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가 그(최응)의 집에 행차하여 일러 말하였다. “그대가 고기를 먹지 않으면 두 가지 잘못이 있게 된다. 제 몸을 보전하지 못하여 제 어머니를 끝까지 봉양할 수 없으니, 불효이고, 목숨을 길게 하지 못하여 나(태조)로 하여금 훌륭한 보필을 일찍 잃게 하니 불충이로다.”
시제는 4일간 산재를 하고 3일간 치재를 하며, 기제에는 2일간 산재를 하고 1일간 치재를 하며, 참례에는 1일간 재숙을 한다. 산재라는 것은 (남의) 초상을 조문하지 않으며, 병에 걸린 사람을 문병하지 않으며, 훈채를 먹지 않고, 술을 마셔서 취하는 것에 이르러서는 안 되며, 모든 흉하고 더러운 일에 모두 참여해서는 안 된다. 치재라는 것은, 음악을 듣지 않으며 출입하지 않고, 오직 마음으로 제사를 받는 사람을 생각하여 그가 거처하던 것을 생각하고 그가 웃고 말하던 것을 생각하고 그가 좋아하던 것을 생각하고 그가 즐기던 것을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무릇 그렇게 한 뒤에야, 제사 지내는 때에 이르러 그의 모습을 보는 듯하고, 그의 소리를 듣는 듯하여 정성이 지극하여 신이 흠향하는 것이다.
악기에 말하였다. 돼지를 길러 잡고 술을 만드는 것이 그것으로 화를 만듦이 아니지마는 옥송이 더욱 많아짐은 술의 유폐가 화를 낳아서이다. 이런 까닭으로 선왕이 인하여 주례를 만들어서 한번 (술을) 올리는 예에 손님과 주인이 백 번 절하여, 날을 마치도록 술을 마시면서도 취할 수 없게 하였다. 이는 선왕이 이로써 술의 화에 대비한 것이다.
명도 정 선생이 말하였다. “자식과 아우의 가볍고 뛰어남을 근심하는 사람은 오직 경서의 학문과 책을 읽는 것으로 가르치고, 문자를 짓게 해서는 안 된다. 자식과 아우의 모든 여러 가지 완상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뜻을 빼앗으니, 글씨와 편지에 이르러선 유학을 배우는 사람의 일에 매우 가깝다. 그러나, 한 방향으로 좋아하면 (어조사) 또한 스스로 뜻을 잃는다.”
용백고를 본받다가 될 수 없어도 오히려 삼가고 조심하는 선비는 될 것이니, 이른바 ‘고니를 새기다가 이루지 못하면 그래도 오리를 닮는다’는 것이다. 두계량을 본받다가 되지 못하면 천하의 가볍고 박한 사람이 되는데 빠질 것이니, 이른바 ‘호랑이를 그리다가 이루지 못하면 도리어 개를 닮는다.’는 것이다.”
12
男子無故어든 不入中門하며 婦人이不得輒至男子喪次니라<小學, 嘉言第五>
남자가 까닭이 없으면 중문에 들어가지 않으며, 부인이 갑자기 남자가 상을 치르며 머무는 곳에 이를 수 없다.
겨우 열 살에 큰 추위와 더위가 있고, 비가 내리더라도 종일 (부모를) 모시고 서 있을 때 앉으라고 명하지 않으면 감히 앉지 않았다. 날마다 반드시 관을 쓰고 띠를 매어 (그 모습으로) 써 장자를 뵈었으며, 평소에 비록 매우 덥더라도 부모와 장자의 곁에 있으면 두건과 버선과 행전을 벗지 않고 의복을 오직 삼갔다.
해우령 하자평은 어머니상에 관직을 버리고 슬퍼하며 (몸을) 해치는 것이 예를 넘어서 매번 울고 뛰고, 갑자기 기절했다가 겨우 깨어나곤 하였다. 마침 명나라 말기에 동쪽 지역에 흉년이 들고 전쟁이 이어져 여덟 해 동안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울부짖어 항상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는 날과 같이하였으며, 겨울에는 솜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한 곳에 나아가지 않았다. 하루에 쌀 몇 홉으로 죽을 만들고, 소금이나 채소도 (밥상에) 올리지 않았다. 지내는 바의 집이 무너져 바람이나 해도 가리지 못하자 형의 아들인 백홍이 (그를) 위하여 수리하고자 했으나 자평이 달가워하지 않으며 말하였다. “내 감정이 펴지지 못하고 있으니 천지의 한 죄인일 뿐이다. 집을 어찌 마땅히 덮겠는가?”
급암이 경제의 때에 태자세마가 되어 엄격함으로 꺼려졌는데, 무제가 즉위하자 (급암을) 불러서 주작도위로 삼았는데, 자주 직간하여 오래 벼슬자리에 있지 못했다. 이때 태후의 아우 무안군 전분이 승상이 되었는데, 2천 석을 받는 관원이 절하고 알현하면 전분이 답례하지 않았다. (그러나) 급암이 전분을 만남에 일찍이 절을 하지 않고, (그에게) 읍만을 하였다.
함구몽이 물어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길, ‘성대한 덕의 선비는 임금이 얻어서 신하로 삼을 수 없으며, 아버지도 〈그를〉 얻어 아들로 삼을 수 없다. 순임금이 남쪽을 마주하고 서 있었는데, 요임금이 제후들을 이끌고 북쪽을 마주하여 그를 조회하였고, 고수 또한 북쪽을 마주하여 그를 조회하자 순임금이 고수를 보고서 순의 얼굴에 찡그림이 있었다’ 하니, 공자가 말하길, ‘이때에 세상이 위태로웠도다. 급급하도다’ 하였으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말이 정말로 그러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이는 군자의 말이 아니다. 제나라 동쪽 야인의 말이다. 요임금이 늙어 순임금이 섭정한 것이니, 《요전》에 이르길, ‘〈섭정한 지〉 이십 하고 또 팔 년 만에 방훈이 마침내 죽자, 백성이 부모의 상과 같이 삼 년을 지냈고, 온 세상이 음악 〈연주를〉 그쳤다’ 하였고, 공자가 말하길, ‘하늘에 두 태양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왕이 없다’ 하시니, 순임금이 이미 천자가 되고, 또 천하의 제후를 이끌어서 요임금의 삼년상을 행했다면, 이는 두 명의 천자인 것이네.
공자가 말하길, “송사(訟事)를 판결하는 것은 나도 남과 같으나, 반드시 〈백성에게〉 송사가 없게 할 것이다.” 하였으니, 진실하지 않는 자가 〈터무니 없는〉 제 말을 다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성인이〉 백성의 마음을 크게 두렵게 해서이니, 이것을 ‘근본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이른바 ‘몸을 닦는 것이 제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은, 몸[身]이란 〈마음에〉 화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마음에〉 두려운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마음에〉 좋아하고 즐기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고, 〈마음에〉 근심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20
子曰 回也는 視予猶父也어늘 予는不得視猶子也호니 非我也라 夫二三子也니라<論語, 先進第十一>
공자가 말하였다. “안회는 나를 아버지와 같이 여겼는데, 나는 아들과 같이 여길 수 없었다. 나의 〈뜻이〉 아니다. 저 몇몇의 〈뜻〉이었다.
21
孔子下하사 欲與之言이러시니 趨而辟之하니不得與之言하시다<論語, 微子第十八>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서 접여와 말하고자 하였는데, 〈접여가〉 종종걸음으로 공자를 피하니 〈공자는〉 그와 말할 수 없었다.
등(滕)나라 문공(文公)이 물어 말하였다. “등은 작은 나라입니다. 힘을 다하여 대국을 섬기더라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태왕(太王)이 빈 땅에 살 적에 적인(狄人)이 그곳을 침략하자, 가죽과 비단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개와 말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고, 주옥으로 적인을 섬겨도 침략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 기로(耆老)들을 불러모아서 그들에게 고하여 말하길, ‘적인이 원하는 것은 나의 토지이다. 내 이에 관하여 들으니, 「군자는 그 사람을 기르는 것 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하니 그대들은 어찌 임금이 없을까를 근심하는가? 나는 장차 빈 땅을 떠나겠소.’ 하고 빈 땅을 떠나 양산(耆老)을 넘어 기산(岐山)의 아래에 도읍을 정하여 그곳에 거주하셨습니다. 빈땅 사람들이 말하길, ‘어진 사람이다. 잃어서는 안된다.’ 하고 태왕을 따르는 자가 마치 저자로 모이는 듯 〈많았습니다〉.
심동(沈同)이 그 개인적으로 물었다. “연나라를 정벌해도 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됩니다. 〈연나라 왕인〉 자쾌(子噲)도 남에게 연(燕)나라를 줄 수 없으며, 〈재상인〉 자지(子之)도 자쾌에게 연나라를 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벼슬하는 자가 있다면 그대가 그를 좋아하여 왕에게 고하지 않고 사사로이 그에게 그대의 녹봉과 작위를 주고, 저 선비가 또한 임금의 명령이 없는데도 사사로이 그대에게 녹봉과 작위를 받는다면 괜찮겠습니까? 어떤 것이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용자(龍子)가 말하길 ‘토지를 관리하는 것은 조법(助法)보다 좋은 것이 없고, 공법(貢法)보다 좋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공법은 몇 해의 중간을 비교해서 기준을 삼는 것인데, 풍년에는 쌀알이 어지러이 널려서 조세를 많이 취하더라도 학정이 아닌데도 조세를 조금 취하고, 흉년엔 그 밭에 거름을 주기에 부족한데도 꼭 조세를 가득 취하니,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백성으로 하여금 눈을 흘기며 장차 해를 다하도록 부지런히 움직여도 세금 때문에 제 부모를 봉양할 수 없고, 또 빚을 내서 세금에 보태서 늙은이와 어린이로 하여금 도랑과 산골짜기에서 구르게 한다면, 그 백성의 부모 된 도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요임금과 순임금이 죽은 뒤에 성인의 도가 쇠하자, 폭군이 대대로 나와서 집을 부수어서 연못을 만드니 백성이 편안하게 쉴 곳이 없어졌으며, 농토를 없애서 동산을 만드니 백성에게 옷과 음식을 얻지 못하게 하였네. 부정한 학설과 포악한 행위가 다시 일어나고 동산과 연못과 늪이 많아져서 금수가 이르렀으니, 주왕의 몸에 미쳐서는 천하가 또 크게 어지러워졌네.
나는 이 때문에 두려워하여 선대 성인의 도를 지키고 양주와 묵적을 막으며 방탕한 말을 쫓아내어 바르지 않은 학설이 나올 수없게 하니, 제 마음에서 일어나서 해야 할 일에 해가 되며 해야 할 일에서 일어나서 그 정사를 해를 끼치니, 성인이 다시 나와도 나의 말을 바꾸지 못할 것이네.
함구몽이 물어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길, ‘성대한 덕의 선비는 임금이 얻어서 신하로 삼을 수 없으며, 아버지도 〈그를〉 얻어 아들로 삼을 수 없다. 순임금이 남쪽을 마주하고 서 있었는데, 요임금이 제후들을 이끌고 북쪽을 마주하여 그를 조회하였고, 고수 또한 북쪽을 마주하여 그를 조회하자 순임금이 고수를 보고서 순의 얼굴에 찡그림이 있었다’ 하니, 공자가 말하길, ‘이때에 세상이 위태로웠도다. 급급하도다’ 하였으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말이 정말로 그러합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아니다. 이는 군자의 말이 아니다. 제나라 동쪽 야인의 말이다. 요임금이 늙어 순임금이 섭정한 것이니, 《요전》에 이르길, ‘〈섭정한 지〉 이십 하고 또 팔 년 만에 방훈이 마침내 죽자, 백성이 부모의 상과 같이 삼 년을 지냈고, 온 세상이 음악 〈연주를〉 그쳤다’ 하였고, 공자가 말하길, ‘하늘에 두 태양이 없고, 백성에게는 두 왕이 없다’ 하시니, 순임금이 이미 천자가 되고, 또 천하의 제후를 이끌어서 요임금의 삼년상을 행했다면, 이는 두 명의 천자인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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屋廬子悅이어늘 或問之한대 屋廬子曰 季子는不得之鄒요 儲子는 得之平陸일새니라<孟子, 告子下>
옥려자가 기뻐하자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물으니, 옥려자가 말하였다. “계자는 추 땅에 갈 수 없었고 저자는 평륙에 갈 수 있었습니다.”
맹자가 말하였다. “옛날의 어진 왕들이 선을 좋아하여 〈자기〉 세력을 잊었는데 옛날의 어진 선비들이 어찌 유독 그렇지 않았겠는가? 자신의 도를 즐거워하고 남의 세력을 잊었다. 그러므로 왕과 공이라도 공경을 다하고 예를 다하지 않으면 어진 선비를 자주 만날 수 없었으니 만나는 것도 오히려 자주 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얻어서 어진 선비를 신하로 삼는 것에서야?”