바치자, 양진이 말하였다. “고인(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고인을 알지 못하니 어째서인가?” 왕밀이 말하였다. “늦은 밤이어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양진이 말하였다. “하늘이 알고 신령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알지 못한다고 하겠는가?” 왕밀이 부끄러워서 물러갔다.
항상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였다. “대우는 성인인데도 이에 한 촌의 시간도 아꼈는데, 보통 사람에게 이르러서 마땅히 한 푼의 시간도 아껴야 하거늘, 어찌 편안하게 놀고 크게 취하여 살아서는 당시에 보탬이 없고, 죽어서는 후세에 알려짐이 없을 수 있는가? 이는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여러 참좌들이 혹 잡담으로 일을 폐할 때에는 이에 명을 내려 그 술그릇과 포박의 도구를 가져다가 모두 (그것을) 강에 던졌으며, 아전과 장수의 경우에는 편복을 가하며 말하기를 “저포라는 것은 돼지를 기르는 노비의 놀이일 뿐이고, 노장의 부화함은 선왕의 법언이 아니니 행해서는 안 된다. 군자는 마땅히 그 의관을 바로잡으며 그 위의를 잡아야 하니, 어찌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명망을 기른다고 하여 스스로 크게 통달하였다고 할 수 있는가?”
가법이 관직에 있으면서도 상서로움을 아뢰지 않으며 승려와 도사에게 도첩을 주지 않으며 장리에 대한 법을 느슨하게 하지 않았다. 무릇 번부를 다스릴 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고아를 구휼 하는 일을 급하게 여겼으며, 수해와 한재가 있으면 반드시 시기에 앞서 빌려주며, 군량을 나누어 줄 때 반드시 깨끗하고 풍족하게 하며, 체납된 세금을 반드시 면제해주며, 여관과 역참을 반드시 늘리고 꾸미며, 손님에게 잔치하고 군사를 위로하기를 반드시 화려하고 성대하게 하며, 교대할 때는 식량의 저축과 창고가 반드시 처음 (이곳에) 이르렀을 때보다 가득 넘치게 하며, 경내에 고아와 입기에도 부족한 사대부 집안의 딸로 비녀를 꽃을 나이에 이른 사람이 있으면 모두 남편감을 선택하여 봉급을 내어 혼수로 삼아 (그를) 시집보냈다.
그 윗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대함에 한결같이 스스로 믿음으로서 하여, 이익과 해로움을 가려서 나아가거나 버리지 (생략) 않았으며, 그 하는 바가 있을 때 반드시 그 방법을 다하면서 말하였다. “나로부터 (생략) 하는 것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니, 그 성공함과 (성공하지) 못함은 나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이 있다. 비록 성현이라도 기필할 수 없으니, 내 어찌 구차히 하겠는가?”
172
司馬溫公이 嘗言吾無過人者어니와 但平生所爲 未嘗有不可對人言者耳라하니라<小學, 善行第六>
사마온공이 일찍이 말하기를, “나는 남보다 나은 점이 없다. 다만 평생 행한 것이 일찍이 남을 대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지 않을 뿐이다." 하였다.
유공은 처음 (이것을) 매우 쉽게 여겼는데, 물러남에 미쳐서 스스로 하루에 행하는 것과 무릇 말한 것을 (법도에) 맞춰보니, 스스로 서로 제지당하고 모순되는 것이 많았다. 7년 동안 힘써 행한 이후에야 완성되었는데, 이로부터 말과 행실이 일치되었다. 밖과 안이 서로 응하여 일을 만남에 평탄하여 항상 여유가 있었다.
근일 사대부 집안은 술은 내법이 아니며, 과일은 먼 지역의 진귀하고 특이한 것이 아니며, 음식은 여러 물품이 아니며, 그릇이 상에 가득하지 않으면 감히 빈객과 친구를 모으지 못하며, 항상 몇 날을 장만하여 모은 연후에 감히 (초청하는) 글을 낸다. 만일 혹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투어 (그것을) 비난하여 이로써 비루하고 인색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속을 따라 사치하고 화려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175
嗟乎라 風俗頹弊如是하니 居位者 雖不能禁이나 忍助之乎아<小學, 善行第六>
아! 풍속이 퇴폐한 것이 이와 같으니, 지위에 있는 사람이 비록 금지하지는 못할지라도 차마 (그것을) 조장하겠는가?”
온공이 말하였다. “우리 집은 본래 한미한 가문이라서, 대대로 청백으로 서로 계승하였고, 나의 성품이 화려하고 사치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장자가 금, 은과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더해주면 그때마다 부끄럽고 얼굴 붉히며 (그것을) 버렸다. 나이 20살에 과거 급제의 명예[科名]를 더럽히자, 문희연에서 홀로 꽃을 꽂지 않으니 동년생이 말하기를 ‘임금이 주신 것이니, 어겨서는 안 된다.’ 하기에, 이에 한 송이의 꽃을 꽂았다. 평생 옷은 추위를 가릴 정도만 취하고 음식은 배를 채울 정도만 취하였으며, 또 감히 때가 끼고 해진 것을 입어서 풍속과 다르게 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았고, 다만 나의 성품을 따를 뿐이었다.”
왕이 ‘무엇으로써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말하시면, 대부들은 ‘무엇으로써 내 집을 이롭게 할까?’ 말하며, 사와 서인은 ‘무엇으로써 내 몸을 이롭게 할까?’ 말하여, 윗사람 아랫사람이 서로 이로움[利]을 취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 승(萬乘)의 나라에 제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천 승(千乘)의 집안이요, 천 승의 나라에 제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백 승(百乘)의 집안이니, 만에서 천을 취하고 천에서 백을 취함이 〈이미〉 적지 않지만, 만일 의를 뒤로하고 이를 우선한다면,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합니다.
190
未有仁而遺其親者也며 未有義而後其君者也니이다<孟子, 梁惠王上>
어질면서 그 어버이를 버리는 자는 아직 있지 않았으며, 의로우면서 그 군주를 뒤로하는 자는 아직 있지 않았습니다.
5묘의 집에 거기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인 자가 그로써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 돼지, 개, 큰 돼지의 사육에 알맞은 때를 잃지 않으면, 칠십 된 자가 그로써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묘의 밭에 올바른 시기를 빼앗지 않으면 몇 식구의 집안에 그로써 굶주림이 없을 수 있으며, 상서의 가르침을 삼가서 효도와 공경의 의리로써 가르침을거듭한다면 반백인 자가 도로에서 짐을 지거나 머리에 이지 않을 것이니, 칠십 된 자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검은 머리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고, 그렇게 하고도 왕 노릇 하지 못하는 자는 아직 그런 자는 있지 않았다.
양 땅의 혜왕이 말하였다. “진나라가 천하에서 그보다 강한 나라가 없는 것은 노인장이 아는 바입니다. 과인의 몸에 이르러, 동으로는 제나라에 패하여 맏아들이 거기에서 죽었고, 서로는 진나라에 칠백 리의 땅을 잃었고, 남으로는 초나라에 욕을 당하였으니, 과인이 이를 부끄러워하여 죽은 자들을 위하여 한번 그들에게 설욕하기를 바라니, 이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백성이 참으로 있습니다! 제(齊)나라가 비록 좁고 작으나, 내 어찌 한 마리 소를 아끼겠습니까? 다만, 그 울부짖는 것이 마치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로 끌려가는 것 같아서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소를 양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왕에게 보고하는 자가 있어 말하길, ‘제 힘으로는 백 균을 들기 충분하지만, 힘으로 깃털 하나를 들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시력으로는 가을 털의 끝을 살피는 데에 충분하지만, 수레에 〈실린〉 땔감을 보지 못합니다’ 한다면, 왕은 이 말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지금 은혜로써 금수에 미치기에 충분하지만,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며, 수레의 땔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백성이 보호받지 않는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잘 다스리지 못함은 하지 않아서일지언정, 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왕이〉 말하였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모습이 어떤 것이 다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태산을 끼고서, 북해를 뛰어넘는 것을 사람에게 말하길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할 수 없는 것이고, 어른을 위하여 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길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태산을 끼고서 북해를 뛰어넘는 유형이 아닙니다. 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가지를 꺾는 유형입니다.”
나의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서 남의 노인에게 미치며, 내 아이를 아이로 대해서 남의 아이에게 미치면, 천하를 손바닥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경》 〈사제(思齊)〉에 이르길, ‘내 처를 본으로 삼아서, 형제에게 이르러서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 하니, 이 마음을 들어서 저것에 베풀 뿐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어 보면 그것으로써 사해를 보전할 수 있고, 은혜를 미루어 보지 않으면 처자식조차 보호할 수 없으니, 옛날의 사람이 남보다 크게 뛰어넘는 까닭은 다른 까닭이 없습니다. 그 해야 할 것을 잘 미루어 갔을 뿐입니다. 지금 〈왕의〉 은혜가 충분하게 금수에게 미치면서도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왕이 말하였다. “내가 어두워서 이에 나아갈 수 없으니, 바라건데 부자는 나의 뜻을 도와 분명하게 나를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한번 그것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항산(恒産)이 없는데에도 항심(恒産)이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거니와, 만약 일반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해 항심이 없으니, 만약 항심이 없다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부정하고 사치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죄에 빠트리는 데에 이른 뒤에 그들을 좇아서 벌하면, 이것은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제선왕이〉 말하였다. “이와 같이 그것이 큽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백성이 오히려 그것을 작다고 생각합니다.” 〈제선왕이〉 말하였다. “과인의 동산은 사방 사십리인데 백성이 오히려 그것을 크다고 생각함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문왕의 동산은 사방 칠십리인데, 꼴 베고 나무 하는 사람이 그곳으로 가며, 꿩 잡고 토끼 잡는 사람이 그곳으로 가서, 백성과 그것을 함께하였으니, 백성이 그것을 작다고 생각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맹자가 제선왕에게 일러 말하였다. “왕의 신하 가운데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자신의 친구에게 맡기고 초(楚)나라에 가서 논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돌아옴에 미쳐서는 〈친구가〉 제 아내와 자식을 얼고 굶주리게 하였다면 그를 어찌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친구를 버리겠습니다.”
하후와 은과 주의 전성기에 땅이 천 리를 넘은 나라가 있지 않았네. 그런데 제나라가 그 땅을 소유했으며,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널리 퍼져나가서 사방 국경에 도달하여 제나라는 그 백성을 소유했다네. 땅을 다시 개척하지 않으며 백성을 다시 모으지 않아도 어진 정사를 행하고서 왕 노릇 한다면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이네.
〈호연지기를 기르려면〉 반드시 의를 일삼음이 있더라도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 말며, 조장하지 말아서 마치 송나라 사람처럼 하지 말아야 하네. 송나라 사람 중에 제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근심하여 새싹을 뽑아 올린 자가 있었네. 허겁지겁 〈집에〉 돌아와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피곤하오. 내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왔소.’ 하자, 그의 아들이 달려가서 그 싹을 보았더니 싹이 말라 있었다네. 〈이처럼〉 천하에 싹이 자라는 것을 돕지 않는 자가 적다네. 이로움이 없다고 여겨서 싹을 버려두는 자는 싹을 김매지 않는 자이고, 싹이 자라기를 돕는 자는 싹을 뽑은 자이니, 다만 이로움이 없을 뿐 아니고 또 싹을 해치는 것이네.
임금이 되고자 한다면 임금의 도를 다할 것이고, 신하가 되고자 한다면 신하의 도를 다할 것이니, 두 가지는 모두 요순(堯舜)을 본받을 뿐이다. 순이 요임금을 섬기던 방법으로 임금을 섬기지 않으면 그 임금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고,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리던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 백성을 해치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작은 덕이 큰 덕에 부림을 받고, 작은 현명함이 큰 현명함에 부림을 받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작은 것이 큰 것에 부림을 받고, 약한 것이 강한 것에 부림을 받으니, 이 두 가지는 천명이다. 천명을 따르는 사람은 보존되고, 천명을 거스르는 사람은 망한다.
맹자가 말하였다. “섬김에는 무엇이 큰 것이 되는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된다. 지킴에는 무엇이 큰 것이 되는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된다. 제 자신을 잃지 않고서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들어보았고, 제 자신을 잃고서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다.
왕이 ‘무엇으로써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말하시면, 대부들은 ‘무엇으로써 내 집을 이롭게 할까?’ 말하며, 사와 서인은 ‘무엇으로써 내 몸을 이롭게 할까?’ 말하여, 윗사람 아랫사람이 서로 이로움[利]을 취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 승(萬乘)의 나라에 제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천 승(千乘)의 집안이요, 천 승의 나라에 제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백 승(百乘)의 집안이니, 만에서 천을 취하고 천에서 백을 취함이 〈이미〉 적지 않지만, 만일 의를 뒤로하고 이를 우선한다면,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합니다.
237
未有仁而遺其親者也며 未有義而後其君者也니이다<孟子, 梁惠王上>
어질면서 그 어버이를 버리는 자는 아직 있지 않았으며, 의로우면서 그 군주를 뒤로하는 자는 아직 있지 않았습니다.
238
孟子見梁惠王하신대 王이 立於沼上이러니 顧鴻雁麋鹿曰 賢者도 亦樂此乎잇가<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양 땅의 혜왕을 만나신대, 왕이 못 가에 서 있더니, 큰 기러기와 작은 기러기, 고라니와 사슴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현자(賢者)도 이것을 즐깁니까?”
239
孟子對曰 賢者而後에 樂此니 不賢者는 雖有此나 不樂也니이다<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현자인 뒤에야 이것을 즐기니, 어질지 못한 자는 비록 이것을 가졌더라도 즐기지 못합니다.
5묘의 집에 거기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인 자가 그로써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 돼지, 개, 큰 돼지의 사육에 알맞은 때를 잃지 않으면, 칠십 된 자가 그로써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묘의 밭에 올바른 시기를 빼앗지 않으면 몇 식구의 집안에 그로써 굶주림이 없을 수 있으며, 상서의 가르침을 삼가서 효도와 공경의 의리로써 그것을 거듭한다면 반백인 자가 도로에서 짐을 지거나 머리에 이지 않을 것이니, 칠십 된 자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검은 머리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고, 그렇게 하고도 왕 노릇 하지 못하는 자는 아직 그런 자는 있지 않았다.
양 땅의 혜왕이 말하였다. “진나라가 천하에서 그보다 강한 나라가 없는 것은 노인장이 아는 바입니다. 과인의 몸에 이르러, 동으로는 제나라에 패하여 맏아들이 거기에서 죽었고, 서로는 진나라에 칠백 리의 땅을 잃었고, 남으로는 초나라에 욕을 당하였으니, 과인이 이를 부끄러워하여 죽은 자들을 위하여 한번 그들에게 설욕하기를 바라니, 이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왕이 만약 백성에게 어진 정치를 베풀어 형벌을 줄이고 세금 거두기를 적게 한다면, 깊이 밭 갈고 잘 김매고, 장성한 자는 한가한 날로써 자신의 효와 제와 충과 신을 닦아, 들어가서 제 부모와 형제를 섬기며, 나가서 제 어른을 섬기고, 몽둥이를 만들어서 진나라와 초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병기를 매질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45
對曰 不嗜殺人者 能一之라호라<孟子, 梁惠王上>
대답하여 말하길, ‘사람 죽이기 좋아하지 않는 자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대답하여 말하길, ‘세상에 돌아가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왕은 저 이삭을 아십니까? 칠팔월의 사이에 가물면 이삭이 마르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만들어, 쏴아! 비를 내리면, 이삭이 쑥쑥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이와 같다면, 누가 싹이 자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 천하의 임금 중에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없으니, 만약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있다면, 세상의 백성이 모두 목을 빼고 그 임금을 바라볼 것이니, 참으로 이와 같다면, 백성이 그 임금에게 돌아가는 것이 물이 아래로 흘러감과 같을 것이니, 성대한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백성이 참으로 있습니다! 제(齊)나라가 비록 좁고 작으나, 내 어찌 한 마리 소를 아끼겠습니까? 다만, 그 울부짖는 것이 마치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로 끌려가는 것 같아서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소를 양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왕에게 보고하는 자가 있어 말하길, ‘제 힘으로는 백 균을 들기 충분하지만, 힘으로 깃털 하나를 들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시력으로는 가을 털의 끝을 살피는 데에 충분하지만, 수레에 〈실린〉 땔감을 보지 못합니다’ 한다면, 왕은 이 말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지금 은혜로써 금수에 미치기에 충분하지만,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며, 수레의 땔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백성이 보호받지 않는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잘 다스리지 못함은 하지 않아서일지언정, 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왕이〉 말하였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모습이 어떤 것이 다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태산을 끼고서, 북해를 뛰어넘는 것을 사람에게 말하길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할 수 없는 것이고, 어른을 위하여 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길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태산을 끼고서 북해를 뛰어넘는 유형이 아닙니다. 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가지를 꺾는 유형입니다.”
나의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서 남의 노인에게 미치며, 내 아이를 아이로 대해서 남의 아이에게 미치면, 천하를 손바닥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경》 〈사제(思齊)〉에 이르길, ‘내 처를 본으로 삼아서, 형제에게 이르러서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 하니, 이 마음을 들어서 저것에 베풀 뿐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어 보면 그것으로써 사해를 보전할 수 있고, 은혜를 미루어 보지 않으면 처자식조차 보호할 수 없으니, 옛날의 사람이 남보다 크게 뛰어넘는 까닭은 다른 까닭이 없습니다. 그 해야 할 것을 잘 미루어 갔을 뿐입니다. 지금 〈왕의〉 은혜가 충분하게 금수에게 미치면서도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왕이 말하였다. “이처럼 그 일이 심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대게 이보다 심한 것이 있으니,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비록 물고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뒤의 재앙이 없지만, 이 같은 하는 바로써 이 같은 바라는 바를 구한다면, 마음과 힘을 다해서 그 일을 하더라도 뒤에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재앙을〉 얻어들을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추(鄒)나라 사람과 초(楚 )나라 사람이 싸우면, 왕은 누가 이길 거라 여기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초나라 사람이 이길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작은 것은 진실로 큰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적은 것은 진실로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약한 것은 진실로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해 내의 땅에서, 사방 천 리인 것 아홉인데, 제(齊)나라 땅을 모으면 그 〈아홉에서〉 하나를 가졌습니다. 하나로써 여덟을 복종시키는 것이 추나라가 초나라를 대적하는 것과 어떤 것이 다르겠습니까? 대개 또한 그 근본을 돌이켜야 합니다.”
지금 왕이 정령(政令)을 발표하고 인정(仁政)을 베풀어서, 천하의 벼슬아치로 하여금 모두 왕의 조정에서 서고자 하게 하고, 밭 가는 이〈로 하여금〉 모두 왕의 들에서 밭을 갈고자 하〈게 하며〉, 상인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저자에서 보관하고자 하〈게 하며〉, 여행하는 나그네〈로 하여금〉 모두 왕의 길에 나오고자 하〈게 하며〉, 천하의 자기 군주를 미워하고자 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왕에게 달려가 하소연하고자 하〈게 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다면 누가 〈몰려드는 백성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내가 어두워서 이에 나아갈 수 없으니, 바라건데 부자는 나의 뜻을 도와 분명하게 나를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한번 그것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항산(恒産)이 없는데에도 항심(恒産)이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거니와, 만약 일반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해 항심이 없으니, 만약 항심이 없다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부정하고 사치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죄에 빠트리는 데에 이른 뒤에 그들을 좇아서 벌하면, 이것은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5묘의 집(거기)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 된 자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닭, 돼지, 개, 큰 돼지의 사육에 알맞은 때를 잃지 않으면 칠십 된 자가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백묘의 밭을 〈경작하는 농부에게〉 농번기를 빼앗지 않으면 여덟 식구의 집안에 굶주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서의 가르침을 삼가 시행하고 효도와 공경의 의리로써 시행한 것을 거듭한다면 반백인 자가 도로에서 짐을 지거나 머리에 이지 않을 것입니다. 늙은이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게 된다면, 그렇게 하고서도 왕 노릇 하지 못하는 자는 그런 자는 아직 있지 않았습니다.”
〈제선왕이〉 말하였다. “이와 같이 그것이 큽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백성이 오히려 그것을 작다고 생각합니다.” 〈제선왕이〉 말하였다. “과인의 동산은 사방 사십리인데 백성이 오히려 그것을 크다고 생각함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문왕의 동산은 사방 칠십리인데, 꼴 베고 나무 하는 사람이 그곳으로 가며, 꿩 잡고 토끼 잡는 사람이 그곳으로 가서, 백성과 그것을 함께하였으니, 백성이 그것을 작다고 생각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신이 처음 국경에 이르러 나라가 크게 금하는 일을 물은 뒤에 감히 들어왔습니다. 신이 들으니, ‘교관의 안에 동산이 사방 사십 리가 있는데, 그 고라니와 사슴을 죽인 사람을 살인한 죄와 같이한다’ 하니, 그렇다면 이는 사방 사십 리로 나라 안에 함정을 만든 것이니, 백성이 그것을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제(齊)나라 선왕이 물어 말하였다. “이웃 나라와 사귐에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있습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이런 까닭으로 탕(湯)왕이 갈(葛)나라를 섬겼고, 문왕(文王)이 곤이(昆夷)를 섬겼습니다.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때문에 태왕(大王)이 훈육(獯鬻)을 섬겼고, 구천(句踐)이 오(吳)나라를 섬겼습니다.”
안자(晏子)가 대답하길 ‘좋습니다. 질문이. 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 하니, 순수란 지키는 곳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제후가 천자(天子)에게 조회하는 것을 술직(述職)이라 하니 술직이란 맡은 것을 보고하는 것이니 〈순수와 술직이〉 정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임금이〉 봄에는 김매는 것을 살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해주고, 가을에는 수확량을 살펴서 넉넉하지 않은 곳을 도와줍니다. 하(夏)나라 속담에 이르길, 「우리 왕이 놀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으로 쉬겠는가? 우리 왕이 즐기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으로 도움받겠는가? 한번 놀고 한번 즐기는 것이 제후의 법도가 된다.」 하였습니다.
오늘날은 그렇지 않아서 군대가 지나가면 보관된 양식을 먹어 굶주린 자는 먹지 못하며 수고로운 자는 쉬지 못하여 흘겨보며 서로 비방하여 백성이 마침내 나쁜 짓을 해도 왕명을 거슬러 백성을 학대하며, 마시고 먹기를 물 쓰듯이 하여 뱃놀이, 사냥, 음주에 빠져 제후의 근심이 됩니다.
경공(景公)이 〈안자의 말에〉 기뻐하여 나라에 크게 명을 내리고 교외(郊外)에 나가 머물면서 이에 처음으로 창고를 열어 부족한 이들에게 보충해주고 태사(太師)를 불러 말하길, ‘나를 위하여 군신이 서로 기뻐하는 음악을 만들라.’ 하였으니, 대개 치소(徵招)와 각소(角招)가 이것입니다. 그 시에 이르길 ‘임금을 막는 것이 무슨 잘못이랴.’ 하니, 임금을 막는 것은 임금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266
孟子對曰 夫明堂者는 王者之堂也니 王欲行王政이면 則勿毁之矣소서<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무릇 명당(明堂)이란 것은 천자의 집이니, 임금께서 왕도정치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명당을 부수지 마소서.”
왕이 말하였다. “왕도정치를 얻어 들을 수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문왕이 기주를 다스릴 적에 밭 가는 사람〈의 세금을〉 구 분의 일로 하고, 벼슬 하는 사람은 대대로 녹을 주었고, 관문과 시장은 기찰하되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으며, 못에서 고기잡이를 금하지 않았으며, 사람을 벌을 주되 처자에 〈미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을 환(鰥)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것을 과(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는 것을 독(獨)이라 하고, 어려서 아버지가 없는 것을 고(孤)라 하니 이 넷은 천하의 곤궁한 백성들이면서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들입니다. 문왕이 정사를 펴고 인을 베풀 적에 반드시 이 네 사람들을 먼저하였습니다. 《시경》 〈정월(正月)〉에 이르길 ‘부유한 사람은 괜찮으나 이 곤궁하고 외로운 이들이 가엽구나.’ 하였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선생의〉 말씀이.” 〈맹자가〉 말하였다. “왕께서 만약 제 말을 좋게 여긴다면 어찌하여 행하지 않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재물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공류(公劉)가 재물을 좋아하였는데, 시경에 이르길 ‘(생략)〈많은 곡식을〉 노적하고 (생략)창고에 쌓았네. (생략)마른 식량을 싸되, 전대에 〈담고〉 자루에 〈담았네.〉 〈백성을〉 편안케 하여 이로써 〈나라를〉 빛낼 것을 생각하여 활과 화살을 둘러 매고 방패와 창, 도끼와 큰도끼를 〈들고〉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났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집에 있는 자는 노적과 창고〈의 곡식이〉 있고, 행군하는 자는 꾸려 놓은 양식이 있은 뒤에야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왕이 만일 재물을 좋아하시되 백성과 그것을 함께한다면 왕 노릇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맹자가 제선왕에게 일러 말하였다. “왕의 신하 가운데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자신의 친구에게 맡기고 초(楚)나라에 가서 논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돌아옴에 미쳐서는 〈친구가〉 제 아내와 자식을 얼고 굶주리게 하였다면 그를 어찌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친구를 버리겠습니다.”
맹자가 대답하였다. “연(燕)나라를 차지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면 연나라를 차지하십시오. 옛날의 사람 중에 이런 일을 행한 사람이 있었으니 무왕(武王)이 그 사람입니다. 연나라를 차지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으면 차지하지 마십시오. 옛날의 사람 중에 이런 일을 행한 사람이 있었으니 문왕(文王)이 그 사람입니다.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쳐서 땅을 차지하자, 제후들이 장차 연나라를 구원할 것을 도모하였는데, 선왕(宣王)이 말하였다. “제후들 중에 과인을 정벌하고자 모의하는 자들이 많으니, 무엇으로 이 일에 대응해야 합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신(臣)은 〈사방〉 칠십 리로 천하에 정치를 한 사람을 들었는데, 탕(臣)임금이 그런 사람입니다. 〈사방〉 천 리로 남을 두려워한 사람은 듣지 못했습니다.”
《서경》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이르길, ‘탕(湯)임금이 첫 정벌을 갈(葛)나라로 부터 시작하자, 천하가 탕을 믿어서 동쪽을 향하여 정벌함에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며, 남쪽을 향하여 정벌함에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여 말하길, 「어찌 하여 우리를 뒤에 〈정벌하〉는가?」’ 하니, 백성이 정벌을 바라되 마치 큰 가뭄에 무지개를 바라듯이 하였습니다. 저자로 돌아가는 자가 멈추지 않으며 밭가는 자가 변하지 않았는데 〈탕임금이〉 그 〈포악한〉 임금을 주벌하고 그 백성을 위로하는데, 마치 단비가 내리듯하여 백성이 크게 기뻐했다.’ 하였습니다. 《서경》에 이르길, ‘우리 임금을 기다렸는데 임금이 오시니 아마 소생하겠구나.’ 하였습니다.
추(鄒)나라가 노(魯)나라와 싸우자, 목공(穆公)이 물어 말하였다. “나의 유사(有司) 중에 죽은 자가 삼십 삽인인데, 백성은 죽은 사람이 없으니, 그들을 죽인다면 이루 다 죽일 수 없고 죽이지 않는다면 그 윗사람의 죽음을 곁눈질하면서도 구원하지 않았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흉년으로 기근이 든 해에 임금의 백성 중에 노약자는 도랑과 골짜기에서 구르고 장성한 자는 흩어져서 사방으로 간 사람들이 몇천 명입니다. 그런데 임금의 창름에 〈곡식이〉 가득하고 부고는 〈무기와 재물이〉 가득한데, 유사(有司)가 이를 고하는 이가 없었으니, 이는 윗사람이 태만하여 아랫사람을 해친 것입니다. 증자(曾子)가 말하길, ‘경계하고 경계하하라. 너에게서 나온 것이 너에게 돌아갈 것이다.’ 하니, 저 백성들이 지금에야 그것을 되갚을 수 있었으니 임금은 그들을 탓하지 마소서.
〈왕께서〉 만일 선을 행하신다면, 후세의 자손 중에 반드시 왕 노릇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군자가 왕업을 세워서 왕통을 물려주는 것이 〈후세가〉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성공의 여부에 대해서는 하늘의 뜻이니, 임금께서 저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힘써 선을 행할 뿐입니다.”
등(滕)나라 문공(文公)이 물어 말하였다. “등은 작은 나라입니다. 힘을 다하여 대국을 섬기더라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태왕(太王)이 빈 땅에 살 적에 적인(狄人)이 그곳을 침략하자, 가죽과 비단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개와 말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주옥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 기로(耆老)들을 불러모아서 그들에게 고하여 말하길, ‘적인이 원하는 것은 나의 토지이다. 내 이에 관하여 들으니, 「군자는 그 사람을 기르는 것 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니 그대들은 어찌 임금이 없을까를 근심하는가? 나는 장차 빈 땅을 떠나겠소.’ 하고 빈 땅을 떠나 양산(耆老)을 넘어 기산(岐山)의 아래에 도읍을 정하여 그곳에 거주하셨습니다. 빈땅 사람들이 말하길, ‘어진 사람이다. 잃어서는 안된다.’ 하고 태왕을 따르는 자가 마치 저자로 모이는 듯 〈많았습니다〉.
노(魯)나라 평공(平公)이 나가려 할 적에 폐인(嬖人) 장창(臧倉)이란 자가 물었다. “다른 날 군께서 나가실 때는 반드시 유사에게 갈 곳을 알리시더니, 오늘은 수레에 이미 멍에를 메었는데도 유사가 아직 가실 곳을 알지 못하니 감히 〈가실 곳을〉 묻습니다.” 평공이 말하였다. “맹자를 만나보려 한다네.” 〈장창이〉 말하였다. “어째서입니까? 군께서 자신을 낮추기 위하여 필부인 〈맹자〉에게 먼저 〈예를 표하는〉 까닭은 〈그가〉 어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까? 예와 의는 현자로부터 나온다는데, 맹자의 후상(어머니 상)이 전상(아버지 상)보다 성대하였으니, 임금께서는 맹자를 만나지 마소서.” 평공이 말하였다. “알았네.”
악정자(樂正子)가 맹자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임금께 고하니, 임금이 와서 〈선생님을〉 만나뵙고자 하였는데, 폐인(嬖人)에 장창(臧倉)이란 자가 있어 임금을 막았습니다. 임금이 이 때문에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가려한 것이 누군가 가도록 시켜서였으며 그만 둔 것도 누군가 가는 것을 막아서였지만 가려는 것과 그만 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내가 노나라 제후(평공)를 만나지 못한 것은 천명이니, 장씨란 사람이 어찌 나로 하여금 〈노 평공을〉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하후와 은과 주의 전성기에 땅이 천 리를 넘은 나라가 있지 않았네. 그런데 제나라가 그 땅을 소유했으며,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널리 퍼져나가서 사방 국경에 도달하여 제나라는 그 백성을 소유했다네. 땅을 다시 개척하지 않으며 백성을 다시 모으지 않아도 어진 정사를 행하고서 왕 노릇 한다면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이네.
맹시사(孟施舍)가 용기를 기른 방법은 말하길 ‘〈나는〉 이기지 못할 자를 보되 이길 것 처럼 한다. 적을 헤아린 뒤에 나아가고 이길 것을 고려한 뒤에 싸운다면 이는 〈적의〉 삼군(三軍)을 두려워하는 자이다.’ 하였으니, 맹시사가 어찌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능히 두려움이 없었을 뿐이네.
〈호연지기를 기르려면〉 반드시 의를 일삼음이 있더라도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 말며, 조장하지 말아서 마치 송나라 사람처럼 하지 말아야 하네. 송나라 사람 중에 제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근심하여 새싹을 뽑아 올린 자가 있었네. 허겁지겁 〈집에〉 돌아와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피곤하오. 내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왔소.’ 하자, 그의 아들이 달려가서 그 싹을 보았더니 싹이 말라 있었다네. 〈이처럼〉 천하에 싹이 자라는 것을 돕지 않는 자가 적다네. 이로움이 없다고 여겨서 싹을 버려두는 자는 싹을 김매지 않는 자이고, 싹이 자라기를 돕는 자는 싹을 뽑은 자이니, 다만 이로움이 없을 뿐 아니고 또 싹을 해치는 것이네.
맹자가 말하였다. “힘으로 인(仁)을 가장하는 것은 패도(霸道)이니 패자는 반드시 큰 나라를 소유하여야 하고, 덕(德)으로 인을 행하는 것은 왕도(王道)이니 왕자(王者)는 큰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왕은 칠십 리로 〈왕자가 되고〉 문왕은 백 리로 〈왕자가 되었다.〉
만약 치욕을 당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덕(德)을 귀하게 여기고 선비를 높이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어진 자가 〈높은〉 자리에 있으며 능력이 있는 자가 〈알맞은〉 직위에 있어서 나라가 평안한데, 이때에 미쳐 그 정사와 형벌까지 분명하게 한다면, 비록 대국이라도 반드시 그런 나라를 두려워할 것이다.
진실로 이 다섯 가지를 행할 수 있다면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우러러 보기를 마치 부모와 같이할 것이니, 그 자제를 거느리고 그 부모를 공격하는 것은 백성이 생겨난 이래로 해낼 수 있는 자가 있지 않았으니, 이와 같다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면 천명을 받은 관리이니, 그렇게 하고도 왕 노릇하지 못한 자는 그런 자는 있지 않았다.”
〈맹자가〉 말하였다. “만약 다른 사람의 소와 양을 받아서 그를 위하여 소와 양을 기르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소와 양을 위하여 목장과 꼴을 구할 것입니다. 목장과 꼴을 구하지만 얻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돌려주겠습니까? 아니면 또한 선채로 소와 양의 죽음을 보고 있겠습니까?” 〈공거심이〉 말하였다. “이것은 저의 잘못입니다.”
옛날에 시장의 기능은 자기가 가진 물건을 자기가 없는 물건으로 바꾸는 것인데, 담당 관리는 분쟁을 다스릴 뿐이었다. 어떤 천장부(賤丈夫)가 꼭 높은 언덕을 찾아서 거기에 올라가 좌우를 바라보고 시장의 이익을 긁어모으자, 사람들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다. 때문에 좇아서 그에게 세금을 받으니, 상인에게 세금 징수가 이 천장부로부터 시작되었다네.”
296
有欲爲王留行者 坐而言이어늘 不應하시고 隱几而臥하신대<孟子, 公孫丑下>
왕을 위하여 〈맹자가〉 떠나는 것을 만류하고자 하는 자가 있어 〈찾아와〉 앉아서 말하는데, 〈맹자는〉 응하지 않고 안석에 기대어 누워있었다.
297
子爲長者慮而不及子思하니 子絶長者乎아 長者絶子乎아<孟子, 公孫丑下>
그대가 늙은이(나)를 위하여 생각하되, 〈목공이〉 자사를 〈생각한 것에는〉 미치지 못하니, 그대가 늙은이를 절교하는 것인가? 늙은이가 그대를 절교하는 것인가?”
연우가 보고하자, 세자가 말하였다. “그렇다. 이것은 진실로 나에게 달려있다.” 하고, 다섯 달을 여막(廬幕)에 지내며 명령과 교계(敎戒)가 있지 않았는데, 백관과 종친이 모두[皆] 〈세자를〉 일러 ‘예를 안다.’고 말하였으며, 장례에 이르러서는 사방에서 와서 세자를 보았는데, 얼굴빛의 근심과 흐느끼며 눈물 흘리는 슬픔에 조문하는 자들이 매우 감복하였다.
백성이 살아가는 방법은 항산(恒産)이 있는 사람은 항심(恒心)이 있고, 항산이 없는 사람은 항심이 없습니다. 진실로 항심이 없으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부정하고 사치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죄에 빠뜨리는 데에 이른 뒤에 그들을 좇아서 벌하면 이것은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상(庠)과 서(序)와 학(學)과 교(校)를 설치하여 백성을 가르쳤는데, 상은 기른다는 것이고 교는 가르친다는 것이고 서는 활쏘기를 〈익힌다는 것〉입니다. 〈지방 학교를〉 하(夏)나라는 ‘교’라고 하고 은나라는 ‘서’라고 하고 주나라는 ‘상’이라 하고 〈도성의〉 ‘학’은 곧 삼대가 그 이름을 함께하니, 모두 인륜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륜이 위에서 밝아지면 서민은 아래에서 친목할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유독 밭을 갈면서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인의 일이 있고 소인의 일이 있다네. 또 한 사람의 몸에 백공이 만든 것이 구비되어야 하니, 만일 반드시 스스로 만든 뒤에 도구를 써야 한다면, 이는 천하의 사람을 몰아서 길로 내보내는 것이네. 그러므로 말하길 ‘어떤이는 마음으로 애를 쓰고 어떤이는 힘으로 애를 쓰니, 마음으로 애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으로 애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려진다.’ 하였으니, 남에게 다스려지는 자는 남을 먹여주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게서 먹는 것이 천하의 공통된 의리라네.
303
吾聞出於幽谷하여 遷于喬木者요 未聞下喬木而入於幽谷者로라<孟子, 滕文公上>
나는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간다.’는 것은 들었고, ‘높은 나무에서 내려와서 깊은 골짜기에 들어간다.’는 것은 듣지 못했네.
마부조차 사수와 영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영합해서 짐승을 잡은 것이 비록 구릉과 같이 〈많〉더라도 하지 않았다네. 만약 도를 굽혀서 〈예에 맞는 부름 없이〉 제후를 따른다면, 어떠하겠는가? 또 그대의 잘못이구나. 자신을 굽힌 자 중에 남을 펼 수 있는 자는 있지 않았다네.”
305
世衰道微하여 邪說暴行이 有作하여 臣弑其君者有之하며 子弑其父者有之하니라<孟子, 滕文公下>
세상이 쇠퇴하고 도리가 미약하여,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실이 또 일어나서, 신하로서 제 임금을 시해하는 자, 그런 자가 있었고, 자식으로서 제 아버지를 시해하는 자, 그런 자가 있었네.
임금이 되고자 한다면 임금의 도를 다할 것이고, 신하가 되고자 한다면 신하의 도를 다할 것이니, 두 가지는 모두 요순(堯舜)을 본받을 뿐이다. 순이 요임금을 섬기던 방법으로 임금을 섬기지 않으면 그 임금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고,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리던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 백성을 해치는 것이다.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작은 덕이 큰 덕에 부림을 받고, 작은 현명함이 큰 현명함에 부림을 받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작은 것이 큰 것에 부림을 받고, 약한 것이 강한 것에 부림을 받으니, 이 두 가지는 천명이다. 천명을 따르는 사람은 보존되고, 천명을 거스르는 사람은 망한다.
맹자가 말하였다. “섬김에는 무엇이 큰 것이 되는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된다. 지킴에는 무엇이 큰 것이 되는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된다. 제 자신을 잃지 않고서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들어보았고, 제 자신을 잃고서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다.
313
事親을 若曾子者 可也니라<孟子, 離婁上>
어버이 섬기는 것을 증자처럼 하는 것이 옳다.”
314
孟子曰 大人者는 言不必信이며 行不必果요 惟義所在니라<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대인은 말에 믿음직함을 기필하지 않으며, 행실에 과감함을 기필하지 않고, 오직 의가 있는 바를 〈행할〉 뿐이다.”
315
孟子曰 大人者는 不失其赤子之心者也니라<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대인은 그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316
孟子曰 天下之言性也는 則故而已矣니 故者는 以利爲本이니라<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에 성(性)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자취〈를 말하는 것〉 뿐이니, 자취란 순리를 근본으로 삼는다.
증자(曾子)가 무성(武城)에 살 때 월(越)나라의 약탈이 있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도적이 이르렀으니 어찌 떠나지 않습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내 집에 사람을 붙여두어 그 땔감과 나무를 훼손시키지 말라.” 도적이 물러가자 곧 〈증자가〉 말하였다. “나의 담장과 지붕을 보수하라. 나는 장차 돌아가겠다.” 도적이 물러가고 증자가 돌아왔는데, 주변 사람들이 말하였다. “선생을 대함이 이처럼 매우 충성하고 또 공경하였는데, 도적이 오자 곧 먼저 떠나서 백성의 본보기가 되시고, 도적이 물러가자 곧 돌아오니, 옳지 않은 일에 가깝습니다.” 심유행(沈猶行)이 말하였다. “이것은 너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심유씨 집안에 부추(負芻)의 반란이 있었는데, 선생을 따르는 자 칠십 명은 난에 함께한 자가 있지 않았다네.”
제나라 사람 중에 한 아내와 한 첩을 두고서 집에 사는 자가 있었는데, 그 남편이 외출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난 뒤에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함께 마시고 먹은 사람을 물어보면 모두 부귀한 사람이었다네. 그의 아내가 그 첩에게 알려 말하길, ‘남편이 외출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난 뒤에 돌아오기에 그 함께 마시고 먹은 사람을 물어보니 모두 부귀한 사람인데, 한번도 명성이 있는 사람이 찾아온 일이 있지 않으니, 내가 장차 남편의 가는 곳을 엿보겠네.’ 하고, 일찍 일어나서 남편이 가는 곳을 미행하니, 성 안을 두루 다니되, 함께 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내 동쪽 성곽의 무덤 근처의 제사 지내는 사람에게 가서 그 남은 음식을 구걸하고 충분하지 않으면 또 돌아보고서 다른 곳을 가니, 이것이 그가 배부르기 위한 방법이었다네. 그의 아내가 돌아와서 그의 첩에게 일러 말하길, ‘남편은 우러러 바라보면서 생을 마칠 바인데 지금 이와 같네.’ 하고, 그의 첩과 함께 제 남편을 헐뜯으면서 서로 마당 가운데에서 울었는데, 남편은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의기양양하게 밖으로부터 돌아와 그의 아내와 첩에게 교만하였다네.
〈만장이〉 말하였다. “‘행실과 일로써 그것을 보여주었다’라는 것은 그것을 어찌 했다는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천자는 사람을 하늘에 천거할 수 있을지언정 하늘로 하여금 그에게 천하를 주게 할 수 없으며, 제후는 사람을 천자에 천거할 수 있을지언정 천자로 하여금 그에게 제후의 직을 주게 할 수 없으며, 대부는 사람을 제후에 천거할 수 있을지언정 제후로 하여금 그에게 대부의 직을 주게 할 수 없다네. 옛날에 요임금이 순임금을 하늘에 천거하자 하늘은 순을 받아들였고, 순을 백성에게 드러내자 백성이 순을 받아들였다네. 그러므로 말하길, ‘하늘은 말하지 않는다. 행실과 일로써 그것을 보여줄 뿐이다.’라고 한 것이네.”
유하혜는 더러운 임금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작은 벼슬을 사양하지 않으며, 나아가면 현명함을 숨기지 않아서 반드시 그 도리로써 하고, 버려지더라도 원망하지 않으며, 곤궁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으며, 시골 사람과 있어도 태연하게 차마 떠나지 않고서,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비록 내 옆에서 옷을 걷고 벌거벗더라도,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하니, 그러므로 유하혜의 풍도를 들은 자는 비루한 사내는 관대해지고, 야박한 사내는 후해진다.
맹자가 말하였다. “낮은 지위에 거처하면서 〈자신의〉 어짊으로써 불초한 자를 섬기지 않은 사람은 백이(伯夷)였고, 다섯 번 탕왕(湯王)에게 나아가고 다섯 번 걸(桀王)왕에게 나아간 사람은 이윤(伊尹)이었고, 더러운 군주를 싫어하지 않고 작은 관직도 사양하지 않은 사람은 유하혜(柳下惠)였으니, 〈이들〉 세 분은 방법은 같지 않았으나, 그 취지는 똑같았으니, 똑같은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인(仁)’이었습니다. 군자는 또한 인할 뿐이니, 어찌 굳이 같이 할 것이 〈있었겠〉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백 대의 스승이니,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가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백이의 풍도(風度)를 들은 자는 욕심 많은 자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가 뜻을 세우는 일이 있게 된다. 유하혜의 풍도를 들은 자는 각박한 자가 돈독해지고 천박한 자가 너그러워진다. 백 대의 앞에서 분발하면 백 대의 뒤에 〈풍도를〉 들은 자가 흥기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성인이 아니고서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성인에게〉 직접 배운 사람에 있어서랴!”
325
君子依乎中庸하여 遯世不見知而不悔하나니 唯聖者能之니라<中庸, 中庸章句>
군자는 중용(中庸)을 따라 세상을 피해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니, 오직 성인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