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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 > 주어 AB A는 B이다 ; A라는 것은 B이다
대표 : A 者 B
동의 : A 也者 B ; AB ; AB ; A 也者 B ; AB ; AB ; A 者爲 B ; A 者爲 B ;
주어 뒤에 ‘者, 也, 則, 也者’ 등이 결합된 패턴이다.
330 개의 글에 글자가 검색되었습니다.
1 爲人子 曷不爲孝리오 <[新編]四字小學, 父母1>  
사람의 자식이 된 자가 어찌 효도하지 않으리오?
2 悅人讚 百事皆僞 <新編四字小學, 師弟長幼朋友>  
남의 칭찬을 기뻐하는 사람은 모든 일이 다 거짓이고,
3 厭人責 其行無進이니라 <新編四字小學, 師弟長幼朋友>  
남의 꾸지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 행동에 진전이 없다.
4 爲人子 曷不爲孝리오 欲報其德인댄 昊天罔極이로다 <四字小學, 四字小學>  
사람의 자식이 된 자가 어찌 효도하지 않으리오? 그 은덕을 갚고자 하면 하늘처럼 다함이 없다.
5 悅人讚 百事皆僞 厭人責 其行無進이니라 <四字小學, 四字小學>  
남의 칭찬을 기뻐하는 사람은 온갖 일이 다 거짓이고, 남의 꾸짖음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 행동에 나아짐이 없다.
6 子曰 爲善 天報之以福하고 爲不善 天報之以禍니라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공자가 말하였다.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으로써 그에게 갚아주고, 선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그에게 갚아준다.”
7 說苑云 財君子之所輕이요小人之所畏 <[新編]明心寶鑑, 中國篇>  
《설원》에 말하였다. “재물은 군자가 가볍게 여기는 것이고, 죽음은 소인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8 子曰 爲善 天報之以福하고 爲不善 天報之以禍니라 <明心寶鑑, 繼善篇>  
공자가 말하였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그에게 복으로 갚아주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그에게 재앙으로 갚아준다.”
9 孟子曰 順天하고 逆天이니라 <明心寶鑑, 天命篇>  
맹자가 말하였다. “하늘을 따르는 사람은 살아남고 하늘을 거스르는 사람은 죽는다.”
10 乃身之寶 乃世之珍이니라 是故 學則乃爲君子 不學則爲小人이니 後之學者 宜各勉之니라 <明心寶鑑, 勤學篇>  
배움은 곧 몸의 보물이고, 배운 사람은 곧 세상의 보물이다. 이러한 까닭에 배우면 곧 군자가 되고, 배우지 않으면 소인이 된다. 후세의 배우는 자들은 마땅히 각자 배움에 힘써야한다.
11 徽宗皇帝曰 學 如禾如稻하고 不學 如蒿如草로다 如禾如稻兮 國之精糧이요 世之大寶로다 如蒿如草兮憎嫌하고煩惱니라 他日面墻 悔之已老로다 <明心寶鑑, 勤學篇>  
휘종황제(徽宗皇帝)가 말하였다. “배우는 자는 곡식과 같고 벼와 같으며, 배우지 않은 자는 쑥과 같고 풀과 같다. 곡식과 같고 벼와 같은 것은 나라의 좋은 양식이고, 세상의 큰 보물이다. 쑥과 같고 풀과 같은 것은 농사짓는 자가 미워하고, 김매는 자가 괴로워한다. 훗날에 담장을 마주한 때는 후회한들 이미 늙었도다.”
12 來說是非 便是是非人이니라 <明心寶鑑, 省心篇上>  
찾아와 시비를 말하는 자가 바로 시비하는 사람이다.
13 凡此十四 皆我未深省이라 書此當座隅하여 朝夕視爲警하노라 <明心寶鑑, 立敎篇>  
무릇 이 열 네 가지는 모두 내가 아직 깊이 살피지 못한 것이다. 이것을 써서 자리의 귀퉁이에 당면하게 하고, 아침저녁으로 보고서 경계하노라.”
14 君平曰 口舌 禍患之門이요 滅身之斧也니라 <明心寶鑑, 言語篇>  
군평(君平)이 말하였다. “입과 혀는 재앙과 환란의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이다.”
15 婦德 不必才名絶異 婦容 不必顔色美麗 婦言 不必辯口利詞 婦工 不必技巧過人也니라 <明心寶鑑, 婦行篇>  
부인의 덕은 반드시 재주와 이름이 매우 뛰어남이 아니고, 부인의 용모는 반드시 얼굴의 빛이 아름답고 고움이 아니고, 부인의 말은 반드시 말을 잘하고 말을 조리 있게 함이 아니고 부인의 일은 반드시 재주와 기교가 남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다.
16 上有天하고 下有地하니 天地之間 有人焉하고 有萬物焉하니 日月星辰 天之所係也 江海山嶽 地之所載也 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 人之大倫也니라 <啓蒙篇, 首篇>  
위에는 하늘이 있고 아래에는 땅이 있으니, 하늘과 땅의 사이에 사람이 있고, 거기에 만물이 있으니, 해와 달과 별은 하늘이 매달고 있는 것이고, 강과 바다와 산은 땅이 싣고 있는 것이고, 부자 〈간의 친함,〉 군신 〈간의 의로움,〉 부부 〈간의 분별,〉 어른 아이 〈간의 차례,〉 벗 〈간의 신의〉는 사람의 큰 윤리이다.
17 朋友 同類之人이라三友三友 友直하며 友諒하며 友多聞이면 益矣 友便辟하며 友善柔하며 友便佞이면 損矣리라 <童蒙先習, 朋友有信>  
벗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유익한 것이 세 가지의 벗이고, 해로운 것이 세 가지의 벗이니, 곧은 이를 벗하고 미더운 이를 벗하고 보고 들은 것이 많은 이를 벗한다면 유익할 것이고, 편벽된 이를 벗하고 착하고 부드러운 이를 벗하고 말 잘하는 이를 벗한다면 해로울 것이다.
18 當常自奮發曰 人性本善하여 無古今智愚之殊어늘 聖人 何故獨爲聖人이며 我則何故獨爲衆人耶 良由志不立 知不明 行不篤耳 志之立 知之明 行之篤 皆在我耳 豈可他求哉리오 顔淵曰 舜何人也 予何人也 有爲 亦若是라하시니 我亦當以顔之希舜으로 爲法이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마땅히 항상 스스로 분발하여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여 예로부터 지금까지 지혜롭고 어리석음의 차이가 없거늘, 성인은 무슨 연고로 홀로 성인이 되었으며, 나는 무슨 연고로 홀로 중인(衆人)이 되었는가? 진실로 뜻이 확립되지 못하고 앎이 분명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실하지 못한 데서 말미암았을 뿐이다. 뜻을 확립하고 앎을 분명히 하고 행실을 독실하게 하는 것이 모두 나에게 있을 뿐이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할 수 있겠는가? 안연(顔淵)이 말하기를 ‘순(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또한 이와 같다’ 하였으니 나 또한 마땅히 안연(顔淵)이 순임금처럼 〈되고자〉 바란 것으로 본보기를 삼겠다.”
19 爲學 在於日用行事之間하니 若於平居 居處恭하며 執事敬하며 與人忠이면 則是名爲學이니 讀書 欲明此理而已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학문을 하는 것이 일상생활의 일을 행하는 사이에 있으니, 만약 평소 거처할 적에 몸가짐과 행동을 공손히 하고, 일처리를 공경히 하고 남과 함께 함에 진실하면 이를 이름하여 학문을 한다[爲學] 하니, 책을 읽는 것은 이 이치를 밝히고자 할 뿐이다.
20 多言多慮 最害心術하니 無事則當靜坐存心하고 接人則當擇言簡重하여 時然後言이면 則言不得不簡이니 言簡近道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말이 많고 생각이 많은 것이 마음 수양에 가장 해로우니 일이 없으면 응당 고요히 앉아 마음을 보존하고, 사람을 접하면 응당 말을 가려서 간략하고 신중히 하여, 때에 맞은 뒤에 말하면 말이 간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말이 간략한 것이 도에 가깝다.
21 凡讀書 必端拱危坐하여 敬對方冊하여 專心致志하고 精思涵泳하여 深解義趣하고 而每句 必求踐履之方이니 若口讀而心不體 身不行이면 則書自書我自我 何益之有리오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무릇 책을 읽는 사람은 반드시 단정히 손을 모으고 바르게 앉아서, 공경히 책을 대하여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다하여, 생각을 정밀히 하고 깊이 잠겨서 뜻과 취지를 깊이 이해하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하는 방법을 구해야 하니, 만약 입으로 읽기만 하고 마음으로 체득하지 않고, 몸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책은 따로 책이고 나는 따로 나일 것이니,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22 人於未仕時 惟仕是急하고 旣仕後 又恐失之하나니 如是汨沒하여 喪其本心者 多矣 豈不可懼哉 位高 主於行道하니 道不可行이면 則可以退矣 若家貧하여 未免祿仕 則須辭內就外하고 辭尊居卑하여 以免飢寒而已 雖曰祿仕 亦當廉勤奉公하여 盡其職務 不可曠官而餔啜也니라 <[新編]擊蒙要訣, 擊蒙要訣>  
사람이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벼슬하는 것을 급히 여기고 벼슬한 뒤에는 다시 벼슬을 잃을까 염려한다. 이처럼 골몰하다가 그 본심을 잃은 사람이 많으니, 어찌 두려워할 만하지 않겠는가? 지위가 높은 사람은 도를 행하는 것을 주장하니, 도를 행할 수 없으면 물러나는 것이 옳다. 만약 집안이 가난하여 녹을 받는 벼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반드시 내직을 사양하고 외직에 나아가며, 높은 지위는 사양하고 낮은 벼슬에 머물러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다. 비록 녹을 받는 벼슬이라 말하지만, 또한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히 공무에 힘써서 자기 직무를 다해야 하고, 관직을 버려두고서 먹고 마셔서는 안 된다.
23 餘桃之罪: 昔者 彌子瑕有寵於衛君이라 衛國之法 竊駕君車 罪刖이라 彌子瑕母病하니 人間往夜告彌子 彌子矯駕君車以出이라 君聞而賢之曰 孝哉로다 爲母之故 忘其刖罪로다하다 異日 與君遊於果園이라 食桃而甘하여 不盡하고 以其半啗君이라 君曰 愛我哉 忘其口味하고 以啗寡人이라하다 <原文故事成語, 處世>  
남긴 복숭아의 죄: 옛날에 미자하(彌子瑕)는 위(衛)나라 군주[영공(靈公)]에게 총애가 있었다. 위나라의 법에 주군의 수레를 몰래 탄 자는 월형의 벌을 내린다.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들자 민가에서 밤에 찾아와 미자에게 알리니, 미자는 영공의 수레를 사칭하여 타고서 외출하였다. 영공이 듣고서 미자를 어질게 여겨 말하길, “효성스럽구나! 어머니 때문에 자기 발꿈치가 베일 형벌을 잊었구나.” 하였다. 다른 날 영공과 함께 과수원을 유람하다가 복숭아를 먹어보니 맛이 달자, 다 먹지 않고 그 반을 위군에게 먹였다. 영공이 말하길, “나를 사랑하는구나! 자기 입에 맞는 것은 잊어버리고서 과인에게 먹이는 구나.” 하였다.
24 傍若無人: 荊軻 衛人也 其先乃齊人인대 徙於衛하니 衛人謂之慶卿하고 而之燕하니 燕人謂之荊卿이라… 荊軻旣至燕하여 愛燕之狗屠及善擊筑者高漸離 <原文故事成語, 處世>  
곁에 사람이 없는 듯 : 형가(荊軻)는 위나라 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바로 제나라 사람이었는데, 위나라로 옮겨가니 위나라 사람들이 그를 일러 ‘경경’이라고 하였고, 연나라에 가니 연나라 사람들이 그를 일러 ‘형경’이라고 하였다. …… 형가가 연나라에 이른 뒤에 연나라의 개 도축자와 축을 잘 타는 자인 고점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25 日暮途遠: 伍子胥 楚人也 名員이라 員父曰伍奢이며 員兄曰伍尙이라 其先曰伍擧인대 以直諫事楚莊王하여 有顯이라 故其後世有名於楚 始伍員與申包胥爲交한대 員之亡也 謂包胥曰 我必覆楚하리라하니 包胥曰 我必存之라하다 <原文故事成語, 形勢>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며, 이름은 원이다. 오자서의 아버지는 ‘오사’이고, 오자서의 형은 ‘오상’이다. 그의 선조는 ‘오거’인데, 직간으로 초나라 장왕을 섬겨서 알려짐이 있었다. 그래서 그 후손이 대대로 초나라에 이름이 있었다. …… 일찍이 오자서가 신포서와 교류를 하였는데, 오자서가 달아날 때에, 신포서에게 일러 말하길,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뒤집을 것이다.” 하니, 신포서가 말하길, “나는 반드시 이 나라를 보존시킬 것이다.” 하였다.
26 强弩之末: 御史大夫韓安國 梁成安人也러니 後徙睢陽이라 嘗受韓子雜家說於騶田生所하고 事梁孝王하여 爲中大夫 <原文故事成語, 形勢>  
강한 쇠뇌의 마지막: 어사대부 한안국은 양 땅 성안 사람이었는데, 뒤에 수양으로 옮겼다. 일찍이 추현의 전하(田何)가 있던 곳에서 한비자와 잡가의 학설을 배웠고, 양효왕을 섬겨 중대부가 되었다.
27 斗酒不辭: 舞陽侯樊噲 沛人也 以屠狗爲事하고 與高祖俱隱이라 …… 項羽在戲下하며 欲攻沛公하니 沛公從百餘騎하여 因項伯面見項羽하여 謝無有閉關事 項羽旣饗軍士하여 中酒 亞父謀欲殺沛公하여 令項莊拔劍舞坐中하여 欲擊沛公하니 項伯常肩蔽之 <原文故事成語, 才致>  
28 袴下之辱: 淮陰侯韓信 淮陰人也 始爲布衣時 貧無行하여 不得推擇爲吏 又不能治生商賈하여 常從人寄食飮하니 人多厭之者 常數從其下鄕南昌亭長寄食한대 數月 亭長妻患之하여 乃晨炊蓐食하고 食時信往 不爲具食이라 信亦知其意하고 怒竟絶去 <原文故事成語, 慾心>  
29 今其全書 雖不可見이나 而雜出於傳記亦多언마는往往 直以古今異宜 而莫之行하나니 殊不知其無古今之異 固未始不可行也니라 <小學, 小學書題>  
지금 그 온전한 책을 비록 볼 수 없으나, 기록에서 섞여 나온 것이 또한 많은데도, 읽는 자가 종종 단지 ‘예와 지금의 마땅한 일이 다르다.’고 여기고서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니, 그 예나 지금의 다름이 없는 것이 본디 처음부터 행할 수 없는 것이 아님을 전혀 알지 못해서이다.
30 惟聖 浩浩其天이시니 不加毫末이라도 萬善足焉이니라 <小學, 小學題辭>  
(생략) 성인(聖人)은 성품대로 하는 자인지라 넓고 넓어 그 하늘과 〈같으니〉, 털끝만큼 보태지 않더라도 모든 선이 거기에서 충분하다.
31 內則曰 凡生子 擇於諸母與可호되 必求其寬裕慈惠溫良恭敬愼而寡言하여 使爲子師니라 <小學, 立敎第一>  
〈내칙(內則)〉에 이른다. “무릇 아이를 낳았을 때는 서모(庶母)와 적당한 자를 가려뽑되, 반드시 그 중에 너그럽고 여유있으며 인자하고 은혜로우며 온화하고 어질며 공손하고 삼가면서 말이 적은 자를 구하여, 그로 하여금 자식의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32 八年이어든 出入門戶 及卽席飮食 必後長하여 始敎之讓이니라 <小學, 立敎第一>  
여덟 살이면 문을 출입하는 것과 자리에 나아가고 마시고 먹음에, 반드시 장자(長者)보다 뒤에 하여 비로소 자식에게 겸양(謙讓)을 가르친다.
33 學記曰 古之敎 家有塾하며 黨有庠하며 術有序하며 國有學이니라 <小學, 立敎第一>  
《예기》 〈학기(學記)〉에 이르길 “옛날의 교육기관은 가(家)에 숙(塾)을 두었고, 당(黨)에 상(庠)을 두었고, 술(術)에 서(序)를 두었고, 국(國)에 태학(太學)을 두었다.”고 하였다.
34 進盥할새 奉槃하고 奉水하여 請沃盥하고 盥卒授巾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세숫대야를 올릴 적에, 젊은 자는 대야를 받들고 장자는 물을 받들어서, 물을 부어 세수를 청하고, 세수를 마치시면 수건을 드린다.
35 男女未冠笄 雞初鳴이어든 咸盥漱하며 櫛縰하며 拂髦하며 總角하며 衿纓하여 皆佩容臭하고 昧爽而朝하여 問何食飮矣오하여 若已食則退하고 若未食則佐長視具니라 <小學, 明倫第二>  
남녀가 아직 관례와 계례를 치르지 않은 자가 닭이 처음 울면, 모두 세수하고 양치질하며, 빗질을 하고 건을 쓰며, 머리에 먼지를 털고, 뿔모양으로 머리를 묶고, 향주머니 끈을 매어 모두 향주머니를 차며, 어슴푸레한 새벽에 〈부모를〉 뵙고서, 무엇을 드셨는지를 여쭈어서, 만약 이미 드셨으면 물러나오고, 만약 아직 드시지 않았으면 장자를 도와서 〈음식〉 준비를 보살핀다.
36 父母舅姑將坐어시든 奉席請何鄕하며 將衽이어시든 奉席請何趾하고 執牀與坐하며 擧几하고 斂席與簟하며 縣衾篋枕하고 斂簟而襡之니라 <小學, 明倫第二>  
부모와 시부모가 앉으려 하면, 자리를 들어 어디로 향할지 여쭈며, 잠 자리를 고치려 하면, 장자는 자리를 들어 어디로 발을 뻗을지 여쭙고, 젊은 사람은 자리를 잡고 함께 앉으며, 모시는 사람은 안석을 들고 자리와 대자리를 거두며, 이불을 매달고 베개를 상자에 넣고 대자리를 거두어 그것을 싸매 둔다.
37 禮記曰 孝子之有深愛者 必有和氣하고 有和氣 必有愉色하고 有愉色 必有婉容이니 孝子 如執玉하며 如奉盈하여 洞洞屬屬然하여 如弗勝하며 如將失之 嚴威儼恪 非所以事親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예기(禮記)》에 말하였다. “효자 중에 깊은 사랑이 있는 자는 반드시 온화한 기운이 있고, 온화한 기운이 있는 자는 반드시 기뻐하는 얼굴빛이 있고, 기뻐하는 얼굴빛이 있는 자는 반드시 온화한 용모가 있으니, 효자는 옥을 잡은 듯이 하고 가득찬 것을 받드는 듯이 하여, 성실하고 오롯하게 감당하지 못할 듯이 하고 장차 그것을 잃을 듯이 여기니, 엄숙하고 위엄이 있으며 엄연하고 씩씩한 것은 부모를 섬기는 방법이 아니다.”
38 曲禮曰 凡爲人子 居不主奧하며 坐不中席하며 行不中道하며 立不中門하며 <小學, 明倫第二>  
《예기》 〈곡례(曲禮)〉에 말하였다. “무릇 자식 된 자는 거처할 적에 아랫목을 차지하지 않으며, 앉을 때 자리 가운데에 〈앉지〉 않으며, 걸을 때 길 가운데로 〈걷지〉 않으며, 설 때 문 가운데에 〈서지〉 않는다.”
39 內則曰 子婦孝 父母舅姑之命 勿逆勿怠니라 <小學, 明倫第二>  
《예기》 〈내칙〉에 말하였다. “아들과 며느리로서 효도하는 자와 공경하는 자는 부모와 시부모의 명을 거스르지 말고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40 父母有疾이어든不櫛하며 行不翔하며 言不惰하며 琴瑟不御하며 食肉不至變味하며 飮酒不至變貌하며 笑不至矧하며 怒不至詈 疾止어시든 復故니라 <小學, 明倫第二>  
〈곡례에 말하였다.〉 “부모에게 질병이 있으면, 관을 쓴 자는 빗질하지 않으며, 걸어다닐 때 활보하지 않으며, 말할 때 간섭하지 않으며,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지 않으며, 고기를 먹되 입에 물리는 데에 이르지 않으며, 술을 마시되 얼굴빛이 변하는 데에 이르지 않으며, 웃되 잇몸이 드러나는 데에 이르지 않으며, 성내되 꾸짖는 데에 이르지 않아야 하니, 병이 나으시면 예전으로 돌아간다.”
41 愛親 不敢惡於人이요 敬親 不敢慢於人이니 愛敬 盡於事親하면 而德敎加於百姓하여 刑于四海하리니 此天子之孝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부모를 사랑하는 자는 감히 남을 미워하지 않으며,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감히 남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사랑과 공경을 부모를 섬기는 데에서 극진히 하면 덕이 있는 가르침이 백성에게 더해져서 천하에 본보기가 될 것이니, 이는 천자의 효도이다.
42 自天子至於庶人 孝無終始 而患不及未之有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그러므로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효에 끝과 시작이 없는데도 화가 미치지 않은 자는 있지 않았다.
43 孔子曰 父母生之하시니 續莫大焉이요 君親臨之하시니 厚莫重焉이로다 是故 不愛其親이요 而愛他人 謂之悖德이요 不敬其親이요 而敬他人 謂之悖禮니라 <小學, 明倫第二>  
공자가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그를) 낳아주셨으니, 계승함이 이것보다 큰 것이 없고, 임금과 부모께서 (그에게) 임하시니, 후함이 이것보다 무거운 것이 없다. 이러한 까닭에 그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그것을) 어긋난 덕이라 하고, 그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공경하는 것을, (그것을) 어긋난 예라고 한다.
44 事親 居上不驕하며 爲下不亂하며 在醜不爭이니 居上而驕則亡하고 爲下而亂則刑하고 在醜而爭則兵이니 三者 不除하면 雖日用三牲之養이라도 猶爲不孝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부모를 섬기는 자는 위에 거하여서는 교만하지 않으며, 아래가 되어서는 어지럽히지 않으며, 동료간에 있어서는 다투지 않아야 한다. 위에 거하여 교만하면 망하고, 아래가 되어서 어지럽히면 형벌을 받으며, 동료간에 있어서 다투면 병기로 해치게 되니, 이 세 가지를 제거하지 않으면 비록 날마다 세 가지 희생물의 봉양을 쓰더라도오히려 불효가 된다.
45 曲禮曰 凡爲君使已受命하여는 君言 不宿於家니라 <小學, 明倫第二>  
〈곡례〉에 말하였다. 무릇 임금의 심부름꾼이 된 자는 이미 명령의 받고서는 임금의 말씀을 집에 묵혀두지 않는다.
46 君言어든 則主人 出拜君言之辱하고 使어든 則必拜送于門外니라 <小學, 明倫第二>  
임금의 말씀이 이르면 주인은 나가서 임금의 말씀이 욕됨에 절하고, 심부름 온 자가 돌아가면 반드시 문 밖에서 절하여 보낸다.
47 若使人於君所어든 則必朝服而命之하고 使이어든 則必下堂而受命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만약 임금이 계신 곳에 사람을 심부름 보내게 되면 반드시 조복을 입고서 (그에게) 명하며, 심부름 보낸 자가 돌아오면 반드시 대청으로 내려가서 명을 받는다.
48 曲禮曰 賜果於君前이어든 其有核 懷其核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곡례〉에 말하였다. 임금의 앞에서 과일을 하사하시면 그 씨가 있는 것은 그 씨를 품에 간직한다.
49 有官守 不得其職則去하고 有言責 不得其言則去니라 <小學, 明倫第二>  
지킬 관직이 있는 자는 그 직분을 할 수 없으면 떠나고, 말할 책임이 있는 자는 그 말을 할 수 없으면 떠나간다.
50 謀於長할새 必操几杖以從之이어든 不辭讓而對非禮也니라 <小學, 明倫第二>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의논할 적에 반드시 안석과 지팡이를 잡고서 (그를) 따라야 하니, 나이 많은 사람이 물으면 사양하지 않고 (바로) 대답하는 것은 예가 아니다.
51 從長而上丘陵이면 則必鄕長所視니라 <小學, 明倫第二>  
나이 많은 사람을 따라서 언덕에 올라가면 반드시 나이 많은 사람이 보는 곳으로 (시선이) 향해야 한다.
52 與之提携어든 則兩手 奉長之手하고 負劍辟咡詔之어든 則掩口而對니라 <小學, 明倫第二>  
나이 많은 사람이 나에게 (손을) 잡아 이끌어주면 두 손으로 나이 많은 사람의 손을 받들고, 검을 차듯이 옆에 끼고서 입가까지 (몸을) 기울여 나에게 가르쳐주면 입을 가리고서 대답한다.
53 凡爲長糞之禮 必加帚於箕上하며 以袂 拘而退하여 其塵 不及長하고 以箕 自鄕而扱之니라 <小學, 明倫第二>  
무릇 나이 많은 사람을 위하여 청소하는 예는 반드시 비를 쓰레받이 위에 올려두며, 소매로 (입을) 가려 물러나 그 먼지가 나이 많은 사람에게 미치지 않게 하며, 쓰레받이를 스스로에게 향하게 하여 먼지를 거두어 담는다.
54 坐必安하며 執爾顔하며不及이어든 毋儳言하며 <小學, 明倫第二>  
앉을 때 반드시 (자세를) 편안하게 하며, 너의 안색을 바르게 하며, 나이 많은 사람이 언급하지 않으면 (장자의) 말에 (중간에)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
55 侍坐於君子할새 君子欠伸하며 撰杖屨하며 視日蚤莫어든 侍坐請出矣니라 <小學, 明倫第二>  
군자를 모시고 앉아있을 때 군자가 하품하고 기지개 켜며, 지팡이와 신발을 잡으며, 해가 이른지 저물었는지를 살피면 모시고 앉아있는 사람은 나가기를 청해야 한다.
56 侍坐於君子할새 若有告曰 少閒이어든 願有復也라커든 則左右屛而待니라 <小學, 明倫第二>  
군자를 모시고 앉아있을 때 만약 아뢰는 사람이 있어 말하길, ‘(군자께서) 조금 한가해지시면 (다시) 아룀이 있길 바랍니다.’ 라고 하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물러가서 기다려야 한다.
57 侍飮於長할새 酒進則起하여 拜受於尊所하되어든反席而飮하고擧未釂어든不敢飮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나이 많은 사람을 모시고 술을 마실 때 술이 나오면 일어나서 술통이 있는 곳에 (가서) 절하고 받되, 나이 많은 사람이 사양하면 젊은 사람은 자리로 돌아와서 마시며, 나이 많은 사람이 (술잔을) 들되, 아직 다 마시지 않았으면 젊은 사람은 감히 마시지 않아야 한다.
58 어든不敢辭니라 <小學, 明倫第二>  
나이 많은 사람이 주면 젊은 사람과 신분이 천한 사람은 감히 사양하지 않는다.
59 御同於長할새 雖貳 不辭하며 偶坐不辭니라 <小學, 明倫第二>  
나이 많은 사람을 모시고 함께 음식을 먹을 때 비록 (음식이) 더 나오더라도사양하지 않으며, (남과) 짝하여 앉았으면 사양하지 않아야 한다.
60 輕任하고 重任하여 頒白不提挈이니라 <小學, 明倫第二>  
가벼운 짐은 아울러 (혼자 지고), 무거운 짐은 나누어 (져서) (머리카락이) 반쯤 흰 사람이 들지 않게 한다.
61 論語曰 鄕人飮酒이어든 斯出矣러시다 <小學, 明倫第二>  
〈논어〉에 말하였다. (공자는) 시골 사람과 술을 마실 적에 지팡이 짚은 사람이 나가면 (따라서) 나갔다.
62 三友三友 友直하며 友諒하며 友多聞이면 益矣 友便辟하며 友善柔하며 友便佞하면 損矣니라 <小學, 明倫第二>  
유익한 사람 세 친구가 있고, 손해 되는 사람 세 친구가 있으니, 친구가 바르며, 친구가 성실하며, 친구가 문견이 많으면 유익하고, 친구가 한쪽에 치우치며, 친구가 유순하기만 잘하며, 친구가 말만 잘하면 손해된다.
63 曾子曰 親戚 不說이어든 不敢外交하며不親이어든 不敢求遠하며 不審이어든 不敢言大니라 <小學, 明倫第二>  
증자가 말하였다. 친척이 기뻐하지 않으면 감히 외부인을 사귀지 않으며, 가까운 사람과 친하지 않으면 감히 멀리 있는 사람을 구하지 않으며, 작은 것을 살피지 못했으면 감히 큰 것을 말하지 않는다.
64 人之生也 百歲之中 有疾病焉하며 有老幼焉하니 君子思其不可復而先施焉하나니 親戚 旣沒이면 雖欲孝 誰爲孝 年旣耆艾 雖欲悌 誰爲悌리오 孝有不及하며 悌有不時라하니 其此之謂歟인저 <小學, 明倫第二>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감에, 백세의 가운데에 질병이 여기에 있으며, 노년기와 유년기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돌아올 수 없는 것을 생각하여 먼저 베푸는 것이다. (생략) 친척이 이미 죽으면 비록 효도하고자 하더라도 누구를 위해 효도할 것이며, 나이가 이미 늙으면 비록 공경하고자 하더라도 누구를 위해서 공경하겠는가? 그러므로 ‘효도는 미치지 못함이 있으며, 공경은 때가 아님이 있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이것을 말함일 것이다.
65 丹書曰 敬勝怠하고 怠勝敬하며 義勝欲하고 欲勝義하니라 <小學, 敬身第三>  
단서에 말하였다. 공경이 태만함을 이기는 자는 길하고, 태만함이 공경을 이기는 자는 멸하며, 의리가 욕심을 이기는 자는 순하고, 욕심이 의리를 이기는 자는 흉하다.
66 冠義曰 凡人之所以爲人 禮義也 禮義之始 在於正容體하며 齊顔色하며 順辭令이니 容體正하며 顔色齊하며 辭令順而後 禮義備하나니 以正君臣하며 親父子하며 和長幼 君臣正하며 父子親하며 長幼和而後 禮義立이니라 <小學, 敬身第三>  
관의에 말하였다. 무릇 사람이 사람이 되는 까닭은 예의 (때문) 이니, 예의의 시작은 용체를 바르게 하고, 안색을 가지런히 하며, 말과 명령을 순하게 하는 데에 있다. 용체가 바르며, 안색이 가지런하며, 말과 명령이 순한 뒤에 예의가 갖추어지니, 이것으로써 군신을 바르게 하며, 부자를 친하게 하며, 장유를 화하게 한다. 군신이 바르게 되며, 부자가 친하며, 장유가 화한 뒤에 예의가 확립된다.
67 衛共姜 衛世子共伯之妻也 共伯 蚤死어늘 共姜 守義러니 父母欲奪而嫁之어늘 共姜 不許하고 作柏舟之詩하여 以死自誓하니라 <小學, 稽古第四>  
위나라 공강은 위나라 세자인 공백의 아내였다. 공백이 일찍 죽자, 공강이 절의를 지켰는데, 부모가 (뜻을) 빼앗아 시집보내려 하였다. 공강이 허락하지 않고 백주의 시를 지어 죽음으로 스스로 맹세하였다.
68 詩曰 天生烝民하시니 有物有則이로다 民之秉彝 好是懿德이라하여늘 孔子曰 爲此詩 其知道乎인저 有物必有則이니 民之秉彝也 好是懿德이라하시니 歷傳記하며 接見聞하여 述嘉言하며 紀善行하여 爲小學外篇하노라 <小學, 嘉言第五>  
시경에서 말하였다. “하늘이 여러 백성을 내시니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 백성이 가진 떳떳함이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 공자가 말하였다. “이 시를 쓴 사람은 아마 도를 알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으니 백성이 떳떳함을 가졌다. 그러므로 이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 전하는 기록을 살피며 보고 들은 것을 접하여, 아름다운 말을 기술하며 선한 행실을 기록하여, 소학의 외편을 만들었다.
69 柳玭 嘗著書하여 戒其子弟曰 壞名災己하며 辱先喪家 其失尤大 宜深誌之니라 <小學, 嘉言第五>  
유변이 일찍이 글을 지어서 그 자식과 아우에게 경계하여 말하였다. “명예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해치며, 선조를 욕되게 하고 집안을 망치는 것 중에 그 과실이 더욱 큰 것이 다섯이니, 마땅히 (그것을) 깊이 기억해야 한다.
70 其三 勝己 厭之하고 佞己 悅之하여 唯樂戲談하고 莫思古道하여 聞人之善하고 嫉之하며 聞人之惡하고 揚之하여 浸漬頗僻하여 銷刻德義하면 簪裾徒在인들 廝養何殊리오 <小學, 嘉言第五>  
그 셋째는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고, 자기에게 아첨하는 사람을 기뻐하여, 오직 희롱하는 말을 좋아하고 옛 도(道)를 생각하지 않아서 남의 선(善)을 듣고는 그것을 질투하며, 남의 악을 듣고는 그것을 드러내어 치우치고 편벽됨에 젖어들어 덕과 의를 녹여 없애면 의관이 단지 있더라도 하인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71 其五 急於名宦하여 匿近權要하여 一資半級 雖或得之라도 衆怒羣猜하여 鮮有存니라 <小學, 嘉言第五>  
그 다섯째는 명예로운 벼슬에 급급하여 권세 있고 요직 맡은 자를 은밀히 가까이하여 한 품계와 반 등급을 비록 혹 (그것을) 얻더라도 여러 사람이 성내고 많은 이들이 시기하여, 보존하는 사람이 드물게 있다.
72 戒爾勿嗜酒하노니 狂藥非佳味 能移謹厚性하여 化爲凶險類하나니 古今傾敗 歷歷皆可記니라 <小學, 嘉言第五>  
너에게 술을 즐기지 말 것을 경계하니, 미치게 하는 약이고, 아름다운 맛이 아니다. 삼가고 후한 성품을 바꿀 수 있어 화하여 흉하고 거친 부류가 되게 하니, 옛날과 지금에 엎어지고 패망한 사람을 두루두루 모두 기록할 수 있다.
73 擧世好承奉하여 昂昂增愚氣하나니 不知承奉 以爾爲玩戲니라 所以古人疾 籧篨與戚施니라 <小學, 嘉言第五>  
온 세상이 받들고 올려 줌을 좋아하여 으스대면서 어리석은 기운을 돋구니, 받들어 올려 주는 사람이 그것으로 너를 완호품과 장난감으로 여김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옛사람이 미워함이 새가슴과 곱사등이
74 節孝徐先生 訓學曰 諸君 欲爲君子而使勞己之力하며 費己之財인댄 如此而不爲君子 猶可也어니와 不勞己之力하며 不費己之財어늘 諸君 何不爲君子 鄕人賤之하고 父母惡之인댄 如此而不爲君子 猶可也어니와 父母欲之하고 鄕人榮之어늘 諸君 何不爲君子 <小學, 嘉言第五>  
절효 서 선생이 배우는 사람에게 훈계하여 말했다. “뭇 그대들이 군자가 되고자 하되 가령 자기의 힘을 수고롭게 하며 자기의 재물을 허비해야 한다면 이와 같아서 군자가 되지 않음은 그래도 괜찮지만, 자기의 힘을 수고롭게 하지 않으며 자기의 재물을 허비하지 않는데 뭇 그대들이 어찌 군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가?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천시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것을) 미워하면, 이와 같아서 군자가 되지 않음은 그래도 괜찮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것을) 바라고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영광으로 여기는데 뭇 그대들은 어찌 군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가?”
75 古靈陳先生 爲仙居令하여 敎其民曰 爲吾民 父義母慈하며 兄友弟恭하며 子孝하며 夫婦有恩하며 男女有別하며 子弟有學하며 鄕閭有禮하며 貧窮患難 親戚相救하며 婚姻死喪 隣保相助하며 無墮農業하며 無作盜賊하며 無學賭博하며 無好爭訟하며 無以惡陵善하며 無以富呑貧하며讓路하며讓畔하며 斑白不負戴於道路하면 則爲禮義之俗矣리라 <小學, 嘉言第五>  
고령 진 선생이 선거의 현령이 되어 그 백성들에게 가르쳐 말하였다. “나의 백성 된 사람들은 아버지는 의롭고 어머니는 사랑하며, 형은 우애하고 동생은 공손하며, 자식은 효도하며, 남편과 아내는 은혜가 있으며, 남자와 여자는 분별이 있으며, 자식과 아우는 배움이 있으며, 마을에는 예의가 있으며, 가난하고 곤궁하며 근심하고 어려울 적에 친척이 서로 도우며, 혼인과 장례와 초상에 이웃 조합이 서로 도우며, 농사일을 폐하지 말며, 도둑질하고 해치는 이가 되지 말며, 노름하고 내기함을 배우지 말며, 다투거나 송사함을 좋아하지 말며, 악으로 선을 능멸하지 말며, 부유함으로 가난한 이를 겸병하지 말며, 길가는 사람은 길을 양보하며, 밭 가는 사람은 밭두둑을 양보하며, 흰 머리가 섞인 사람은 도로에 (짐을) 지고 (머리에) 이지 않으면, 예절과 의리의 풍속이 될 것이다.”
76 或所命 有不可行어든 則和色柔聲하여 具是非利害而白之하여 待父母之許然後 改之하고 若不許라도 苟於事 無大害어든 亦當曲從이니 若以父母之命 爲非하여 而直行己志하면 雖所執 皆是라도 猶爲不順之子 況未必是乎 <小學, 嘉言第五>  
혹 명령한 바가 행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면,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옳고 그름과 이롭고 해로움을 갖추어 (그것을) 말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허락을 기다려 그러한 뒤에 (그것을) 고치고, 만약 허락하지 않더라도 만약 일에 있어 큰 해가 없는 것이면, 또한 마땅히 굽혀 따라야 한다.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의 명령을 그르다 여겨 곧바로 자기의 뜻을 행하면, 비록 집행하는 바가 모두 옳더라도 오히려 순하지 못한 자식이 되니, 하물며 반드시 옳지 않음에 있어서랴.
77 橫渠先生曰 舜之事親 有不悅 爲父頑母嚚하여 不近人情이니 若中人之性 其愛惡若無害理어든 必姑順之니라 <小學, 嘉言第五>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순임금이 어버이를 섬김에 기뻐하지 않음이 있었던 것은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어리석어 사람의 정에 가깝지 않았기 때문이니, 만약 중등 사람의 성품이어서 그 사랑하고 미워함이 만약 이치에 해로움이 없다면, 반드시 우선 (그들에게) 순종해야 한다.
78 羅仲素論瞽瞍底豫而天下之爲父子하여 云只爲天下 無不是底父母라하여늘 <小學, 嘉言第五>  
나중소가 ‘고수가 기뻐함에 이르자, 천하의 아버지와 자식된 사람들이 안정되었다’는 것을 논하여 말했다. “다만 천하에 옳지 않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기 때문이다.”
79 了翁 聞而善之曰 唯如此而後에야 天下之爲父子이니 彼臣弑其君하며 子弑其父 常始於見其有不是處耳니라 <小學, 嘉言第五>  
료옹이 (그것을) 듣고서 좋게 여겨 말하였다. “오직 이와 같이한 뒤에 천하의 아버지와 자식 된 사람들이 안정될 것이니, 저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며 자식이 그 아버지를 시해함은 항상 그 옳지 못한 것이 있음을 본 데서 비롯될 뿐이다.”
80 伊川先生曰 病臥於牀 委之庸醫 比之不慈不孝 事親 亦不可不知醫니라 <小學, 嘉言第五>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병들어 침상에 누워 있는데, 용렬한 의원에게 맡김을 그것을 사랑하지 않고 효도하지 않음견주니, 어버이를 섬기는 사람은 또한 의술을 알지 않아선 안 된다.”
81 某嘗修六禮大略하되 家必有廟하고 廟必有主하여 月朔 必薦新하며 時祭 用仲月하며 冬至 祭始祖하며 立春 祭先祖하며 季秋 祭禰하며 忌日 遷主하여 祭於正寢이니 凡事死之禮 當厚於奉生니라 <小學, 嘉言第五>  
아무개가 일찍이 여섯 예도의 대략을 닦았는데, 집안에는 반드시 사당이 있고, 사당에는 반드시 신주가 있어, 달마다 초하루에는 반드시 새로운 것을 바치며, 사철의 제사에는 가운데 달을 쓰며, 동지에는 시조를 제사하며, 입춘에는 선조를 제사하며, 늦은 가을에는 아버지의 사당에서 제사하며, 기일에는 신주를 옮겨 대청에서 제사하도록 하니, 무릇 죽은 사람 섬기는 예를 마땅히 산 사람 봉양보다 후하게 해야 한다.
82 人家能存得此等事數件하면 雖幼라도 可使漸知禮義니라 <小學, 嘉言第五>  
사람의 집에서 이러한 부류의 일 몇 가지를 잘 보존하여 터득하면, 비록 어린 사람이라도 점차 예절과 의리를 알게 할 수 있다.
83 司馬溫公曰 冠 成人之道也 成人 將責爲人子 爲人弟 爲人臣이며 爲人少之行也 將責四之行於人이어니 其禮 可不重與 <小學, 嘉言第五>  
사마온공이 말하였다. “관을 씀은 완성한 사람의 도이니, 완성한 사람은 장차 사람의 아들이 되며, 사람의 아우가 되며, 사람의 신하가 되며, 사람의 젊은이가 되는 행실을 요구하려는 것이니, 장차 네 가지의 행실을 사람에게 요구하려 하니, 그 예를 중시하지 않을 수 있는가?
84 冠禮之廢久矣 近世以來 人情 尤爲輕薄하여 生子猶飮乳 已加巾帽하고 有官 或爲之製公服而弄之 過十歲猶總角蓋鮮矣 彼責以四者之行인들 豈能知之리오 往往 自幼至長 愚騃如一하니 由不知成人之道故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관 쓰는 예가 폐해진 지 오래이니, 가까운 세대 이후로 사람의 정이 더욱 가볍고 박하게 되어서 아들을 낳으면, 아직 젖을 먹는데도 이미 두건과 모자를 씌우고, 관작이 있는 사람은 혹 (그를) 위해 벼슬아치의 옷을 만들어 (그를) 희롱한다. 열 살이 지나도록 오히려 땋은 머리를 뿔처럼 한 사람이 대개 적으니, 저들을 네 가지의 행실로써 책망한들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때때로 어렸을 때부터 장성함에 이르도록 우매하고 어리석음이 한결같으니, 완성한 사람의 도를 알지 못하는 연유의 까닭이다.
85 父母之喪 旣殯하고 食粥하며 齊衰 疏食水飮하고 不食菜果하며 <小學, 嘉言第五>  
옛날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에는 이미 빈소를 차리고서 죽을 먹었으며, 자최의 상에는 거친 밥과 물을 마시고 채소와 과일은 먹지 않았다.
86 中月而禫하고 禫而餘醴酒하나니 始飮酒 先飮醴酒하고 始食肉 先食乾肉이니 古人 居喪 無敢公然食肉飮酒하니라 <小學, 嘉言第五>  
달을 가운데 두고서 담제를 지내고, 담제를 지내고서 단 술을 마시니, (상을 마치고) 처음 술을 마시는 사람은 먼저 단 술을 마시고, 처음 고기를 먹는 사람은 먼저 말린 고기를 먹었다. 옛사람은 상에 처해 있으면서 감히 공적으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었다.
87 然則五代之時 居喪食肉 人猶以爲異事하니 是流俗之弊 其來甚近也니라 今之士大夫 居喪 食肉飮酒 無異平日하고 又相從宴集하여 靦然無愧어든 人亦恬不爲怪하나니 禮俗之壞 習以爲常하니 悲夫 <小學, 嘉言第五>  
그렇다면 오대의 시대에 상에 거함에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으로 이상한 일로 여겼으니, 이 흘러가는 속세의 폐단이 그 유래가 매우 가깝다. 지금의 사대부는 상에 거하면서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심이 평소의 날과 다름이 없고, 또 서로 따라 잔치하고 모여 뻔뻔하게 부끄러움이 없거든 사람들 또한 편안하게 여겨 괴이하게 여기지 않는다. 예의 있는 풍속이 무너짐에 익숙하여 그것으로 보통으로 여기니, 슬프구나!
88 乃至鄙野之人하여는 或初喪未斂 親賓 則齎酒饌往勞之어든 主人 亦自備酒饌하여 相與飮啜하여 醉飽連日하고 及葬하여 亦如之하며 初喪 作樂以娛尸하고 及殯葬하여 則以樂導輀車而號泣隨之하며 亦有乘喪卽嫁娶하니 習俗之難變 愚夫之難曉 乃至此乎 <小學, 嘉言第五>  
이에 비루하고 비속한 사람에 이르러서 혹 초상에 염을 하지 않았을 적에 친구와 빈객이 곧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와서 (그를) 위로하면 주인 된 사람이 또한 스스로 술과 안주를 갖추어 서로 더불어 마시고 마셔서 취하고 배불리 먹기를 날을 이어서 하며 장례에 이르러서도 또한 이와 같이 하며, 심한 경우는 초상에 음악을 연주하여 시신을 즐겁게 하고, 빈소 차리고 장례 함에 이르러선 곧 음악으로 상여를 인도하게 하고서 부르짖고 울면서 (그것을) 따르며 또한 상을 틈타 곧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들이 있다. 슬프다! 익숙한 세속을 변화시키기 어려움과 어리석은 사람을 깨우치기 어려움이 마침내 여기에 이르렀구나!
89 凡居父母之喪者 大祥之前 皆未可飮酒食肉이니 若有疾이어든 暫須食飮하되 疾止어든 亦當復初니라 必若素食 不能下咽하여 久而羸憊하여 恐成疾 可以肉汁及脯醢或肉少許 助其滋味언정 不可恣食珍羞盛饌及與人燕樂이니 是則雖被衰麻 其實 不行喪也니라 唯五十以上 血氣旣衰하여 必資酒肉扶養 則不必然耳니라 <小學, 嘉言第五>  
무릇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에 거하는 사람은 대상의 전에 모두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니, 만약 병이 있으면 잠시 모름지기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되, 병이 그치면 또한 마땅히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만일 고기 없는 음식이 목으로 잘 내려가지 않아서 오래되어 파리하고 여위어 병을 이룰까 염려되는 사람은 고기즙과 포와 젓갈이나 혹 고기 조금과 약간으로 그 입맛을 돋울 수 있을지언정 진귀한 음식, 성대한 음식을 마음대로 먹거나 및 남과 연회 하며 즐겨서는 안 되니, 이는 곧 비록 상복을 입었더라도 그 실제는 상례를 행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50세 위로 혈기가 이미 쇠하여 반드시 술과 고기에 도움받아 받들어 봉양하는 사람은 곧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뿐이다.
90 其居喪 聽樂及嫁娶 國有正法하니 此不復論하노라 <小學, 嘉言第五>  
그 상에 거함에 음악을 듣거나 및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은 나라에 바른 법이 있으니, 이에 다시 논하지 않는다.
91 世俗 信浮屠誑誘하여 凡有喪事 無不供佛飯僧하여 云爲死하여 滅罪資福하여 使生天堂하여 受諸快樂이니 不爲 必入地獄하여 剉燒舂磨하여 受諸苦楚라하나니 殊不知死形旣極滅하고 神亦飄散하니 雖有剉燒舂磨라도 且無所施니라 又況佛法 未入中國之前 人固有死而復生하니 何故 都無一人 誤入地獄하여 見所謂十王者耶 此其無有而不足信也 明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세상의 풍속이 부처의 속임과 유혹을 믿어, 무릇 상의 일이 있음에 부처를 공양하고 승려를 먹이지 않는 이가 없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죽은 사람을 위하여 죄를 없애고 복을 도와 천당에 살며 모든 기쁨과 즐거움을 받게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들어가 베어지고 태워지고 찧어지고 갈려서 모든 괴로움과 고초를 받는다.” 죽은 사람은 형체가 이미 다하여 없어지고 정신도 또한 날아가고 흩어졌으니, 비록 베고 태우고 찧고 가는 일이 있더라도 또 베풀 곳이 없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하물며 부처의 법이 아직 중국에 들어오지 않은 이전에도 사람 중에 진실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있었는데, 무슨 까닭으로 한 사람도 지옥에 잘못 들어가 이른바 시왕을 본 사람이 전혀 없는가? 이는 그 있지 않아서 충분히 믿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92 伊川先生曰 人無父母 生日 當倍悲痛이니 更安忍置酒張樂하여 以爲樂이리오 若具慶 可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사람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으면 태어난 날에 마땅히 배로 슬퍼하고 아파해야 하니, 다시 어찌 차마 술자리를 마련하고 풍악을 벌여 그것으로 즐거움을 삼을 수 있겠는가? 만약 복을 갖춘 사람은 괜찮다.”
93 或問 簿 佐令 簿所欲爲 令或不從이어든 奈何잇고 伊川先生曰 當以誠意動之 令與簿不和 只是爭私意니라 <小學, 嘉言第五>  
어떤 이가 물었다. “보좌관은 수령을 돕는 사람이니, 보좌관이 하고자 하는 것을 수령이 혹 따르지 않으면 어찌하는가?”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마땅히 성실한 뜻으로 (그를) 움직여야 한다. 지금 수령이 보좌관과 화합하지 않음은 다만 이 사사로운 뜻을 다투어서이다.
94 童蒙訓曰 當官之法 唯有三事하니 曰淸曰愼曰勤이니 知此三 則知所以持身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동몽훈에 말하였다. “관직을 맡는 법이 오직 세 가지 일이 있으니, 청렴함을 이르고, 신중함을 이르고, 근면함을 이른다. 이 세 가지를 알면 그것으로 몸을 가질 바를 알 것이다.”
95 當官 先以暴怒爲戒하여 事有不可어든 當詳處之 必無不中이어니와 若先暴怒 只能自害 豈能害人이리오 <小學, 嘉言第五>  
관직을 맡은 사람은 우선 갑자기 성냄을 경계로 삼아서, 일에 해선 안 됨이 있으면 마땅히 자세히 (그것을) 처리해야 하니, (이렇게 하면) 반드시 맞지 않음이 없거니와 만약 먼저 갑자기 성내면 다만 스스로 해칠 수 있을 뿐이니, 어찌 남을 해칠 수 있겠는가?
96 家之所由盛衰也 苟慕一時之富貴而娶之하면 彼挾其富貴하여 鮮有不輕其夫而傲其舅姑하여 養成驕妬之性이니 異日爲患 庸有極乎리오 <小學, 嘉言第五>  
며느리는 집안의 성하고 쇠함이 말미암는 바이니, 다만 한때의 부유함과 귀함을 흠모하여 (그에게) 장가들면, 저가 그 부유함과 귀함을 믿고서 그 남편을 가볍게 여기고 그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업신여겨, 교만과 질투의 습성을 기르고 이루지 않을 이가 드물게 있으니, 다른 날에 근심됨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97 借使因婦財以致富하며 依婦勢以取貴라도 苟有丈夫之志氣 能無愧乎 <小學, 嘉言第五>  
가령 아내의 재물을 이용하여 부유함을 이루고, 아내의 세력에 의지하여 귀함을 취하더라도, 진실로 장부의 뜻과 기개가 있는 사람이면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98 安定胡先生曰 嫁女 必須勝吾家 勝吾家 則女之事人 必欽必戒니라 娶婦 必須不若吾家 不若吾家 則婦之事舅姑 必執婦道니라 <小學, 嘉言第五>  
안정호 선생이 말하였다. “딸을 시집보내기를 반드시 모름지기 내 집보다 나은 사람에게 해야 하니, 내 집보다 나으면 딸이 사람을 섬김이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경계한다. 며느리 맞이하기를 반드시 모름지기 내 집만 못한 사람에게 해야 하니, 내 집만 못하면,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섬김이 반드시 며느리의 도를 지킨다.”
99 或問 孀婦 於理 似不可取 如何 伊川先生曰然하다 凡取 以配身也 若取失節하여 以配身이면 己失節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어떤 사람이 물었다. “남편 없는 부인은 이치에 있어 취함이 옳지 않을 듯 하니, 어떠한가?”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그렇다. 무릇 취함은 그것으로 자신을 짝함이니, 만약 절개를 잃은 사람을 취하여 그것으로 자신과 짝하면 이는 자신이 절개를 잃는 것이다.”
100 又問 或有孤孀 貧窮無託어든 可再嫁否 曰 只是後世 怕寒餓死故 有是說이라이나 餓死事 極小하고 失節事 極大하니라 <小學, 嘉言第五>  
또 물었다. “혹 외로운 과부가 있어 가난하고 곤궁하고 의탁할 곳이 없으면 다시 시집가도 괜찮은가?” 말하였다. “다만 이는 뒤세대에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을까 두렵기 때문에 이런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굶어 죽는 일은 지극히 작고, 절개를 잃는 일은 지극히 크다.”
101 江東婦女 略無交遊하여 其婚姻之家 或十數年間 未相識 唯以信命贈遺 致慇懃焉하니니라 <小學, 嘉言第五>  
강의 동쪽 부인과 여자들은 조금도 교제하고 교유함이 없어, 그 결혼하고 혼인한 집안끼리도 혹 십수 년 동안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오직 편지와 말과 (물건을) 보내고 전함으로써 정성스럽고 지성스러움을 다한다.
102 夫有人民而後 有夫婦하고 有夫婦而後 有父子하고 有父子而後 有兄弟하니 一家之親 此三而已矣 自玆以往으로 至于九族 皆本於三親焉이라 於人倫 爲重也 不可不篤이니라 <小學, 嘉言第五>  
무릇 사람의 백성이 있고서 뒤에 남편과 아내가 있고, 남편과 아내가 있고서 뒤에 아버지와 자식이 있고, 아버지와 자식이 있고서 뒤에 형과 동생이 있으니, 한 집안의 친족은 이 세 가지이고 그친다. 이로부터 하여 나아가 아홉 친족에 이르기까지 모두 세 친족에게 근본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윤리에 있어 중요한 것이 되니, 돈독하게 하지 않아선 안 된다.
103 兄弟 分形連氣之人也 方其幼也 父母左提右挈하며 前襟後裾하여 食則同案하고 衣則傳服하며 學則連業하고 遊則共方하니 雖有悖亂之人이라도 不能不相愛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형과 동생은 형체를 나누고 기를 이은 사람이니, 한창 그가 어릴 적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왼쪽에서 잡아주고 오른쪽에서 이끌어주며, 앞에서 옷깃을 당기고 뒤에서 옷섶을 잡아주어, 먹을 적엔 밥상을 함께하고 입을 적엔 옷을 물려주고 배울 적엔 학업을 이어주고 놀 적엔 장소를 같이 하니, 비록 어긋나고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서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104 娣姒之比兄弟 則疎薄矣 今使疎薄之人而節量親厚之恩이면 猶方底而圓蓋 必不合矣 唯友悌深至하여 不爲傍人之所移라야 免夫인저 <小學, 嘉言第五>  
손윗동서와 손아랫동서를 형과 동생에 견주면 소원하고 박하니, 이제 소원하고 박한 사람으로 친하고 후한 은혜를 절제하고 헤아리게 하면, 모난 밑에 동그란 덮개와 같아서 반드시 맞지 않을 것이니, 오직 우애와 공경이 깊고 지극하여 옆 사람이 옮긴 바 되지 않은 사람이라야 면할 수 있다!
105 柳開仲塗曰 皇考治家하시되 孝且嚴이러시니 旦望 弟婦等 拜堂下畢하고 卽上手低面하여 聽我皇考訓誡하더니 曰 人家兄弟無不義언마는 盡因娶婦入門하여 異姓 相聚하여 爭長競短하여 漸漬日聞하며 偏愛私藏하여 以致背戾하여 分門割戶하여 患若賊讐하나니 皆汝婦人所作이니라 男子剛腸幾人 能不爲婦人言所惑 吾見 多矣 若等 寧有是耶리오하여시든 退則惴惴하여 不敢出一語爲不孝事하니 開輩抵此賴之하여 得全其家云이로라 <小學, 嘉言第五>  
유개 중도가 말하였다. “선친이 집안을 다스리되 효성스럽고 또 엄격하였다. 초하루와 보름에 자제와 며느리 무리가 대청 아래에서 절하고서 마치고는 곧 손을 들고 얼굴을 숙이고서 우리 선친의 가르침과 훈계를 들었는데 말하였다. ‘사람의 집에 형과 동생이 의롭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모두 아내를 맞이하여 집안에 들임으로 말미암아 다른 성이 서로 모여 장점을 다투고 단점을 다투어 점차 (참소가) 젖어 들고 날로 (참소가) 들리며, 편벽되이 사랑하고 사사로이 저축하여 그것으로 등지고 어긋남에 이르러 집안을 나누고 집안을 쪼개어 근심하기를 도적과 원수처럼 여기니, 모두 너희 부인 된 사람이 만든 것이다. 남자로서 심장이 강한 사람 몇 사람이 부인 된 사람의 말에 미혹되는 바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본 것이 많으니, 너희들은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자제와 며느리가) 물러나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효성스럽지 않은 일 함을 한 마디도 내지 못하니, 유개 무리가 지금에 이르도록 (그것에) 힘입어 그 집안을 온전히 할 수 있었다.”
106 伊川先生曰 今人 多不知兄弟之愛로다 且如閭閻小人 得一食하면 必先以食父母하나니 夫何故 以父母之口重於己之口也 得一衣하면 必先以衣父母하나니 夫何故 以父母之軆重於己之體也 至於犬馬하여도 亦然하니 待父母之犬馬 必異乎己之犬馬也로되 獨愛父母之子 却輕於己之子하여 至若仇敵하여 擧世皆如此하니 惑之甚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지금 사람들은 형과 동생의 우애를 많이 알지 못한다. 우선 예컨대 마을의 소인이 한 음식을 얻으면 반드시 먼저 그것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먹이니, 무릇 무슨 까닭인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이 자기의 입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옷을 얻으면 반드시 먼저 그것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입히니, 무릇 무슨 까닭인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이 자기의 몸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개와 말에 이르러서도 또한 그러하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개와 말을 대하기를 반드시 자기의 개와 말과 다르게 한다. 다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도리어 자기의 자식보다 가볍게 여겨, 심한 사람은 원수와 적처럼 여김에 이르러 온 세상이 모두 이와 같으니, 미혹됨이 심하다.”
107 伊川先生曰 近世淺薄하여 以相歡狎으로 爲相與하며 以無圭角으로 爲相歡愛하나니 如此 安能久리오 若要久인댄 須是恭敬이니 君臣朋友皆當以敬爲主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가까운 시대에 (인정이) 얕아지고 박해져서 서로 기뻐하고 친압함을 서로 친함으로 여기며 모나고 뿔이 없는 것을 서로 기뻐하고 사랑함으로 여기니, 이 같은 것이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만약 오래 가기를 바란다면 모름지기 이 공손하고 공경해야 하니, 군주와 신하와 벗과 친구가 모두 마땅히 공경으로 주장을 삼아야 한다.”
108 橫渠先生曰 今之朋友 擇其善柔以相與하여 拍肩執袂하여 以爲氣合하고 一言不合이어든 怒氣相加하나니 朋友之際 欲其相下不倦이라 於朋友之間 主其敬라야 日相親與하여 得效最速하나니라 <小學, 嘉言第五>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지금의 벗과 친구는 그 유순하기를 잘하는 것을 가려 그것으로 서로 친하여 어깨를 치고 소매를 잡으면서 그것으로 기가 합하였다고 여긴다. 한마디 말이 합하지 않으면 노여운 기운이 서로 더하니, 벗과 친구의 사이에는 그 서로 낮추기를 게을리하지 않고자 해야 한다. 그러므로 벗과 친구의 사이에 그 공경을 주장하는 사람이어야 날로 서로 친하고 우호하여 효과를 얻음이 가장 빠르다.”
109 童蒙訓曰 同僚之契 交承之分 有兄弟之義하니 至其子孫하여 亦世講之하니 前輩 專以此爲務하더니 今人 知之蓋少矣니라 又如舊擧將嘗爲舊任按察官 己官 雖在上이나 前輩皆辭避하여 坐下坐하니 風俗 如此 安得不厚乎리오 <小學, 嘉言第五>  
동몽훈에 말하였다. “함께 하는 동료의 합함과 교대하여 잇는 즈음은 형과 동생의 의리가 있으니, 그 자식과 손자에 이르러서도 또한 대대로 (그것을) 강해야 한다. 전의 무리는 오로지 이것으로 일삼았는데, 지금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 사람이 대개 적다. 또 옛날에 추천해준 장수 및 일찍이 옛날에 안찰관을 맡아 된 이와 같은 경우는 뒤에 자기의 관직이 비록 (그들보다) 위에 있더라도 전의 무리에 대해 모두 사양하고 회피하여 아래 자리에 앉았으니, 풍속이 이와 같으면 어찌 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10 吾吳中宗族 甚衆하니 於吾 固有親疎어니와 然吾祖宗視之 則均是子孫이니 固無親疎也 苟祖宗之意 無親疎 則饑寒 吾安得不恤也리오 自祖宗來 積德百餘年而始發於吾하여 得至大官하니 若獨享富貴而不恤宗族이면 異日 何以見祖宗於地下 今何顔入家廟乎리오 於是 恩例俸賜 常均於族人하고 幷置義田宅云하니라 <小學, 嘉言第五>  
내가 있는 오지방 가운데 종족이 매우 많으니, 나에게 있어서는 진실로 가깝고 멂이 있지만, 그러나 우리 조상이 (그를) 보면 똑같은 이 자식과 손자이니, 본래 가깝고 멂이 없다. 진실로 조상의 뜻에 가깝고 멂이 없다면, 굶주리고 추워하는 사람을 내 어찌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상으로부터 이래로 덕을 쌓은 지 백여 년만에 비로소 나에게서 발하여 큰 벼슬에 이를 수 있었으니, 만약 홀로 부유함과 귀함을 누리고 종족을 구제하지 않으면 다른 날에 어떻게 그것으로 지하에서 조상을 볼 수 있겠으며, 이제 무슨 낯으로 집안의 사당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에 은혜로운 대우와 녹봉과 하사받은 것을 항상 집안사람들에게 고루 주고 아울러 의로운 밭과 집을 설치하였다.
111 董仲舒曰 仁人 正其誼하고 不謀其利하며 明其道하고 不計其功이니라 <小學, 嘉言第五>  
동중서가 말하였다. “인한 사람은 그 의를 바르게 하고 그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을 따지지 않는다.”
112 聖人之道 入乎耳存乎心하여 蘊之爲德行이요 行之爲事業이니 彼以文辭而已 陋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성인의 도는 귀에 들어가 마음에 두어, (그것을) 쌓아선 덕스러운 행실이 되고 (그것을) 행해서는 일과 업이 되니, 저 문장과 글로써 하고 그치는 사람은 비루하다.
113 人於外物奉身 事事要好하되 只有自家一箇身與心 却不要好하나니 苟得外物好時 却不知道自家身與心 已自先不好了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사람이 바깥 사물로 몸을 봉양하는 것에 있어서는 일과 일마다 좋게 하고자 하되, 다만 자기 자신의 한 개의 몸과 마음에 있어서는 도리어 좋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만일 바깥 사물이 좋은 것을 얻었을 때는 도리어 (어조사)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이 이미 스스로 먼저 좋지 않게 됨을 (어조사) 알지 못한다.
114 身之用也 由乎中而應乎外하나니 制乎外 所以養其中也 顔淵 事斯語하니 所以進於聖人이니 後之學聖人 宜服膺而勿失也니라 因箴以自警하노라 <小學, 嘉言第五>  
네 가지는 몸의 작용이다. 마음에 말미암아 밖에 응하니, 밖을 제어함은 그것으로 그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안연이 이 말에 종사했으니, 그것으로 성인에 나아간 것이다. 뒤의 성인을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가슴에 두어서 잃지 말아야 한다. 인하여 잠을 지어 그것으로 스스로 경계한다.”
115 橫渠先生曰 學捨禮義하면 則飽食終日하여 無所猷爲하여 與下民一致 所事不踰衣食之間 燕遊之樂耳니라 <小學, 嘉言第五>  
횡거 선생이 말하였다. “배우는 사람이 예와 의를 버리면 배불리 먹고 날을 마쳐서, 도모하여 하는 바가 없어 하등의 사람과 똑같이 이르니, 일삼는 바가 옷과 음식의 사이와 잔치하고 노는 즐거움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116 呂滎公 嘗言 後生初學 且須理會氣象이니 氣象好時 百事是當하나니 氣象 辭令容止輕重疾徐 足以見之矣 不惟君子小人 於此焉分이라 亦貴賤壽夭之所由定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여형공이 일찍이 말하였다. “뒤에 태어난 처음 배우는 이들은 우선 반드시 기의 형상을 이해하고 알아야 하니, 기의 형상이 좋을 때는 모든 일이 이에 마땅하다. 기의 형상은 말과 글과 용모와 거동의 가벼움과 무거움과 빠름과 느림에서 충분히 그것으로 (그것을) 볼 수 있다. 오직 군자와 소인이 여기에서 (어조사) 나누어질 뿐만 아니라 또한 귀함과 천함과 장수와 요절이 말미암아 정해지는 것이다.
117 恩讎分明此四字 非有道之言也 無好人三字 非有德之言也 後生 戒之하라 <小學, 嘉言第五>  
‘은혜와 원수를 나누어 밝힌다’는 이 네 글자는 도가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니고, 좋은 사람이 없다’는 세 글자는 덕이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니다. 뒤에 태어난 자들은 (그것을) 경계하라.”
118 凡此十四 我皆未深省이라 書此當坐隅하여 朝夕視爲警하노라 <小學, 嘉言第五>  
무릇 이 열 네 가지를 내가 모두 깊이 살피지 못했다. 이를 자리의 모퉁이에 해당하는 곳에 써서 아침, 저녁으로 보고 경계로 삼는다.”
119 胡文定公曰 人 須是一切世味 淡薄이라야 方好하니 不要有富貴相이니라 孟子謂堂高數仞 食前方丈 侍妾數百人 我得志不爲라하시니須先除去此等이요 常自激昻하여야 便不到得墜墮니라 <小學, 嘉言第五>  
호문정공이 말하였다. “사람이 모름지기 이 일체 세상의 맛에 담박하고 박하여야 바야흐로 좋으니, 부유하고 귀한 모습이 있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맹자가 말하였다. ‘집의 높이가 몇 길인 것과 음식이 앞에 사방 한 길이 있는 것과 모시는 첩이 몇백 명인 것을 나는 뜻을 얻더라도 하지 않겠다.’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먼저 이 무리를 없애고 버려서 항상 스스로 격려하고 분발해야 곧 떨어지고 타락함에 이르지 (어조사) 않을 것이다.
120 凡此數事 有犯之 足以見用意之不肖 於存心修身 大有所害 因書以自警하노라 <小學, 嘉言第五>  
무릇 이 몇 가지 일을 범하는 경우가 있으면 충분히 그것으로 뜻을 씀이 어질지 못함을 볼 수 있으니, 마음을 보존하고 몸을 닦음에 크게 해로운 바가 있다. 인하여 글을 써서 그것으로 스스로 경계한다.”
121 胡子曰 今之儒 移學文藝干仕進之心하여 以收其放心而美其身이면 則何古人之不可及哉리오 父兄 以文藝令其子弟하고 朋友以仕進相招하여 往而不返하면 則心始荒而不治하여 萬事之成 咸不逮古先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호자가 말하였다. “지금의 유학하는 사람은 문장과 재주를 배워 벼슬에 나아감을 구하는 마음을 옮겨서 그것으로 그 잃어버린 마음을 거두어서 그 몸을 아름답게 하면 어찌 옛사람에게 미칠 수 없겠는가? 아버지와 형이 문장과 재주로써 그 자식과 아우에게 명령하고, 벗과 친구가 벼슬에 나아가는 것으로 서로 불러,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마음이 비로소 거칠어져서 다스려지지 않아서 모든 일의 이룸이 모두 옛날 선인에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122 未知養親 欲其觀古人之先意承顔하며 怡聲下氣하며 不憚劬勞하여 以致甘腝하고 惕然慙懼하여 起而行之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어버이를 봉양할 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옛사람이 뜻에 앞서 안색을 받들며, 목소리를 화하게 하고 기운을 낮추며, 수고롭고 힘든 것을 꺼리지 않아서 그것으로 달고 연한 것을 바침을 보고, 깜짝 놀라(어조사)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여 흥기하여 (그것을) 행하고자 해야 한다.
123 未知事君 欲其觀古人之守職無侵하며 見危授命하며 不忘誠諫하여 以利社稷하고 惻然自念하여 思欲效之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군주를 섬길 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옛사람이 직책을 맡아 침해함이 없으며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정성으로 간언함을 잊지 않아 그것으로 사직을 이롭게 함을 보고, 측은하게 스스로 생각하여 (그것을) 본받고자 함을 생각하고자 해야 한다.
124 素驕奢 欲其觀古人之恭儉節用하며 卑以自牧하며 禮爲敎本하며身基하고 瞿然自失하여 斂容抑志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본래 교만하고 사치하는 사람은 그 옛사람이 공손하고 검소하여 씀을 절약하며, 낮추어 그것으로 스스로 기르며, 예로써 가르침의 근본을 삼으며, 공경하는 것으로 몸의 터전을 삼은 것을 보고, 놀라 (어조사) 스스로 (마음을) 상하여 용모를 거두고 뜻을 억제하고자 해야 한다.
125 素鄙悋 欲其觀古人之貴義輕財하며 少私寡慾하며 忌盈惡滿하며 賙窮恤匱하고 赧然悔恥하여 積而能散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본래 비루하고 인색한 사람은 그 옛사람이 의를 귀하게 여기고 재물을 가볍게 여기며,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줄이며, 가득 찬 것을 꺼리고 충만한 것을 싫어하며, 곤궁한 사람을 도와주고 없는 사람을 구휼함을 보고, (얼굴을) 붉혀 (어조사) 뉘우치고 부끄러워하여 (재물을) 쌓되 잘 흩어주고자 해야 한다.
126 素暴悍 欲其觀古人之心小黜己하며 齒弊舌存하며 含垢藏疾하며 尊賢容衆하고 苶然沮喪하여 若不勝衣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본래 사납고 강한 사람은 그 옛사람이 마음을 작게하고 자신을 억제하며, 이는 빠져도 혀는 남아 있으며, (남의) 오점을 감싸고 (남의) 과실을 감추며, 어진 사람을 높이고 대중을 포용함을 보고, 맥없이 (어조사) 꺾이고 잃어서 마치 옷을 이기지 못할 듯이 하고자 해야 한다.
127 素怯懦 欲其觀古人之達生委命하며 强毅正直하며 立言必信하며 求福不回하고 勃然奮厲하여 不可恐懼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본래 비겁하고 나약한 사람은 그 옛사람이 생사의 이치에 통달하여 천명에 (목숨을) 맡기며, 강하고 굳세고 바르고 곧으며, 말을 세움에 반드시 성실하게 하며, 복을 구함에 간사하지 않음을 보고, 발끈 (어조사) 떨치고 힘써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지 말고자 해야 한다.
128 又有讀數十卷書하고 便自高大하여 凌忽長하며 輕慢同列하여 疾之如讐敵하며 惡之如鴟梟하나니 如此 以學求益이어늘 今反自損하니 不如無學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또 몇십 권의 책을 읽음이 있어 곧 스스로 높고 큰 체하여 나이 많은 사람을 능멸하고 소홀히 여기며, 같은 항렬의 사람을 경멸하고 업신여겨 사람들이 (그를) 미워하기를 마치 원수와 적같이 여기며, (그를) 싫어하기를 마치 올빼미같이 여기니, 이와 같다면, 배움으로 유익함을 구하려는 것인데 지금 도리어 스스로 해치니, 배우지 않는 것만 못하다.”
129 伊川先生曰 大學 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 於今 可見古人爲學次第 獨賴此篇之存이요 而其他則未有如論孟必由是而學焉이면 則庶乎其不差矣리라 <小學, 嘉言第五>  
이천 선생이 말하였다. “대학은 공씨가 남긴 책인데 처음 배우는 사람이 덕에 들어가는 문이다. 지금에 옛사람이 학문하는 차례와 순서를 볼 수 있는 것은 유독 이편이 보존됨에 의뢰할 뿐이고, 그 나머지는 논어와 맹자만 한 것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이 반드시 이를 말미암아서 여기서 배우면 그 어긋나지 않음에 가까울 것이다.”
130 讀論語 但將弟子問處하여 便作己問하며 將聖人答處하여 便作今日耳聞하면 自然有得하리니 若能於論孟中 深求玩味하여 將來涵養하면 成甚生氣質하리라 <小學, 嘉言第五>  
논어를 읽는 사람은 다만 제자가 물은 곳을 가져와 곧 자기의 질문으로 삼으며, 성인이 답한 곳을 가져와 곧 오늘날에 귀로 들은 것으로 삼으면, 저절로 그러하게 얻음이 있을 것이니, 만약 논어와 맹자 가운데서 제대로 깊게 구하고 완상하고 음미하여 가져와서 무 젖고 기르면, 매우 생생한 기의 바탕을 이룰 것이다.
131 夫指引 師之功也 行有不至어든 從容規戒 朋友之任也 決意而往 則須用己力이라 難仰他人矣니라 <小學, 嘉言第五>  
무릇 지도하고 인도하는 것은 스승의 일이고, 행하여도 이르지 못함이 있으면 차분하게 바로잡고 경계하는 것은 벗과 친구의 임무이니, 뜻을 결단하여 나아감은 모름지기 자기의 힘을 쓰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을 믿기 어렵다.”
132 前輩嘗說後生 才性過人 不足畏 惟讀書尋思推究爲可畏耳라하고 又云讀書 只怕尋思라하니 盖義理精深이라 惟尋思用意라야 爲可以得之 鹵莽厭煩 決無有成之理니라 <小學, 嘉言第五>  
선배가 일찍이 말하였다. “뒤에 태어난 이 중에 재주와 바탕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두려워하기에 충분하지 않고, 오직 글을 읽음에 찾아 생각하고 미루어 궁구하는 사람이 두려워할 만한 이가 될 뿐이다.” 또 이르길, “글을 읽음에는 다만 찾아 생각함이 두렵다.” 대개 의와 이치는 정밀하고 깊으니, 오직 찾아 생각하고 뜻을 써야 그것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음이 되니, 어리석고 거칠어서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리가 있지 않다.
133 明道先生曰 君子敎人有序 先傳以小近者而後敎以大 非是先傳以近小而後不敎以遠大也니라 <小學, 嘉言第五>  
명도 선생이 말하였다. “군자가 사람을 가르침에 차례가 있다. 먼저 작은 것과 가까운 것으로 전해주고 뒤에 큰 것과 먼 것으로 가르치니, 이는 먼저 가깝고 작은 것으로 전하고 뒤에 멀고 큰 것으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34 方十餘歲러니 內則正獻公與申國夫人敎訓 如此之嚴하고 外則焦先生化導如此之篤이라 德器成就하여 大異衆人하니라 嘗言人生 內無賢父兄하며 外無嚴師友 而能有成少矣라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당시 공은 막 십 여세였는데, 안으로는 곧 정헌공과 신국부인의 가르침이 이와같이 엄하였고 밖으로는 곧 초 선생의 교화와 지도가 이와같이 독실하였다. 그러므로 공의 덕기가 성취되어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달랐다. 공은 일찍이 말하였다. “인생이 안으로 어진 부형이 없고 밖으로 엄한 스승과 벗이 없고, 그러면서도 성공함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135 唐陽城 爲國子司業하여 引諸生告之曰 凡學 所以學爲忠與孝者也 諸生 有久不省親아하니 明日 謁城還養二十輩러니 有三年不歸侍어늘 斥之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당나라 양성이 국자사업이 되어서 제생을 불러 (그들에게) 일러 말하였다. “무릇 배운다는 것은 충과 효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제생중에 오랫동안 부모를 살피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였다. 다음날 양성을 뵙고 돌아가 (부모를) 봉양하려는 사람이 20명이었다. 3년 동안 돌아가 (부모를) 모시지 않는 사람이 있자 (그를) 내쫓았다.
136 其在湖學 置經義齋治事齋하니 經義齋 擇疏通有器局하여 居之하고 治事齋 人各治一事하며 又兼一事하니 如治民治兵水利算數之類 其在太學 亦然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그가 호주의 학교에 있을 때 경의재와 치사재를 설치하였는데, 경의재라는 곳은 소통하고 또 기국이 있는 사람을 선발하여 (그곳에) 거처하게 하고 치사재라는 곳은 사람마다 각각 한 가지 일을 전공하고 또 한 가지 일을 겸하게 하였으니, 치민, 치병, 수리, 산수와 같은 종류였다. 그가 태학에 있을 때도 또한 그렇게 하였다.
137 其弟子散在四方 隨其人賢愚하여 皆循循雅飭하니 其言談擧止遇之 不問可知爲先生弟子 其學相言 稱先生이어든 不問可知爲胡公也러라 <小學, 善行第六>  
그 제자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는데, 그 사람의 뛰어남과 어리석음에 따라서 모두 순순하게 단아하고 삼갔다. 그 언어와 행동거지는 (그를) 만나보면 묻지 않더라도 선생의 제자가 임을 알 수 있었고, 그 배우는 사람들이 서로 말함에 선생이라고 칭하면 묻지 않아도 호공임을 알 수 있었다.
138 宜先禮命近侍賢儒及百執事하여 悉心推訪하여 有德業充備足爲師表하며 其次 有篤志好學材良行修어든 延聘敦遣하여 萃於京師하여 俾朝夕 相與講明正學이니라 <小學, 善行第六>  
마땅히 우선 가까이 모시는 어진 선비와 백집사를 예로 명하여 마음을 다해 찾아 물어서, 덕업이 넉넉히 갖추어져 충분히 사표가 될만한 사람이 있으며 그다음으로 뜻을 돈독히 하여 학문을 좋아하며 재질이 훌륭하고 행실이 닦여진 사람이 있거든, 초빙하여 (예를) 후하게 하여 (사람을) 보내어서(그들을) 서울에 모이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아침저녁으로 서로 더불어 올바른 학문을 강론하여 밝히도록 한다.
139 其學行 皆中於是爲成德이니 取材識明達可進於善하여 使日受其業하여 擇其學明德尊하여 爲太學之師하고 次以分敎天下之學이니라 <小學, 善行第六>  
그 학문과 행실이 모두 여기에 맞는 사람은 덕을 이룬 군자이니 재주와 학식이 밝고 통달하여 선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날마다 그 가르침을 받게 하고 (그중에서) 그 학문이 밝고 덕이 높은 사람을 뽑아 태학의 스승으로 삼고 그다음으로써 천하의 학교에 나누어 가르치게 한다.
140 擇士入學하되 升之州어든 州賓興於太學이어든 太學 聚而敎之하여 歲論其賢於朝니라 <小學, 善行第六>  
선비를 가려 뽑아 학교에 들여보낼 때 현학에서 주학으로 (그를) 올리거든 주학에서는 (그를) 손님으로 대우하여 태학에 천거한다. 태학에서는 (그들을) 모아서 가르쳐서 해마다 그 어진 사람과 능력 있는 사람을 조정에서 의논해야 한다.
141 凡選士之法 皆以性行端潔하여 居家孝悌하며 有廉恥禮讓하며 通明學業하며 曉達治道니라 <小學, 善行第六>  
무릇 선비를 뽑는 방법은 모두 성품과 행실이 단정하고 깨끗하여 집에 있을 때는 효도하고 공경하며, 염치와 예양이 있으며, 학업에 통달하여 밝으며, 다스리는 도리를 밝게 아는 사람으로서 한다.
142 制尊賢堂하여 以延天下道德之士하며 鐫解額하여 以去利誘하며 省繁文하여 以專委任하며 勵行檢하여 以厚風敎하고 及置待賓吏師齋하며 立觀光法하니 如是亦數十條러라 <小學, 善行第六>  
존현당을 지어서 천하 도덕이 있는 선비를 맞이하며, 정원수를 낮추어서 이익의 유혹을 없애며, 번문을 생략하여서 오로지 (교관에게 임무를) 위임하며, 행검을 장려하여서 풍속과 가르침을 후하게 하는 것 및 대빈재, 이사재를 설치하며, 관광법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이 또한 수십 조항이다.
143 藍田呂氏鄕約曰 凡同約 德業相勸하며 <小學, 善行第六>  
남전 여씨의 향약에서 말하였다. “무릇 함께 약속한 사람은 덕과 업을 서로 권면하며,
144 有善則書于籍하고 有過若違約 亦書之하여 三犯而行罰하되 不悛 絶之니라 <小學, 善行第六>  
선이 있으면 장부에 기록하고, 잘못이 있거나 또 약속을 위반한 사람을 또한 (그곳에) 기록하여 세 번 범하면 벌을 시행하되 고치지 않는 사람은 (그를) 제명한다.
145 病世之學捨近而趨遠하며 處下而闚高 所以輕自大而卒無得也시니라 <小學, 善行第六>  
세상의 배우는 사람들이 가까움을 버리고 멂에 나아가며, 아래에 있으면서 높음을 엿보아 이 때문에 가벼이 스스로 큰 체하여 끝내 얻음이 없을까 근심하였다.
146 江革 少失父하고 獨與母居러니 遭天下亂하여 盜賊 並起어늘 負母逃難하여 備經險阻하여 常採拾以爲養하더니 數遇賊하여 或劫欲將去어든 輒涕泣求哀하여 言有老母라하여 辭氣愿款하여 有足感動人 以是不忍犯之하며或乃指避兵之方하니 遂得俱全於難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강혁이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다만 (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천하의 난리를 만나 도적이 함께 일어나자 강혁은 어머니를 업고 난리를 피하였다. 험난함을 모두 겪으면서 항상 캐고 주워서 봉양하였다. 자주 도적을 만났는데 혹 협박하며 장차 (강혁을) 데려가려고 하면, 강혁이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가엽게 여겨주기를 바라면서 늙으신 어머니가 있다고 말하였는데, 말소리가 정성스럽고 간곡하여서 충분히 사람을 감동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도적은 이 때문에 차마 (그를) 범하지 못하였으며, 혹은 바로 병난을 피할 방법을 가리켜 보였다. 마침내 난리에서 모두 온전할 수 있었다.
147 旣而弟子求分財異居어늘 包不能止하여 乃中分其財할새 奴婢 引其老曰 與我共事久 不能使也라하며 田廬 取其荒頓曰 吾少時所理 意所戀也라하며 器物 取其朽敗曰 我素所服食이라 身口所安也라하더니 弟子數破其産이어늘 輒復賑給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이윽고 아우의 아들들이 재산을 나누어 따로 살기를 원하였다. 설포는 만류할 수 없어서 이에 그 재산을 절반으로 나누었는데 노비는 그 늙은 자를 끌어오며 말하기를 “나와 더불어 일을 함께 한 지 오래 되었다. 너희들이 부릴 수 없을 것이다.” 밭과 집은 그 황폐하고 기울어진 것을 취하며 말하기를 “내가 어린 시절에 다스리던 것이라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기물은 그 썩고 부서진 것을 취하며 말하기를 “내가 평소에 입고 먹던 것이라서 (나의) 몸과 입에 편안한 것이다." 하였다. 아우의 아들들이 자주 그 재산을 파산하였는데, 그때마다 다시 도와주었다.
148 裒痛父非命하여 於是 隱居敎授하여 三徵七辟 皆不就하고 廬于墓側하여 旦夕 常至墓所하여 拜跪하고 攀柏悲號하여 涕淚著樹하니 樹爲之枯하니라 讀詩 至哀哀父母生我劬勞하여는 未嘗不三復流涕하니 門人受業 並廢蓼莪之篇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왕부는 아버지가 비명에 죽은 것을 애통하게 여겼다. 이에 은거하며 (학생들을) 가르쳐서 세 번 (조정에서) 부르고 일곱 번 (군국에서) 불렀는데도 모두 나아가지 않고, 무덤 옆에 여막을 짓고 아침저녁으로 항상 묘소에 이르러 절하고서 무릎을 꿇고 잣나무를 부여잡고 슬프게 울어서 눈물이 나무를 적시니 나무가 (그것) 때문에 말라 죽었다. 시경을 읽다가 “슬프고 슬프도다, 부모님이여! 낳으시느라 나를 수고하고 수고하셨네"라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세 번 반복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다. 문인 중 수업을 받는 사람들은 함께 육아의 편을 가렸다.
149 朱壽昌 生七歲 父守雍이러니 出其母劉氏하여 嫁民間하니 母子不相知五十年이러니 壽昌 行四方하여 求之不已하여 飮食 罕御酒肉하고 與人言 輒流涕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주수창이 태어난 지 7년에 아버지가 옹주 수령이 되었는데 그 어머니 유씨를 내쫓아 민간에 시집보내니 어머니와 자식이 서로 알지 못한 것이 50년이었다. 주수창은 사방을 다니며 어머니 찾기를 그치지 않았다. 마시고 먹을 때 술과 고기를 먹는 것이 드물었고 남과 말할 때도 곧 눈물을 흘렸다.
150 壽昌 再爲郡守러니 至是하여 以母故 通判河中府하여 迎其同母弟妹以歸러니 居數歲 母卒이어늘 涕泣幾喪明이러라 拊其弟妹益篤하여 爲買田宅居之하고 其於宗族 尤盡恩意하여 嫁兄弟之孤女二人하며 葬其不能葬十餘喪하니 蓋其天性 如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수창이 두 차례 군수가 되었는데 이에 이르러 어머니를 이유로 하여 하중부에 통판이 되었는데, 그 동복형제를 맞이하여서 돌아왔다. (함께) 지낸 지 몇 년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눈물 흘리며 울다가 거의 실명하게 되었다. 그 아우와 누이를 사랑하기를 더욱 돈독하게 하여 (그들을) 위하여 밭과 집을 사서 (그곳에) 살게 하였으며 그 종족에 대해서도 더욱 은혜로운 마음을 다하였다. 형제의 고아가 된 딸 두 사람을 시집보냈으며 그 장례 치르지 못한 사람 십여 초상을 장례 지냈으니, 대개 그 천성이 이와 같았다.
151 方招文學儒러니 上曰 吾欲云云하노라 黯對曰 陛下內多欲而外施仁義하시니 奈何欲交唐虞之治乎잇가 怒變色而罷朝하니 公卿 皆爲黯懼하더니 退謂人曰 甚矣 汲黯之戇也 <小學, 善行第六>  
상이 막 문학 하는 유자를 불렀다. 상이 말하였다. “나는 이와같이 하고 싶다.” 급암이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안으로 욕심이 많으면서도 밖으로 인의를 베푼다. 어떻게 요순시대의 다스림을 본받고자 하는가?” 상께서 노하여 얼굴빛을 바꾸고서 조회를 그만두다 공경이 모두 급암을 위해 걱정하였다. 상이 물러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를, “심하구나, 급암의 어리석음이여!
152 多病하여 病且滿三月이어늘 常賜告하되 終不瘉러니 最後 嚴助爲請告한대 上曰 汲黯 何如人也 曰 使黯 任職居官이면 亡以瘉人이어니와이나 至其輔少主守成하여는 雖自謂賁育이라도 弗能奪詭리이다 上曰 然하다 古有社稷之臣이러니 至如汲黯하여는 近之矣로다 <小學, 善行第六>  
급암이 병이 많아 병이 장차 3개월에 이르렀다. 상이 일찍이 고(휴가)를 준 것이 여러 번이었는데, 끝내 낫지 않았다. 최후에는 엄조가 (그를) 위하여 고(휴가)를 청하였다. 상이 말하였다 “급암은 어떠한 사람인가?” (엄조가) 말하였다. “가령 급암이 직무를 맡아 관직에 있다면 이로써 다른 사람보다 낫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린 군주를 도와 왕업을 지키는 일에 이르러서는 비록 스스로 맹분, 하육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절개를) 빼앗거나 무너트릴 수 없을 것이다.” 상이 말하였다. “그렇다. 옛날에 사직의 신하가 있다고 하더니, 급암과 같은 사람에 이르러서는 (그것에) 가깝구나.”
153 退謂人曰 我不奉東宮指導 恐負翟黑子故也니라 <小學, 善行第六>  
고윤이 물러 나와 다른 사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동궁의 지도를 받들지 않은것은 책흑자를 저버릴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154 崔玄暐 母盧氏嘗誡玄暐曰 吾見姨兄屯田郞中辛玄馭하니 曰 兒子從宦 有人 來云貧乏不能存이라하면 是好消息이어니와 若聞貲貨充足하며 衣馬輕肥라하면 惡消息이라하니 吾嘗以爲確論이라하노라 <小學, 善行第六>  
최현위의 어머니 노씨가 일찍이 현위를 훈계하며 말하였다. 내가 이종 오빠인 둔전낭중 신현어를 보니, (이종 오빠가) 말하기를 “아들로서 벼슬에 종사하는 사람을 어떤 사람이 와서 ‘가난하고 궁핍하여 생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좋은 소식이다, 만약 듣기에 재화가 충족하며 옷과 말이 가볍고 살쪘다고 하면 이는 나쁜 소식이다.’ 라고 하니 나는 일찍이 이로써 확론이라고 여긴다." 하였다.
155 比見親表中 仕宦將錢物하여 上其父母어든 父母但知喜悅하고 竟不問此物 從何而來하나니 必是祿俸餘資인댄 誠亦善事어니와 如其非理所得이면 此與盜賊何別이리오 縱無大咎 獨不內愧於心가한대 玄暐遵奉敎誡하여 以淸謹으로 見稱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근래에 보건대, 친족과 외척 가운데 벼슬하는 사람이 돈과 선물을 가져다가 제 부모에게 올리면 부모는 단지 기뻐하고 즐거워할 줄만 알고 끝내 이 물건이 무엇으로부터 하여 왔는지 묻지 않는다. 반드시 이것이 녹봉의 나머지 재물이라면 진실로 또한 좋은 일이겠지만 만일 그 도리가 아닌 것으로 얻은 바라면 이것은 도적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비록 큰 잘못이 없더라도 홀로 안으로 마음에 부끄럽지 않겠는가?" 하였다. 현위가 가르침을 따르고 받들어서 청렴하고 근신함으로 칭찬을 받았다.
156 呂滎公 自少 官守處 未嘗干人擧薦하더니 其子舜從 守官會稽 人或譏其不求知어늘 舜從 對曰 勤於職事하고 其他 不敢不愼하노니 乃所以求知也니라 <小學, 善行第六>  
여형공이 어려서부터 벼슬을 맡은 곳에서 일찍이 남에게 천거를 구하지 않았다. 그 아들 순종이 회계 지역에 벼슬을 맡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혹 그가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는 것을 기롱하자, 순종이 대하여 말하기를 직책과 일에 부지런하고 그 나머지는 감히 삼가지 않은 적이 없으니 이것이 알아주기를 구하는 방법이다.
157 賊去後 家人 問何獨不懼 盧氏曰 人所以異於禽獸 以其有仁義也 隣里有急이라도 尙相赴救어든 況在於姑而可委棄乎 若萬一危禍 豈宜獨生이리오 <小學, 善行第六>  
도둑이 떠난 뒤에 집안 사람이 묻기를 “어찌 홀로 두려워하지 않았는가?” 노씨가 말하였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까닭은 그 인의가 있기 때문이다. 이웃과 마을에 위급함이 있더라도 오히려 서로 달려가 구제하는데 하물며 시어머니를 버릴 수 있음에 있어서야! 만약 만에 하나 위태롭거나 화를 당했다면 어찌 마땅히 홀로 살겠는가?”
158 唐奉天竇氏二女生長草野호되 幼有志操러니 永泰中 群盜數千人 剽掠其村落한대 二女皆有容色하여 年十九 年十六이러니 匿巖冗間이어늘 曳出之하여 驅迫以前할새 區壑谷深數百尺하여 其姊先曰 吾寧就死언정 義不受辱이라하고 卽投崖下而死어늘 盜方驚駭하더니 其妹繼之自投하여 折足破面流血이어늘 群盜乃捨之而去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당나라 봉천에 두씨의 두 딸이 초야에서 나고 자랐으나 어렸지만, 지조가 있었다. 영태 연간에 도적 떼 수천 명이 그 마을을 노략질하였는데 두 딸이 모두 용색이 있어 큰딸은 나이가 열아홉이고 작은딸은 나이가 열여섯이었다. 바위 굴 사이에 숨었는데 (그들을) 끌어내어서 몰아 핍박하여 앞세우고 갔다. 골짜기의 깊이가 수백 자인 곳에 가서 그 언니가 먼저 말하기를 “내 차라리 죽음으로 나아갈지언정 의리상 욕됨을 받지 않겠다." 하고 곧 벼랑 아래로 몸을 던져서 죽으니, 도적이 바야흐로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그 동생도 (그를) 따라 스스로 몸을 던져 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이 깨져서 피가 흘렀다. 도적 떼가 이에 (그를) 버리고 떠났다.
159 蘇瓊 除南淸河太守하니 有百姓乙普明兄弟爭田하여 積年不斷하여 各相援據하여 乃至百人이러니 召普明兄弟하여 諭之曰 天下 難得 兄弟 易求 田地 假令得田地라도 失兄弟心하면 如何오하고 因而下淚한대 諸證人 莫不灑泣하더니 普明兄弟叩頭하여 乞外更思하여 分異十年 遂還同住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소경이 남청하태수에 제수되었는데, 백성 중에 을보명 형제가 있었는데, 토지를 다투어 여러 해 동안 판결하지 못하여 각각 서로 증인을 끌어서 마침내 (증인이) 백 명에 이르렀다. 소경이 보명 형제를 불러 (그들을) 말하였다. 타이르며 천하에서 얻기 어려운 것은 형제이고 구하기 쉬운 것은 토지이다. 가령 토지를 얻었더라도 형제의 마음을 잃으면 어찌하겠는가?” 인하여서 눈물을 떨구자 여러 증인도 눈물 흘리며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보명 형제가 머리를 조아리고 밖으로 나가 다시 생각해볼 것을 청하였다. 나누어 따로 산 지 10년 만에 마침내 돌아와 같이 살았다.
160 包孝肅公 尹京時 民有自言하되 以白金百兩으로 寄我死矣어늘 予身子 하니 不肯受하나니 願召其子하여 予之하소서 召其子한대 辭曰 亡父未嘗以白金委人也라하고 兩人 相讓久之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효숙공 포승(包拯)이 경기를 다스렸을 때 백성 가운데 스스로 “백금 백 냥을 나에게 맡긴 사람이 죽었다. 아들에게 주었으나 받기를 바라지 않으니 원컨대 그의 아들을 불러서 그것을 주십시오"라는 내용으로 말하는 이가 있었다. 윤이 그의 아들을 불렀는데 〈아들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일찍이 백금을 남에게 맡긴 적이 없다.” 두 사람이 서로 그것을 오래도록 사양하였다.
161 呂滎公 聞之하고 曰 世人 喜言無好人三字 可謂自賊로다 古人 言人皆可以爲堯舜이라하니 蓋觀於此而知之로다 <小學, 善行第六>  
여형공이 (그것을) 듣고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없다’는 세 글자를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해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옛사람이 ‘사람은 모두 요임금과 순임금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였으니, 대개 여기에서 관찰하여 (그것을) 알 수 있다.”
162 子孫勝冠在側이어든 雖燕이나 必冠하여 申申如也하며 僮僕 訢訢如也하되 唯謹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자손 중에 관을 쓴 사람이 곁에 있으면 비록 한가할지라도 반드시 관을 쓰고 화평하였으며, 종들에게는 기쁘게 지내되 오직 삼갔다.
163 長子建 爲郞中令이요 少子慶 爲內史러니 老白首하되 萬石君 尙無恙하니라 每五日洗沐 歸謁하고 親入子舍하여 竊問侍하여 取親中裙厠牏하여 身自浣滌하여 復與侍하되 不敢令石君知之하여 以爲常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큰아들 건은 낭중령이 되고 작은아들 경은 내사가 되었는데, 건은 늙어서 머리가 희었으나 만석군은 여전히 병이 없었다. 5일마다 목욕하는 휴가를 받아 돌아와서 찾아뵙고 직접 딸린 방으로 들어와 가만히 모시는 사람에게 물어 어버이의 내의와 속적삼을 가져다가 몸소 스스로 빨아 다시 모시는 사람에게 주었다. 감히 만석군으로 하여금 (그것을) 알게 하지 않아 이로써 일정함으로 삼았다.
164 賢而多財則損其志하고 愚而多財則益其過하나니라 且夫富 衆之怨也 吾旣無以敎化子孫이라 不欲益其過而生怨하노라 又此金者 聖主所以惠養老臣也 樂與鄕黨宗族으로 共享其賜하여 以盡吾餘日하노니 不亦可乎 <小學, 善行第六>  
어질면서 재산이 많으면 그 뜻을 손상하고, 어리석으면서 재산이 많으면 그 과실을 더하게 된다. 또 무릇 부유한 사람은 여러 사람의 원망을 받는다. 내가 이미 이로써 자손을 교화시키지 못했으니, 그 과실을 보태어서 원망을 낳고자 하지 않는다. 또 이 금은 성주께서 이로써 노신을 은혜롭게 길러주려는 바이다. 그러므로 즐겁게 마을 종족과 함께 그 은사를 누리면서 이로써 나의 남은 날을 다하려는 것이 또한 옳지 않은가?”
165 姑姊妹姪 有孤嫠어든 雖疏遠이라도 必爲擇婿嫁之하되 皆用刻木粧奩하며 纈文絹으로 爲資裝하더니 常言必待資裝豐備 何如嫁不失時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고모와 자매와 조카딸 중에 고아나 과부된 사람이 있으면 비록 소원한 관계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위하여 사윗감을 가려서 (그를) 시집보냈는데, 모두 나무를 조각한 화장대와 매듭 무늬의 비단을 사용하여 혼수품으로 삼았다. (유공작은) 항상 말하기를, “반드시 혼수품이 풍요롭게 갖추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찌 시집가는 것이 때를 잃지 않는 것과 같겠는가?" 하였다.
166 溫公曰 國朝公卿 能守先法하여 久而不衰 唯故李相家 子孫 數世 至二百餘口로되 猶同居共爨하여 田園邸舍所收 及有官俸祿 皆聚之一庫하여 計口日給餉하며 婚姻喪葬所費皆有常數하여 分命子弟하여 掌其事하니 其規模 大抵出於翰林學士宗諤所制也니라 <小學, 善行第六>  
온공이 말하였다. 국조의 공경 중에 옛 법을 제대로 지켜서 오래되어도 쇠하지 않는 사람은 오직 돌아가신 이상의 집안뿐이다. 자손이 몇 대 동안 200여 식구에 이르렀는데, 여전히 함께 살면서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전원과 객점에서 거두어들이는 것과 및 관직이 있는 사람의 녹봉을 모두 한 창고에 (그것을) 모아서 식구를 헤아려 날마다 양식을 공급하였으며, 혼인과 초상과 장례에 쓰이는바 모두 일정한 액수가 있어서 자제에게 나누어 명하여 그 일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 규모는 대체로 한림학사 종악이 만든 것에서 나왔다.
167 問第五倫曰 公 有私乎 對曰 昔 人有與吾千里馬어늘 吾雖不受하나 每三公 有所選擧 心不能忘하되 而亦終不用也하며 吾兄子嘗病이어늘 一夜十往하되 退而安寢하고 吾子有疾이어늘 雖不省視하나 而竟夕不眠하니 若是 豈可謂無私乎리오 <小學, 善行第六>  
어떤 사람이 제오륜에게 물어 말하였다 “공에게도 사사로움이 있는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 사람 중에 나에게 천리마를 준 사람이 있었다. 내가 비록 받지는 않았으나 삼공이 천거한 바가 있을 때마다 마음에 잊을 수 없었으나, 또한 끝내 등용하지 않았다. 내 형의 아들이 일찍이 병이 들었는데 하룻밤에도 열 번을 갔으나 물러나서 편안하게 잠들었고 내 아들이 병에 걸려서는 비록 살펴보지는 않았으나 밤을 마치도록 잠들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것이 어찌 사사로움이 없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168 楊震 所擧荊州茂才王密 爲昌邑令이라 謁見할새 懷金十斤하여 以遺震한대 震曰 故人 知君이어늘 君不知故人 何也 密曰 莫夜 無知니이다 震曰 天知神知我知子知어늘 何謂無知오하니 愧而去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무진이 천거한 바 형주의 무재 왕밀이 창읍령이 되었다. (양진을) 알현할 적에, 금 10근을 품고서 양진에게 바치자, 양진이 말하였다. “고인(나)는 그대를 아는데, 그대는 고인을 알지 못하니 어째서인가?” 왕밀이 말하였다. “늦은 밤이어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양진이 말하였다. “하늘이 알고 신령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아는데, 어찌 알지 못한다고 하겠는가?” 왕밀이 부끄러워서 물러갔다.
169 常語人曰 大禹 聖人이시되 乃惜寸陰하시니 至於衆人하여는 當惜分陰이니 豈可逸遊荒醉하여 生無益於時하고 死無聞於後리오 是自棄也니라 諸參佐或以談戲廢事어든 乃命取其酒器蒱博之具하여 悉投之于江하며 吏將則加鞭扑曰 樗蒱 牧猪奴戲耳 老莊浮華 非先王之法言이니 不可行也 君子 當正其衣冠하며 攝其威儀 何有亂頭養望하여 自謂弘達耶리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항상 사람들에게 일러 말하였다. “대우는 성인인데도 이에 한 촌의 시간도 아꼈는데, 보통 사람에게 이르러서 마땅히 한 푼의 시간도 아껴야 하거늘, 어찌 편안하게 놀고 크게 취하여 살아서는 당시에 보탬이 없고, 죽어서는 후세에 알려짐이 없을 수 있는가? 이는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여러 참좌들이 혹 잡담으로 일을 폐할 때에는 이에 명을 내려 그 술그릇과 포박의 도구를 가져다가 모두 (그것을) 강에 던졌으며, 아전과 장수의 경우에는 편복을 가하며 말하기를 “저포라는 것은 돼지를 기르는 노비의 놀이일 뿐이고, 노장의 부화함은 선왕의 법언이 아니니 행해서는 안 된다. 군자는 마땅히 그 의관을 바로잡으며 그 위의를 잡아야 하니, 어찌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명망을 기른다고 하여 스스로 크게 통달하였다고 할 수 있는가?”
170 家法 在官하여 不奏祥瑞하며 不度僧道하며 不貸贓吏法하며 凡理藩府 急於濟貧恤孤하며 有水旱이어든 必先期假貸하며 廩軍食하되 必精豐하며 逋租 必貰免하며 館傳 必增飾하며 宴賓犒軍 必華盛하고 而交代之際 食儲帑藏 必盈溢於始至하며 境內 有孤貧衣纓家女及笄어든 皆爲選婿하여 出俸金爲資裝하여 嫁之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가법이 관직에 있으면서도 상서로움을 아뢰지 않으며 승려와 도사에게 도첩을 주지 않으며 장리에 대한 법을 느슨하게 하지 않았다. 무릇 번부를 다스릴 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고아를 구휼 하는 일을 급하게 여겼으며, 수해와 한재가 있으면 반드시 시기에 앞서 빌려주며, 군량을 나누어 줄 때 반드시 깨끗하고 풍족하게 하며, 체납된 세금을 반드시 면제해주며, 여관과 역참을 반드시 늘리고 꾸미며, 손님에게 잔치하고 군사를 위로하기를 반드시 화려하고 성대하게 하며, 교대할 때는 식량의 저축과 창고가 반드시 처음 (이곳에) 이르렀을 때보다 가득 넘치게 하며, 경내에 고아와 입기에도 부족한 사대부 집안의 딸로 비녀를 꽃을 나이에 이른 사람이 있으면 모두 남편감을 선택하여 봉급을 내어 혼수로 삼아 (그를) 시집보냈다.
171 其事上遇人 一以自信하여 不擇利害爲趨捨하고 其有所爲 必盡其方하여 曰 爲之自我 當如是 其成與否 有不在我 雖聖賢이라도 不能必이시니 吾豈苟哉리오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그 윗사람을 섬기고 사람을 대함에 한결같이 스스로 믿음으로서 하여, 이익과 해로움을 가려서 나아가거나 버리지 (생략) 않았으며, 그 하는 바가 있을 때 반드시 그 방법을 다하면서 말하였다. “나로부터 (생략) 하는 것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니, 그 성공함과 (성공하지) 못함은 나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이 있다. 비록 성현이라도 기필할 수 없으니, 내 어찌 구차히 하겠는가?”
172 司馬溫公 嘗言吾無過人어니와 但平生所爲 未嘗有不可對人言者耳라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사마온공이 일찍이 말하기를, “나는 남보다 나은 점이 없다. 다만 평생 행한 것이 일찍이 남을 대하여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지 않을 뿐이다." 하였다.
173 劉公 初甚易之러니 及退而自檃栝日之所行 與凡所言하니 自相掣肘矛盾多矣러니 力行七年而後成하니 自此 言行一致 表裏相應하여 遇事坦然하여 常有餘裕하니라 <小學, 善行第六>  
유공은 처음 (이것을) 매우 쉽게 여겼는데, 물러남에 미쳐서 스스로 하루에 행하는 것과 무릇 말한 것을 (법도에) 맞춰보니, 스스로 서로 제지당하고 모순되는 것이 많았다. 7년 동안 힘써 행한 이후에야 완성되었는데, 이로부터 말과 행실이 일치되었다. 밖과 안이 서로 응하여 일을 만남에 평탄하여 항상 여유가 있었다.
174 近日士大夫家 酒非內法이며 果非遠方珍異 食非多品이며 器皿 非滿案이어든 不敢會賓友하여 常數日營聚然後에야 敢發書하나니 苟或不然이면 人爭非之하여 以爲鄙吝이라 不隨俗奢靡鮮矣니라 <小學, 善行第六>  
근일 사대부 집안은 술은 내법이 아니며, 과일은 먼 지역의 진귀하고 특이한 것이 아니며, 음식은 여러 물품이 아니며, 그릇이 상에 가득하지 않으면 감히 빈객과 친구를 모으지 못하며, 항상 몇 날을 장만하여 모은 연후에 감히 (초청하는) 글을 낸다. 만일 혹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다투어 (그것을) 비난하여 이로써 비루하고 인색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속을 따라 사치하고 화려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175 嗟乎 風俗頹弊如是하니 居位 雖不能禁이나 忍助之乎 <小學, 善行第六>  
아! 풍속이 퇴폐한 것이 이와 같으니, 지위에 있는 사람이 비록 금지하지는 못할지라도 차마 (그것을) 조장하겠는가?”
176 溫公曰 吾家本寒族이라 世以淸白相承하고 吾性 不喜華靡하여 自爲乳兒時加以金銀華美之服이어든 輒羞赧棄去之하더니 年二十 忝科名하여 聞喜宴 獨不戴花하니 同年曰君賜 不可違也라하여늘 乃簪一花로라 平生 衣取蔽寒하고 食取充腹하며 亦不敢服垢弊하여 以矯俗干名이요 但順吾性而已로라 <小學, 善行第六>  
온공이 말하였다. “우리 집은 본래 한미한 가문이라서, 대대로 청백으로 서로 계승하였고, 나의 성품이 화려하고 사치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장자가 금, 은과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더해주면 그때마다 부끄럽고 얼굴 붉히며 (그것을) 버렸다. 나이 20살에 과거 급제의 명예[科名]를 더럽히자, 문희연에서 홀로 꽃을 꽂지 않으니 동년생이 말하기를 ‘임금이 주신 것이니, 어겨서는 안 된다.’ 하기에, 이에 한 송이의 꽃을 꽂았다. 평생 옷은 추위를 가릴 정도만 취하고 음식은 배를 채울 정도만 취하였으며, 또 감히 때가 끼고 해진 것을 입어서 풍속과 다르게 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았고, 다만 나의 성품을 따를 뿐이었다.”
177 其本 亂而末治 否矣 其所厚者이요 而其所薄者 未之有也니라 <四書독해첩경, 大學>  
그 근본이 어지럽고 말단이 다스려지는 사람은 없으며, 그 후(厚)하게 할 것에 박(薄)하게 하고, 그 박하게 할 것에 후하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아직 있지 않았다.
178 有子曰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 鮮矣 不好犯上이요 而好作亂 未之有也니라 <論語, 學而第一>  
유자가 말하였다. “그 사람됨이 효도하고 공경하면서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무니,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아직 그런 자는 있지 않았다.
179 子游問孝한대 子曰 今之孝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하여도 皆能有養이니 不敬이면 何以別乎리오 <四書독해첩경, 論語>  
자유(子游)가 효(孝)를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지금의 효라는 것은 단지 봉양을 잘하는 것 만을 이르니, 개와 말에 이르러도 모두 길러줌이 있을 수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180 子曰 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 未足與議也니라 <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181 子曰 知 樂水하고 樂山이니하고하며하고니라 <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낙천적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182 子曰 暴虎馮河하여 死而無悔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하며 好謀而成니라 <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고 강을 맨몸으로 건너서 죽어도 뉘우침이 없는 자와는 나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일에 만나면 두려워하고 〈일을〉 도모하기를 좋아하여 이뤄내는 자와 〈함께〉할 것이다.”
183 子曰 衣敝縕袍하여 與衣狐貉 立而不恥 其由也與인저 <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해진 솜옷을 입고서 갖옷을 입은 사람과 서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유(由, 자로)일 것이다.”
184 子曰 從我於陳蔡 皆不及門也로다 <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에서 나를 따르던 자들이 모두 문하(門下)에 미치지 못했구나.”
185 季康子問政於孔子한대 孔子對曰 政 正也 子帥以正이면 孰敢不正이리오 <四書독해첩경, 論語>  
계강자(季康子)가 공자(孔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정(政)이란 바로잡음이니, 그대가 바름으로써 솔선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하지 않겠습니까?”
186 子曰 有德 必有言이어니와 有言 不必有德이니라 必有勇이어니와 不必有仁이니라 <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좋은 말이 있지만, 좋은 말이 있는 사람이 반드시 덕(德)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맹함이 있지만, 용맹한 사람이 반드시 인(仁)이 있는 것은 아니다.”
187 子曰 君子道者三 我無能焉호니 不憂하고 不惑하고 不懼니라 <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의 도가 셋에서 나는 능한 것이 없으니,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 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188 孔子曰 益三友三友 友直하며 友諒하며 友多聞이면 益矣 友便辟하며 友善柔하며 友便佞이면 損矣니라 <四書독해첩경, 論語>  
공자가 말하였다. “유익한 것이 세 가지 친구이고 해로운 것이 세 가지 친구이니, 친구가 정직하며 친구가 성실하며 친구가 견문이 많으면 유익하고, 친구가 겉모습만 치중하며 친구가 아첨을 잘하며 친구가 말만 잘하면 해롭다.”
189 王曰何以利吾國고하시면 大夫曰何以利吾家오하며 士庶人曰何以利吾身고하여 上下交征利 而國 危矣리이다 萬乘之國 弑其君 必千乘之家 千乘之國 弑其君 必百乘之家 萬取千焉하며 千取百焉 不爲不多矣언마는 苟爲後義而先利 不奪하여는 不饜이니이다 <四書독해첩경, 孟子>  
왕이 ‘무엇으로써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말하시면, 대부들은 ‘무엇으로써 내 집을 이롭게 할까?’ 말하며, 사와 서인은 ‘무엇으로써 내 몸을 이롭게 할까?’ 말하여, 윗사람 아랫사람이 서로 이로움[利]을 취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 승(萬乘)의 나라에 제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천 승(千乘)의 집안이요, 천 승의 나라에 제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백 승(百乘)의 집안이니, 만에서 천을 취하고 천에서 백을 취함이 〈이미〉 적지 않지만, 만일 의를 뒤로하고 이를 우선한다면,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합니다.
190 未有仁而遺其親 未有義而後其君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어질면서 그 어버이를 버리는 자는 아직 있지 않았으며, 의로우면서 그 군주를 뒤로하는 자는 아직 있지 않았습니다.
191 五畝之宅 樹之以桑이면 五十可以衣帛矣 鷄豚狗彘之畜 無失其時 七十可以食肉矣 百畝之田 勿奪其時 數口之家 可以無飢矣 謹庠序之敎하여 申之以孝悌之義 頒白不負戴於道路矣리니 七十衣帛食肉하며 黎民 不飢不寒이요 然而不王未之有也니이다 <四書독해첩경, 孟子>  
5묘의 집에 거기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인 자가 그로써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 돼지, 개, 큰 돼지의 사육에 알맞은 때를 잃지 않으면, 칠십 된 자가 그로써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묘의 밭에 올바른 시기를 빼앗지 않으면 몇 식구의 집안에 그로써 굶주림이 없을 수 있으며, 상서의 가르침을 삼가서 효도와 공경의 의리로써 가르침을거듭한다면 반백인 자가 도로에서 짐을 지거나 머리에 이지 않을 것이니, 칠십 된 자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검은 머리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고, 그렇게 하고도 왕 노릇 하지 못하는 자는 아직 그런 자는 있지 않았다.
192 仲尼曰 始作俑 其無後乎인저하시니 爲其象人而用之也시니 如之何其使斯民飢而死也리잇고 <四書독해첩경, 孟子>  
중니(仲尼)께서 말하시길, ‘처음 나무인형을 만든 자는 아마 후손이 없을 것이다.’ 하였으니, 그것이 사람을 본떠서 장례에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들로 하여금 굶주려서 죽게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193 梁惠王 曰 晉國 天下 莫强焉 叟之所知也 及寡人之身하여 東敗於齊 長子死焉하고 西喪地於秦七百里하고 南辱於楚하니 寡人 恥之하여 願比死하여 一洒之하노니 如之何則可니잇고 <四書독해첩경, 孟子>  
양 땅의 혜왕이 말하였다. “진나라가 천하에서 그보다 강한 나라가 없는 것은 노인장이 아는 바입니다. 과인의 몸에 이르러, 동으로는 제나라에 패하여 맏아들이 거기에서 죽었고, 서로는 진나라에 칠백 리의 땅을 잃었고, 남으로는 초나라에 욕을 당하였으니, 과인이 이를 부끄러워하여 죽은 자들을 위하여 한번 그들에게 설욕하기를 바라니, 이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194 王曰 然하다 誠有百姓로다마는 齊國 雖褊小 吾何愛一牛리오 卽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 以羊易之也하니이다 <四書독해첩경, 孟子>  
왕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백성이 참으로 있습니다! 제(齊)나라가 비록 좁고 작으나, 내 어찌 한 마리 소를 아끼겠습니까? 다만, 그 울부짖는 것이 마치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로 끌려가는 것 같아서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소를 양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
195 曰 有復於王曰 吾力足以擧百鈞이로되 而不足以擧一羽하며 明足以察秋毫之末이로되 而不見輿薪이라하면 則王 許之乎잇가 曰 否 恩足以及禽獸로되 而功不至於百姓 獨何與잇고 然則一羽之不擧 爲不用力焉이며 輿薪之不見 爲不用明焉이며 百姓之不見保 爲不用恩焉이니 王之不王 不爲也언정 非不能也니이다 <四書독해첩경, 孟子>  
〈맹자가〉 말하였다. “왕에게 보고하는 자가 있어 말하길, ‘제 힘으로는 백 균을 들기 충분하지만, 힘으로 깃털 하나를 들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시력으로는 가을 털의 끝을 살피는 데에 충분하지만, 수레에 〈실린〉 땔감을 보지 못합니다’ 한다면, 왕은 이 말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지금 은혜로써 금수에 미치기에 충분하지만,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며, 수레의 땔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백성이 보호받지 않는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잘 다스리지 못함은 하지 않아서일지언정, 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196 曰 不爲 與不能之形 何以異잇고 曰 挾太山하여 以超北海 語人曰我不能이라하면 誠不能也어니와 爲長者折枝 語人曰我不能이라하면 不爲也언정 非不能也 王之不王 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 王之不王 是折枝之類也니이다 <四書독해첩경, 孟子>  
〈왕이〉 말하였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모습이 어떤 것이 다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태산을 끼고서, 북해를 뛰어넘는 것을 사람에게 말하길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할 수 없는 것이고, 어른을 위하여 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길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태산을 끼고서 북해를 뛰어넘는 유형이 아닙니다. 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가지를 꺾는 유형입니다.”
197 老吾老하여 以及人之老하며 幼吾幼하여 以及人之幼 天下 可運於掌이니 詩云 刑于寡妻하여 至于兄弟하여 以御于家邦이라하니 言擧斯心하여 加諸彼而已 推恩이면 足以保四海 不推恩이면 無以保妻子 古之人 所以大過人者 無他焉이라 善推其所爲而已矣 恩足以及禽獸로되 而功不至於百姓 獨何與니잇고 <四書독해첩경, 孟子>  
나의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서 남의 노인에게 미치며, 내 아이를 아이로 대해서 남의 아이에게 미치면, 천하를 손바닥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경》 〈사제(思齊)〉에 이르길, ‘내 처를 본으로 삼아서, 형제에게 이르러서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 하니, 이 마음을 들어서 저것에 베풀 뿐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어 보면 그것으로써 사해를 보전할 수 있고, 은혜를 미루어 보지 않으면 처자식조차 보호할 수 없으니, 옛날의 사람이 남보다 크게 뛰어넘는 까닭은 다른 까닭이 없습니다. 그 해야 할 것을 잘 미루어 갔을 뿐입니다. 지금 〈왕의〉 은혜가 충분하게 금수에게 미치면서도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198 王曰 吾惛하여 不能進於是矣로니 願夫子 輔吾志하여 明以敎我하소서 我雖不敏이나 請嘗試之호리이다 曰 無恒産而有恒心 惟士爲能이어니와 若民則無恒産이면 因無恒心이니 苟無恒心이면 放辟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罔民也 焉有仁人在位하여 罔民 而可爲也리오 <四書독해첩경, 孟子>  
왕이 말하였다. “내가 어두워서 이에 나아갈 수 없으니, 바라건데 부자는 나의 뜻을 도와 분명하게 나를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한번 그것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항산(恒産)이 없는데에도 항심(恒産)이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거니와, 만약 일반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해 항심이 없으니, 만약 항심이 없다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부정하고 사치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죄에 빠트리는 데에 이른 뒤에 그들을 좇아서 벌하면, 이것은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199 曰 若是其大乎잇가 曰 民 猶以爲小也니이다 曰 寡人之囿 方四十里로되 猶以爲大 何也잇고 曰 文王之囿 方七十里 芻蕘往焉하며 雉兎往焉하여 與民同之하시니 民以爲小 不亦宜乎잇가 <四書독해첩경, 孟子>  
〈제선왕이〉 말하였다. “이와 같이 그것이 큽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백성이 오히려 그것을 작다고 생각합니다.” 〈제선왕이〉 말하였다. “과인의 동산은 사방 사십리인데 백성이 오히려 그것을 크다고 생각함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문왕의 동산은 사방 칠십리인데, 꼴 베고 나무 하는 사람이 그곳으로 가며, 꿩 잡고 토끼 잡는 사람이 그곳으로 가서, 백성과 그것을 함께하였으니, 백성이 그것을 작다고 생각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200 孟子謂齊宣王曰 王之臣 有託其妻子於其友而之楚遊 比其反也하여 則凍餒其妻子어든 則如之何잇고 王曰 棄之니이다 <四書독해첩경, 孟子>  
맹자가 제선왕에게 일러 말하였다. “왕의 신하 가운데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자신의 친구에게 맡기고 초(楚)나라에 가서 논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돌아옴에 미쳐서는 〈친구가〉 제 아내와 자식을 얼고 굶주리게 하였다면 그를 어찌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친구를 버리겠습니다.”
201 夏后殷周之盛 地未有過千里하니 而齊有其地矣 鷄鳴狗吠 相聞而達乎四境하니 而齊有其民矣 地不改辟矣 民不改聚矣라도 行仁政而王이면 莫之能禦也리라 <四書독해첩경, 孟子>  
하후와 은과 주의 전성기에 땅이 천 리를 넘은 나라가 있지 않았네. 그런데 제나라가 그 땅을 소유했으며,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널리 퍼져나가서 사방 국경에 도달하여 제나라는 그 백성을 소유했다네. 땅을 다시 개척하지 않으며 백성을 다시 모으지 않아도 어진 정사를 행하고서 왕 노릇 한다면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이네.
202 且王者之不作 未有疏於此時者也하며 民之憔悴於虐政 未有甚於此時者也하니 易爲食이며 易爲飮이니라 <四書독해첩경, 孟子>  
또 왕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 이때보다 드문 적이 없었으며, 백성이 학정에 시달린 것이 이때보다 심한 적이 없었네. 〈지금 같은 때는〉 굶주린 자에겐 먹을 것이 되기 쉽고 목마른 자에겐 마실 것이 되기 쉽다네.
203 必有事焉而勿正하여 心勿忘하며 勿助長也하여 無若宋人然이어다 宋人 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러니 芒芒然歸하여 謂其人曰 今日 病矣로라 予助苗長矣로라하여늘 其子趨而往視之하니 苗則槁矣러라 天下之不助苗長寡矣 以爲無益而舍之 不耘苗 助之長 揠苗 非徒無益이라 而又害之니라 <四書독해첩경, 孟子>  
〈호연지기를 기르려면〉 반드시 의를 일삼음이 있더라도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 말며, 조장하지 말아서 마치 송나라 사람처럼 하지 말아야 하네. 송나라 사람 중에 제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근심하여 새싹을 뽑아 올린 자가 있었네. 허겁지겁 〈집에〉 돌아와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피곤하오. 내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왔소.’ 하자, 그의 아들이 달려가서 그 싹을 보았더니 싹이 말라 있었다네. 〈이처럼〉 천하에 싹이 자라는 것을 돕지 않는 자가 적다네. 이로움이 없다고 여겨서 싹을 버려두는 자는 싹을 김매지 않는 자이고, 싹이 자라기를 돕는 자는 싹을 뽑은 자이니, 다만 이로움이 없을 뿐 아니고 또 싹을 해치는 것이네.
204 三里之城 七里之郭 環而攻之而不勝하나니 夫環而攻之 必有得天時者矣언마는 然而不勝 是天時不如地利也니라 <四書독해첩경, 孟子>  
3리 〈둘레〉의 내성(內城)과 7리 〈둘레〉의 외성(外城)을 포위하여 공격해도 이기지 못하는데, 대체로 성곽을 포위하여 공격할 적에 반드시 천시(天時)를 얻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이는 천시가 지리(地利)만 못해서이다.
205 世衰道微하여 邪說暴行 有作하여 臣弑其君有之하며 子弑其父有之하니라 <四書독해첩경, 孟子>  
세상이 쇠퇴하고 도리가 미약하여,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실이 또 일어나서, 신하로서 제 임금을 시해하는 자, 그런 자가 있었고, 자식으로서 제 아버지를 시해하는 자, 그런 자가 있었네.
206 欲爲君인댄 盡君道 欲爲臣인댄 盡臣道 皆法堯舜而已矣 不以舜之所以事堯 事君이면 不敬其君 不以堯之所以治民으로 治民이면 賊其民니라 <四書독해첩경, 孟子>  
임금이 되고자 한다면 임금의 도를 다할 것이고, 신하가 되고자 한다면 신하의 도를 다할 것이니, 두 가지는 모두 요순(堯舜)을 본받을 뿐이다. 순이 요임금을 섬기던 방법으로 임금을 섬기지 않으면 그 임금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고,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리던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 백성을 해치는 것이다.
207 孟子曰 天下有道에는 小德 役大德하며 小賢 役大賢하고 天下無道에는 小役大하며 弱役强하나니 斯二 天也 順天하고 逆天이니라 <四書독해첩경, 孟子>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작은 덕이 큰 덕에 부림을 받고, 작은 현명함이 큰 현명함에 부림을 받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작은 것이 큰 것에 부림을 받고, 약한 것이 강한 것에 부림을 받으니, 이 두 가지는 천명이다. 천명을 따르는 사람은 보존되고, 천명을 거스르는 사람은 망한다.
208 孟子曰 事孰爲大 事親 爲大하니라 守孰爲大 守身 爲大하니라 不失其身而能事其親 吾聞之矣 失其身而能事其親 吾未之聞也로라 <四書독해첩경, 孟子>  
맹자가 말하였다. “섬김에는 무엇이 큰 것이 되는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된다. 지킴에는 무엇이 큰 것이 되는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된다. 제 자신을 잃지 않고서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들어보았고, 제 자신을 잃고서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다.
209 事親 若曾子 可也니라 <四書독해첩경, 孟子>  
어버이 섬기는 것을 증자처럼 하는 것이 옳다.”
210 孟子曰 大人 不失其赤子之心니라 <四書독해첩경, 孟子>  
맹자가 말하였다. “대인은 그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211 人也 親親 爲大하고 宜也 尊賢 爲大하니 親親之殺 尊賢之等 禮所生也니이다 <四書독해첩경, 中庸>  
인(仁)은 사람다움이니 친족을 친애하는 것이 큰 것이고, 의(義)는 마땅함이니 현명한 자를 높이는 것이 큰 것입니다. 친척을 친애하는 차등과 현명한 자를 높이는 등급이 예(禮)가 생겨난 까닭입니다.
212 天之道也 誠之 人之道也 不勉而中하며 不思而得하여 從容中道하나니 聖人也 誠之 擇善而固執之者也니라 <中庸, 中庸章句>  
성실한 것[誠]은 하늘의 도이고, 성실하려는 것(誠之)은사람의 도이니, 성실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들어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얻어져서, 종용히 도에 맞으니, 성인이요, 성실하려는 사람은 선을 택하여, 굳게 붙잡으려는 자이다.
213 其本 亂而末治 否矣 其所厚者이요 而其所薄者하리 未之有也니라 <大學, 大學 經>  
그 근본이 어지럽고 말단이 다스려지는 사람은 없으며, 그 후(厚)하게 할 것에 박(薄)하게 하고, 그 박하게 할 것에 후하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아직 있지 않았다.
214 是故 言悖而出 亦悖而入하고 貨悖而入 亦悖而出이니라 <大學, 傳>  
이 때문에 말이 어긋나게 나간 것은 또한 어긋나게 들어오고, 재물이 어긋나게 들어온 것은 또한 어긋나게 나간다.
215 生財有大道하니 生之하고 食之하며 爲之하고 用之하면 則財恒足矣리라 <大學, 傳>  
재물을 생산함에는 큰 방법이 있으니, 재물을 생산하는 자는 많고 그것을 먹는 자는 적으며, 재물을 만드는 자는 빠르고 그것을 쓰는 자가 느리면, 재물은 항상 풍족할 것이다.
216 以財發身하고 不仁 以身發財니라 <大學, 傳>  
어진 사람은 재물을 써서 몸을 일으키고, 어질지 않은 사람은 몸을 써서 재물을 일으킨다.
217 有子曰 其爲人也孝弟 而好犯上 鮮矣 不好犯上이요 而好作亂 未之有也니라 <論語, 學而第一>  
유자(有子)가 말하였다. “그 사람됨[爲人]이 효도하고 공경하면서[孝弟] 윗사람 범하기[犯上]를 좋아하는 자는 드무니, 윗사람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난 일으키기[作亂]를 좋아하는 자는, 그런 자는 있지 않았다.
218 子游問孝한대 子曰 今之孝 是謂能養이니 至於犬馬하여도 皆能有養이니 不敬이면 何以別乎리오 <論語, 爲政第二>  
자유(子游)가 효(孝)를 묻자, 공자가 말하였다. “지금의 효라는 것은 단지 봉양을 잘하는 것 만을 이르니, 개와 말에 이르러도 모두 길러줌이 있을 수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는가?”
219 曰 禮後乎인저 子曰 起予 商也로다 始可與言詩已矣로다 <論語, 八佾第三>  
〈자하가〉 말하였다. “〈형식인〉 예를 뒤로한다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나를 흥기 시키는 자는 상(자하)이로구나! 비로소 함께 시(詩)를 말할 만하구나.”
220 子曰 不仁 不可以久處約이며 不可以長處樂이니 安仁하고 利仁이니라 <論語, 里仁第四>  
공자가 말하였다. “불인자(不仁者)는 〈불인함〉 때문에 오래도록 빈곤 속에 살아갈 수 없고, 〈불인함〉 때문에 오래도록 안락함 속에 살아갈 수 없으니, 인자(仁者)는 인(仁)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智者)는 인(仁)을 이롭게 여긴다.”
221 子曰 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 未足與議也니라 <論語, 里仁第四>  
공자가 말하였다.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할 수 없다.”
222 子曰 知 樂水하고 樂山이니하고하며하고니라 <論語, 雍也第六>  
공자가 말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동적이고 어진 사람은 정적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낙천적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223 子曰 暴虎馮河하여 死而無悔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하며 好謀而成니라 <論語, 述而第七>  
공자가 말하였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고 강을 맨몸으로 건너서 죽어도 뉘우침이 없는 자와는 나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일에 만나면 두려워하고 〈일을〉 도모하기를 좋아하여 이뤄내는 자와 〈함께〉할 것이다.”
224 子曰 苗而不秀 有矣夫 秀而不實 有矣夫인저 <論語, 子罕第九>  
공자가 말하였다. “싹이 났으나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이 있으며, 꽃은 피었으나 열매 맺지 못하는 것이 있구나!”
225 子曰 衣敝縕袍하여 與衣狐貉 立而不恥 其由也與인저 <論語, 子罕第九>  
공자가 말하였다. “해진 솜옷을 입고서 갖옷을 입은 사람과 서 있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유(由, 자로)일 것이다.”
226 子曰 知 不惑하고 不憂하고 不懼니라 <論語, 子罕第九>  
공자가 말하였다. “지혜로운 사람[知者]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仁者]은 근심하지 않고, 용맹한 사람[勇者]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227 子曰 從我於陳蔡 皆不及門也로다 <論語, 先進第十一>  
공자가 말하였다.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에서 나를 따르던 자들이 모두 문하(門下)에 미치지 못했구나.”
228 子曰 片言 可以折獄 其由也與인저 <論語, 顔淵第十二>  
공자가 말하였다. “짧은 말로 송사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자로(子路)일 것이다.
229 季康子問政於孔子한대 孔子對曰 政 正也 子帥以正이면 孰敢不正이리오 <論語, 顔淵第十二>  
계강자(季康子)가 공자(孔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정(政)이란 바로잡음이니, 그대가 바름으로써 솔선한다면 누가 감히 바르게 하지 않겠습니까?”
230 子曰 有德 必有言이어니와 有言 不必有德이니라 必有勇이어니와 不必有仁이니라 <論語, 憲問第十四>  
공자가 말하였다. “덕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좋은 말이 있지만, 좋은 말이 있는 사람이 반드시 덕(德)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맹함이 있지만, 용맹한 사람이 반드시 인(仁)이 있는 것은 아니다.”
231 子曰 君子道者三 我無能焉호니 不憂하고 不惑하고 不懼니라 <論語, 憲問第十四>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의 도가 셋에서 나는 능한 것이 없으니,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 되지 않고,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232 子曰 可與言而不與之言이면 失人이요 不可與言而與之言이면 失言이니 不失人하며 亦不失言이니라 <論語, 衛靈公第十五>  
공자가 말하였다. “더불어 말할 만한데도 그와 더불어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못한데 그 사람과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 않고 또한 말을 잃지 않는다.”
233 孔子曰 益三友三友 友直하며 友諒하며 友多聞이면 益矣 友便辟하며 友善柔하며 友便佞이면 損矣니라 <論語, 季氏第十六>  
공자가 말하였다. “유익한 것이 세 가지 친구이고 해로운 것이 세 가지 친구이니, 친구가 정직하며 친구가 성실하며 친구가 견문이 많으면 유익하고, 친구가 겉모습만 치중하며 친구가 아첨을 잘하며 친구가 말만 잘하면 해롭다.”
234 孔子曰 生而知之 上也 學而知之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이면 民斯爲下矣니라 <論語, 季氏第十六>  
공자가 말하였다. “태어나면서 도를 아는 사람은 최상이고, 배워서 도를 아는 사람은 그 다음이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도를 배우는 사람은 다시 그 다음이니, 어려움을 겪고도 배우지 못하면 백성은 이에 최하가 된다.”
235 楚狂接輿 歌而過孔子曰 鳳兮鳳兮 何德之衰 不可諫이어니와 猶可追 已而已而어다 今之從政 殆而니라 <論語, 微子第十八>  
초(楚)나라 광인 접여(接輿)가 노래하며 공자를 지나가며 말하였다.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 덕이 쇠하였는가? 지난 일은 간할 수 없거니와 오는 일은 오히려 따라잡을 수 있으니, 그만두자! 그만두자! 지금의 정치에 종사하는 자는 위태롭구나!”
236 王曰何以利吾國고하시면 大夫曰何以利吾家오하며 士庶人曰何以利吾身고하여 上下交征利 而國 危矣리이다 萬乘之國 弑其君 必千乘之家 千乘之國 弑其君 必百乘之家 萬取千焉하며 千取百焉 不爲不多矣언마는 苟爲後義而先利 不奪하여는 不饜이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왕이 ‘무엇으로써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말하시면, 대부들은 ‘무엇으로써 내 집을 이롭게 할까?’ 말하며, 사와 서인은 ‘무엇으로써 내 몸을 이롭게 할까?’ 말하여, 윗사람 아랫사람이 서로 이로움[利]을 취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 승(萬乘)의 나라에 제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천 승(千乘)의 집안이요, 천 승의 나라에 제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백 승(百乘)의 집안이니, 만에서 천을 취하고 천에서 백을 취함이 〈이미〉 적지 않지만, 만일 의를 뒤로하고 이를 우선한다면,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합니다.
237 未有仁而遺其親 未有義而後其君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어질면서 그 어버이를 버리는 자는 아직 있지 않았으며, 의로우면서 그 군주를 뒤로하는 자는 아직 있지 않았습니다.
238 孟子見梁惠王하신대 立於沼上이러니 顧鴻雁麋鹿曰 賢 亦樂此乎잇가 <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양 땅의 혜왕을 만나신대, 왕이 못 가에 서 있더니, 큰 기러기와 작은 기러기, 고라니와 사슴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현자(賢者)도 이것을 즐깁니까?”
239 孟子對曰 賢而後 樂此 不賢 雖有此 不樂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현자인 뒤에야 이것을 즐기니, 어질지 못한 자는 비록 이것을 가졌더라도 즐기지 못합니다.
240 察鄰國之政컨대 無如寡人之用心로되 <孟子, 梁惠王上>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면, 과인과 같은 마음 쓰는 자가 없는데도,
241 五畝之宅 樹之以桑이면 五十可以衣帛矣 鷄豚狗彘之畜 無失其時 七十可以食肉矣 百畝之田 勿奪其時 數口之家 可以無飢矣 謹庠序之敎하여 申之以孝悌之義 頒白不負戴於道路矣리니 七十衣帛食肉하며 黎民 不飢不寒이요 然而不王未之有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5묘의 집에 거기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인 자가 그로써 비단옷을 입을 수 있으며, 닭, 돼지, 개, 큰 돼지의 사육에 알맞은 때를 잃지 않으면, 칠십 된 자가 그로써 고기를 먹을 수 있으며, 백묘의 밭에 올바른 시기를 빼앗지 않으면 몇 식구의 집안에 그로써 굶주림이 없을 수 있으며, 상서의 가르침을 삼가서 효도와 공경의 의리로써 그것을 거듭한다면 반백인 자가 도로에서 짐을 지거나 머리에 이지 않을 것이니, 칠십 된 자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검은 머리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고, 그렇게 하고도 왕 노릇 하지 못하는 자는 아직 그런 자는 있지 않았다.
242 仲尼曰 始作俑 其無後乎인저하시니 爲其象人而用之也시니 如之何其使斯民飢而死也리잇고 <孟子, 梁惠王上>  
중니(仲尼)께서 말하시길, ‘처음 나무인형을 만든 자는 아마 후손이 없을 것이다.’ 하였으니, 그것이 사람을 본떠서 장례에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들로 하여금 굶주려서 죽게 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243 梁惠王 曰 晉國 天下 莫强焉 叟之所知也 及寡人之身하여 東敗於齊 長子死焉하고 西喪地於秦七百里하고 南辱於楚하니 寡人 恥之하여 願比死하여 一洒之하노니 如之何則可니잇고 <孟子, 梁惠王上>  
양 땅의 혜왕이 말하였다. “진나라가 천하에서 그보다 강한 나라가 없는 것은 노인장이 아는 바입니다. 과인의 몸에 이르러, 동으로는 제나라에 패하여 맏아들이 거기에서 죽었고, 서로는 진나라에 칠백 리의 땅을 잃었고, 남으로는 초나라에 욕을 당하였으니, 과인이 이를 부끄러워하여 죽은 자들을 위하여 한번 그들에게 설욕하기를 바라니, 이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244 王如施仁政於民하사 省刑罰하시며 薄稅斂하시면 深耕易耨하고以暇日 修其孝悌忠信하여 入以事其父兄하며 出以事其長上하리니 可使制梃하여 以撻秦楚之堅甲利兵矣리이다 <孟子, 梁惠王上>  
왕이 만약 백성에게 어진 정치를 베풀어 형벌을 줄이고 세금 거두기를 적게 한다면, 깊이 밭 갈고 잘 김매고, 장성한 자는 한가한 날로써 자신의 효와 제와 충과 신을 닦아, 들어가서 제 부모와 형제를 섬기며, 나가서 제 어른을 섬기고, 몽둥이를 만들어서 진나라와 초나라의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병기를 매질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45 對曰 不嗜殺人 能一之라호라 <孟子, 梁惠王上>  
대답하여 말하길, ‘사람 죽이기 좋아하지 않는 자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246 對曰 天下莫不與也 知夫苗乎잇가 七八月之間 旱則苗槁矣라가 油然作雲하여 沛然下雨 則苗浡然興之矣나니 其如是 孰能禦之리오 今夫天下之人牧 未有不嗜殺人 如有不嗜殺人 則天下之民 皆引領而望之矣리니 誠如是也 民歸之 由水之就下하리니 沛然 誰能禦之리오호라 <孟子, 梁惠王上>  
대답하여 말하길, ‘세상에 돌아가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왕은 저 이삭을 아십니까? 칠팔월의 사이에 가물면 이삭이 마르다가, 하늘이 뭉게뭉게 구름을 만들어, 쏴아! 비를 내리면, 이삭이 쑥쑥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이와 같다면, 누가 싹이 자람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저 천하의 임금 중에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없으니, 만약 사람 죽이기를 즐기지 않는 자가 있다면, 세상의 백성이 모두 목을 빼고 그 임금을 바라볼 것이니, 참으로 이와 같다면, 백성이 그 임금에게 돌아가는 것이 물이 아래로 흘러감과 같을 것이니, 성대한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247 孟子對曰 仲尼之徒 無道桓文之事 是以 後世 無傳焉하니 未之聞也호니 無以則王乎인저 <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중니(仲尼)의 무리는 〈제나라〉 환공, 〈진나라〉 문공의 일을 말하는 자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후세에 그들에 대해 전해진 것이 없으니 신이 아직 그 일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만두라 하지 않으시면 왕도(王道)를 〈말하〉 겠습니다.”
248 王曰 然하다 誠有百姓로다마는 齊國 雖褊小 吾何愛一牛리오 卽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 以羊易之也하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왕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백성이 참으로 있습니다! 제(齊)나라가 비록 좁고 작으나, 내 어찌 한 마리 소를 아끼겠습니까? 다만, 그 울부짖는 것이 마치 죄가 없으면서도 사지로 끌려가는 것 같아서 차마 〈내버려두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소를 양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
249 曰 有復於王曰 吾力足以擧百鈞이로되 而不足以擧一羽하며 明足以察秋毫之末이로되 而不見輿薪이라하면 則王 許之乎잇가 曰 否 恩足以及禽獸로되 而功不至於百姓 獨何與잇고 然則一羽之不擧 爲不用力焉이며 輿薪之不見 爲不用明焉이며 百姓之不見保 爲不用恩焉이니 王之不王 不爲也언정 非不能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맹자가〉 말하였다. “왕에게 보고하는 자가 있어 말하길, ‘제 힘으로는 백 균을 들기 충분하지만, 힘으로 깃털 하나를 들기에 충분하지 못합니다. 시력으로는 가을 털의 끝을 살피는 데에 충분하지만, 수레에 〈실린〉 땔감을 보지 못합니다’ 한다면, 왕은 이 말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지금 은혜로써 금수에 미치기에 충분하지만,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깃털 하나를 들지 못하는 것은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며, 수레의 땔감을 보지 못하는 것은 시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백성이 보호받지 않는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이 잘 다스리지 못함은 하지 않아서일지언정, 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250 曰 不爲 與不能之形 何以異잇고 曰 挾太山하여 以超北海 語人曰我不能이라하면 誠不能也어니와 爲長者折枝 語人曰我不能이라하면 不爲也언정 非不能也 王之不王 非挾太山以超北海之類也 王之不王 是折枝之類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왕이〉 말하였다. “하지 않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모습이 어떤 것이 다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태산을 끼고서, 북해를 뛰어넘는 것을 사람에게 말하길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할 수 없는 것이고, 어른을 위하여 가지를 꺾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길 ‘나는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이지, 할 수 없는 것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태산을 끼고서 북해를 뛰어넘는 유형이 아닙니다. 왕이 왕 노릇 하지 못하는 것은 가지를 꺾는 유형입니다.”
251 老吾老하여 以及人之老하며 幼吾幼하여 以及人之幼 天下 可運於掌이니 詩云 刑于寡妻하여 至于兄弟하여 以御于家邦이라하니 言擧斯心하여 加諸彼而已 推恩이면 足以保四海 不推恩이면 無以保妻子 古之人 所以大過人者 無他焉이라 善推其所爲而已矣 恩足以及禽獸로되 而功不至於百姓 獨何與니잇고 <孟子, 梁惠王上>  
나의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서 남의 노인에게 미치며, 내 아이를 아이로 대해서 남의 아이에게 미치면, 천하를 손바닥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경》 〈사제(思齊)〉에 이르길, ‘내 처를 본으로 삼아서, 형제에게 이르러서 집과 나라를 다스린다.’ 하니, 이 마음을 들어서 저것에 베풀 뿐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어 보면 그것으로써 사해를 보전할 수 있고, 은혜를 미루어 보지 않으면 처자식조차 보호할 수 없으니, 옛날의 사람이 남보다 크게 뛰어넘는 까닭은 다른 까닭이 없습니다. 그 해야 할 것을 잘 미루어 갔을 뿐입니다. 지금 〈왕의〉 은혜가 충분하게 금수에게 미치면서도 공이 백성에게 이르지 않는 것은 유독 어째서입니까?
252 王曰 若是其甚與잇가 曰 殆有甚焉하니 緣木求魚 雖不得魚 無後災어니와 以若所爲 求若所欲이면 盡心力而爲之라도 後必有災하리이다 曰 可得聞與잇가 曰 鄒人 與楚人戰이면 則王 以爲孰勝이니잇고 曰 楚人하리이다 曰 然則小固不可以敵大 寡固不可以敵衆이며 弱固不可以敵强이니 海內之地 方千里 齊集有其一하니 以一服八 何以異於鄒敵楚哉리잇고 蓋亦反其本矣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왕이 말하였다. “이처럼 그 일이 심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대게 이보다 심한 것이 있으니,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비록 물고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뒤의 재앙이 없지만, 이 같은 하는 바로써 이 같은 바라는 바를 구한다면, 마음과 힘을 다해서 그 일을 하더라도 뒤에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재앙을〉 얻어들을 수 있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추(鄒)나라 사람과 초(楚 )나라 사람이 싸우면, 왕은 누가 이길 거라 여기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초나라 사람이 이길 것입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작은 것은 진실로 큰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적은 것은 진실로 많은 것을 대적할 수 없고, 약한 것은 진실로 강한 것을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해 내의 땅에서, 사방 천 리인 것 아홉인데, 제(齊)나라 땅을 모으면 그 〈아홉에서〉 하나를 가졌습니다. 하나로써 여덟을 복종시키는 것이 추나라가 초나라를 대적하는 것과 어떤 것이 다르겠습니까? 대개 또한 그 근본을 돌이켜야 합니다.”
253 今王 發政施仁하사 使天下仕 皆欲立於王之朝하며 皆欲耕於王之野하며 商賈 皆欲藏於王之市하며 行旅 皆欲出於王之途하시면 天下之欲疾其君者 皆欲赴愬於王하리니 其如是 孰能禦之리잇고 <孟子, 梁惠王上>  
지금 왕이 정령(政令)을 발표하고 인정(仁政)을 베풀어서, 천하의 벼슬아치로 하여금 모두 왕의 조정에서 서고자 하게 하고, 밭 가는 이〈로 하여금〉 모두 왕의 들에서 밭을 갈고자 하〈게 하며〉, 상인들〈로 하여금〉 모두 왕의 저자에서 보관하고자 하〈게 하며〉, 여행하는 나그네〈로 하여금〉 모두 왕의 길에 나오고자 하〈게 하며〉, 천하의 자기 군주를 미워하고자 하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왕에게 달려가 하소연하고자 하〈게 할〉 것입니다. 참으로 이와 같다면 누가 〈몰려드는 백성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254 王曰 吾惛하여 不能進於是矣로니 願夫子 輔吾志하여 明以敎我하소서 我雖不敏이나 請嘗試之호리이다 曰 無恒産而有恒心 惟士爲能이어니와 若民則無恒産이면 因無恒心이니 苟無恒心이면 放辟邪侈 無不爲已 及陷於罪然後 從而刑之 罔民也 焉有仁人在位하여 罔民 而可爲也리오 <孟子, 梁惠王上>  
왕이 말하였다. “내가 어두워서 이에 나아갈 수 없으니, 바라건데 부자는 나의 뜻을 도와 분명하게 나를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나, 한번 그것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항산(恒産)이 없는데에도 항심(恒産)이 있는 자는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거니와, 만약 일반 백성은 항산이 없으면, 그로 인해 항심이 없으니, 만약 항심이 없다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부정하고 사치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죄에 빠트리는 데에 이른 뒤에 그들을 좇아서 벌하면, 이것은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255 五畝之宅 樹之以桑이면 五十者可以衣帛矣 鷄豚狗彘之畜 無失其時 七十者可以食肉矣 百畝之田 勿奪其時 八口之家 可以無飢矣 謹庠序之敎하여 申之以孝悌之義 頒白不負戴於道路矣리니衣帛食肉하며 黎民 不飢不寒이요 然而不王 未之有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上>  
5묘의 집(거기)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 된 자가 비단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닭, 돼지, 개, 큰 돼지의 사육에 알맞은 때를 잃지 않으면 칠십 된 자가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백묘의 밭을 〈경작하는 농부에게〉 농번기를 빼앗지 않으면 여덟 식구의 집안에 굶주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상서의 가르침을 삼가 시행하고 효도와 공경의 의리로써 시행한 것을 거듭한다면 반백인 자가 도로에서 짐을 지거나 머리에 이지 않을 것입니다. 늙은이가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백성들이 굶주리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게 된다면, 그렇게 하고서도 왕 노릇 하지 못하는 자는 그런 자는 아직 있지 않았습니다.”
256 曰 若是其大乎잇가 曰 民 猶以爲小也니이다 曰 寡人之囿 方四十里로되 猶以爲大 何也잇고 曰 文王之囿 方七十里 芻蕘往焉하며 雉兎往焉하여 與民同之하시니 民以爲小 不亦宜乎잇가 <孟子, 梁惠王下>  
〈제선왕이〉 말하였다. “이와 같이 그것이 큽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백성이 오히려 그것을 작다고 생각합니다.” 〈제선왕이〉 말하였다. “과인의 동산은 사방 사십리인데 백성이 오히려 그것을 크다고 생각함은 어째서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문왕의 동산은 사방 칠십리인데, 꼴 베고 나무 하는 사람이 그곳으로 가며, 꿩 잡고 토끼 잡는 사람이 그곳으로 가서, 백성과 그것을 함께하였으니, 백성이 그것을 작다고 생각함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257 始至於境하여 問國之大禁然後 敢入하니 臣聞郊關之內 有囿方四十里 殺其麋鹿 如殺人之罪라하니 則是方四十里 爲阱於國中이니 民以爲大 不亦宜乎잇가 <孟子, 梁惠王下>  
신이 처음 국경에 이르러 나라가 크게 금하는 일을 물은 뒤에 감히 들어왔습니다. 신이 들으니, ‘교관의 안에 동산이 사방 사십 리가 있는데, 그 고라니와 사슴을 죽인 사람을 살인한 죄와 같이한다’ 하니, 그렇다면 이는 사방 사십 리로 나라 안에 함정을 만든 것이니, 백성이 그것을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258 齊宣王 問曰 交鄰國 有道乎잇가 孟子對曰 有하니 惟仁라야 爲能以大事小하나니 是故 事葛하시고 文王 事昆夷하시니이다 惟智라야 爲能以小事大하나니 大王 事獯鬻하시고 句踐 事吳하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제(齊)나라 선왕이 물어 말하였다. “이웃 나라와 사귐에 방법이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있습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큰 나라로서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이런 까닭으로 탕(湯)왕이 갈(葛)나라를 섬겼고, 문왕(文王)이 곤이(昆夷)를 섬겼습니다.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으니 때문에 태왕(大王)이 훈육(獯鬻)을 섬겼고, 구천(句踐)이 오(吳)나라를 섬겼습니다.”
259 以大事小 樂天 以小事大 畏天 樂天 保天下하고 畏天 保其國이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큰 나라로 작은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의 이치를 즐거워하는 자이고,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의 이치를 두려워하는 자이니, 하늘의 이치를 즐거워하는 자는 천하를 보전하고, 하늘의 이치를 두려워하는 자는 그 나라를 보전합니다.
260 對曰 王請無好小勇하소서 夫撫劍疾視曰 彼惡敢當我哉리오하나니 匹夫之勇이라 敵一人 王請大之하소서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대답하였다. “왕은 작은 용기[小勇]를 좋아하지 마십시오. 대체로 칼을 어루만지며 〈상대를〉 노려 보며 말하기를 ‘네놈이 어찌 감히 나를 당하겠느냐?’ 한다면, 이것은 필부(匹夫)의 용기라서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왕은 용기를 키우십시오.”
261 不得而非其上 非也 爲民上而不與民同樂 亦非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즐거움을〉 얻지 못하여 그 윗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며, 백성의 윗사람이 되어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지 않는 것도 잘못입니다.
262 樂民之樂 民亦樂其樂하고 憂民之憂 民亦憂其憂하나니 樂以天下하며 憂以天下하고 然而不王 未之有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백성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백성도 그의 즐거움을 즐거워하고, 백성의 근심을 근심하는 사람은 백성도 그의 근심을 근심합니다. 천하로써 즐거워하며 천하로써 근심하고 그렇게 하고도 왕 노릇하지 못한 사람은 그런 사람은 있지 않았습니다.
263 晏子對曰 善哉 問也 天子適諸侯曰巡狩 巡狩 巡所守也 諸侯朝於天子曰述職이니 述職 述所職也 無非事 春省耕而補不足하며 秋省斂而助不給하나니 夏諺曰 吾王 不遊 吾何以休 吾王 不豫 吾何以助리오 一遊一豫 爲諸侯度라하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안자(晏子)가 대답하길 ‘좋습니다. 질문이. 천자가 제후에게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 하니, 순수란 지키는 곳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제후가 천자(天子)에게 조회하는 것을 술직(述職)이라 하니 술직이란 맡은 것을 보고하는 것이니 〈순수와 술직이〉 정사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임금이〉 봄에는 김매는 것을 살펴서 부족한 것을 보충해주고, 가을에는 수확량을 살펴서 넉넉하지 않은 곳을 도와줍니다. 하(夏)나라 속담에 이르길, 「우리 왕이 놀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으로 쉬겠는가? 우리 왕이 즐기지 않으면 우리가 무엇으로 도움받겠는가? 한번 놀고 한번 즐기는 것이 제후의 법도가 된다.」 하였습니다.
264 今也 不然하여 師行而糧食하여弗食하며弗息하여 睊睊胥讒하여 民乃作慝이어늘 方命虐民하여 飮食若流하여 流連荒亡하여 爲諸侯憂하나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오늘날은 그렇지 않아서 군대가 지나가면 보관된 양식을 먹어 굶주린 자는 먹지 못하며 수고로운 자는 쉬지 못하여 흘겨보며 서로 비방하여 백성이 마침내 나쁜 짓을 해도 왕명을 거슬러 백성을 학대하며, 마시고 먹기를 물 쓰듯이 하여 뱃놀이, 사냥, 음주에 빠져 제후의 근심이 됩니다.
265 景公하여 大戒於國하고 出舍於郊하여 於是 始興發하여 補不足하고 召大師하여 曰 爲我하여 作君臣相說之樂하라하니 蓋徵招角招是也 其詩曰 畜君何尤리오하니 畜君 好君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경공(景公)이 〈안자의 말에〉 기뻐하여 나라에 크게 명을 내리고 교외(郊外)에 나가 머물면서 이에 처음으로 창고를 열어 부족한 이들에게 보충해주고 태사(太師)를 불러 말하길, ‘나를 위하여 군신이 서로 기뻐하는 음악을 만들라.’ 하였으니, 대개 치소(徵招)와 각소(角招)가 이것입니다. 그 시에 이르길 ‘임금을 막는 것이 무슨 잘못이랴.’ 하니, 임금을 막는 것은 임금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266 孟子對曰 夫明堂之堂也 王欲行王政이면 則勿毁之矣소서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무릇 명당(明堂)이란 것은 천자의 집이니, 임금께서 왕도정치를 행하고자 하신다면 명당을 부수지 마소서.”
267 王曰 王政 可得聞與잇가 對曰 昔者文王之治岐也 九一하며 世祿하며 關市 譏而不征하며 澤梁 無禁하며 罪人 不孥하시니 老而無妻曰鰥이요 老而無夫曰寡 老而無子曰獨이요 幼而無父曰孤 此四 天下之窮民而無告者어늘 文王 發政施仁하사되 必先斯四하시니 詩云 哿矣富人이어니와 哀此煢獨이라하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왕이 말하였다. “왕도정치를 얻어 들을 수 있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문왕이 기주를 다스릴 적에 밭 가는 사람〈의 세금을〉 구 분의 일로 하고, 벼슬 하는 사람은 대대로 녹을 주었고, 관문과 시장은 기찰하되 세금을 징수하지 않았으며, 못에서 고기잡이를 금하지 않았으며, 사람을 벌을 주되 처자에 〈미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것을 환(鰥)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것을 과(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는 것을 독(獨)이라 하고, 어려서 아버지가 없는 것을 고(孤)라 하니 이 넷은 천하의 곤궁한 백성들이면서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들입니다. 문왕이 정사를 펴고 인을 베풀 적에 반드시 이 네 사람들을 먼저하였습니다. 《시경》 〈정월(正月)〉에 이르길 ‘부유한 사람은 괜찮으나 이 곤궁하고 외로운 이들이 가엽구나.’ 하였습니다.”
268 王曰 善哉 言乎 曰 王如善之시면 則何爲不行이시니잇고 王曰 寡人 有疾하니 寡人 好貨하노이다 對曰 昔者 公劉好貨하더시니 詩云 乃積乃倉이어늘 乃裹餱糧 于橐于囊이요 思戢用光하여 弓矢斯張하여 干戈戚揚으로 爰方啓行이라하니有積倉하며有裹糧也然後에야 可以爰方啓行이니 王如好貨어시든 與百姓同之하시면 於王 何有리잇고 <孟子, 梁惠王下>  
왕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선생의〉 말씀이.” 〈맹자가〉 말하였다. “왕께서 만약 제 말을 좋게 여긴다면 어찌하여 행하지 않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과인은 병통이 있으니 과인은 재물을 좋아합니다.”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공류(公劉)가 재물을 좋아하였는데, 시경에 이르길 ‘(생략)〈많은 곡식을〉 노적하고 (생략)창고에 쌓았네. (생략)마른 식량을 싸되, 전대에 〈담고〉 자루에 〈담았네.〉 〈백성을〉 편안케 하여 이로써 〈나라를〉 빛낼 것을 생각하여 활과 화살을 둘러 매고 방패와 창, 도끼와 큰도끼를 〈들고〉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났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집에 있는 자는 노적과 창고〈의 곡식이〉 있고, 행군하는 자는 꾸려 놓은 양식이 있은 뒤에야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왕이 만일 재물을 좋아하시되 백성과 그것을 함께한다면 왕 노릇함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269 孟子謂齊宣王曰 王之臣 有託其妻子於其友而之楚遊 比其反也하여 則凍餒其妻子어든 則如之何잇고 王曰 棄之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제선왕에게 일러 말하였다. “왕의 신하 가운데 자신의 아내와 자식을 자신의 친구에게 맡기고 초(楚)나라에 가서 논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돌아옴에 미쳐서는 〈친구가〉 제 아내와 자식을 얼고 굶주리게 하였다면 그를 어찌하겠습니까?” 왕이 말하였다. “친구를 버리겠습니다.”
270 孟子對曰 取之而燕民悅이어든 則取之하소서 古之人 有行之하니 武王 是也니이다 取之而燕民不悅이어든 則勿取하소서 古之人 有行之하니 文王 是也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대답하였다. “연(燕)나라를 차지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면 연나라를 차지하십시오. 옛날의 사람 중에 이런 일을 행한 사람이 있었으니 무왕(武王)이 그 사람입니다. 연나라를 차지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으면 차지하지 마십시오. 옛날의 사람 중에 이런 일을 행한 사람이 있었으니 문왕(文王)이 그 사람입니다.
271 齊人 伐燕取之한대 諸侯將謀救燕이러니 宣王曰 諸侯多謀伐寡人者하니 何以待之잇고 孟子對曰 臣聞 七十里 爲政於天下者 是也 未聞以千里畏人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제나라 사람이 연나라를 쳐서 땅을 차지하자, 제후들이 장차 연나라를 구원할 것을 도모하였는데, 선왕(宣王)이 말하였다. “제후들 중에 과인을 정벌하고자 모의하는 자들이 많으니, 무엇으로 이 일에 대응해야 합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신(臣)은 〈사방〉 칠십 리로 천하에 정치를 한 사람을 들었는데, 탕(臣)임금이 그런 사람입니다. 〈사방〉 천 리로 남을 두려워한 사람은 듣지 못했습니다.”
272 書曰 湯 一征 自葛始하신대 天下信之하여 東面而征 西夷怨하며 南面而征 北狄怨하여 曰 奚爲後我오하여 望之호되 若大旱之望雲霓也하여 歸市不止하며不變이어늘 誅其君而弔其民하신대 若時雨降이라 大悅하니 書曰 徯我后하다소니 后來하시니 其蘇라하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서경》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이르길, ‘탕(湯)임금이 첫 정벌을 갈(葛)나라로 부터 시작하자, 천하가 탕을 믿어서 동쪽을 향하여 정벌함에 서쪽 오랑캐가 원망하며, 남쪽을 향하여 정벌함에 북쪽 오랑캐가 원망하여 말하길, 「어찌 하여 우리를 뒤에 〈정벌하〉는가?」’ 하니, 백성이 정벌을 바라되 마치 큰 가뭄에 무지개를 바라듯이 하였습니다. 저자로 돌아가는 자가 멈추지 않으며 밭가는 자가 변하지 않았는데 〈탕임금이〉 그 〈포악한〉 임금을 주벌하고 그 백성을 위로하는데, 마치 단비가 내리듯하여 백성이 크게 기뻐했다.’ 하였습니다. 《서경》에 이르길, ‘우리 임금을 기다렸는데 임금이 오시니 아마 소생하겠구나.’ 하였습니다.
273 鄒與魯鬨이러니 穆公 問曰 吾有司死 三十三人이로되 而民 莫之死也하니 誅之則不可勝誅 不誅則疾視其長上之死而不救하니 如之何則可也잇고 <孟子, 梁惠王下>  
추(鄒)나라가 노(魯)나라와 싸우자, 목공(穆公)이 물어 말하였다. “나의 유사(有司) 중에 죽은 자가 삼십 삽인인데, 백성은 죽은 사람이 없으니, 그들을 죽인다면 이루 다 죽일 수 없고 죽이지 않는다면 그 윗사람의 죽음을 곁눈질하면서도 구원하지 않았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274 孟子對曰 凶年饑歲 君之民 老弱 轉乎溝壑하고 散而之四方 幾千人矣 而君之倉廩實하며 府庫充이어늘 有司莫以告하니 上慢而殘下也 曾子曰 戒之戒之하라 出乎爾 反乎爾라하시니 夫民 今而後 得反之也로소니 君無尤焉하소서 <孟子, 梁惠王下>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흉년으로 기근이 든 해에 임금의 백성 중에 노약자는 도랑과 골짜기에서 구르고 장성한 자는 흩어져서 사방으로 간 사람들이 몇천 명입니다. 그런데 임금의 창름에 〈곡식이〉 가득하고 부고는 〈무기와 재물이〉 가득한데, 유사(有司)가 이를 고하는 이가 없었으니, 이는 윗사람이 태만하여 아랫사람을 해친 것입니다. 증자(曾子)가 말하길, ‘경계하고 경계하하라. 너에게서 나온 것이 너에게 돌아갈 것이다.’ 하니, 저 백성들이 지금에야 그것을 되갚을 수 있었으니 임금은 그들을 탓하지 마소서.
275 苟爲善이면 後世子孫 必有王리니 君子創業垂統하여 爲可繼也 若夫成功則天也 君如彼 何哉리오 彊爲善而已矣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왕께서〉 만일 선을 행하신다면, 후세의 자손 중에 반드시 왕 노릇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군자가 왕업을 세워서 왕통을 물려주는 것이 〈후세가〉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성공의 여부에 대해서는 하늘의 뜻이니, 임금께서 저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힘써 선을 행할 뿐입니다.”
276 滕文公 問曰 滕 小國也 竭力以事大國이라도 則不得免焉이로소니 如之何則可잇고 孟子對曰 昔者 大王 居邠하실새 狄人 侵之어늘 事之以皮幣라도 不得免焉하며 事之以犬馬라도 不得免焉하며 事之以珠玉이라도 不得免焉하여 乃屬其耆老而告之曰 狄人之所欲者 吾土地也 吾聞之也호니 君子 不以其所以養人者 害人이라하니 二三子 何患乎無君이리오 我將去之호리라하시고 去邠하시고 踰梁山하사 邑于岐山之下하여 居焉하신대 邠人曰 仁人也 不可失也라하고 從之如歸市하니이다 <孟子, 梁惠王下>  
등(滕)나라 문공(文公)이 물어 말하였다. “등은 작은 나라입니다. 힘을 다하여 대국을 섬기더라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태왕(太王)이 빈 땅에 살 적에 적인(狄人)이 그곳을 침략하자, 가죽과 비단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개와 말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주옥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 기로(耆老)들을 불러모아서 그들에게 고하여 말하길, ‘적인이 원하는 것은 나의 토지이다. 내 이에 관하여 들으니, 「군자는 그 사람을 기르는 것 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니 그대들은 어찌 임금이 없을까를 근심하는가? 나는 장차 빈 땅을 떠나겠소.’ 하고 빈 땅을 떠나 양산(耆老)을 넘어 기산(岐山)의 아래에 도읍을 정하여 그곳에 거주하셨습니다. 빈땅 사람들이 말하길, ‘어진 사람이다. 잃어서는 안된다.’ 하고 태왕을 따르는 자가 마치 저자로 모이는 듯 〈많았습니다〉.
277 君請擇於斯二하소서 <孟子, 梁惠王下>  
임금께서는 이 두가지 경우에서 택하십시오.”
278 魯平公 將出할새 嬖人臧倉請曰 他日 君出이면 則必命有司所之러시니 乘輿已駕矣로되 有司未知所之하니 敢請하노이다 公曰 將見孟子호리라 曰 何哉잇고 君所爲輕身하여 以先於匹夫者 以爲賢乎잇가 禮義 由賢이어늘 而孟子之後喪 踰前喪하니 君無見焉하소서 公曰 諾 <孟子, 梁惠王下>  
노(魯)나라 평공(平公)이 나가려 할 적에 폐인(嬖人) 장창(臧倉)이란 자가 물었다. “다른 날 군께서 나가실 때는 반드시 유사에게 갈 곳을 알리시더니, 오늘은 수레에 이미 멍에를 메었는데도 유사가 아직 가실 곳을 알지 못하니 감히 〈가실 곳을〉 묻습니다.” 평공이 말하였다. “맹자를 만나보려 한다네.” 〈장창이〉 말하였다. “어째서입니까? 군께서 자신을 낮추기 위하여 필부인 〈맹자〉에게 먼저 〈예를 표하는〉 까닭은 〈그가〉 어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까? 예와 의는 현자로부터 나온다는데, 맹자의 후상(어머니 상)이 전상(아버지 상)보다 성대하였으니, 임금께서는 맹자를 만나지 마소서.” 평공이 말하였다. “알았네.”
279 樂正子見孟子曰 克 告於君하니 爲來見也러시니 嬖人有臧倉沮君이라 是以不果來也하시니이다 曰 行或使之 止或尼之 行止 非人所能也 吾之不遇魯侯 天也 臧氏之子 焉能使予 不遇哉리오 <孟子, 梁惠王下>  
악정자(樂正子)가 맹자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임금께 고하니, 임금이 와서 〈선생님을〉 만나뵙고자 하였는데, 폐인(嬖人)에 장창(臧倉)이란 자가 있어 임금을 막았습니다. 임금이 이 때문에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가려한 것이 누군가 가도록 시켜서였으며 그만 둔 것도 누군가 가는 것을 막아서였지만 가려는 것과 그만 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네. 내가 노나라 제후(평공)를 만나지 못한 것은 천명이니, 장씨란 사람이 어찌 나로 하여금 〈노 평공을〉 만나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280 夏后殷周之盛 地未有過千里하니 而齊有其地矣 鷄鳴狗吠 相聞而達乎四境하니 而齊有其民矣 地不改辟矣 民不改聚矣라도 行仁政而王이면 莫之能禦也리라 <孟子, 公孫丑上>  
하후와 은과 주의 전성기에 땅이 천 리를 넘은 나라가 있지 않았네. 그런데 제나라가 그 땅을 소유했으며,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널리 퍼져나가서 사방 국경에 도달하여 제나라는 그 백성을 소유했다네. 땅을 다시 개척하지 않으며 백성을 다시 모으지 않아도 어진 정사를 행하고서 왕 노릇 한다면 이것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이네.
281 且王者之不作 未有疏於此時者也하며 民之憔悴於虐政 未有甚於此時者也하니 易爲食이며 易爲飮이니라 <孟子, 公孫丑上>  
또 왕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 이때보다 드문 적이 없었으며, 백성이 학정에 시달린 것이 이때보다 심한 적이 없었네. 〈지금 같은 때는〉 굶주린 자에겐 먹을 것이 되기 쉽고 목마른 자에겐 마실 것이 되기 쉽다네.
282 孟施舍之所養勇也 曰 視不勝호되 猶勝也로니 量敵而後進하며 慮勝而後會하면 畏三軍 舍豈能爲必勝哉리오 能無懼而已矣라하니라 <孟子, 公孫丑上>  
맹시사(孟施舍)가 용기를 기른 방법은 말하길 ‘〈나는〉 이기지 못할 자를 보되 이길 것 처럼 한다. 적을 헤아린 뒤에 나아가고 이길 것을 고려한 뒤에 싸운다면 이는 〈적의〉 삼군(三軍)을 두려워하는 자이다.’ 하였으니, 맹시사가 어찌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능히 두려움이 없었을 뿐이네.
283 必有事焉而勿正하여 心勿忘하며 勿助長也하여 無若宋人然이어다 宋人 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러니 芒芒然歸하여 謂其人曰 今日 病矣로라 予助苗長矣로라하여늘 其子趨而往視之하니 苗則槁矣러라 天下之不助苗長寡矣 以爲無益而舍之 不耘苗 助之長 揠苗 非徒無益이라 而又害之니라 <孟子, 公孫丑上>  
〈호연지기를 기르려면〉 반드시 의를 일삼음이 있더라도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 말며, 조장하지 말아서 마치 송나라 사람처럼 하지 말아야 하네. 송나라 사람 중에 제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근심하여 새싹을 뽑아 올린 자가 있었네. 허겁지겁 〈집에〉 돌아와서 자기 집안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 피곤하오. 내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왔소.’ 하자, 그의 아들이 달려가서 그 싹을 보았더니 싹이 말라 있었다네. 〈이처럼〉 천하에 싹이 자라는 것을 돕지 않는 자가 적다네. 이로움이 없다고 여겨서 싹을 버려두는 자는 싹을 김매지 않는 자이고, 싹이 자라기를 돕는 자는 싹을 뽑은 자이니, 다만 이로움이 없을 뿐 아니고 또 싹을 해치는 것이네.
284 孟子曰 以力假仁 霸必有大國이요 以德行仁이니 王不待大 湯以七十里하시고 文王以百里하시니라 <孟子, 公孫丑上>  
맹자가 말하였다. “힘으로 인(仁)을 가장하는 것은 패도(霸道)이니 패자는 반드시 큰 나라를 소유하여야 하고, 덕(德)으로 인을 행하는 것은 왕도(王道)이니 왕자(王者)는 큰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탕왕은 칠십 리로 〈왕자가 되고〉 문왕은 백 리로 〈왕자가 되었다.〉
285 如惡之인댄 莫如貴德而尊士在位하며在職하여 國家閒暇어든 及是時하여 明其政刑이면 雖大國이라도 必畏之矣리라 <孟子, 公孫丑上>  
만약 치욕을 당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덕(德)을 귀하게 여기고 선비를 높이는 것만 한 것이 없다. 어진 자가 〈높은〉 자리에 있으며 능력이 있는 자가 〈알맞은〉 직위에 있어서 나라가 평안한데, 이때에 미쳐 그 정사와 형벌까지 분명하게 한다면, 비록 대국이라도 반드시 그런 나라를 두려워할 것이다.
286 信能行此五者 則鄰國之民 仰之若父母矣리니 率其子弟하여 攻其父母 自生民以來 未有能濟 如此則無敵於天下하리니 無敵於天下 天吏也 然而不王 未之有也니라 <孟子, 公孫丑上>  
진실로 이 다섯 가지를 행할 수 있다면 이웃 나라의 백성들이 우러러 보기를 마치 부모와 같이할 것이니, 그 자제를 거느리고 그 부모를 공격하는 것은 백성이 생겨난 이래로 해낼 수 있는 자가 있지 않았으니, 이와 같다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면 천명을 받은 관리이니, 그렇게 하고도 왕 노릇하지 못한 자는 그런 자는 있지 않았다.”
287 如射하니 正己而後發하여 發而不中이라도 不怨勝己 反求諸己而已矣니라 <孟子, 公孫丑上>  
인을 〈실천하는〉 것은 활쏘기와 같다. 활 쏘는 자는 자신을 바로잡은 뒤에 발사하고, 발사하여 맞추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서 돌이켜 〈원인을〉 찾을 뿐이다.”
288 自耕稼陶漁 以至爲帝 無非取於人러시다 <孟子, 公孫丑上>  
밭 갈고 곡식 심으며 질그릇 굽고 고기 잡을 때부터 황제가 될 때까지 남에게서 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289 取諸人以爲善 是與人爲善 君子 莫大乎與人爲善이니라 <孟子, 公孫丑上>  
남에게 취하여 선(善)을 행하는 것은 남이 선을 행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남이 선을 행하는 것을 돕는 것보다 위대한 것이 없다.”
290 三里之城 七里之郭 環而攻之而不勝하나니 夫環而攻之 必有得天時者矣언마는 然而不勝 是天時不如地利也니라 <孟子, 公孫丑下>  
3리 〈둘레〉의 내성(內城)과 7리 〈둘레〉의 외성(外城)을 포위하여 공격해도 이기지 못하는데, 대체로 성곽을 포위하여 공격할 적에 반드시 천시(天時)를 얻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이는 천시가 지리(地利)만 못해서이다.
291 當在宋也하여는 予將有遠行이러니 必以贐이라 辭曰 餽贐이어니 予何爲不受리오 <孟子, 公孫丑下>  
송(宋)나라에 있을 당시에는 내가 장차 먼 길을 갈 일이 있었네. 길 떠나는 자는 반드시 노자를 주는 〈법인데,〉 사례하며 말하길 ‘노자를 드립니다.’ 하니, 내가 어찌하여 받지 않겠는가?
292 曰 今有受人之牛羊而爲之牧之 則必爲之求牧與芻矣리니 求牧與芻而不得이면 則反諸其人乎 抑亦立而視其死與 曰 此則距心之罪也로소이다 <孟子, 公孫丑下>  
〈맹자가〉 말하였다. “만약 다른 사람의 소와 양을 받아서 그를 위하여 소와 양을 기르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소와 양을 위하여 목장과 꼴을 구할 것입니다. 목장과 꼴을 구하지만 얻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돌려주겠습니까? 아니면 또한 선채로 소와 양의 죽음을 보고 있겠습니까?” 〈공거심이〉 말하였다. “이것은 저의 잘못입니다.”
293 他日 見於王曰 王之爲都 臣知五人焉이로니 知其罪 惟孔距心이러이다하시고 爲王誦之하신대 王曰 此則寡人之罪也로소이다 <孟子, 公孫丑下>  
〈맹자가〉 다른 날 왕을 뵙고 말하였다. “왕의 도읍을 다스리는 자 중에서 신이 다섯 사람을 아는데, 자신의 잘못을 아는 자는 오직 공거심(孔距心) 뿐이었습니다.” 왕을 위하여 공거심의 말을 외워서 전하니, 왕이 말하였다. “이는 과인의 잘못입니다.”
294 且比化하여 無使土親膚 於人心 獨無恔乎 <孟子, 公孫丑下>  
또 죽은 자를 위하여 흙을 〈시신의〉 피부에 직접 닿게 하는 것이 없으면 사람(자식)의 마음에 어찌 흔쾌함이 없겠는가?
295 古之爲市 以其所有 易其所無어든 有司治之耳러니 有賤丈夫焉하니 必求龍斷而登之하여 以左右望而罔市利어늘 人皆以爲賤이라 從而征之하니 征商 自此賤丈夫始矣니라 <孟子, 公孫丑下>  
옛날에 시장의 기능은 자기가 가진 물건을 자기가 없는 물건으로 바꾸는 것인데, 담당 관리는 분쟁을 다스릴 뿐이었다. 어떤 천장부(賤丈夫)가 꼭 높은 언덕을 찾아서 거기에 올라가 좌우를 바라보고 시장의 이익을 긁어모으자, 사람들이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다. 때문에 좇아서 그에게 세금을 받으니, 상인에게 세금 징수가 이 천장부로부터 시작되었다네.”
296 有欲爲王留行 坐而言이어늘 不應하시고 隱几而臥하신대 <孟子, 公孫丑下>  
왕을 위하여 〈맹자가〉 떠나는 것을 만류하고자 하는 자가 있어 〈찾아와〉 앉아서 말하는데, 〈맹자는〉 응하지 않고 안석에 기대어 누워있었다.
297 子爲長慮而不及子思하니 子絶長絶子乎 <孟子, 公孫丑下>  
그대가 늙은이(나)를 위하여 생각하되, 〈목공이〉 자사를 〈생각한 것에는〉 미치지 못하니, 그대가 늙은이를 절교하는 것인가? 늙은이가 그대를 절교하는 것인가?”
298 然友 反命한대 世子 曰 然하다 是誠在我라하고 五月居廬하여 未有命戒어늘 百官族人 可謂曰知라하며 及至葬하여 四方 來觀之하더니 顔色之戚 哭泣之哀大悅하더라 <孟子, 滕文公上>  
연우가 보고하자, 세자가 말하였다. “그렇다. 이것은 진실로 나에게 달려있다.” 하고, 다섯 달을 여막(廬幕)에 지내며 명령과 교계(敎戒)가 있지 않았는데, 백관과 종친이 모두[皆] 〈세자를〉 일러 ‘예를 안다.’고 말하였으며, 장례에 이르러서는 사방에서 와서 세자를 보았는데, 얼굴빛의 근심과 흐느끼며 눈물 흘리는 슬픔에 조문하는 자들이 매우 감복하였다.
299 民之爲道也 有恒産 有恒心이요 無恒産者 無恒心이니 苟無恒心이면 放辟邪侈 無不爲已 及陷乎罪然後 從而刑之 罔民也 焉有仁人在位하여 罔民 而可爲也리오 <孟子, 滕文公上>  
백성이 살아가는 방법은 항산(恒産)이 있는 사람은 항심(恒心)이 있고, 항산이 없는 사람은 항심이 없습니다. 진실로 항심이 없으면 방탕하고 치우치고 부정하고 사치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니, 죄에 빠뜨리는 데에 이른 뒤에 그들을 좇아서 벌하면 이것은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에게 그물질하는 것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
300 夏后氏 五十而貢하고 殷人 七十而助하고 周人 百畝而徹하니 其實 皆什一也 徹也 藉也니이다 <孟子, 滕文公上>  
하(夏)나라 때는 〈한 가장(家長)에게〉 50묘(畝)마다 공법(貢法)을 썼고 은(殷)나라 때는 70묘마다 조법(助法)을 썼고 주(周)나라 때는 100묘마다 철법(徹法)을 썼으니, 그것들의 실제는 모두 10분의 1〈의 세금을 징수한 것〉입니다. 철(徹)은 〈일과 분배를〉 균등하게 통일한다는 것이고, 조(助)는 〈백성의 힘을〉 빌린다는 것입니다.
301 設爲庠序學校하여 以敎之하니 養也 敎也 射也 夏曰校 殷曰序 周曰庠이요 學則三代共之하니 皆所以明人倫也 人倫 明於上이면 小民 親於下니이다 <孟子, 滕文公上>  
상(庠)과 서(序)와 학(學)과 교(校)를 설치하여 백성을 가르쳤는데, 상은 기른다는 것이고 교는 가르친다는 것이고 서는 활쏘기를 〈익힌다는 것〉입니다. 〈지방 학교를〉 하(夏)나라는 ‘교’라고 하고 은나라는 ‘서’라고 하고 주나라는 ‘상’이라 하고 〈도성의〉 ‘학’은 곧 삼대가 그 이름을 함께하니, 모두 인륜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륜이 위에서 밝아지면 서민은 아래에서 친목할 것입니다.
302 然則治天下 獨可耕且爲與 有大人之事하고 有小人之事하며 且一人之身而百工之所爲備하니 如必自爲而後 用之 率天下而路也니라 曰 或勞心하며 或勞力이니 勞心 治人하고 勞力 治於人이라하니 治於人者 食人하고 治人者 食於人 天下之通義也니라 <孟子, 滕文公上>  
〈맹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유독 밭을 갈면서 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대인의 일이 있고 소인의 일이 있다네. 또 한 사람의 몸에 백공이 만든 것이 구비되어야 하니, 만일 반드시 스스로 만든 뒤에 도구를 써야 한다면, 이는 천하의 사람을 몰아서 길로 내보내는 것이네. 그러므로 말하길 ‘어떤이는 마음으로 애를 쓰고 어떤이는 힘으로 애를 쓰니, 마음으로 애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으로 애쓰는 자는 남에게 다스려진다.’ 하였으니, 남에게 다스려지는 자는 남을 먹여주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게서 먹는 것이 천하의 공통된 의리라네.
303 吾聞出於幽谷하여 遷于喬木 未聞下喬木而入於幽谷로라 <孟子, 滕文公上>  
나는 ‘깊은 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로 옮겨간다.’는 것은 들었고, ‘높은 나무에서 내려와서 깊은 골짜기에 들어간다.’는 것은 듣지 못했네.
304 且羞與射하여 比而得禽獸 雖若丘陵이라도 弗爲也하니 如枉道而從彼 何也 且子過矣로다 枉己 未有能直人니라 <孟子, 滕文公下>  
마부조차 사수와 영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영합해서 짐승을 잡은 것이 비록 구릉과 같이 〈많〉더라도 하지 않았다네. 만약 도를 굽혀서 〈예에 맞는 부름 없이〉 제후를 따른다면, 어떠하겠는가? 또 그대의 잘못이구나. 자신을 굽힌 자 중에 남을 펼 수 있는 자는 있지 않았다네.”
305 世衰道微하여 邪說暴行 有作하여 臣弑其君有之하며 子弑其父有之하니라 <孟子, 滕文公下>  
세상이 쇠퇴하고 도리가 미약하여,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실이 또 일어나서, 신하로서 제 임금을 시해하는 자, 그런 자가 있었고, 자식으로서 제 아버지를 시해하는 자, 그런 자가 있었네.
306 欲爲君인댄 盡君道 欲爲臣인댄 盡臣道 皆法堯舜而已矣 不以舜之所以事堯 事君이면 不敬其君 不以堯之所以治民으로 治民이면 賊其民니라 <孟子, 離婁上>  
임금이 되고자 한다면 임금의 도를 다할 것이고, 신하가 되고자 한다면 신하의 도를 다할 것이니, 두 가지는 모두 요순(堯舜)을 본받을 뿐이다. 순이 요임금을 섬기던 방법으로 임금을 섬기지 않으면 그 임금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고, 요임금이 백성을 다스리던 방법으로 백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 백성을 해치는 것이다.
307 孟子曰 天下有道에는 小德 役大德하며 小賢 役大賢하고 天下無道에는 小役大하며 弱役强하나니 斯二 天也 順天하고 逆天이니라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작은 덕이 큰 덕에 부림을 받고, 작은 현명함이 큰 현명함에 부림을 받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작은 것이 큰 것에 부림을 받고, 약한 것이 강한 것에 부림을 받으니, 이 두 가지는 천명이다. 천명을 따르는 사람은 보존되고, 천명을 거스르는 사람은 망한다.
308 孟子曰 不仁者 可與言哉 安其危而利其菑하여 樂其所以亡하나니 不仁而可與言이면 則何亡國敗家之有리오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불인(不仁)한 사람과 더불어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의 위태로움을 편안하게 여기고 자신의 재앙을 이롭게 여겨서 그 망하는 원인을 즐기나니, 불인한데도 더불어 말할 수 있다면 어찌 나라를 망치고 집안을 무너트리는 일이 있겠는가?
309 是故 天之道也 思誠 人之道也니라 <孟子, 離婁上>  
이때문에 성실함은 하늘의 도이고, 성실을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310 善戰服上刑하고 連諸侯次之하고 辟草萊任土地次之니라 <孟子, 離婁上>  
그러므로 전투를 잘하는 자는 극형에 처해지고, 제후를 연합하는 자는 극형의 다음에 처하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백성에〉 토지를 맡겨 〈세금을 거두는〉 자는 그 다음에 처해진다.
311 孟子曰 存乎人 莫良於眸子하니 眸子不能掩其惡하나니 胸中이면 則眸子瞭焉하고 胸中 不正이면 則眸子眊焉이니라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사람에게 있는 것은 눈동자보다 좋은 것은 없으니, 눈동자가 자기의 악을 가릴 수 없다. 마음에 품은 것이 바르면 눈동자가 맑고, 마음에 품은 것이 바르지 않으면 눈동자가 흐리다.
312 孟子曰 事孰爲大 事親 爲大하니라 守孰爲大 守身 爲大하니라 不失其身而能事其親 吾聞之矣 失其身而能事其親 吾未之聞也로라 <孟子, 離婁上>  
맹자가 말하였다. “섬김에는 무엇이 큰 것이 되는가? 부모를 섬기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된다. 지킴에는 무엇이 큰 것이 되는가?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것이 된다. 제 자신을 잃지 않고서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들어보았고, 제 자신을 잃고서 제 부모를 잘 섬기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다.
313 事親 若曾子 可也니라 <孟子, 離婁上>  
어버이 섬기는 것을 증자처럼 하는 것이 옳다.”
314 孟子曰 大人 言不必信이며 行不必果 惟義所在니라 <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대인은 말에 믿음직함을 기필하지 않으며, 행실에 과감함을 기필하지 않고, 오직 의가 있는 바를 〈행할〉 뿐이다.”
315 孟子曰 大人 不失其赤子之心니라 <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대인은 그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316 孟子曰 天下之言性也 則故而已矣 以利爲本이니라 <孟子, 離婁下>  
맹자가 말하였다. “천하에 성(性)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자취〈를 말하는 것〉 뿐이니, 자취란 순리를 근본으로 삼는다.
317 曾子居武城하실새 有越寇러니 或曰 寇至하나니 盍去諸리오 曰 無寓人於我室하여 毁傷其薪木하라 寇退則曰 修我牆屋하라 我將反호리라 寇退어늘 曾子反하신대 左右曰 待先生 如此其忠且敬也어늘 寇至則先去하여 以爲民望하시고 寇退則反하시니 殆於不可로소이다 沈猶行曰 是 非汝所知也 沈猶有負芻之禍어늘 從先生七十人 未有與焉이라하니라 <孟子, 離婁下>  
증자(曾子)가 무성(武城)에 살 때 월(越)나라의 약탈이 있자,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도적이 이르렀으니 어찌 떠나지 않습니까?” 〈증자가〉 말하였다. “내 집에 사람을 붙여두어 그 땔감과 나무를 훼손시키지 말라.” 도적이 물러가자 곧 〈증자가〉 말하였다. “나의 담장과 지붕을 보수하라. 나는 장차 돌아가겠다.” 도적이 물러가고 증자가 돌아왔는데, 주변 사람들이 말하였다. “선생을 대함이 이처럼 매우 충성하고 또 공경하였는데, 도적이 오자 곧 먼저 떠나서 백성의 본보기가 되시고, 도적이 물러가자 곧 돌아오니, 옳지 않은 일에 가깝습니다.” 심유행(沈猶行)이 말하였다. “이것은 너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심유씨 집안에 부추(負芻)의 반란이 있었는데, 선생을 따르는 자 칠십 명은 난에 함께한 자가 있지 않았다네.”
318 齊人 有一妻一妾而處室者러니 其良人이면 則必饜酒肉而後이어늘 其妻問所與飮食者하니 則盡富貴也러라 其妻告其妾曰 良人이면 則必饜酒肉而後할새 問其與飮食者호니 盡富貴也로되 而未嘗有顯者來하니 吾將瞷良人之所之也호리라하고 蚤起하여 施從良人之所之하니 徧國中호되 無與立談러니 卒之東郭墦間之祭者하여 乞其餘하고 不足이어든 又顧而之他하니 此其爲饜足之道也러라 其妻歸告其妾曰 良人 所仰望而終身也어늘 今若此라하고 與其妾으로 訕其良人而相泣於中庭이어늘 而良人 未之知也하여 施施從外來하여 驕其妻妾하더라 <孟子, 離婁下>  
제나라 사람 중에 한 아내와 한 첩을 두고서 집에 사는 자가 있었는데, 그 남편이 외출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난 뒤에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함께 마시고 먹은 사람을 물어보면 모두 부귀한 사람이었다네. 그의 아내가 그 첩에게 알려 말하길, ‘남편이 외출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난 뒤에 돌아오기에 그 함께 마시고 먹은 사람을 물어보니 모두 부귀한 사람인데, 한번도 명성이 있는 사람이 찾아온 일이 있지 않으니, 내가 장차 남편의 가는 곳을 엿보겠네.’ 하고, 일찍 일어나서 남편이 가는 곳을 미행하니, 성 안을 두루 다니되, 함께 서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내 동쪽 성곽의 무덤 근처의 제사 지내는 사람에게 가서 그 남은 음식을 구걸하고 충분하지 않으면 또 돌아보고서 다른 곳을 가니, 이것이 그가 배부르기 위한 방법이었다네. 그의 아내가 돌아와서 그의 첩에게 일러 말하길, ‘남편은 우러러 바라보면서 생을 마칠 바인데 지금 이와 같네.’ 하고, 그의 첩과 함께 제 남편을 헐뜯으면서 서로 마당 가운데에서 울었는데, 남편은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의기양양하게 밖으로부터 돌아와 그의 아내와 첩에게 교만하였다네.
319 曰 以行與事 示之 如之何잇고 曰 天子能薦人於天이언정 不能使天으로 與之天下 諸侯能薦人於天子언정 不能使天子 與之諸侯 大夫能薦人於諸侯언정 不能使諸侯 與之大夫 昔者 堯薦舜於天而天受之하시고 暴之於民而民受之하니 曰 天不言이라 以行與事 示之而已矣라하노라 <孟子, 萬章上>  
〈만장이〉 말하였다. “‘행실과 일로써 그것을 보여주었다’라는 것은 그것을 어찌 했다는 것입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천자는 사람을 하늘에 천거할 수 있을지언정 하늘로 하여금 그에게 천하를 주게 할 수 없으며, 제후는 사람을 천자에 천거할 수 있을지언정 천자로 하여금 그에게 제후의 직을 주게 할 수 없으며, 대부는 사람을 제후에 천거할 수 있을지언정 제후로 하여금 그에게 대부의 직을 주게 할 수 없다네. 옛날에 요임금이 순임금을 하늘에 천거하자 하늘은 순을 받아들였고, 순을 백성에게 드러내자 백성이 순을 받아들였다네. 그러므로 말하길, ‘하늘은 말하지 않는다. 행실과 일로써 그것을 보여줄 뿐이다.’라고 한 것이네.”
320 柳下惠 不羞汚君하며 不辭小官하며 進不隱賢하여 必以其道하며 遺佚而不怨하며 阨窮而不憫하며 與鄕人處호되 由由然不忍去也하여 爾爲爾 我爲我 雖袒裼裸裎於我側인들 爾焉能浼我哉리오하니 聞柳下惠之風 鄙夫寬하며 薄夫敦하니라 <孟子, 萬章下>  
유하혜는 더러운 임금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작은 벼슬을 사양하지 않으며, 나아가면 현명함을 숨기지 않아서 반드시 그 도리로써 하고, 버려지더라도 원망하지 않으며, 곤궁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으며, 시골 사람과 있어도 태연하게 차마 떠나지 않고서,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이니, 비록 내 옆에서 옷을 걷고 벌거벗더라도,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하니, 그러므로 유하혜의 풍도를 들은 자는 비루한 사내는 관대해지고, 야박한 사내는 후해진다.
321 孟子曰 富歲 子弟多賴하고 凶歲 子弟多暴하나니 非天之降才 爾殊也 其所以陷溺其心 然也니라 <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풍년에는 자제들이 〈가르침에〉 의지함이 많고 흉년에는 자제들이 포악함이 많으니, 하늘이 재질을 내려준 것이 이처럼 다른 것이 아니다. 그 자제의 마음을 빠트린 까닭[所以]에 그런 것이다.
322 孟子曰 五穀 種之美者也 苟爲不熟이면 不如荑稗 夫仁 亦在乎熟之而已矣니라 <孟子, 告子上>  
맹자가 말하였다. “오곡(五穀)은 씨앗 중에 아름다운 것이지만 만일 익지 않으면 피[荑稗]만 같지 못하니, 무릇 인 또한 그것을 익히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
323 孟子曰 居下位하여 不以賢事不肖者 伯夷也 五就湯하며 五就桀者 伊尹也 不惡汚君하며 不辭小官者 柳下惠也 三子者不同道하나 其趨 一也 何也 曰 仁也 君子 亦仁而已矣 何必同이리오 <孟子, 告子下>  
맹자가 말하였다. “낮은 지위에 거처하면서 〈자신의〉 어짊으로써 불초한 자를 섬기지 않은 사람은 백이(伯夷)였고, 다섯 번 탕왕(湯王)에게 나아가고 다섯 번 걸(桀王)왕에게 나아간 사람은 이윤(伊尹)이었고, 더러운 군주를 싫어하지 않고 작은 관직도 사양하지 않은 사람은 유하혜(柳下惠)였으니, 〈이들〉 세 분은 방법은 같지 않았으나, 그 취지는 똑같았으니, 똑같은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인(仁)’이었습니다. 군자는 또한 인할 뿐이니, 어찌 굳이 같이 할 것이 〈있었겠〉습니까?”
324 孟子曰 聖人 百世之師也 伯夷柳下惠 是也 聞伯夷之風 頑夫廉하고 懦夫有立志하며 聞柳下惠之風者 薄夫敦하고 鄙夫寬하나니 奮乎百世之上이어든 百世之下 聞者 莫不興起也하니 非聖人而能若是乎 而況於親炙之者乎 <孟子, 盡心下>  
맹자가 말하였다. “성인(聖人)은 백 대의 스승이니,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가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백이의 풍도(風度)를 들은 자는 욕심 많은 자가 청렴해지고 나약한 자가 뜻을 세우는 일이 있게 된다. 유하혜의 풍도를 들은 자는 각박한 자가 돈독해지고 천박한 자가 너그러워진다. 백 대의 앞에서 분발하면 백 대의 뒤에 〈풍도를〉 들은 자가 흥기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성인이 아니고서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더구나 〈성인에게〉 직접 배운 사람에 있어서랴!”
325 君子依乎中庸하여 遯世不見知而不悔하나니 唯聖能之니라 <中庸, 中庸章句>  
군자는 중용(中庸)을 따라 세상을 피해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니, 오직 성인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326 人也 親親 爲大하고 宜也 尊賢 爲大하니 親親之殺 尊賢之等 禮所生也니이다 <中庸, 中庸章句>  
인(仁)은 사람다움이니 친족을 친애하는 것이 큰 것이고, 의(義)는 마땅함이니 현명한 자를 높이는 것이 큰 것입니다. 친척을 친애하는 차등과 현명한 자를 높이는 등급이 예(禮)가 생겨난 까닭입니다.
327 天之道也 誠之 人之道也 不勉而中하며 不思而得하여 從容中道하나니 聖人也 誠之 擇善而固執之者也니라 <中庸, 中庸章句>  
성(誠)은 하늘의 도(道)이고 성(誠)하려는 것[誠之]은 사람의 도이니, 성(誠)한 자는 힘쓰지 않더라도 〈도에〉 들어맞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도를〉 터득하여 자연스럽게 도에 맞으니, 성인(聖人)이고, 성(誠)하려는 자는 선(善)을 가려서 굳게 지키는 자입니다.
328 自成也 而道 自道也니라 <中庸, 中庸章句>  
성(誠)은 〈사물이〉 스스로 이루는 것이고, 도(道)는 〈사람이〉 스스로 가야할 길이다.
329 物之終始 不誠이면 無物이라 是故 君子 誠之爲貴니라 <中庸, 中庸章句>  
성(誠)은 사물의 시작과 끝이니, 성(誠)하지 않으면 사물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성(誠)을 귀하게 여긴다.
330 詩云 潛雖伏矣 亦孔之昭라하니 君子 內省不疚하여 無惡於志하나니 君子之所不可及 其唯人之所不見乎인저 <中庸, 中庸章句>  
《시경》 〈정월(正月)〉에 이르길 “잠긴 것이 비록 엎드려 있지만 역시 크게 밝다.”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안으로 살펴보아 병폐가 없어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니, 군자가 미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오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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